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의 신비 - 수학, 철학, 종교의 만남
애머 액젤 지음, 승영조 외 옮김 / 승산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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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극한을 처음 배우던 때가 생각난다. ∞/∞ 꼴이 어느 때는 무한대로 발산하고 어느 때는 상수로 수렴하기도 한다는 것을 들으면서 그 알듯 말듯한 애매함에 답답하기도 했지만, 답을 맞추는 게 더 급했기에 ‘생각’은 일단 접고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비법(?)’만 열심히 외웠었지. 대학교 때 과외를 하면서 그제서야 비로소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그걸 나름대로 설명했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더 헷갈려 하더구먼. 그래서 결국은 나도 내 배운 대로 답 맞추는 ‘비법’만 그대로 전해줄 수 밖에 없었다.

책으로 돌아와서, 모두가 알다시피 정수의 집합은 무한하다. 그럼 유리수의 집합은 좀 더 크겠지? 대수적 무리수(√2 등)의 집합은 더더 클 것 같고. 그런데 이 세 집합이 모두 같은 단계의 무한이란다 [알레프0]. 모든 정수와 유리수가 1대1 대응이 된다는 얘기이다. 그렇다면 초월수(e, π 등)를 포함하는 실수의 집합은 어떨까? 이 집합은 정수의 집합보다 더 큰 무한이 맞단다. 게다가 정수 바로 다음 단계의 무한이 바로 실수의 집합이란다 [알레프1]. 중간 단계는 없다. 가만, 이미 정수도 무한인데 더 큰 단계의 무한은 또 뭐지? 이게 전부 맞는 얘기이긴 한 거야?

이것이 이 책의 주된 얘기 거리인 게오르크 칸토어(1845~1918)의 ‘연속체 가설’이다. 멱집합에 의해 유도된 수식도 있다. c=2^[알레프0]. 즉, c=[알레프1]. 일견 간단해 보이는 이 공식이 탄생되기까지 리만, 바이어슈트라스 등이 만든 현대 해석학의 토대와 칸토어 이후 러셀, 괴델, 코언 등의 마무리까지의 여정이 숨가쁘게 소개된다. 중간에 잠시 쉬어갈 수 있게 가외加外 이야기 거리도 한 챕터씩 끼워져 있다. 책 끝 부록에는 집합론 공리 해설이, 역자 후기에는 ‘가무한과 실무한’, ‘연속체 가설’, ‘선택 공리’,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바나흐의 역설 등이 잘 정리되어 있다. 그 내용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칸토어는 이 ‘연속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지만, 감히 인간으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신’ 또는 ‘절대’의 영역임을 느끼고 정신병까지 얻게 된다. 스포일러spoiler가 될 생각은 없지만 책을 읽기도 전에 그 결과가 궁금한 일반 독자를 위해, 후대에 이루어진 그 증명 결과를 미리 말하자면, 답은 ‘증명 불가’이다. ZF 집합론 체계에서는 결정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연속체 가설’은 완전히 독립적이고 모순이 없지만 그 진위가 결정되기 위해서는 다른 형식체계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른다. 음... 나두 덩달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듯한데... 마지막 장에서 저자가 던진 질문을 보면 더 막막해진다. ‘수는 실제로 존재하는가?’, ‘연속체는 실제로 존재하는가?’ 이 답은 직접 책에서 확인하시길...

자, 이제 마무리... 수학(특히, 현대수학기초론)에서 하는 얘기들이란 게 사람 머리를 참 헷갈리게 하는데, 그게 수학의 본질이란다. 자연 과학처럼 실험 가능성, 실현 가능성은 문제가 아니고 수학적 체계 내에서 모순만 없다면 어떤 주장이라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아무 생각 없이 lim(1+1/x)^x 의 수렴값만 찾았던 그 극한이란 게 얼마나 오묘한 <무한의 신비>가 숨겨져 있었는지 이제서야 느껴진다. 학교에서도 ‘답을 맞추는 기술’이 아니라 ‘자유롭게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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