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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탄생 ㅣ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4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영화 평론가 정성일은 우석훈을 '명랑' 좌파라고 불렀다.(정성일이 쓴, 우석훈의 책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의 발문의 제목은 '명랑' 좌파에게 건네는 전언이다.)
그러나 우석훈의 책 '괴물의 탄생'은 '호러경제학'의 끝(한국경제 대안 시리즈의 마지막 권이다)답게, '명랑'과는 조금 거리를 두고 있다.
어쨌거나 한국에서 좌파든 우파든, 진보든 보수든, 혹은 남자든 여자든, 우리 모두는 '이명박 경제'라는 괴물을 만들어낸 공범자입니다.(272쪽)이란 그의 진술에, 가슴 아프지만, 나 역시나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경제학이란 분야에 무지한 나로서는 이 책에 대해, 가슴 아프단 말 이외에 별달리 덧붙일 것이 없지만, 책을 읽다가 고개를 갸우뚱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명랑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술술 읽을 수 있었다. 다만, 닫는 글에 가서야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다.
폴 로머Paul M. Romer라는 경제학자가 있다. 1955년 생이니까 이제 마흔 살이 갓 넘었지만, 그의 '내생성장론(혹은 '신성장론')은 1990년대 이후 현대 경제학의 표준성장론이 로머의 모델에서 출발해 이렇게 저렇게 변형된 것들이라고 할 만큼 엄청난 것이다.(275쪽)
앞서 고백했듯 경제학에 무지한 나로서는 폴 로머라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다. 그런데 1955년 생이라는데 왜 마흔을 갓 넘었다고 한 것일까? 이 책을 쓴 시점이 10년 전이거나, 아니면 1955년 생이란 정보가 잘못되었거나, 마흔을 갓 넘었다는 것이 틀린 것이리라. 앞뒤 문맥을 따져보면 아마도, 마흔은 쉰으로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왜 쉰이 마흔으로 바뀐 것일까? 물론 실수이리라. 280쪽의 책에서 한 두 곳 잘못이 없다면 어디 인간적일 수 있을까? 그런데, 대부분의 실수는 무의식적인 데에서 비롯하듯, 쉰을 마흔으로 잘못 적은 데에는 이유가 있을 법 했다. 우석훈의 책 몇권을 요사이 읽어본 바로는 그의 글 가운데 그의 육체적인 나이가 마흔 줄에 접어들었다는 대목이 여럿 눈에 띄었다. 폴 로머의 나이를 말하면서, 내 짐작으로는, 실상 그는 그의 육체적 나이를 대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막 20살이었던 80년대 초, 최승자의 시를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의 삼십 세란 시가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 시의 처음은 다음과 같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왜 20살 그 풋풋한 나이에 삼십 세란 시에 유독 눈길을 주었을까?
최승자는 마흔이 되자 마흔이란 제목을 다시금 써서 우리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서른 살에 될 때는 벼랑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지.
이 다음 발걸음부터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끝도 없이 추락하듯 내려가는 거라고.
그러나 사십대는 너무도 드넓은 구릉같은 평야로구나
한없이 넓어, 가도 가도
벽도 내리받이도 보이지 않는
그러나 곳곳에 투명한 유리벽이 있어
재수 없으면 쿵쿵 머리방아를 찧는 곳
그래도 나는 단 한가지 믿는 것이 있어서
이 마흔에, 날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시인이 오십이 되어 다시 또 '오십 세'란 제목의 시를 썼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서른이 되자 시 읽기가 심드렁해졌고 마흔이 되자 시를 더는 읽지 않게 되었으므로...
나이 이야기가 나온 김에 우석훈이 박노자에 대해 쓴 글의 마지막을 다시 읽어 보게 된다.
나이 가지고 얘기하는 것은 좋은 자세는 아니지만, 하여간 박노자보다 먼저 뭔가 한다고 방방 뛰었던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 전부 접시 물에 코 박아야 한다.(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107쪽)
박노자보다도 나이로는 위이고 우석훈보다도 적은 나이가 아닌 나는, 방방 뛰지 않았단 이유로, 접시 물에 코 박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아무튼, 나이 가지고 얘기하는 것은 좋은 자세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