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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의 기술 1 ㅣ 로버트 그린의 권력술 시리즈 3
로버트 그린 지음, 강미경 옮김 / 이마고 / 2002년 8월
평점 :
품절
내 앞에 누군가를 유혹할 수 있는 기회와 능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이 책이 말하는 '유혹의 기술'이다. 이것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내 자신이 당당한 유혹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기쁜 일인가? 하지만, 이 모든것에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그것은 '진심'이다. 상투적이고 지겨운 말로 들릴지 모르겠다. 너무 쉽게 말하고 너무 쉽게 방치해 버리는 이 '진심'이라는 말은. 하지만, 방안에서 오래 묵은 메주 냄새가 지독하기만 한 것이 아닌까닭은 그 안에 깊이 익어가는 장맛이 있기 때문이다. 상투적인 말에는 언제나 그랬듯이 오랜 세월 익혀낸 '진실'이 들어 있기 마련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저자가 말하는 유혹의 기술이라는 매력넘치는 말 사이에 외면해 버리는 진심이 안타깝다.
물론 이 책은 하룻밤사이에 비슷비슷한 제목으로 쏟아져 나오는 처세술 흉내내기에 급급한 책은 아니라고 본다. 카사노바의 연애담부터, 나폴레옹의 야망, 히틀러의 군중을 사로잡던 능력과 스크린안에서 빛을 내던 스타들, 아직도 기억되는 케네디 등 역사적인 인물들을 파헤쳐내는 실력은 꽤나 솜씨가 좋다. 인문학적으로 소화해 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싸구려 처세술'이라는 오명을 벗어날 수 있었다는 어느 평론가의 말은 맞는 말이다.
이렇게 말을 하니, 이 책을 너무 값싸게 여기는 것 같지만 이 책이 재미없었던 것은 아니다. 700쪽에 다다르는 분량을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던 것은 재미다. 특히나 기억에 남는 인물들. 우선 저우언라이의 외교술과 디트리히라는 여배우의 모습, 레닌의 신념과 웅변술, 에비타의 인생과 케네디의 뛰어난 정치력에 대해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저우언라이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인내심을 발휘했고 상대방에게도 동등한 기회를 제공했다. 과연, 북핵 문제를 이렇게 매끄럽게 만들어버릴 외교술을 기대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외교라는 분야에 무지한 내가 보아도 당장 떨어진 발등의 불끄기에도 대응력이 부족한 많은 외교적 성과들은 그를 그리워하게 만든다.
요즘 연예인들이 흔히 이미지 관리라는 걸 하는데, 디트리히는 그 이미지 관리에 완벽하게 성공한 케이스가 아닐까. 그녀에 관한 부분을 읽는 동안 저도 그녀를 직접 한 번 만나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관심한 듯, 초연한 듯한 모습은 뭐든 집착하고 소유해야 하는 세상 사람들한테 멋지게 보일수 밖에 없으니까. 그녀는 거울보기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녀의 거울보기는 자기 관리에 충실할 필요가 있음을 새삼 기억하게 만든다.
레닌이 위기를 극복해내는데에는 '쇼'만 필요했던건 아니라고 본다. 그 쇼에 참석시킬 대중들을 이미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놓아야 했다. 무한한 신뢰와 그들의 기대에 부흥했던 능력으로 말이다. 결국 유혹도 방법에 불과한 거이다. 본질을 드러내는..
에비타는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을 어루만지는 사람이었다. 이게 단지 정치적인 위장에 불과했다고 해도 에비타만큼만 하면, 가장 신뢰할 수 없는 게 정치인과 그 가족이라는 우리 사회의 편견이 좀 덜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멋졌다라는 말이 적합할 것 같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위해서 착실한 준비를 통해 하나하나를 이루어 나갔고, 무엇보다도 그런 것들이 단지 눈가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인생을 걸었던 하나의 목표라는 점에서 더욱 매력있었다.이들은 유혹을 통해 진심을 꾸며간 건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순진하게 모든 정치적 속성을 덮어놓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에 유혹은 진심을 포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진심과 잘 어울리느냐, 얼마나 진심을 드러내주느냐, 포장을 뜯었을 때 포장만으로 보여줬던 궁금증과 호기심을 얼마나 만족시켜주느냐가 유혹의 성공여부를 가늠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유혹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책은 말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많은 유혹들 속에서 모든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작가는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유혹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마음의 노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