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의 시대
필립 볼 지음, 고원용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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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C 칸트는 그 당시의 화학이 과학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과학은 아니라고 선언했다 (본책 p.413). 진짜 과학을 판별하는 기준을 수학과의 관련성으로 볼 때, 화학은 영 아니었던 것이다. 1930년 폴 디랙 같은 양자물리학자는 ‘화학에 관한 모든 것’을 양자역학의 기본원리로부터 유도할 수 있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들에게 있어서 화학은 더 이상 기초과학이 아니라 응용과학일 뿐이었다. 1994년 필립 볼은 우리가 ‘화학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선언한다. 엥? 무슨 뒷북 치는 소리지? 화학이 영 궁지에 몰린 듯하니 반발하는 거 아냐? 그게 아니란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저자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탄소 원자를 60개나 모아서 축구공을 만드는 분자 합성, 분자 체/그릇으로 사용되는 제올라이트의 촉매 작용, 분자 수준의 영화를 보여주는 분광학,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준결정의 결정학 등이 바로 현대의 화학이다. 아직은 아니라고? 그럼 분자 수준의 화학이 어떻게 분자생물학, 전자공학, 재료과학 같은 다른 분야와 관련되는 지를 보자. 그래도 모자란다면, 이런 주제들은? 초기 지구의 화학에서 생명이 나왔다. 자연에서 볼 수 있는 복잡성도 간단한 화학과정에서 출발한 것이다. 대기와 환경과 기후의 중요한 변화도 화학이 그 시작이다. 이제 어떤지? 물리학처럼 아원자에서부터 거대 우주까지 엄청난 스케일은 아닐지라도 ‘화학의 시대’라는 제목이 민망하지는 않다. 오히려 ‘첨단의’나 ‘궁극의’ 정도의 형용사를 끼워넣는데도 시비 걸 생각은 전혀 없다.

개인적으로는, 오래간만에 방향족 탄화수소, 브래그 법칙, 엔탈피, 랭뮈어 등 예적 녀석들을 만나서 반가웠고, 미처 몰랐던 다른 놈들의 최근 소식도 듣게 되어 뿌듯했다. 아이고 참, 언제 그런 일들이 있었는지? 저자와 역자 모두 애쓴 흔적이 많이 배어있는 책이다. 특히, 1994년에 화학이 끝난 게 아니라고 항변하듯이 역자가 관련 주제마다 꼼꼼히 2000년까지의 새로운 소식들을 첨가해주었다. 진정한 전문 번역자다움이다. 하나 더, 책 중간에 삽입된 16페이지의 컬러사진과 본문 중에 그 많은 그림들 모두 너무 마음에 든다. 쓸데없이 화려하기만 한 비쥬얼 그래픽이 아닌 진정 본문 내용을 보조하는 사진과 그림들이다. 그림 설명만 읽어도 본문 내용을 따라갈 수 있다. 교양과학서는 이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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