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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 있어 - 은모든 짧은 소설집
은모든 지음 / 열린책들 / 2022년 12월
평점 :
팬데믹이라는 긴 터널을 거치며 탄생한 은모든의 <선물이 있어>. 짧은 호흡으로 엮인 열일곱 편의 이야기는 지난했던 하루하루를 새롭게 만들어 주는 선물로 남는다. "기나긴 겨울처럼 웅크려 지내야 했던 시간 동안 쌓인 회한이 어느새 아득히 물러나는 순간을 맞이하시기를 빌겠다"는 작가의 기대처럼.
소소하거나 특별하거나 그 차이는 바라보는 관점에 있다. 오랜 만에 얼굴 마주하는 가족과의 만남이 세상 무엇보다 특별할 수 있는 힘은 그 자체가 소소하지만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마찬가지일터.

책 제목과 같은 첫번째 이야기 '선물이 있어'는 전체 흐름을 전반적으로 이끌어 준다. 점차 나이가 들어가고, 주위 어려움도 겹쳐가던 즈음 후배로부터 받은 장갑 한 켤레는 큰 선물과 희망이 된다. 유효기간이 끝난 '벙어리장갑'이라는 이름 대신 이제는 '손모아장갑'으로 불리는 선물.
단어 자체에 온기가 서린 듯 정감가는 이름으로 다시 의미를 가진 손모아장갑. 성지는 지금의 매일매일도 '그저 그런 때가 있었지'하고 어렴풋이 기억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니까 이 장갑을 보면서 사람들이 전에는 뭐라고 불렀더라 떠올리게 되는 순간 말이다. 그리고 기도한다. '그럴 수 있기를, 부디 그럴 수 있기를.'

"모두 무탈하신가요?"라고 물어오는 작가의 말대로 <선물이 있어>의 열일곱 이야기는 하나하나 어떤 형태든 선물을 물어다 준다. '궁극적인 평점심'을 가진 아주머니나, 외롭고 고된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시간의 통로'가 되는 문을 넘나드는 허 씨와의 만남역시 그저그런 우리의 시간을 특별하게 만든다.
말 그대로 열고 들어가면 다른 시간대로 이동하기도 하고, 안으로 들어가서 닫으면 시간이 멈추기도 하는 문을 발견하길 원하는 것은 애초에 별다를 것없는 오늘의 반전을 기대하는 뜻이리라.
남들이 호소하는 외로움과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결은 다른 것 같지만, 아직 그 차이를 명확하게 짚어 낼 말을 찾지 못하는('584마리의 양' 가운데) 현실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래도 이 세상에서 해가 저무는 모습과 가장 닯은 풍경이 있다면, 다름 아닌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라는 사실('결말 닫는 사람들' 가운데)이라도 깨닫는 순간이 있는 것은 다행이다.

한국소설 <선물이 있어> 속 단편은 다른 듯 이어져 있다. 은하, 민주, 성지라는 등장인물이 이야기 곳곳에 존재를 드러내면서 또 다른 재미를 준다. '딘킈횡담면 갸갸둘둘됴'가 당췌 무엇인지 따져보고, '천사강령'을 익혀보게 하는 것도 <선물이 있어>의 매력이다.
"겹겹이 닥친 불운에 발이 묶인 상태지만, 소박한 계기를 통해 마음을 다잡고 언젠가 현재의 지난한 매일이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을 날을 그려 봅니다."라는 작가의 말까지 접하고 나면 우리는 서로를 위해 다시 묻고 이렇게 빌게 된다. "무탈하시기를."
*리뷰어스클럽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