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니어링 자서전 역사 인물 찾기 11
스콧 니어링 지음, 김라합 옮김 / 실천문학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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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에 당첨되어 실천문학사의 책 5권 - 닥터 노먼 베쑨, 체 게바라 평전, 이현상 평전, 넬슨 만델라 평전 그리고 스콧 니어링 자서전 -을 얻어 볼 수 있었다. 

국민학교 때 어머니가 사주신 각기 30권짜리(였다고 기억하지만, 이 기억을 나도 믿을 순 없다) 한국 위인전집과 세계 위인전집을 읽은 이후로 한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 평전이나 자서전을 읽은 일이 거의 처음인 듯 싶다.(위인이 아니라 문학가들의 삶을 다룬 책 몇 권을 그 뒤에 읽긴 한 것 같긴하지만 역시나 기억에 별로 남아 있진 못하다.)

스콧 니어링은, 서경식 선생의 표현을 빌면, 디아스포라다. 그는 추방당한 자인 것이다. 그가 추방된 이유는, 부와 가난 사이의 극심한 모순과 착취의 불공정, 계획적인 대량 살상과 파괴를 폭로했기 때문이었다.(241쪽) 그리고 그런 경험을 통해, 그는 평화주의자, 채식주의자, 사회주의자가 되기로 하고, 그 결심을 실천하는 데에 평생을 헌신했다. 그는 또한 교사로 그리고 학생으로 평생을 지내온 사람이기도 하다. 그 스스로 이야기 하듯, 그는 진리를 탐구하고, 진리를 가르치고, 진리와 정의를 사회조직 속으로 짜넣는 작업을 도와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태어났다.(513쪽)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그런 과제를 안고 있었다는 것은 조금 과장이리라. 그 스스로 말했듯, 군인, 법관, 목사, 공무원이나 정치인이란 직업 대신 그가 교사의 길을 선택한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94쪽) 하지만, 그의 삶을 회고하는 이 자서전의 말미에서, 과제를 안고 태어났다는 표현을 읽을 때, 그것은 표나게 넘처보이지 않는다. 그가 추구했던 '조화로운 삶'을 위해 끝없이 '투쟁'했던 것을 두고 생각해 보면 말이다. 

"교사의 자리는 진보의 제일선에 있다." 이것은, 스콧 니어링의 어린 시절 스승이었던, 사이먼 패튼이 입버릇처럼 하던 두 가지 얘기 중 하나다. 스콧 니어링은, 나는 어떤 사회체제에서든 교사의 역할이 이 한 마디 말로 요약된다고 생각한다.(83쪽)고 자신의 뇌리에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를 풀어 설명한다. 스콧 니어링은 평생 가르치기를 멈추지 않았던 교사였으며, 그런 까닭으로 그는 늘 진보의 최일선에 서 있었다. 그러니 나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진보의 제일선에 서 있는가? 

올 3월이면 고등학생이 되는 조카에게 물었다.
채식주의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니? 
그러자, 고개가 가로로 흔들린다.
음...그래, 맛있는 삼결살을 먹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작은 아빠도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은 몹시 어려울 것 같아. 그래, 그런데, 평화주의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니?
곧, 예라고 이야기 하는 듯 입을 가볍게 벌리는 듯 싶더니, 고개도 끄덕인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살육하는 일이 가능하냐고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러자, 조카는 머뭇거렸다.
채식주의자가 아니고서 어떻게 평화주의를 실천할 수 있느냐고 내처 물었다.
조카는 다시금 머뭇거렸다. 

그러자, 곁에 있던 나의 형님은 성경의 한 구절을 빌려와, 내 이야기를 가로 막는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 1:28) 

되돌아 보면, 하나님의 축복은 이미 실현되었다. 인간은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뿐일까?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 나는 말을 아꼈다. 그런데, 다음 번 조카를 만나면, 사회주의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냐고 물어볼 수 있을까?

 지나가는 길에 적어둔다. 514쪽의 '이러한 난관적 전망'은 '이러한 낙관적 전망'의 잘못된 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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