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p.17

갈 때의 오르막이 올 때는 내리막이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비기면서,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탄하다. 그래서 자전거는 내리막을 그리워하지 않으면서도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

 

p.27

봄의 흙은 헐겁다. 남해안 산비탈 경작지의 붉은 흙은 봄볕 속에서 부풀어 있고, 봄볕 스미는 밭들의 이 붉은 색은 남도의 봄이 펼쳐내는 모든 색깔 중에서 가장 깊다. 이 붉고 또 깊은 밭이 남도의 가장 대표적인 봄 풍광을 이룬다. 밭들의 두렁은 기하학적인 선을 따라가지 않고, 산비탈의 경사 각도와 그 땅에 코를 박고 일하는 사람들의 인체 공학의 리듬을 따라간다. 그래서 그 밭두렁은 구불구불하다. 밭들의 생김새는 "뱀과 같고 소 뿔과 같고 둥근 가락지 같고 이지러진 달과 같고 당겨진 활과 같고 찢어진 북과 같다 ([목민심서])라고 다산은 말했다. 가로 곱하기 세로로 그 땅의 면적을 산출해내는 지방 관리들의 무지몽매를 다산은 통렬히 비난했다. 가로 곱하기 세로가 합리성이 아니고, 구부러진 밭두렁을 관념 속에서 곧게 펴는 것이 과학성이 아니며, 구부러진 리듬의 필연성을 긍정하는 것이 합리라고 다산은 말한 셈이다. 그리고 그가 긍정했던 그 구부러진 밭두렁들은 지금도 남도의 봄볕 속에서 그렇게 구부러져서, 둥근 가락지 같고 이지러진 달과 같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히피드림~ 2006-05-28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리뷰의 밑줄긋기로 쓰셔도 좋았을텐데,,,^^;;
전 꾸불꾸불한 논밭도 좋지만 계단식 논이 보기에 좋아요.
저걸 일구기 위해 얼마나 애썼을까 생각하면서 사람이 참 대단한 존재구나 느끼게 되거든요.^^

해적오리 2006-05-28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밑줄긋기 카테고리에 들어가있는데요..^^;;
김훈 선생님 글을 읽다보면 제가 놓쳤던 부분을 다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2006-05-30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적오리 2006-05-30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허믄 어떵 해야되는건디?

해적오리 2006-05-30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구..넘 오랫만에 책과 관련된 내용을 써서 그런가? 혹시나 해서 페이퍼 수정으로 들어가서 보니 위에 리뷰, 포토리뷰, 밑줄긋기 선택하게 되어있구먼...;;;; 근디 무사 밑줄긋기로 선택하니까 안 바뀌는 거? 흑흑...내 뜻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어..ㅠ.ㅠ

chika 2006-05-30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씬~! 다시 해봐..흐~

해적오리 2006-05-30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짐 다시 해봐신디 진짜 꿈쩍도 안허맨...이런 XX할 사태가 있나...

chika 2006-05-31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촘으라~ (이상하게 이 책은 안사져라마는...이번에 땡투행 사맨^^)

해적오리 2006-05-31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히히히...근디 퍼랭이가 싹쓸이 해부난 영 기분이...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