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푸른 점
칼 세이건 지음, 현정준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는데 자꾸 옆에서 집적거리는 와이프에게, 공룡을 전멸시킨 K/T 대충돌의 상상화와 현재까지 밝혀진 지구 근접 소행성들의 괘도 그림과 그 관측 사진 등을 보여주면서 ‘언젠가는 이런 것들이 지구에 부딪혀서 인류는 멸망할 거래’ 했더니, 시큰둥한 대답 ‘괜찮아, 부르스 윌리스가 가서 구멍 뚫고 터뜨리면 되여’, ‘......?!?!?......’

<창백한 푸른 점>은 1977년 지구를 출발해서 13년 만에 태양계 외곽에 다다른 보이저2호가 잠시 고개를 돌려 뒤편 저 멀리 아득히 보이는 지구를 촬영한 모습이다. 왠지 허탈하지 않은가? 이 광할한 우주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공간이 겨우 요~만큼이라니!!! 콧대 높았던 인류의 자부심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그래서 세이건이 말하길, 천문학은 ‘겸손과 인격수양의 학문’이란다.

하지만,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고 그대로 주저앉을 인류가 아니다. 우리는 근본적인 생물학적 이유 때문에 미지의 영역을 필요로 하고 또 그렇게 새로운 모퉁이를 돌 때마다 수 세기 동안 움직일 풍부한 생명력을 얻는다 (p.302). 그러다가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초라한 모습을 보게 되긴 했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방랑자의 운명이다.

하여튼, 이 책에서는 우리가 밝혀낸 미지 영역의 모습을 선명한 사진과 그럴듯한 상상화로 풍부하고 상세히 보여준다. 중력이 약해서 대기가 모두 날라가 버린 검은 하늘의 수성, 온실효과로 인해 무지하게 뜨거운 대기의 금성, SNC운석에서 발견된 화성의 물방울, 슈케이커-­레비 혜성 충돌로 지구 크기만한 자국을 남긴 목성, 풍부한 수소와 유기 물질 등 여러 가지로 지구와 비슷해서 관심이 집중되는 토성의 위성 타이탄, 기이하게 찌그러지고 울퉁불퉁한 천왕성의 위성 미란다, 차갑게 느껴지는 매우 푸른 색의 짙은 대기로 둘러싸인 비밀의 해왕성, 그리고 외계 지적 생명체를 찾으려는 (SETI, META) 우리의 노력과 약간의 결과물까지.

며칠 전 모 신문에서도 소개되었듯이, 과학 전문 인터넷 사이트인 [www.space.com]에서는 천문학자들이 내년에 도전해야 할 ‘우주 미스터리 10선’을 꼽았는데, 그 중 10번째가 ‘Can We Survive 2003?’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소행성과의 충돌 가능성에 대한 얘기였다. 헐리우드에서는 핵폭탄으로 분해시키는 것을 상상했지만 (집사람도 그렇게 철썩 같이 믿고 있고), 저자는 ‘소행성 괘도 전향 기술’을 상상한다. 그 기술이 악용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양성자-양(중)성자 에너지를 이용하여 소행성의 괘도를 마음대로 바꾸고 광물 채취도 하며 그 위에서 거주까지 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는 다른 행성을 인류가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바꿀 수도 있다 (Terraforming).

그래서 언젠가 지구의 운명이 다하고 태양계와 그 너머 곳곳에 흩어져 있을 우리의 먼 후손들은, 그들 행성의 밤 하늘을 우러러 인류의 고향 <창백한 푸른 점>을 찾아내려고 애쓸 것이다. 그래서 그 곳이 한때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이었으며, 인류의 어린 시절은 얼마나 위태로웠으며, 인류의 시작은 얼마나 초라했으며, 제 길을 찾아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강을 건너야 했던가, 그 사연 모두에 그들은 경탄할 것이다 (p,423).

나는 오늘 이 행성의 땅 위에서 이 행성의 밤 하늘을 바라본다. 수많은 별을 품고 있는 그 아득함에 문득 어지러움을 느끼고 고개를 다시 숙이면, 이제는 고인이 된 칼 세이건의 지구와 인류를 향한 애틋함과 저 너머 우주를 향한 천진한 경외심을 함께 공감할 수 있으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