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학 산책
김재희 지음 / 김영사 / 1994년 4월
평점 :
절판


어떻게 보면 신과학의 원류源流는 60년대 히피족과 환각제라고 볼 수도 있는데,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 그리고 동양 전통 종교 등이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주면서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인문사회학에서도 New Age Movement 물결이 밀려 닥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프리초프 카프라의 [현대 물리학과 동양 사상, 1975]가 번역 출판된 것을 계기로 1980년대부터 신시대 즉, 신과학 열풍이 불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신과학의 원조 격인 자연 과학자들의 강연, 대담 내용을 편집하여 그 원류를 제대로 알 수 있게 해준다. 카프라(1939-) 편에서는 시스템 이론, 생태론적 세계관으로 지구를 살리는 새로운 선택이라는 주제를 얘기하고, 하이젠베르크 (1901-1976) 편에서는 과학사에서의 혁명을 이끄는 사고의 전환에 대해, 데이비드 보옴 (1917-) 편에서는 특유의 hologram (저자는 온그림이란 새로운 용어를 제시한다) 비유를 통해서, 접혀진 질서(implicit order)로 부분을 넘어 우주 전체를 포괄하는 대자연의 섭리를 설파한다. 일리야 프리고진 (1917-) 편에서는 그 유명한 흩어지는 구조 (dissipative structure), 비가역성의 개념으로 힘찬 요동을 통한 혼돈으로부터의 새로운 질서를 얘기한다.

계속해서 저자 자신의 두뇌/언어/의식의 진화론, 루퍼트 셸드레이크(1942-)의 형태장 이론에 의한 새로운 생물학, 스타니슬라프 그로프(1931-)의 출생체험/초월체험을 다루는 초월심리학, 프란시스코 바넬라(1946-)의 맴돌이 구조를 갖는 순환의 창조원리로 생명현상, 논리구조, 신경계, 인식론 등을 다룬다. 이 부분은 시대적으로 다음 단계의 학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나로서는 모두 낯선 이름들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신과학의 커다란 주제는, 데카르트와 뉴턴 식의 결정론적, 기계론적 세계관이나 환원주의는 더 이상 세상을 지배할 수 없게 되었고, 대신 옴살스럽고holistic 생태론적인ecological 아주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과학이 아우르는 범위가 이 것 이외에도 현대 과학이 풀지 못하는 초자연 현상까지 포함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여차하면 반과학, 사이비 과학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본 책에서는 그러한 주제는 다루지 않았지만 셸드레이크, 그로프 편에서는 괜히 어려운 학술 용어로 피해갔을 뿐이지 아슬아슬한 느낌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신과학에서 새로운 세계관에 대한 부분은 공감하지만 초자연 현상에 대한 주장은 무시한다. 사실 신과학이나 모스트모더니즘 계열의 과학철학/과학사회학자들의 집요한 공격에 질린 정통 과학자들의 반격도 있다. 존 매독스 [발견을 기다리는 과학, 1998], 칼 세이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1995], 알랭 소칼 [지적 사기, 1997], 그리고 CSICOP 단체 등. 모름지기 관람객 입장에서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추고 냉정히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ps)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인데, 그 동안 생물학 분야의 책들을 보면서 개체나 종을 다루는 전체적인 얘기는 뭔가가 의심쩍고 이해가 잘 안되길래, 유전자나 분자 생물학처럼 세부로 분해하는 쪽을 기웃거렸다. 이게 바로 이 책에서는 말하는 근대 기계론적 환원주의적 습성이 몸에 배어버린 탓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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