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죽지 않을 테니 - 솔제니찐 소품집 분도소책 27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장익 옮김 / 분도출판사 / 1985년 6월
평점 :
품절


네이버의 지식인의 서재를 구경하다가 생물학자 최재천의 서재도 흘깃 보게되었다. 

http://bookshelf.naver.com/intellect/view.nhn?intlct_no=16 

   
  여러 전집, 그중에서도 노벨 문학 전집은 제가 우겨서 구매를 하였습니다. 매년 상 받은 작가의 작품이 번역되어 나오면, 그때마다 사서 전집에 첨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제일 마지막으로 샀던 작품이 솔제니친의 책이었어요. 그걸 단숨에 다 읽었죠.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 책에 덤으로 번역되어 있던 수필 중 하나에 제가 요새 말로 '꽂힌' 거예요. '모닥불과 개미'라는 제목의 한 페이지짜리 수필이었어요. 불 속에 갇힌 동료를 구하러 가는 개미들의 행동에 대해 '왜 저런 이타적인 행동을 할까?'라는 의문을 던지는 수필이었어요. 이상하게 그 글이 저에겐 잊혀지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제가 지금 전공하는 사회 생물학을 알게 되었는데, 사회 생물학의 가장 큰 질문 중 하나가 개미들이 보여준 것과 같은 행동에 대한 질문이더라고요.'어? 솔제니친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사실 저는 제가 이과대학을 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이 과정에는 우연한 사건도 몇 가지 있는데, 솔제니친을 접하게 된 것도 그 중 하나예요. 문학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있던 저를 이렇게 과학 분야로 손잡아 끌어주신 분이 솔제니친이에요.
 
   

라는 내용에 눈길이 갔다. 

솔제니친이 문학 작품에 호기심을 갖고 있던 최재천을 과학이란 분야로 이끌었다는 것은 흥미로웠다. 그 중에 그가 '꽂힌' 거라고 말한 솔제니친의 수필 '모닥불과 개미'도 덤으로 흥미를 끌게되었다. '우리는 죽지 않을 테니'라는 이 천 원짜리(85년에 초판, 내가 구한 것은 87년에 나온 재판이이다) 얇은 책(65쪽)을 사보게 된 이유는 이것이다. 

그런데, 불 속에 갇힌 동료를 구하러 가는 개미들의 행동에 대해 '왜 저런 이타적인 행동을 할까?'라는 의문을 던지는 수필이었어요 

라는 최재천의 인터뷰 내용은 그런데 내가 읽어본 솔제니친의 수필 '불과 개미들'은 조금(아니 전혀) 달랐다. 거기에는 이타적인 행동이라 부를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래는 '우리는 죽지 않을 테니'(솔제니찐 소품집이란 부제가 달려 있다) 29쪽에 실려 있는 '불과 개미들'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다 썩은 나무 한 토막을 불에 던진 일이 있었다. 그 안에 개미가 가득 살고 있는 줄은 몰랐다. 나무가 딱딱 소리를 내며 타오르기 시작하자 개미들은 떼를 지어 쏟아져 나와 어쩔 바를 모르며 이리저리 헤맸다. 나무를 따라 기어다니다가 불에 타면 꼬부라지곤 했다. 나는 곧 그 나무를 건져내서 불 곁으로 굴렸다. 이제 많은 개미들이 살게 되었다. 개미들은 모래 위로 해서 솔잎을 넘어 기어갔다. 

그런데 이 게 웬 일인가? 개미들은 불에서 도망치지를 않았다. 

방금 봉변을 당했는데도 되돌아 왔다.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그들을 버림받은 집으로 다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그중에 많은 개미들은 도로 타는 나무에 기어올라가 갈팡질팡하다가 죽어버렸다. 

 
   

  

최재천이 기억하는 '모닥불과 개미'와 내가 읽어본 '불과 개미들'은 다른 작품이었을까? 비록 번역은 다를지라도 전혀 다른 수필은 아닐 것이다. 불 속에 갇힌 동료를 구하러 가는 개미들의 행동은 분명 없다. '왜 저런 이타적인 행동을 할까?'라는 의문도 따라서 자연스럽지 못하다.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그들을 버림받은 집으로 다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라는 부분이 눈길을 잡아끌 만하지만 거기에서 이타주의를 발견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재천의 이런 기억의 왜곡은 그가 오래전에 읽었던 그 수필에 다른 기억을 덧붙이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일 것이다.

오래 전에 읽었던 그 수필의 내용은 그가 유학가서 밤을 새워 읽었다는 책, 그의 스승 에드워드 윌슨이 쓴 '사회 생물학'의 독서 경험과  겹쳐진다.

 

   
  유학간 첫 해 이 책을 교과서로 사용하였습니다. 아직 영어가 서툴던 시절이었는데도 이 두꺼운 책을 밤을 새며 읽었어요. 이 책의 중심 키워드는 이타주의예요. 우리를 포함한 동물은 왜 이타적인 행동을 할까요? 어린 시절부터 제가 가지고 있던 삶에 대한 질문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씩 정리되었습니다.   
   

분명 강렬한 기억과 암시를 주었을 수필(불과 개미들)의 독서 기억은 세월이 지나면서 희미해지고 거기에 그가 나중에 읽었던 '사회생물학'의 주제가 덧씌워진 것이다.(최재천의 경우만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나처럼 둔한 사람은 어제와 그제의 일도 분간하기 쉽질 않다.)  

이 책 맨 마지막에 실린 '나(물론 솔제니친이다)의 생애'란 글을 보니, 솔제니친은 로스또프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했고(비록 수학을 헌신해야 할 천직으로 생각하진 않았으나) 그 덕에 두 번이나 그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최재천은 솔제니친을 자신을 문학에서 과학으로 이끌어주었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솔제니친은, 수학과 물리학이란 과학의 길에서 문학가의 삶으로 운명을 바꾸어 살았던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