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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과 동물원 - 리얼리티TV는 동물원인가
올리비에 라작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8월
평점 :
정글이 따로 없다. ‘애정촌’에 모인 일반인 남녀 출연자들은 끊임없는 갈등 속에서 자신의 짝을 찾는다. 이름 대신 1호, 2호, 3호와 같은 번호로 불리며 일주일간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흡사 야생에서 살아남으려 몸부림치는 동물들을 보는 듯하다. 화려한 날개를 펴 유혹하는 공작새 같기도 하고, 여왕개미에게 먹이를 날라 대는 일개미들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자신이 점찍은 이성 상대를 누가 차지하기라도 할까 노심초사하며 경계하는 모습을 보면, ‘저렇게까지 해서 짝을 찾아야 하나’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 모든 장면을 카메라는 놓치지 않는다. SBS 교양프로그램 <짝>은 일반인 출연자를 참여시켜 끊임없이 이슈를 만들어내는 최고의 인기 데이트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매력적인 이성의 선택을 받기 위해 모인 이 공간은 ‘정글’이라기보다 ‘동물원’에 가깝지 않은가? <짝>에 나온 일반인 출연자들은 불특정 다수 시청자 앞에서 자신의 온갖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그것을 보는 시청자들은 그들의 연애방식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온라인에서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는다. 마치 우리 속에 갇힌 동물과 그 동물을 보며 즐거움을 찾는 관객과 같다. 이러한 리얼리티 형식의 TV 프로그램에 대해 제대로 분석해 낸 이가 바로 프랑스 철학자 올리비에 라작이다.
‘리얼’의 시대에 진짜 ‘리얼’을 볼 수는 없어도…
라작은 저서 <텔레비전과 동물원>에서 ‘리얼리티 TV는 동물원인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리얼리티 TV는 공들여 만들어졌음에도 사실처럼 보이는 상황 속에 처한 평범한 개인들을 보여주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틀어 가리킨다. 자연적 환경과 흡사한 배경 속에서 항시 촬영되는 개인을 보여주며 일반인들의 성격과 반응에 대한 관심을 유발한다. 시청자는 TV 속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차별화한다.
그는 이러한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이 동물원 스펙터클의 특성을 닮았다고 말한다. 동물원 스펙터클은 이질성과 야수성과 이국성의 전시를 보여주고, 리얼리티 TV는 평범한 일상에서 자신과 동일한 캐릭터를 찾아내도록 한다. 요컨대 동물원이 갖가지 동물을 보여주듯 리얼리티 TV는 자연스러운 면모를 지닌 거짓 정체성과 캐릭터들을 만들어내고 익명으로 통용함으로써 심리학적이자 사회적인 종들을 정의하고 보여준다.
‘리얼리티 TV와 동물원의 유사성을 통해 야기되는 문제점은 무명의 배우들을 동물처럼 다룬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문제는 표본들을, 총칭적인 에토스를 만들어내고, 그것의 지위를 격상하고, 그럼으로써 그것의 전파를 보장하는 리얼리티 스펙터클의 힘 안에 있다. TV화한 동물원은 일상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훨씬 강렬하고, 훨씬 진짜 같은 현실을 보여준다.’ <텔레비전과 동물원>
우리는 마치 동물원에 갇힌 동물을 불쌍하게 바라보듯, 리얼리티 TV 속에 등장하는 출연자들을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의 입에 그들의 사생활이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작은 리얼리티 TV의 문제점이 무명의 배우들을 동물처럼 다룬다는 데 있지 않다고 명확히 주장한다. 그가 지적하는 문제는 ‘길들이기’에 있다. 동물원에 전시되는 동물처럼 리얼리티 TV 속에 전시되는 개인들은 전시물로서 길들고, 그것을 보는 시청자 역시 관중으로서 길든다는 것이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이름 그대로 진짜 현실을 볼 수 있어야 하지만, 정작 출연자의 캐릭터와 배경은 시청자의 가정된 취향에 영향을 받는다. 이때 방송 프로그램이라는 매체 특성상 공간과 시간의 은폐, 집약과 단순화가 매우 중요해진다. 평범한 일반인들이 이야깃거리가 되려면 기획, 연출, 편집 단계에서 어느 정도 가공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봐야 할 것들이 쏟아지는 바쁜 현대인에게 평범한 이야기는 홀대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리얼’을 원하는 시대에 진짜 ‘리얼’을 볼 수가 없다.
한마디로 리얼리티는 진짜 리얼한 것이 아니라 리얼한 것처럼 꾸며질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리얼리티 TV 스펙터클이 자연적이며 즉흥적이라고 믿기를 원하고 있는 건 아닐까? SBS <짝>뿐만 아니라 수많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대본이나 설정, 편집 논란에 휘말려 왔다.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붕어빵에 진짜 붕어가 들어 있지 않다고 따지는 것과 같다.
‘동물원에 갇힌 호랑이는 야생 호랑이에 대한 환상을 닮았다. 호랑이 우리 안이 우리가 정글에 대해 품는 상상을 닮았듯이. 그와 동시에 호랑이의 울타리가 정글 한 끄트머리의 조건을 재생산해 낸다면 호랑이는 실제 호랑이처럼 행동한다. 심지어 야생 호랑이보다 훨씬 더 진짜 호랑이가 될 수도 있다. 동물원의 문제는 표본의 진정성 상실의 문제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표본이 진정성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저 자유의 박탈에 있다. 실재적이면서 스펙터클한 박탈 말이다.’ <텔레비전과 동물원>
결국 리얼리티 TV가 갖는 위험은 ‘시청자가 꿈꾸는 리얼한 캐릭터’가 만들어진다는 점, 출연자는 사회가 갈망하는 지위에 자신이 상응함을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확인한다는 데 있다. ‘진짜’를 보여주고, 볼 수 있다는 미디어에 대한 환상은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킬 수도 있다.
지난달 <짝>에 출연한 한 남자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청자들의 비난에 방송된 부분만 보면 ‘제가 봐도 참 저런 남자 싫다’며, ‘하찮은 사람을 만들기 쉬운 프로네요’라고 편집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미디어라는 원형 경기장에서 우리는 타인들과 마주한 채, 이렇듯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환상을 좇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받고 싶어 리얼리티 TV에 나오는 사람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리얼리티 TV에 출연하는 걸까? 라작은 모든 리얼리티 스펙터클의 공통점이 자기 자신의 가치를 높아 보이게 하려는 욕망에 있다고 전한다. 그럴 듯하다. 정치인들은 예능 토크쇼에 나와 젊은 세대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전하고,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일반인은 버라이어티쇼에 나와 자신의 억대 수익을 자랑하며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기회를 잡는다.
자신을 방송에 노출할 때는 언제나 시청자의 기대에 따라 자기 행동을 연출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하지만 시청자의 검증을 통과하기만 하면 많은 사람에게 관심과 주목을 받는 스타가 될 수 있다. ‘모태 솔로’ 혹은 ‘돌아온 싱글’이 자신의 사생활이나 콤플렉스가 노출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짝>이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하려고 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위험을 상상하는 것보다 자신의 가치가 높아지는 상상을 하는 편이 쉽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싶은 이유를 밝히면 리얼리티 TV에 대한 실마리가 풀린다. 알랭드 보통은 <불안>이라는 책에서 사람들은 돈, 명성, 영향력을 쥘 수 있는 높은 지위를 갈망하는데, 돈, 명성, 영향력은 그 자체로 목적이라기보다 사랑의 상징이자 사랑을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 더 중시되는지도 모른다고 전한다. 흔히 사회에서 중요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이름 있는 사람’이라 부르고 그 반대의 경우를 ‘이름 없는 사람’이라 부르는데, ‘이름 있는 사람’이 될 때 온전히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존엄은 거의 모두가 갈망한다. 만일 미래 사회가 조그만 플라스틱 원반을 모으는 대가로 사랑을 제공한다면, 우리는 오래지 않아 그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물건으로 인해 열렬한 갈망을 느끼기도 하고 불안에 떨기도 할 것이다.’ <불안>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자 욕망이다. 그것을 충족하기 위해 조그만 플라스틱 원반을 모으듯 사랑을 꿈꾸는 이들이 없어지지 않는 한 리얼리티 TV는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의 폐해를 알면서도 그 정당성을 옹호하고 싶다.
라작은 리얼리티 TV 옹호론자들이 반박할 부분까지도 <텔레비전과 동물원>에 신경 써서 기술했다. 하지만 울면서 매콤한 양파를 깠는데 결국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아쉬움도 남는다. 왜 지금 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하고도 리얼리티 TV를 보고, 출연하는가에 대한 답은 시원치 않다. 이것은 대중은 우매한가, 우매하지 않은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라작은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출연자와 그것을 보는 시청자를 철저하게 우매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리얼리티 TV 건강하게 보는 법
이 책을 통해 리얼리티 TV의 단점을 알았다면, 우리는 이제 리얼리티 TV의 장점을 파악하고 건강하게 TV 보는 법을 익혔으면 좋겠다.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 수 있다. 지금도 일반인 대상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은 전 세계에서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한국만 해도 <슈퍼스타 K> 시리즈를 비롯하여, <스타킹> <화성인 바이러스> <안녕하세요> <위대한 탄생> 등 일반인이 곧 주인공이 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 ‘대박’을 쳤다. 과연 이러한 수많은 프로그램이 단지 ‘날 것’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한 것일까?
라작도 동물원 속 동물들이 우리 안에 갇혀 답답할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그 동물들의 진심 어린 묘기나 동물을 바라보는 관객의 박수까지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한국에서 주목받은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은 모두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단순한 스토리를 담고 있다. 아직 완전히 영글지는 않았지만, 오가는 비평 속에 점점 더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며 자라고 있는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을 보며 동물원 속 동물도 관객도 모두 행복해하고 있다.
때때로 그것이 라작이 추구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야만성’을 보여준다 하더라도, 우린 지친 일상을 리얼리티 TV 속 군상들을 통해 위로를 받고 그들의 매력 발산에 손뼉을 치며 함께 울고 웃는다. 답은 나왔다. 리얼리티 TV가 ‘못된 동물원’이라는 선입관과 편견의 우리를 걷어내는 일, 그것이 리얼리티 TV를 건강하게 누리는 첫걸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