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힘 : 묵상편 - 새벽에 하나님을 만나라
조엘 오스틴 지음, 정성묵 옮김 / 긍정의힘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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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힘을 40일 새벽기도 자료로 만든 책입니다. 찬송과 성구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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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dle School English 3 자습서 (배두본) : 영어 자습서 중3 - 2009
배두본 외 지음 / 교학사(중고등)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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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 배는 EBS방송강의도 없으니 자습서를 꼭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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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아더의 영적 성장의 열쇠
존 맥아더 지음, 정길호 옮김 / 소망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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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번역서를 살 때 원서의 출판 년도를 알아보는 버릇이 있다. 최근에 나온 책이 과거의 책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초판은 1991년이었고 개정증보판은 2001년이었다. 미주를 보니 존 맥아더의 다른 책은 조금 참고했지만 다른 책은 반영하지 않은 것 같다. 저자는 구절별 강해설교자로 알려져 있다. 이 책도 한 두 구절을 가지고 내용을 전개하는데 내가 보기에 강해설교라기 보다 주제별 강해설교라야 적당할 것 같다. 저자는 영적 성장의 마스터키는 성경인데 믿고 공부하고 존중하고 사랑하고 순종하는 것이 마스터키를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한 주제를 가지고 내용을 전개해 나가기도 하지만 ‘성령으로 충만하라.’처럼 한 구절을 가지고 내용을 확장해 나가기도 한다. 어쨌든 탁월하다. 저자는 은사중지론자 같다. 그는 세대주의를 표방하는 매스터스 신학교의 총장 출신이고 그들은 오늘날 성령님의 기적적인 은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 책도 신비주의를 저급한 신앙 형태로 취급한다. 조금 아쉽다. 나는 피터 와그너가 말한 제3의 바람을 선호한다. 목회를 하다 보니 기사와 표적이 복음을 전하는데 얼마나 효과적인지 체험했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그도 180도 반대 방향에 있는 대척지까지 포용하는 아량을 발휘했으면 좋겠다. 저자는 전통적인 사고에 갇혀 성경을 오석하기도 한다. 노아가 방주를 제작한 기간이 120년(창6:3)이라 말하는데 이는 명백한 오류다.(4장) 노아가 육백 세 때 홍수가 났다.(창7:6) 만약 120년간 방주를 만들었다면 480세부터 방주를 만들었을 테고 하나님께서 아들들과 며느리들도 방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으니 아들들을 480세 이전에 낳아 결혼을 시켰을 텐데 창세기 5장 32절은 노아가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고 말씀한다. 노아가 오백 세가 넘어 아들들을 낳았고 홍수는 육백 세에 났으니 방주 제작 기간은 120년이 될 수 없다. 다른 구절을 봐도 알 수 있다. 창세기 11장 10절은 노아의 큰 아들 셈이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다고 말씀한다. 다시 말해 노아가 육백 세이고 셈이 98세에 홍수가 일어난 것이다. 함과 야벳도 낳고 결혼까지 시키려면 아무리 많이 잡아도 방주를 만든 기간이 수십 년이라야 설득력이 있다. 창세기 6장 3절의 120년은 방주를 만드는데 소요된 시간이 아니라 인간의 수명이 줄어들 것이라는 의미이다.(성경배경주석 48-49쪽) 이런 해석상의 오류도 있지만 영적성장을 위해 주옥같은 말씀들이 즐비하다.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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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산월 2021-01-13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내용중에 노아의 방주를 만들기 사작하고 하나님께서 120년간의 회개의 기간을 허락하신 것이지 인간의 수명이 120년으로 제한된 것은 아닙니다.

라미닌 2021-01-13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VP 성경배경주석을 참고한 겁니다
 

2010년 3월 28일 안준의 엄마 이송희 씨가 출석하다.(2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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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3:44-49 휘장이 찢어지더라. 


미국의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멜 깁슨 감독이 10여년에 걸쳐 만든 ‘패션 오브 더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Christ:예수의 수난, 2004)’ 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실 때까지 12시간을 다룬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의 풍경을 고증을 통해 완벽하게 되살렸고, 예수님이 당하신 육체적인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충격을 안겨줬고, 예수님이 사용하신 아람어를 사용하여 영화의 실감을 높여주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신문 기자 출신인 리 스트로벨 목사님이 [예수님의 수난을 체험하기(우리나라에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로 번역)]라는 책을 썼는데 저는 이 책을 참고하여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시고 죽음을 당하신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십자가형은 로마제국에 반기를 든 반역자나 사람을 죽인 살인자에게 시행하는 잔인한 사형방법이었습니다. 사형수는 낚시 바늘 같이 생긴 쇠와 뼛조각이 박힌 채찍으로 맞았습니다. 채찍을 맞으면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갔습니다. 사형수는 상처투성이의 몸을 이끌고 길이가 180센티미터 무게가 14킬로그램인 십자가의 가로 기둥을 어깨에 지고 사형장까지 걸어갔습니다. 예수님도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안토니아 요새에서 성밖에 있는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의 가로 기둥을 지고 올라가셨습니다. 사형장에 도착하면 길이가 18센티미터인 굵은 대못을 사형수의 양손에 박고 몸을 지탱하기 위해 팔에 밧줄을 감았습니다. 한쪽 무릎을 조금 밀어 올리고 발을 겹쳐서 박았습니다. 십자가를 일으켜 세우면 사형수에게 압력이 가해져 숨쉬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사형수의 몸에서는 피와 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갈증이 났습니다./ 사막의 뜨거운 햇살이 얼굴을 내리 쨌습니다. 현기증이 일었습니다./ 사형수는 빨리 죽고 싶지만 쉽게 죽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형을 보고 공포에 떨었습니다. 사형수는 보통 36시간이 지나서야 죽었다고 합니다. 저녁이면 피 냄새를 맡고 들짐승들이 나타나 십자가에 매달린 사형수의 살점을 뜯어 먹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매달려 오후 3시에 돌아가셨습니다. 6시간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금요일 오후 6시부터 토요일 오후 6시)이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예수님을 죽였는가?
누가 예수님을 죽게 만들었을까요? 예수님을 종교지도자들에게 팔아넘긴 가룟 사람 유다일까요? 예수님을 구출하지 않고 도망간 제자들일까요?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한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일까요? 바라바를 살리고 예수님을 죽이라고 고함을 지른 유대 백성들일까요? 종교지도자들과 백성들의 압력에 굴복해 사형선고를 내린 로마제국의 총독 본디오 빌라도일까요? 예수님의 손과 발에 대못을 박은 로마 군병들일까요? 아니면 모든 악한 일의 배후에 있는 사탄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5장 8절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통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위의 본문들을 보면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시지 않고 죽음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죽음을 선택하셨을까요? 저와 여러분의 죄를 씻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죄를 씻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죄가 예수님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가?
예수님은 무슨 죄를 저질러 사형선고를 받으셨을까요? 재판은 심문과정을 거쳐서 최종판결을 내립니다만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사형시키려고 작정해 놓고 형식적인 재판을 진행하였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거짓 증인을 내세워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는 말씀을 문제 삼았습니다.(마27:61) 예수님이 자신을 ‘인자’(단7:13-14)라고 했다고 트집 잡았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신성모독죄(하나님께 불경스런 말)를 지었다고 몰아붙였습니다.(마26:63-66)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죽이려고 모의한 종교지도자들이 진짜 신성모독죄를 저질렀습니다. 예수님이 비록 신성모독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교의 종교법으로는 사형을 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정치범으로 몰아갔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로마황제인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했으며 자칭왕이라고 주장했으니 죽여야 마땅하다고 압력을 넣었습니다.(눅23:2) 빌라도는 예수님이 아무 죄가 없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종교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예수님을 죽이라고 소란을 피우자 할 수 없이 사형을 언도했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었는가?
예수님이 정말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까요? 예수님의 죽음은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약성경이 진짜라면 예수님은 진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겁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기록하였기 때문에 사실입니다. 만약 거짓이었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들통 났을 겁니다. 신약성경은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정말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는 왜 고난을 받고 죽어야 했나?
예수님은 왜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3장 23절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이 죄를 저질러서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짐승을 속죄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죄를 저지르고 속죄제물을 드리고를 반복하였습니다. 속죄제물의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씻으시려고 단번에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더 이상의 속죄 제물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자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마27:51) 하나님과 사람과의 막힌 담이 허물어졌습니다. 예수님의 피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가게 되었습니다.(엡2:13-14)

부활은 무엇을 성취하였는가?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한두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목격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본 경우도 있지만 오백 여명이 한꺼번에 본 경우도 있었습니다.(고전15:6) 한 사람이 한번만 보았다면 의심할 수 있지만 여러 사람이 여러 번에 걸쳐서 보았기 때문에 사실입니다. 부활은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에 대한 승리이며 영원한 생명에 대한 보증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부활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의 십자가와 영광의 부활을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린도전서 1장 18절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를 미련하게 보고 거부하는 사람들은 멸망 받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지옥으로 던져집니다. 지옥은 죽으려고 해도 죽어지지 않는 곳입니다. 살아서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는 영원한 형벌의 장소입니다.(계20:10) 이것이 두 번째 죽음인데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거부하는 사람은 두 번째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러나 메시야가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고 믿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갑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나 애통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있지 않습니다.(계21:3-4) 여러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귤을 먹을 때 껍질을 벗기고 알맹이를 먹듯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껍데기처럼 지식으로 알지 않고 알맹이처럼 마음으로 믿으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 믿으십시오. 그리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고 믿으십시오. 그러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갈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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