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일기 - 절망의 수용소에서 쓴 웃음과 희망의 일기
조반니노 과레스키 지음, 윤소영 옮김 / 막내집게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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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누구나 살면서 운명적인 책을 만나게 되고,

또 그 만큼은 아니더라도 언제나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정말로 맘에 드는 책을 만나게 된다.

내 경우, 스무 살에 만났던 책 중에 중요한 책들이 많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과레스끼의 '까밀로와 뻬뽀네' 시리즈였다.

 

시대를 움직이는 거대한 가치관들인 카톨릭이라는 종교와 공산주의라는 사상.

서로를 인정하기 어려운 이 두 가치관이 양립되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유물론적 토대에서 출발하여 신을 부정하는 공산주의와,

유일신을 받아들이며 다른 믿음을 배척하는 카톨릭은 태생적으로 서로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두 믿음을 대표하며 마을을 이끄는 두 리더인 돈 까밀로 신부와 뻬뽀네 읍장.

 

항상 으르렁거리며 이탈리아 사람답게 때로는 주먹을 앞세우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들은 (현실에서와 달리) 서로를 보듬어 안는다.

결국 이 작은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람'이었고

이러한 휴머니즘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가치관의 혼돈기였던 스무 살 시절.

명쾌하고도 유쾌하고, 따뜻하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던 과레스끼의 이 시리즈는 너무도 좋아하는 책이 되어

전 시리즈를 읽고 또 읽었고 주변 사람에도 많이 추천하고 다녔었다.

그 뒤로 <가족> 같은 다른 책도 읽으며 과레스끼의 변치않는 유머있고 재치있는 글을 읽었고.

 

그의 다른 글을 만나고 싶지만 중복 출간뿐 새로운 책이 나오지 않던 차에 아주 반가운 책이 나왔다.

그가 전쟁 포로가 되어 있던 시기의 글을 모아 출간한 수기 형식의 글로,

이전에 번역되었던 다른 책들과는 성격이 다른 글이다.

 

전쟁을 겪는다는 것도 끔찍한 일이고,

그 와중에 포로가 되어 수용소 생활을 한다는 것은 더욱 끔찍하다.

그러한 극한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특히 고향에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놓고서 타국에 있을 경우의 절망감은 상상하기 조차 어렵다.

그러나 과레스끼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특유의 유머와 휴머니즘을 잃지 않는다.

 

하루하루가 고될 수용소 생활의 일상을 익살과 재치로 풀어내며 참아내고,

때로는 사무치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담담하게 그려내며,

때로는 평소에는 잘 잡아내지 못할 일상의 작은 면을 세세하게 바라보고 그려낸다.

어떤 내용을 어떻게 담아내더라도 그의 글에는 사람과 삶을 사랑하는 휴머니즘이 있음에

십수년이 흘러 다시 만난 이 작가의 변함없음이 너무 반갑고 고맙다.

 

비밀스럽게 일기처럼 밤중에 가만가만 아껴가며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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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의 론도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1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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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느 미스테리 소설이 '서술트릭'을 사용했다, 라고 공표하는 것 혹은 마케팅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바로 스포일러가 된다.

대개의 경우 서술 트릭은 독자가 인지하지 못하도록 교묘히 짜여진, 말 그대로의 서술에 의해 이루어지고

독자는 마지막 순간에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갔던 문장들에 의해 드러난

결말의 의외성에 탄복하고 반전을 그제서야 알아차리게 되도록 하는데에 그 묘미가 있다.

따라서 이미 그 미스테리의 트릭이 서술트릭임을 알고 있는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문장 하나하나에 무슨 함정이 숨어 있을지 주목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그 트릭을 알아채게 되어 버리거나 전체적으로 플롯을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어 버려

그 맛이 반감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본다면 서술 트릭에 초점을 맞춘 오리하라 이치의 대표작인 이 책의 마케팅 역시 좋은 방법이 아닐 것.

나 역시 위와 같이 문장을 읽다가 결국 전부는 아니지만 이상한 점을 발견했고

대략적인 트릭을 발견하게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나에게는 흔치 않은 일인데 나는 미스테리를 읽을 때 굳이 작가와 두뇌 싸움을 벌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그저 재미있게 읽는 데에 목적이 있어 기꺼이 작가에게 져줄 준비가 되어 있는 독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의도치 않게 트릭을 발견하게 됨으로써 읽는 재미가 반감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후 계속되는 '도착' 시리즈의 첫권으로서 오리하라 이치라는 작가와의 첫 만남인지라

몇 가지 흥미롭게 이 책을 접할 수는 있었다.

일본어로 발음이 같은 '도작'과 '도착'을 섞여 놓음으로써 제목부터 언어 유희 또는 말장난으로 시작하며

아예 서술 트릭 임을 작가 자신이 광고하는 듯한 이 책은,

작가가 독자로 하여금 읽게 하고 싶은 줄거리는 크게 복잡할 것도 없지만

결말 부분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계속 순환하여 돌린다.

액자 소설같이 인칭이 바뀌고 엉키는 것은 마치 나선 계단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이는 뭔가 뱅글뱅글 도는 느낌으로, 말 그대로 도착에 빠진 어느 감정 상태를 떠올리게 만든다.

 

본문 또한 서로 글을 베끼고 또 베끼는 것은 하나의 텍스트가 변형되지 않은 채 재생산됨을 뜻하고

그 역시 끝없는 순환 과정을 나타내는 듯 하다.

결국 론도라는 음악 형식 또한 주제부가 계속하여 반복되는 것임을 다시 제목에서 상기한다면

이 책은 제목에서 이미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이 책의 파이널 트릭이었음을 깨닫게 됨으로써 독서를 마치게 되는 것.

 

개인적으로는 너무 돌아서(?) 일까 좀 혼란스러운 느낌의 책이었는데..

다음 편을 읽어보고서 작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나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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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로제 마리 & 라이너 하겐 지음, 이민희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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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하면 연상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내게 물어본다면,

가우디, 산티아고 순례길, FC 바르셀로나.. 등과 함께 프라도 미술관과 고야를 꼽지 않을 수 없다.

대학교 교양 수업에서 처음 서양 미술사를 배우면서 미술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할 때에

보았던 고야 그림의 슬라이드 하나.. 거대한 거인의 그림..

그 그림에 매료되어 이후로 고야의 그림을 이러저러한 책과 전시에서 찾아 보게 되었다.

이제 더러는 알고 있는 그림과 삶이지만,

또 다른 그림과 해석, 서술을 타센 시리즈를 통해서 만난다.

 

십년도 전에 광화문의 대형 서점의 외서 코너에서 타센 시리즈를 처음 보았을 때를 기억한다.

적당한 두께와 가벼움, 깔끔하게 인쇄된 도판.. 살만한 가격..

주욱 꽂혀있는 서가를 보며 갖고 싶음에 몸서리쳤던 기억이다.

결국 그 날 원서라서 그림만 볼 것임을 알면서도 한권 살 수 밖에 없었는데..

번역본으로 만나는 타센 시리즈는 더욱 반갑고,,

그 당시 읽지 못했었던 텍스트들은 과연 어떤 식의 서술일지 궁금해진다.

 

고야를 다룬 이 책은,

특별히 연대기 구성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림을 위주로 한 해석이라고도 말하기 애매하다.

특정한 카테고리 또는 주제를 선정하여 그것으로 화가의 삶이나 생각, 그리고 그림에 대한 해석을 동시에 추구한다.

독특한 구성이지만 각 소주제들이 고야를 아주 잘 표현해 주고 있어 마음에 든다.

 

스페인의 복잡다난한 역사 속에서 사실 고야의 그림과 사상은 변화를 겪어 왔다.

그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든, 아니면 입신 양명을 위해서든 그는 권력과 가까이 있기도 했으며

서민과 삶과 풍경으로 들어가 그것을 묘사하기도 했고,

전쟁에 분노한 그림이 나오기도 하는가 하면 무의식적인 환상의 세계를 묘사하기도 했다.

 

사실 한 화사의 작품 세계와 삶을 어느 몇 가지 '풍'이라는 것으로 뭉뚱그리기는 어렵다.

평범한 민초로서 살아가는 사람 또한 얼마나 많은 이야기 거리를 가지고 있는가.

이 책은 그러한 이야기 거리 중의 몇몇을 적절한 그림의 예와 함께 끌어내 오고 있다.

물론 그 도판들은 아름답다.

 

맘에 들고 쉽게 읽을 수 있어서 역시 이 시리즈에 대한 내 처음의 느낌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어 좋다.

다른 화가들을 다룬 책들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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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원숭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4 링컨 라임 시리즈 4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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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디버의 인기 시리즈 링컨 라임 시리즈의 네번째 작품.

이 시리즈의 여러 장점 중의 하나는 마치 레이싱 카를 탄 듯한 속도감이다.

이 작품에서도 어디로 갈 수 없는 바다 위에서 벌어지는 첫 장면은 숨을 돌릴 틈 없는 묘사로

독자가 따라가기도 벅찰 만큼의 속도감과 긴박감을 보여준다.

초반부 수십 페이지를 가쁘게 읽고서야 겨우 한숨 돌리고 링컨과 아멜리아를 다시 맞을 준비를 할 수 있다.

 

아이러니칼한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속도감은 주인공인 링컨이 몸을 꼼짝할 수 없음에 기인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저 좁은 공간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작은, 침대와 휠체어 위에서 극히 제한적인 움직임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의 주인공.

그가 오로지 증거와 추리로 펼치는 생각과 추격은 오히려 몸과 행동으로 움직이는 하드보일드의 주인공들보다 더 빠르다.

사고의 속도가 행동을 앞지르는 것.

링컨의 파트너인 아멜리아 역시 빠른 운전과 행동력으로 링컨의 약점을 보충하지만

본인 또한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와 지병으로 인한 제약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제약을 넘은 두 사람의 교감과 믿음, 그리고 충실한 동료들의 도움으로

어둠 속에 숨어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의 속도를 따라잡아 결국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방식이

이 시리즈의 특징이며 장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어느 작품도 넘보지 못할 치밀한 법의학 추리 기법을 보는 재미가 있다.

 

이번 시리즈는 중국 불법 이민자와 살인자를 다루면서

디버 나름대로의 중국 혹은 동양 문화에 대한 이해와 철학을 담으려고 했다는 점이 신선하다.

중국 형사라는 나름 매력적인 인물을 등장시키며, 그리고 링컨이 그에게 경의를 표함으로써

작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복잡한 인생사와 이런 스릴러 작품에서 쫓는자와 쫓기는자의 싸움이 비슷하듯,

동양 철학에서 그리고 이 작품의 각 장에 두언으로 등장하는 바둑도 비슷하다.

하나가 있으면 또 하나가 있고, 검은 돌이 있으면 흰 돌이 있고

선이 있으면 악이 있고, 음이 있으면 양이 있다.

 

그러한 이면 하나하나를 지고 사는 것이 인생이고 관계인 점을 중국인 특유의 가족관과 현대사,

여러 가지 시각을 보여주고 싶었던 듯 보이는 작품이었다.

등장 인물 조차도 이전 작품에서 잘 쓰지 않았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그 캐릭터를 변화시켜 나가는 것으로 볼 때

디버가 이 작품에는 뭔가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해보고 싶었던 것이 많았음을 느끼게 된다.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이러한 개념이 익숙하기 때문에 보다 쉽게 이해하며 읽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중(中)과 화(和)를 중시하는 동양 철학대로의 심적 양상으로 맺어지는 결말이 좋았다.

이 시리즈의 다음 작품을 얼른 잡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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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이야기 - 가족이 함께 보는 동화 3
오라시오 실베스트레 키로가 지음, 안금영 옮김 / 사람과책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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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몇 단편 모음집에서 접할 수 있었던 라틴 아메리카의 중요한 작가인 키로가의 동화책이라 할 수 있는 책.

책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이 순전히 라틴 문학 수집 차원에서 구해놓았던 책인데 너무 마음에 들었다.

 

밀림의 이야기라는 제목 답게 남아메리카의 일림 속에 사는 여러 동물들이 나오는 일종의 우화적 동화들이다.

그러나 우화라고 해서 이솝 이야기 류의 교훈적인 내용이지도 않고

동화라고 해서 마냥 동심의 아름다운 이야기만 담겨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아름다운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흔히 우리가 '밀림'이라는 약육강식의 세계를 생각하면 떠올리듯이,

허영에 빠져 서로를 죽이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를 지켜주기도 하며, 게으름을 피우기도 하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기도 하며, 속이기도 한다.

마치 인간 세계가 그러하듯이 이렇게 살아가면서 삶이란 이러한 양상들이 얽혀서 반복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나의 생태계가 유지되면서 굴러가는 것은

이러한 약육강식의 세계 속에서도 하나의 질서와 법칙이 깨지지 않고 모두가 그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인데

그것은 '함께 살아가기' 라는 법칙이다.

어찌되었던 더불어 함께 커다란 밀림이라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 세계가 유지되고 모두가 함께 지내며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각 에피소드의 결말은 결국 각각의 고단하거나 행복한 삶들이 모여

밀림이라는 세계, 혹은 세상을 구성하고 있음을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준다.

 

바로 이 점이 좋았다.

마냥 아름다운 것으로 포장하는 것도 아니고,

시니컬하고 우울한 것으로 비판하는 것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재미잇는 에피소드와 그에 맞는 동물들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독자 스스로가 자신의 삶과 관계들을 반추해 볼 수 있도록 한 점.

키로가 라는 작가가 왜 대단한 작가인지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겠다.

 

새해 벽두부터 기분 좋게 읽을 수 있었던 보석같은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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