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세트 (반양장본) - 전3권 - 새 번역 완역 결정판 열하일기 4
박지원 지음, 김혈조 옮김 / 돌베개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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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곳으로 되돌아 오기 위해서 떠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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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행복하게 - 자연과 공동체 삶을 실천한 윤구병의 소박하지만 빛나는 지혜
윤구병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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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들에게 아직도 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는가.-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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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 돌베개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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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회화가 담당했던 역할을 20세기에는 TV가 하고 있다. 값싼 바나나에 섞여 있는 것은 유해한 농약만이 아니라 중남미와 필리핀 농민들의 피와 눈물이기도 하다.-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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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리라이팅 클래식 4
강신주 지음 / 그린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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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이란 제목은 누가 붙인 것일까?

강신주는 장자 가운데, '차이'를 '횡단'하는 '모험'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것의 '즐거움'에 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즐거운 모험이란 형용 모순에 가깝다. 모험(冒險)이란 말 그대로 위험을 무릅쓰는 일, 강신주가 쓴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목숨을 건 비약'(salto mortale)일 수밖에 없(194쪽)기 때문이다. 그대는, 목숨을 거는 일이 즐거우신가? 반 고비 나그네 길을 넘어 산 나로서는 즐거운 모험이란 말엔 아무래도 고개가 절로 갸우뚱하다. 그래, 즐거운 모험이란 형용 모순은 아무래도 '청춘'에나 어울릴 법하다. 강신주의 이야기를 다시금 끌어다 써 보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장자가 권고한 즐거운 연대의 가능성을(그러나, 내 오래된 장자 읽기의 기억만으로는 이 말의 진위는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을 적어 놓는다) 실천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얼마나 멀고도 힘든 길일까? 자신을 포기할 정도로 치열해야만 하는 망각의 수양론, 날개 없이 비약하는 새처럼 타자로 뛰어들어야만 하는 용기와 결단, 그리고 나의 손을 잡아 줄 타자를 마냥 기다려야 하는 초조함. 이 모든 시련을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통과할 때, 우리에게는 어느 순간 장자가 이야기한 봄이 분명 도래하게 될 것이다.(235~6쪽)

지혜와 용기가 있는 자에게 모험은 혹 즐거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혜와 용기가 있어야만 모험을 시작할 수 있는 것 아니다. 오히려 뜻하지 않은 모험이 우리에게 지혜와 용기를 더불어 가져다 주기도 하는 것이다.

반 고비 나그네 길에서 목숨을 걸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아직 청춘일 것이다. 아니, 아직이란 말은 '영원히'로 바꾸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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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탄생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4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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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평론가 정성일은 우석훈을 '명랑' 좌파라고 불렀다.(정성일이 쓴, 우석훈의 책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의 발문의 제목은 '명랑' 좌파에게 건네는 전언이다.)

그러나 우석훈의 책 '괴물의 탄생'은 '호러경제학'의 끝(한국경제 대안 시리즈의 마지막 권이다)답게, '명랑'과는 조금 거리를 두고 있다.

어쨌거나 한국에서 좌파든 우파든, 진보든 보수든, 혹은 남자든 여자든, 우리 모두는 '이명박 경제'라는 괴물을 만들어낸 공범자입니다.(272쪽)이란 그의 진술에, 가슴 아프지만, 나 역시나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경제학이란 분야에 무지한 나로서는 이 책에 대해, 가슴 아프단 말 이외에 별달리 덧붙일 것이 없지만, 책을 읽다가 고개를 갸우뚱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명랑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술술 읽을 수 있었다. 다만, 닫는 글에 가서야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다.

폴 로머Paul M. Romer라는 경제학자가 있다. 1955년 생이니까 이제 마흔 살이 갓 넘었지만, 그의 '내생성장론(혹은 '신성장론')은 1990년대 이후 현대 경제학의 표준성장론이 로머의 모델에서 출발해 이렇게 저렇게 변형된 것들이라고 할 만큼 엄청난 것이다.(275쪽)

앞서 고백했듯 경제학에 무지한 나로서는 폴 로머라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다. 그런데 1955년 생이라는데 왜 마흔을 갓 넘었다고 한 것일까? 이 책을 쓴 시점이 10년 전이거나, 아니면 1955년 생이란 정보가 잘못되었거나, 마흔을 갓 넘었다는 것이 틀린 것이리라. 앞뒤 문맥을 따져보면 아마도, 마흔은 쉰으로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왜 쉰이 마흔으로 바뀐 것일까? 물론 실수이리라. 280쪽의 책에서 한 두 곳 잘못이 없다면 어디 인간적일 수 있을까? 그런데, 대부분의 실수는 무의식적인 데에서 비롯하듯, 쉰을 마흔으로 잘못 적은 데에는 이유가 있을 법 했다. 우석훈의 책 몇권을 요사이 읽어본 바로는 그의 글 가운데 그의 육체적인 나이가 마흔 줄에 접어들었다는 대목이 여럿 눈에 띄었다. 폴 로머의 나이를 말하면서, 내 짐작으로는, 실상 그는 그의 육체적 나이를 대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막 20살이었던 80년대 초, 최승자의 시를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의 삼십 세란 시가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 시의 처음은 다음과 같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왜 20살 그 풋풋한 나이에 삼십 세란 시에 유독 눈길을 주었을까?

최승자는 마흔이 되자 마흔이란 제목을 다시금 써서 우리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서른 살에 될 때는 벼랑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지.
이 다음 발걸음부터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끝도 없이 추락하듯 내려가는 거라고.

그러나 사십대는 너무도 드넓은 구릉같은 평야로구나
한없이 넓어, 가도 가도
벽도 내리받이도 보이지 않는
그러나 곳곳에 투명한 유리벽이 있어
재수 없으면 쿵쿵 머리방아를 찧는 곳

그래도 나는 단 한가지 믿는 것이 있어서
이 마흔에, 날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시인이 오십이 되어 다시 또 '오십 세'란 제목의 시를 썼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서른이 되자 시 읽기가 심드렁해졌고 마흔이 되자 시를 더는 읽지 않게 되었으므로...

나이 이야기가 나온 김에 우석훈이 박노자에 대해 쓴 글의 마지막을 다시 읽어 보게 된다.

나이 가지고 얘기하는 것은 좋은 자세는 아니지만, 하여간 박노자보다 먼저 뭔가 한다고 방방 뛰었던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 전부 접시 물에 코 박아야 한다.(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107쪽)

박노자보다도 나이로는 위이고 우석훈보다도 적은 나이가 아닌 나는, 방방 뛰지 않았단 이유로, 접시 물에 코 박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아무튼, 나이 가지고 얘기하는 것은 좋은 자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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