슌킨 이야기 에디터스 컬렉션 14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영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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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문체, 주제의 작품이다.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의 대표 단편선 <슌킨 이야기(春琴抄/しゅんきんしょう)>. 쉽게 접해보지 못한 '일본 탐미 문학'의 대가로 불리는 작가의 책이다. 탐미주의, 에로티시즘, 페티시즘 등으로 설명되는 작가 다니자키.


'아, 이것이 실로 스승님이 사는 세계로구나. 이제 마침내 스승님과 같은 세계에 살게 되었구나!'


<슌킨 이야기>에서 흉한 모습이 되어버린 스승이자 연인인 슌킨의 명에 따라 그녀의 얼굴을 보지않기 위해 스스로 눈을 찌른 제자 사스케의 진심어린 독백이다. 이제야 말로 외계의 눈을 잃은 대신 내계의 눈이 열린 것을 깨달았다는 남자의 시선이 슌킨에 대한 이야기보다 오히려 주를 이룬다.


사스케는 슌킨이 실명한 나이, 아홉살에 그녀를 처음 만난다. 슌킨보다 네 살이 많은 사스케는 일생을 그녀를 극진히 봉양하며 존경을 다한다. 일본의 전통 악기인 샤미센(三味線, しゃみせん)을 매개로 둘은 모두가 아는 비밀-부부의 연과 같은 둘의 사이-를 철저히 외면하며 일방적인 종속관계로 생을 이어간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내외의 번뇌를 끊고 추를 미로 승화시킨 선(禪)적 행위는 가히 달인의 경지에 가깝도다.' 사스케의 행동을 두고 내뱉은 고승의 말에 다니자키는 "독자라면 이를 이해하겠느냐?"고 물음을 던진다. 굳이 그러한 질문이 아니더라도 책은 이상하리만큼 '여성의 미'에 집착한다.


'슌킨 이야기'는 '문신', '호칸', '소년', '비밀', '길 위에서', '갈대 베는 남자'와 함께 책 7편의 이야기 가운데 제일 마지막에 실려 있다. 후카가와의 한 요정 앞에서 가마 아래로 떨어지는 소녀의 발을 잊지 못하는 문신사가 마침내 꿈을 이루는 '문신'이나 자신의 신분과 남자라는 품위마저 잊은 채 오로지 여성의 웃음을 위해 사는 남자에 대한 '호칸' 등 일본소설 <슌킨 이야기>의 모든 단편에는 사건보다 남자와 여자가 중심이다.


작품 해설에 따르면 "여자 없이는 시도 예술도 없다"는 다니자키가 평생에 걸쳐 추구해온 주제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그의 대표 단편선인 <슌킨 이야기>는 아름다움의 화신인 여성을 숭배하는 남성의 모습이 줄곧 등장한다.


또 <슌킨 이야기>에는 20세기 초반 일본의 사회상, 당시 직업 등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에도 거리를 머리에 떠올리며 호칸(연회에서 손님의 시중을 들며 만담 등을 해 좌중을 흥겹게 하는 직업)이나 차보즈(무사 집안에서 내객 급사와 접대 담당) 등을 그려보는 일도 흥미롭다.


'소설보다 소설적'이라는 다니자키의 일생은 책 뒷부분에 간략히 소개된다. 그의 삶이 작품에 그대로 나타나고, 작품의 내용이 다시 실제 삶에 그대로 반영됐다는 설명이다.다니자키의 다른 작품역시 호기심을 불러오는 이유다.(*)


*리뷰어스클럽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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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경전 - 개정판
김진명 지음 / 새움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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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의 별과 13개의 줄로 이루어져 있는 성조기. 그리고 미국 휘장에 새겨진 독수리의 날카로운 좌우 발톱에는 13개의 화살과 13개의 나뭇가지가 그려져 있다. 또 독수리의 머리에도 역시 13개의 별이 선명하게 박혀 있고. 그뿐인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1달러 지폐에는 13층의 피라미드가 찍혀 있다. 그 피라미드 위로 빛을 발하는 눈이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김진명의 <최후의 경전>은 이처럼 전세계에 퍼져있는 신비로운 숫자를 통해 인류의 비밀과 지혜를 찾는다. 유대인이 숭배하는 카발라 경전에서 출발한 여정은 서양의 물질문명을 넘어 동양의 정신문명에까지 닿아 마참내 대한민국에서 최후의 경전을 맞이하기까지 이르게 된다.


주인공 인서는 수의 신비를 연구하는 학문인 수비학자 나딘 교수, 대종교의 가르침을 받은 환희와 함께 구도(求道)와도 같은 모험을 시작한다. 프리메이슨과 같은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강력한 조직에 맞서 한국에서 미국으로, 중국과 저 추운 시베리아까지 전 대륙에 걸쳐 문명의 근원과 미래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모든 이치를 끌어안고 있는 진도자(眞道子), 이 세상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눈을 뜻하는 전시안(全視眼) 등 두 초인은 같은 듯 다른 모습으로 <최후의 경전>을 향하고 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가 창작인지 혼란이 있을 수도 있지만 <최후의 경전>이 전하는 이야기는 분명히 흥미에만 그칠 수 없다. "세상에는 너무도 신비한 숫자들이 있다. 저 아득한 전설 같던 시대는 우리 역사에 너무나 신비하고 분명한 모습으로 숨겨져 있었다.", "신비한 숫자를 좇음으로 해서 우리는 한민족의 문명과 세계 고대문명과의 상관관계도 조명할 수 있고, 아직 실체를 밝혀내지 못한 우리의 뿌리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작가의 말은 깊게 다가선다.




오래전 소설 <단(丹)>을 접한 뒤 시작됐던 우리 상고사에 대한 호기심은 시간이 흘러 줄어들었지만, <최후의 경전>을 통해 다시금 살아나는 느낌이다. 특히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다시 펴들고 싶은 욕구가 고개를 든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과거로부터 내려왔으며 과거는 영원한 것"(<최후의 경전> 가운데 전도자의 말)이라는 가르침 속에 담긴 뜻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작가의 말처럼 이제 우리 역사의 화두는 달라져야 한다. 우리의 생로(生路)역시 우리의 역사에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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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 있어 - 은모든 짧은 소설집
은모든 지음 / 열린책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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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를 위해 다시 묻고 이렇게 빌게 된다. "무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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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 있어 - 은모든 짧은 소설집
은모든 지음 / 열린책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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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라는 긴 터널을 거치며 탄생한 은모든의 <선물이 있어>. 짧은 호흡으로 엮인 열일곱 편의 이야기는 지난했던 하루하루를 새롭게 만들어 주는 선물로 남는다. "기나긴 겨울처럼 웅크려 지내야 했던 시간 동안 쌓인 회한이 어느새 아득히 물러나는 순간을 맞이하시기를 빌겠다"는 작가의 기대처럼.


소소하거나 특별하거나 그 차이는 바라보는 관점에 있다. 오랜 만에 얼굴 마주하는 가족과의 만남이 세상 무엇보다 특별할 수 있는 힘은 그 자체가 소소하지만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마찬가지일터.




책 제목과 같은 첫번째 이야기 '선물이 있어'는 전체 흐름을 전반적으로 이끌어 준다. 점차 나이가 들어가고, 주위 어려움도 겹쳐가던 즈음 후배로부터 받은 장갑 한 켤레는 큰 선물과 희망이 된다. 유효기간이 끝난 '벙어리장갑'이라는 이름 대신 이제는 '손모아장갑'으로 불리는 선물.


단어 자체에 온기가 서린 듯 정감가는 이름으로 다시 의미를 가진 손모아장갑. 성지는 지금의 매일매일도 '그저 그런 때가 있었지'하고 어렴풋이 기억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니까 이 장갑을 보면서 사람들이 전에는 뭐라고 불렀더라 떠올리게 되는 순간 말이다. 그리고 기도한다. '그럴 수 있기를, 부디 그럴 수 있기를.'




"모두 무탈하신가요?"라고 물어오는 작가의 말대로 <선물이 있어>의 열일곱 이야기는 하나하나 어떤 형태든 선물을 물어다 준다. '궁극적인 평점심'을 가진 아주머니나, 외롭고 고된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시간의 통로'가 되는 문을 넘나드는 허 씨와의 만남역시 그저그런 우리의 시간을 특별하게 만든다.


말 그대로 열고 들어가면 다른 시간대로 이동하기도 하고, 안으로 들어가서 닫으면 시간이 멈추기도 하는 문을 발견하길 원하는 것은 애초에 별다를 것없는 오늘의 반전을 기대하는 뜻이리라.


남들이 호소하는 외로움과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결은 다른 것 같지만, 아직 그 차이를 명확하게 짚어 낼 말을 찾지 못하는('584마리의 양' 가운데) 현실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래도 이 세상에서 해가 저무는 모습과 가장 닯은 풍경이 있다면, 다름 아닌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라는 사실('결말 닫는 사람들' 가운데)이라도 깨닫는 순간이 있는 것은 다행이다.




한국소설 <선물이 있어> 속 단편은 다른 듯 이어져 있다. 은하, 민주, 성지라는 등장인물이 이야기 곳곳에 존재를 드러내면서 또 다른 재미를 준다. '딘킈횡담면 갸갸둘둘됴'가 당췌 무엇인지 따져보고, '천사강령'을 익혀보게 하는 것도 <선물이 있어>의 매력이다.


"겹겹이 닥친 불운에 발이 묶인 상태지만, 소박한 계기를 통해 마음을 다잡고 언젠가 현재의 지난한 매일이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을 날을 그려 봅니다."라는 작가의 말까지 접하고 나면 우리는 서로를 위해 다시 묻고 이렇게 빌게 된다. "무탈하시기를."


*리뷰어스클럽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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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크 팔로우 리벤지 스토리콜렉터 105
엘러리 로이드 지음, 송은혜 옮김 / 북로드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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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상티망(ressentiment)'. 프리드리히 니체가 처음 사용해서 의미를 확장한 이 단어는 주로 자신의 열등감이 외부 대상, 즉 자신이 질투하면서도 선망하는 다른 사람에게 투영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요약해 원한이나 복수감을 뜻하기도 한다.


엘러리 로이드의 장편소설 <라이크(Like) 팔로우(Follow) 리벤지(Revenge)>는 소위 SNS 인플루언서를 대하는 팬과 안티이 심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상대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같은 이유로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팬과 안티 사이의 경계는 훨씬 얇은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엄청난 '라이크'를 받으며 관심의 대상이던 많은 SNS 스타들이 단 한 번이 이슈로 하염없이 추락하는 경우를 종종 보곤한다.




책은 백만 팔로워를 거느린 인스타맘 에미의 독백에서 시작한다. '곧 끔찍한 일이 일어나리라는 무서운 예감, 이 모든 일이 내 잘못이라는 불행한 예감'으로 한없이 용서를 구하는 에미. 그리고 그 순간으로부터 6주 전으로 돌아가 이야기는 다시 출발한다. 그녀를 향한 관심과 협찬을 지켜보는 남편 댄과 함께 부부의 시각이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진솔함이 저의 브랜드랍니다. 저는 항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니까요."-에미

"저건 완전 개소리다. 개소리도 저런 개소리가 없다."-댄


에미는 잘나가는 인플루언서로 살아가기 위해 전문 에이전트와 계약하고, '육아에 대한 솔직한 대화'와 '여과없이 보여주는 가족과 함께하는 삶의 모습'을 연출해낸다. 팔로워들의 눈높이를 위해, 보다 많은 협찬과 광고를 위해 그녀는 여성들에게 불가능한 모성의 기준을 제시하는 대신 '완벽하게 불완전한 엄마상'을 창조해냈다.




그러나 그녀를 지켜보는 많은 이들 가운데 누군가는 그녀가 만들어내는 허상을 이미 눈치챘거나, 실제 입은 피해로 인해 복수를 꿈꾼다. 에미와 댄 가족은 이제 '라이크'와 '팔로우'를 넘어선 '리벤지'에 직면하게 된다.


스스로 작성한 게시글로 인해 우편번호가 알려지고, 자주 가는 커피숍의 위치도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대충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한 에미와 댄. 심지어 거리 뷰 기능을 사용하면 이들 부부와 함께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까지 직접 걸어보는 경험도 가능하다는 무서운 현실을 말이다.


책은 우리가 쉽게 짐작하는 SNS, 그 네모 속에 들어있는 불편한 진실을 하나둘 꼬집는다. 오로지 인터넷에 포스팅할 목적으로 만들어낸 볼거리에 불과한 장면을 위해 치밀하게 훈련하고 생산하는 에미-그리고 그녀와 유사한 사람들-를 상세히 묘사해 준다. 또 익명성에 숨은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현상이나, 무책임한 말과 글이 세상에 던지는 파장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한다.




SNS를 통해 세상을 볼 수밖에 없는 경우, 혹은 SNS와 그 네모 속 현상에 지배당한 사람에 대한 설명은 너무나 현실적이다. "스마트폰을 열어 제일 먼저 뉴스를 왁인하고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을 한 바퀴 쭉 돈 뒤, 마지막으로 이메일을 확인한다. 한바퀴 돌면 새롭게 자리를 차지하고 올라온 뉴스롤 보게 되고 아까 한 일을 다시 반복하게 된다."


에미와 댄이 겪은, 그리고 앞으로도 겪게 될 <라이크 팔로우 리벤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통해 나타나는 르상티망의 현재화 순서가 아닐까 여겨진다. 책의 원제는 <People like her>다.(*)


*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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