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0
송성욱 풀어 옮김, 백범영 그림 / 민음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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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줄거리를 알고 있으며,

판소리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사랑사랑 내 사랑이야..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하는 사랑가 한 토막은 들어본 듯 할 터.

무릇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가 춘향전일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 용으로 축약된 전래 동화 형식이 아닌,

실제 텍스트로 춘향전을 접해본 사람은 참 흔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나 역시 그러했고 드디어 이번에 이르서어야 민음사판으로 춘향전을 읽을 수 있었다.

 

두 가지 판본으로 새로 읽어본 춘향전은

우리 고전이 으레 그러하듯이 찰진 우리 말과 한시에서 빌어온 운 맞춤,

해학이 넘치는 고사 인용과 풍자 등이 잘 어우러져 읽는 맛이 났다.

또한 누누히 들어왔듯 16세 어린 것들이 벌이는 질펀한 성적 묘사가 또한 일품이고,

익히 알고 있었으나 간단하면서도 줄줄 흘러가는 줄거리 속에서

단편적이면서도 뚜렷한 성정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하며 그 형식 또한 가히 촌스럽지 않다.

최근에도 주변인물인 방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등장하는 것처럼,

고전이 보통 그렇듯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훌륭한 텍스트인 것이다.

 

구전과 필사를 거치며 그때마다 이름모를 조상의 손에서 조금씩 재창조되어

그때그때의 가치관과 생각이 들어간 엄청나게 많은 이본들은

하나하나 소중한 유산이라 할 것이다.

 

이 책에 들어있는 두 개의 판본은 각각 다른 묘사와 필치와 배경으로,

차이가 있어 비교하며 읽으면 또 다른 맛이 나기에 좋고

현란하지 않고 산뜻하면서도 수려한 수묵 채색 삽화가 곁들여져

독자를 생각한 훌륭한 기획, 편집이라

역시 민음 세계문학전집 100권째 답다는 생각이다.

 

즐거운 독서였다.

우리 고전 소설을 이렇게 쉽고 즐겁게 찾아볼 수 있는 기획이 좀더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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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1
가오싱젠 지음, 오수경 옮김 / 민음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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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가오싱젠.

그의 글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소설가로 알고 있었으나 알고 보니 극작가로서 보다 많은 성취를 이룬 듯 하고,

이 책에 실려 있는 두 편의 희곡은 그의 중국 체류 시절의 대표작이라 할만한 것들이다.

 

그의 실험극에서 유난히 두드러지는 것은 음악들이다.

<버스 정류장>에서는 성부를 이용한 군창이 종종 등장하고

<야인>에서는 매 장마다 각각 다른 형식의 주요 노래들이 나타난다.

그가 이러한 노래들과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서사적 내용보다 극예술 자체로서, 특히 배우들의 연기와 개인적 역량으로 극을 끌어냈던

전통적 중국극에서 출발하여

여러 가지 연출 기법이나 무대 장치, 시공간적 제약 파괴 등의 새로운 실험을 시도했던

서양 실험극의 형식을 가져와 그 만의 실험극을 창조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그러한 면의 또 한편에서는

대사 등에서 표현되는 서사 또는 텍스트 또한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그의 면모가 보이는데

나는 특히 베케트를 연상시키면서도

보다 실생활에 밀착되고 순진 무구한 중국 현대인들의 일면을 보여주는 듯한

<버스 정류장>의 등장 인물들의 인생사를 늘어놓는 대사들이 맘에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실제로 연극을 본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는데..

한편의 자그마한 노래극을 본 듯 하게

성부가 나뉘고 동시 대사가 많은 그의 희곡은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언제 공연 한번 되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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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동화집 1 안데르센 동화집 1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빌헬름 페데르센 외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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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동화책을 성인이 되어 다시 읽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

이런 유치한 이야기에 내가 왜 빠져 들었을까,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아아, 이런 이야기가 있었지, 하며 어릴 적 추억과 감상에 빠져 들어 눈물을 흘릴 수도 있으며,

옛날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읽어내며 변해버린 자신을 되돌아 볼 수도 있다.

 

어떤 반응이 나오든 간에,

나는 추억의 동화를 다시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다시 읽는 책의 판본을 고르는 데에는 한 가지 기준이 있다.

아동용으로 축약 번역해 놓은 것이 아닌, 완역본이어야 할 것.

내가 커버린 만큼 책도 커버린 상태에서 공정하게 한판 붙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계속 기다려도 끝내 완역본이 나오지 않는 경우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외국어인 영어 판본을 구해서 읽을 수 밖에 없다 하더라도

꼭 작가가 쓴 그대로의 책을 읽고 싶어서 그러한 원칙을 세웠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기획된 안데르센의 동화전집은 너무나도 반가운 기획이다.

덴마크 뿐 아니라 우리 나라를 포함한 전세계 누구에게나 어렸을 적 꼭 읽게 되었을 그의 동화는

그가 이야기를 쓴 이래,

누구에게나 어릴 적의 필수 코스이었을 것이고

그를 전체적으로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은 오랜 소망이었기 때문이다.

 

불과 2주전에는

북유럽의 한 도시에 머무르며

안데르센의  고향이 오덴세로 향하는 기차표를 어찌 구해볼까 하던 궁리를 하고 있었으니..

사람 인생은 모를 일이다. (오덴세는 결국 못 갔다)

 

성인이 되어 다시 읽어본 서양 동화 또는 우화들이 대부분 그러했듯

그 이야기들은 아름다운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인어공주"와 같은 이야기도 있고 "벌거벗은 임금님"과 같은 이야기도 있다.

익히 익숙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어린이들이 읽을 만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야기꾼 안데르센이 써낸 다른 이야기들은 때로는 섬뜩할 정도로 잔인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슴아플 정도로 현실적으로 인간사의 가슴 아픔을 후벼판다.

마냥 아름답지 만은 않은 그 이야기들 속에

인간에게 가장 보편적인 감정들을 풍부하게 담아 심금을 울리기에

그 이야기들이 정말로 아름답게 느껴지도록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해봤다.

 

행복의 요정과 슬픔의 요정이 나눈 이야기들.

행복을 주려고 만들었던 덧신이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슬픔을 가져다 주는 그 이야기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 안데르센은 많은 것을 궤뚫어 보고 있었다.

 

8권에 걸쳐서 나올 그의 많은 이야기들을 다 읽을 생각이다.

그 여정을 끝냈을 때 나는 조금 더 생각이 많은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 확신이 든다.

그리고 나면 꼭 오덴세에 가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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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서브 로사 4 - 베누스의 주사위 로마 서브 로사 4
스티븐 세일러 지음, 박웅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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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뒷골목, 혹은 광장에서 벌어지는 정치적이면서도 생활사적인 사건들 속에서

'더듬이'라 불리며 온갖 사건에 맞닿으며 해결하는 고르디아누스가 등장하는 네번째 책.

이상하게도 로마사에 끌리는 나로서는 시리즈 첫권부터 즐겁게 읽어오고 있는 소설인데

이번 책은 앞선 세 권과는 조금 다른 듯한 매력이 오히려 묘하게 더 끌려 즐겁게 읽었다.

 

정치적 회오리 한복판의 굵직한 사건들 속의 한가운데 있었던 이전의 모험과는 사뭇 다른 스토리.

물론 살인의 희생자인 디오를 만나게 되는 과정은

드디어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 폼페이우스의 삼두 정치와

이후 이집트를 끼고 벌어지는 권력 싸움과

유명한 클레오파트라, 폼페이우스, 카이사르의 전투, 그리고 카이사르의 등극 등을 앞두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이 아직 이집트의 왕좌에 있던 시절의

이집트와 로마의 정치적 사건들 사이에서 벌어진다.

 

고르디아누스의 옛 스승인 디오가 찾아오고 죽게 되는 사건을 접하며

왠지 모를 의무감으로 이 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한 수사를 시작하는 고르디아누스.

하지만 이후의 스토리 전개는 커다란 정치적 음모와 술수 보다는

난삽하기 그지 없는 로마 귀족의 성적 방종과 뒷 이야기들 속에서

치정의 증오들이 얽히고

왠지 뒷골목의 술냄새와 비릿한 살냄새 등이 풍겨나오는 듯한 사람들과 사건들이 계속하여 등장한다.

 

고르디아누스의 행적을 따라가고 있노라면

오늘날에도 조차 바로 드러내기 힘들 여러 가지 인물들과 사건들이 등장하며

이 복잡한 인물들의 심사와 행동을 선뜻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거기에 중간중간 카툴루스의 시구로 버무려진 텍스트들은

이전의 역사서적인 서술을 떠올리자면 시리즈가 진행되며 약간의 파격을 시도하고 싶었을

작가의 웃음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로되,

그것을 키우면 정치가 되겠지만 작게 들여다 보면 그저 관계에서 비롯되었다.

 

로마인들이 믿었던 수많은 신들.

결국 인간은 그 신들이 굴리는 주사위 숫자에 따라 움직이는 말판이 아닌가.

이번 책의 제목이 <베누스의 주사위> 이듯이,

이번 책의 인물들은 움직이는 것은 사랑의 신 베누스.

동서고금의 숱한 사건들이 그러했듯

사랑과 증오 사이에서 일어나는 복잡다난한 감정이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기 힘든 결과로 이끈다.

 

많은 일을 겪고 난 뒤에,

결국 고르디아누스는 아내에서 사랑으로 돌아가고 가족들 사이에서 안식을 취하는데,

많은 사랑들 중에서 가장 고귀하고 따뜻한, 베누스의 가장 큰 선물이 그것이 아닌가 한다.

 

몇 가지의 사료들을 가지고

이렇게 커다란 사건을 재구성해 낸 작가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한다.

대단하다.

어서 다음권이 나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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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대기 샘터 외국소설선 5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김영선 옮김 / 샘터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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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반가운 옛 친구를 만났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책의 다른 버전만 해도 (읽지도 못하는 불어본 포함해서) 4-5권 정도 되는 듯 한데,

다시 깔끔하고 읽을 만하게 오랜만에 출간된 이 책을 보니 참으로 반갑다.

 

소위 빅 쓰리라 불리우는 아시모프, 클라크, 하인라인 과는 다른 세계를 구축하며,

그저 브래드버리는 브래드버리일 뿐, 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며

내가 SF 소설계의 독자로 처음 발 딛을 무렵 제일 좋아했었던 작가.

그의 대표작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이 책은 면밀한 과학적 고찰에서 나온 하드 SF라기 보다는

'화성'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통해 몇 가지 SF 상상력 장치들을 빌어와 쓴

인간과 인간성, 그리고 문명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텔레파시를 통해 쉽게 공감각적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고

머릿속의 감성과 이성을 투영할 수 있는 화성인의 존재를 통해서

지구인, 즉 우리 인류 자체의 모습을 성찰적으로 들여다 보았을 때 드러나는 모습은 참혹하다.

폭력적이고, 비관적이며, 몰이해성을 가지고 있고 호전적이고, 무엇보다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어울려 살기 힘들며 자신들의 파괴해 가는 모습.

너무도 가슴아프지만 이 책이 쓰여진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역시 그러한 비판의 소재들은

우리 내부와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화성이 아닌 또 다른 지구로서의 식민지 화성의 모습은

태고부터 이러한 습성을 지닌 인간들이 만들어온 결과로서의 현대 문명의

급속한 복제품의 이상이 아니며 우주에서조차 지구인은 새로운 삶의 모습과 사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

결국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도시들은 버려지고 만다.

그리고 모성인 지구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에야 새로운 시작을 꿈꿀 수 있게 된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매우 우울할 수도 있을 법 하나,

브래드버리 특유의 위트와 함께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다.

그 안에서 자분자분 글줄을 따라가다 보면 감동도 받고 웃을 수도 있으며

때로 차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도 만들어주는 위대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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