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날 2009-10-02
인터넷 더럽게 안되네...-_-
내 생일 (10.02)
1.
오늘은 내가 식기당번이라 식기를 닦으러 가는데 맞선임이 나한테 "미역국 나와야 하는데 안 나와서 어떡하냐"고 했다. 나는 내가 오늘 식기당번이라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미역국이 나오면 식기 닦기가 어렵나?'라고 생각하면서 맞선임이 뭔소리 하나 했다. 잠시 주고 가는 눈빛 속에서 '아차, 오늘이 내 생일이구나.' 맞선임이 해줄 게 없어서 미안하다는 둥 별소리를 다하길래 "원래 별로 생일 신경 안 씁니다"라고 하면서 식기 닦으러 갔다. 속으로는 '내 생일을 위해서 뭘 해주고 싶다면은 니가 좀 식기 닦아줘...'
사실 나는 생일에 그리 민감하지 않다. 민감하지 않다기 보다는 '둔감하다'라고 강하게 말해야 맞는 것 같다. 특히 '내 생일'에. 누구에게나 365일 중의 한 번 있는 날이니 1년에 한 번쯤은 스스로나 주위 사람들에게 생일을 맞은 이의 존재의 가치를 증명할 법도 하건만, 글쎄 나는 그냥 관심 없다. 다른 사람들의 생일이라고 한다면야, 생일 축하 안 해주면 뭔가 내가 나쁜 놈 되는 것 같아서... 혹은 생일 파티하자는 분위기에 휩쓸려... 생일 파티에 눈에 비친 정도인 것 같다. 특히나 내가 올해 우리 형의 생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나서부터는 나의 이런 무관심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내가 그리 건강치 못한 사랑을 하고 있었을 당시, 상대방이 태어나준 것에 대해 정말 기뻐한 적이 있었다. 상대방이 태어나서 기쁜 건지, 상대방이 태어나서 내 앞에 있었기 때문에 기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간에 "태워나줘서 고맙다"라는 종류의 말을 했던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나는 갑자기 내가 '생일'에 민감하지 않은 게 아니라 나 자신 스스로에게 있어서나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나 그저 무관심한 게 아닌지 스스로 반문해보게 된다. 생일이란 건 그 사람에게 있어서 소중한 날이 아닐까.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날'인데, 그런 날만큼은 생일을 맞은 이에게 축하를 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내 자신의 생일날에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나 혼자 축하를 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흔적들을 성찰하고 전정(前程)에 대한 고민을 심화시켜야 하는 것일까. 나는 내가 태어난 날(형식상으로 몇 주기마다 돌아오는), 어쩌면 태어난 게 아니라 태어났다고 하는 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참 이럴 때 술을 만든 옛 조상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2.
어제는 국군의 날. 국군의 날을 맞이해서 상영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22시에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영화를 케이블 TV에서 해주는 바람에 내무실에서 다같이 보게 되었다. 일부일처제와 빠지는 것 하나 없는 원더우먼 같은 손예진은 그렇다치더라도 나는 영화를 보는 도중 흥분 또는 광분하는 우리 궁 사람들이 보인 '순수성'에 대한 결벽증이 참 뻔뻔한 것 같다. 자신의 성행위 경험이 많으면 '유능'한 것이고 상대방 여성의 성행위 경험이 많으면 더럽고 추하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걸le'라는 용어까지 써 가면서 화내는 남성들을 보면 결혼을 통해 여성을 자신의 소유로 만드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여성의 과거까지도 지배하려는 별 쓰잘데기 없는 소유욕의 추함을 볼 수 있다.
3.
11월 14일 한자시험만 끝나면 좀 마음 편히 책을 읽을 수 있으려나. 휴휴. 그래도 이왕한 거니 잘 따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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