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의 세계 - 양장본
루돌프 키펜한 지음, 김시형 옮김 / 이지북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셜록 홈즈 같은 명탐정 분위기에 젖어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감상적인 이유로, 아니면 인터넷에 신용 카드 번호나 계좌 비밀 번호 등을 입력하는 것이 못내 찜찜하던 사람에게는 현실적인 이유로, 딱 읽기 좋은 책이 되겠다. 이 한 책에서, 적군의 (또는 연적戀敵의) 작전 명령을 (또는 연애 편지를) 가로채는 암호 해독가가 되어볼 수도, 현대 IT/금융 분야의 해킹을 방지하는 보안 전문가가 되어볼 수도 있다.

단, 정말 명탐정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저자가 내주는 암호 문제를 직접 풀어봐야 한다. 종이와 연필을 놓고 (그게 귀찮으면 excel 같은 spread sheet program 을 이용해서 – 이게 더 귀찮을려나?) 차근차근히 풀어내 보자. 물론 사실은 암호해독의 첫출발엔 전문가다운 감각이 필요하지만, 요부분은 저자가 살짝 귀뜸을 해준다. 환자換子방식에서부터 카이사르 암호, 열쇠말, 전자轉子방식, 에니그마까지 단계를 점점 높여가며 암호를 풀다 보면, 그 기분은 구닥다리 셜록 홈즈에 비길 바가 아니다. 마지막에 완성된 평문을 읽는 기분이란, 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혹, 지금 남 일기장 몰래 보는 기분을 상상하셨는지...^^).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정점에는, 1978년 R모씨, S모씨, A모씨에 의해 발명된 공개열쇠암호법인 RSA 방식이 있다. 이게 바로 지금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현금 카드, 계좌 암호 관리, 디지털 서명, 전자 신분증 등 금융/IT 분야의 암호 방식이다. 정말 풀 수 없는 암호일까? 그 원리는, 소수 두 개를 곱해 큰 수를 만드는 것은 쉽지만 그 수를 원래의 소수 두 개로 소인수 분해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라는 언뜻 보면 간단한 것이다. 소위 수학에서 말하는 ‘일방향 함수’ 특성인데, 이게 얼마나 힘드냐 하면 200자리 숫자를 소인수분해하는 데에 1978년 당시 계산 장치로 40억년이 걸릴 것이라는 연구 보고가 있었을 정도란다. 힘든게 아니라 불가능하다고 해야 하겠다. 도대체 믿기지가 않는다면, 부록의 ‘마법의 수 트리플 N, E, D’ 편을 자세히 보시면 된다.

책에 대해 총평을 하자면, 책 표지에 있듯이 ‘비밀이 주는 매력, 머리를 쓰는 즐거움, 상상력을 자극하는 도전...운운’도 맞는 얘기이지만 그보다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안심하고 카드 번호를 입력하라고 유혹할 때, 아무 생각 없이 덜컥 키를 치는 사람들 또는 이걸 믿어도 되는지 주저하고 있는 사람들, 둘 중 하나일 우리 현대인들을 위한 책이 아닐까 싶다. 근데... 정말 괜찮긴 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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