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평전 - 한때의 애국자, 만고의 매국노, 개정판
윤덕한 지음 / 길(도서출판)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조선'을 일본에 팔아버린 매국노라 평가되는 이완용의 평전이다. 흔히 평전은 후대 사람들이 본받아야하거나 기억해야 하는 사람을 다루기 마련이다. 저자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이완용'을 평전의 형식을 빌려 다룬다. 책머리에서 "'엉뚱한 이완용 상'에 욕설을 퍼붓는 것이 아니라 한때 대단히 애국적이었던 인물이 왜, 어떻게 해서 만고의 매국노로 전락하게 되었는가 하는 그 비극적 과정과 변신의 논리를 밝히는 데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한 대답을 찾는 데 성공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그리 만족스러운 대답을 하지 못했다.

평전답게 '이완용 평전'은 이완용의 소년 시절부터 와석종신 할때까지의 삶을 세세하게 추적한다. 이완용의 삶을 크게 세 부분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번째(1858~1882)는 별볼일 없는 양반의 아들로 태어나 대원군계열에 속하는 이호준의 양자로 들어가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오르는 유년시절, 두 번째(1883~1905)는 주미 대리공사를 지내고 아관파천, 독립협회를 주도하며 고종의 신임을 받던 고위 관료시절, 마지막 세 번째(1905~1926)는 을사조약에 찬성하고, 정미조약, 한일합방에 합의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일본 천황으로부터 백작의 작위를 받으면서 호의호식하는 친일파 시절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교과서에서 접했듯이 '이완용'만이 악인이며 을사조약에 체결되는 과정에서 이완용이 큰 역할을 했다는 데에 저자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 통설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맞는 말은 아니라는 거다. 이완용 혼자의 힘으로 과연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는가? 한국이 식민지화된 탓을 이완용의 매국노 행위로 모두 돌린다면 역사에서 배울 것이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강화도 조약부터 갑신정변, 임오군란, 갑오개혁, 을미사변, 아관파천 등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항상 외세가 개입했고, 이 외세의 힘을 이용해서 자신의 잇속을 챙기려는 부류들이 있었다. 수많은 신하뿐만 아니라 대원군, 민씨 일가도 마찬가지이며 비극의 주인공처럼 여겨지는 고종마저도 외세의 힘에 크게 의존했다. 이완용도 그저 많고 많은 그 부류들의 하나였을 뿐이라는 점이다. 과거에 급제하여 꽤 소박한 생활을 영위했던 그는 아관파천을 주도할 정도로 친러배일적인 성향을 지녔다. 또한 매국노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군사교관을 파견해 조선 군대를 장악하려 했던 러시아의 시도도 거부할만큼 외국에 이권을 넘기는 것을 강력하게 거부했다. 또한 독립협회의 회장으로 선출되어 만민공동회를 개최하는 의외의 모습도 가지고 있다. 19세기 말 조선은 외세의 힘에 크게 휘둘렸고, 이 외세의 힘들을 어떻게든 자신의 이권다툼에 활용하려는 시도들이 많았고 오히려 이완용은 양반이었다는 소리다.

이 책은 각 인물들 간의 관계나 사료를 바탕으로 이완용의 삶을 복원해 가면 차근차근 추적해간다. 또한 단순히 이완용 삶의 서술에서 그치지 않고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해 나가는 과정에서의 동아시아 국제 정세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글머리에서 제기했던 질문(평범한 관료라고 볼 수 있었던 '이완용'이 어떻게 매국노로 전락하게 되었는가?)에 답을 하는데 실패했다고 본다. 아관파천을 주도하고 외국에 이권을 넘기는 데 거부의사를 밝히기 까지 했던 이완용이 을사조약에 왜 갑자기 찬성으로 돌아섰고, 그 이후에도 꾸준히 친일에 우호적인 행위들을 했을까?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했기 때문에? 아니면 기회주의적인 기질을 발휘해 갑자기 사람이 돌변하여서? 국제정세상 1905년 가쓰라-태프트조약(일제의 한국 강점을 미국이 지지해주는 대가로 일제는 미국의 필리핀에 대한 식민지 지배를 인정), 포츠머스 조약 등이 맺어졌기 때문에 자주권의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저자는 이에 대해 명확한 대답을 하고 있지 않았다. 동양평화론의 입장을 보인다든가, 국제정세 상 전략적 판단이었다든가라는 식의 설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 점이 안타까웠다.

조선의 외교권을 넘겨주는 을사조약 당시, 사실 일본을 제외한 어떤 나라도 조선에게 신경써줄 여유가 있지 않았다. 여태껏 외세의 힘으로 또다른 외세를 몰아냈던 조선의 최후였다. 식민사관의 자학적 태도처럼 우리 자신을 너무 자학하는 것도 문제지만, 우리는 그때 당시 너무 많은 자주독립 기회들을 놓쳐버렸었다. 어쩌면 을사조약은 외교권을 뺏기게 된 사건의 시작이 아니라 그간 이뤄져왔던 외세의 힘을 빌려 자국의 지배권을 획득하려했던 지배층 탐욕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완용을 옹호하지 않는다. 을사조약도 물론 큰 사건이지만, 그건 큰 흐름 속의 일부분이었을 뿐이다.

저자는 주한 미군 문제를 자주 언급하며 이완용 살았던 시대와 비교한다. 물론 그 시대와 지금 시대의 상황은 다르다. 그러나 언제나 공짜는 없다. 더군다나 외교 관계에선 더욱 없다. 외세의 힘을 빌린만큼 그에 대한 대가는 언제나 따르기 마련이다. 변하지 않는 건, 자신은 온전한 자신의 힘으로 지켜야 당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손 안대고 코를 푸는 사람은 영원히 혼자서 코를 풀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군대가 힘이 현실적으로 약하니, 미국의 힘을 빌려야 한다? 현실적으로 약하면 내가 강해질 법을 찾는 게 '현실적'으로 우선이다. 그래야만 당당해질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외교 관계를 끊자는 소리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힘이 강해질수있도록 외교적 노력도 당연히 필요하다. 다만 주권 국가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아야 비로소 우리가 우리 스스로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P.S. 문체자체는 기자답게 글을 잘 읽히게 쓴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고유명사가 자주 나와고, 글의 흐름이 좀 어수선해서 이해하는 데 좀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감정적인 문구도 여럿 보인다. 평전에 감정이 들어가지 말아야할 이유는 없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객관적 시선을 유지해야 하지 않았을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니 2017-10-15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완용이 친일로 돌아서게 된 계기가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저자는 아마도 당시 우세한 열강들에 이리붙었다 저리붙었다 하는 이완용의 현실주의적인 면모를 꼬집으려고 한게 아닐까요. 그렇게 행동한 이유에 대한 답은 본인만이 알고 있겠지만 제가 평전을 읽으며 느낀 바로는 이완용에게 조정 대신으로서 지켜야 할 자신만의 확고한 가치나 기준이 있는 것 같지 않았거든요. 당장 눈 앞에 펼쳐진 현실에서 개인으로서, 또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키는 대신으로서 가장 이득이 되는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깊이 생각하고 신념에 따라 행동했다기 보다 눈 앞의 현실에 굴복한 사람인거죠. 그래서 동양평화론이나 국제 정세상의 전략적 판단이라는 친일계기를 서술하는 것조차 아깝다고 생각한게 아닐까 해요. 이렇게 쓰고 보니 생각하지 않고 살면 안 될것 같네요. 소시민이라 대단한 이상이나 신념을 가지지는 못하겠지만 일하는 분야, 앞으로의 삶에 있어서는 저만의 가치를 잘 정립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의 의미를 찾아서 뿌듯합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