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누구를 설득하기 보단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내 생각에 김영하가 최초의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작가가 되는 것'이 완전한 블랙아트이기 때문이다. 김영하의 충고는 정규 교육을 들으라거나 하루 12시간씩 글을 쓰라는 구체적인 것이 아니었다. 문하생이 되라는 것도 아니었다. 모든것이 너무나 불확실 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인생에 있어 특정한 시기의 집중된 훈련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스포츠 선수나 바둑기사, 발레리나 보다 훨씬 더 뜬금없이 나타난다.


그래서 그의 충고는 모호하고 낭만적이다. 긍지를 가지고 즐겁게 계속해라.

조금 잠언적으로 바꾸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말을 떠올릴 수도 있다. '항상 자신을 보호해라'.


신춘문예에 맹목적으로 매달리지도 말고, 그렇다고 완전히 부정하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에고를 보호하고, 작가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계속 써라. 기회를 소수의 등단에 한정하지 말고 계속해서 가져라. 많은 기회는 많은 거절을 의미하기 때문에 (신춘문예만을 목표로 하면 1년에 몇 번만 거절을 맛봐도 된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라는 낭만적인 생각을 해라.


작가를 지원하는 제도나 조직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부분 작가가 된 다음을 위한 것이다. (즉 이때부턴 사회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가난한 예술가'에 대한 것이다) 그럼 작가가 되려는 사람은 어떻게 지원해주어야 하는가? 여기에 약간 거리를 둔 것도 이 때문이다. 인류가 아직 무지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저 개인의 방편 이상으로 만들기를 꺼리는 것이다.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을 제외하곤 이 마술이 성공하기 위해서 자신을 보호하고, 일상적인 삶을 유지시킬 수 있는 방편이 필요하다. 폴 오스터는 죽은 아버지의 유산을 바탕으로 데뷔했고 변호사를 그만둔지 18년만에 신진 작가가 된 벤 파운튼에게는 변호사 부인이 있었다. 김영하는 대학원생이었고 리뷰 잡지가 없었다면 그의 책에 나오는것 같은 회계사가 되었을지도 모를일이다. 박민규나 김애란, 김사과로 가면 이 방편이 이보다는 약간 (적어도 물질적으로는) 불안정 했을 수 있다.


외국에서도 많은 작가들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가 탄생한다. 바텐더, 스트리퍼, 기자. 분명히 우리나라는 삶의 일상적인 부분을 유지하기 위한 이러한 방편들이 많이 괴로운 나라이다.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완전히 다른 인생을 계속해서 준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김영하의 잘못은 아니다. 복지가 잘 되어있고 사회가 안정되어 다른 일을 하면서도 예술 활동을 지망하기가 더 쉬운 환경이 되면 좋겠으나 그것이 예술가 지망생을 좀 더 동정하거나 이 모호한 집단을 좀 더 구체적이고 조직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과는 다르다. 풍족한 곳에서도 작가는 비슷하게 탄생할 것이다. 인간적인 모멸감을 덜 경험하고 작가가 될 수 있겠지만 태어나는 과정 자체를 규정하고 지원하기는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난 여전히 사람들이 투표소에서 해야 할 행동을 한 작가의 작가론에다 포화를 퍼붓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생각한다. 사회를 더 살만하게 만드는 것은 좋다. 하지만 전업 예술가를 어떻게 보호하고 탄생시키려는가? 이것은 여전히 낭만적일 수 있는 이야기이다.


P.S - 그 논쟁은 가난한 예술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작가가 되기 까지'에 대한 것이다. 소조는 조직적인 길드를 주창했고 김영하는 개인의 일 이상으로 나가길 꺼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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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1-02-26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하의 작가론(을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하지만)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어요.
작가 아니라 누구든, 자기 살고 싶은대로 사는 거니까, 그가 남에게 자기 방식을 강요하지만 않는다면야.
항상 방법이 문제고, 사람들이 분노한 지점은 그 '방법'에 있었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