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괴짜 노인 그럼프 그럼프 시리즈
투오마스 퀴뢰 지음, 따루 살미넨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얼마전 인기리에 방영됐던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할배 버전쯤 되시겠다. 핀란드에 사는 투덜이 할아버지가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와있는 손녀를 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다. 때는 아마도 평창 올림픽을 한참 준비중이던 작년이나 재작년쯤 되겠지. 하지만 이 글을 쓴 사람이 진짜 그럼프 노인은 아니다. 그럼프는 작가 토오마스 퀴뢰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니까. 이 책은 그럼프를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이지만 읽다보면 자꾸 소설이라는 사실을 까먹는다. 진짜 딱 책 표지에 그려져 있는 괴짜노인 그럼프 할아버지가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일기 같은 느낌이 든다.  



거기다 책 속엔 실제로 표지에 그려진 옷을 그대로 입은 할아버지가 한국의 곳곳을 누비며 한국을 경험하고 있는 사진이 등장한다. 그럼프 할아버지의 얼굴이 보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얼굴까지 분장하는건 힘들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그럼프의 뒷모습만 잔뜩 감상할 수 있다. 괴짜노인 그럼프 시리즈는 핀란드에서 엄청나게 사랑받는 시리즈라고 한다. 인구가 500만인 나라에서 50만부가 팔렸다고 하니 정말 국민적 인기를 누리는 대단한 노인이다. 괴짜노인 그럼프의 책 내용으로 만든 영화도 관객 50만을 동원했고, 책 내용을 그대로 녹음한 오디오북들 또한 골든 디스크를 세번이나 받았다고 하니, 이쯤 되면 이 노인의 숨은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괴짜 노인 그럼프는 한국에 간 손녀가 무척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사실 핵무기를 터뜨려버리겠다고 밤낮 세계를 협박하는 '뚱뚱한 소년' 이 바로 나라의 북쪽에 버티고 있는데, 이 곳으로 굳이 공부를 하겠다고 떠난 손녀가 걱정되긴 할 것이다. 외국인들의 눈엔 우리나라가 언제 전쟁터가 될지 모르는 불안불안한 상황으로 보일수도 있을테지. 실제로도 중국과 미국, 북한 등에 끼어서 불안한 상황이고 말이다. 

「손녀는 한국 음식이 특히 맛있고, 채소와 육류가 적당히 섞여 있다고 했다. 나는 가게에서 우유를 파는지, 공중에 폭탄이 날아다니거나 길거리에 공격용 소총을 든 남자들이 보이지는 않는지 물었다. 손녀는 한국 사람들이 북한의 소란을 진짜 위협이라기보다는 속임수로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 십 년 동안 말만 많았던 김 씨 가족을 늘 화가 난 외삼촌 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이다. 」 
<한국에 온 괴짜노인 그럼프 p.20> 



그럼프가 말하는 그 뚱뚱한 소년은 언제쯤 마음을 바꿔먹을지 나도 궁금해진다.  책의 끝 부분에는 그럼프가 뚱뚱한 소년에게 보내는 다정한 편지도 있다. 

「뚱뚱한 소년에게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고 평범한 것으로 충분합니다. 아무도 신성하게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빨리 돌아가셔서 유감스럽지만, 많은 이들이 그렇게 떠나보냅니다.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지, 그것 때문에 온 세상을 죽일 필요는 없습니다. 
허풍은 당장 그만두고 뒷마당으로 가서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보십시오. 이 편지를 받았다면 적어도 비둘기 한 마리는 있을 겁니다. 그것을 먹지는 말고 보기만 하십시오. 그 쪽에 혹시 잔디밭이 있다면 나비들도 있을 겁니다. 한번이라도 나비에 집중해 본 적이 있는지요? 참으로 이상하고 예쁜 생물입니다. 아주 가까이서 보면 못 생겼지만, 나도 못생겼고, 당신도 못생겼습니다. 
그 나비며 비둘기며, 뒷마당이며 산이며, 식물들을 오랫동안 쳐다보십시오. 필요한 만큼 충분히 오랫동안. 그리고 나서 생각해보십시오. 여전히 이 모든 것을 수소폭탄 곤죽으로 만들고 싶은지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추신. 당신은 설탕과 탄산음료를 너무 많이 먹고 마십니다. 당신의 나라엔 멋있는 전통과 맛있는 음식이 있습니다. 남쪽에서 먹어봐서 압니다. 채소와 맛있는 고기도 넉넉합니다. 김치가 당신의 장 활동에 도움이 될겁니다. 」
< 한국에 온 괴짜노인 그럼프 p. 176>



괴짜노인 그럼프는 특유의 복장을 하고 한국의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 라면 상자를 들고 당당한 걸음으로 활보하는 그를 보라 ㅋㅋ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가 재미 있었던 이유는 우리 문화에 낯선 외국인들이 서울의 곳곳을 헤매고 돌아다니며, 우리의 음식과 문화를 맛보고 즐거워하고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신선하고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항상 보는 모습이기에 우리에겐 당연했던 것들이 다른 문화를 사는 외국인들에게는 생경하게 다가올 것이고, 그 모습을 본 우리에게는 다시 한번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최근에 종영한 <윤식당> 시리즈 또한 우리가 항상 먹던 음식을 외국인들이 맛있는 먹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상하게 가슴 졸이며 그들이 맛있다고 말해주기만을 바라며 지켜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프 할아버지, 한국 여행은 즐거우셨나요? 
뚱뚱한 소년이 꼭 할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뒤뜰의 나비를 지켜보며 마음을 고쳐먹었기를 바라고요. 김치를 먹고 장운동을 활발히 해서 홀쭉한 소년이 되길 빌어보네요. 아참, 음식 드실 때 젓가락질을 자주 해보세요. 머리가 좋아진답니다ㅋㅋ 

담번엔 내가 핀란드에 가보고 싶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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