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과 오해
E, Crystal 지음 / 시코(C Co.)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이 전부 사실일까요?"

"당신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숱한 비밀과 오해 때문에 나는 당신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듭니다."


<비밀과 오해>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질문과 답으로 이뤄지는 짧은 한 문장이다. 세주, 유주, 비주 세 자매가 서로에게 던진 질문일 수도 있고 그들을 둘러싼 세상을 향한 물음일 수도 있겠다. 저자 E.Ctystal의 장편소설 <비밀과 오해>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풀어가는 과정이다.



맏언니 세주의 형부가 됐어야할 남자가 결혼식을 앞두고 몸을 던져 자살한 지 5년이 지난 시점, 세 자매는 각자의 시각에서 '그 사건'의 해답을 찾아 나선다. 본의든 아니든 의문투성이인 '그 사건'에 대한 서로의 '비밀과 오해'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침 비주의 급성 충수염은 세 자매가 가진 비밀을 더 숨길 수 없도록 상황을 전개한다. <비밀과 오해>는 어느해 3월 19일부터 4월 5일까지 보름남짓 동안의 세 자매에 대한 기록이다.


세 자매의 비밀과 오해는 '그 사건'에서 비롯됐다. '그 사건'은 세 자매를 서로 무엇을 드러내고 숨겨야 하는 지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자매로 만들어 버렸다.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그 어떠한 것도 책임지지 않은 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스스로의 인생에서 도망쳐버린 남자. 그런 방식의 죽음은 남겨진 사람 모두에게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지옥을 선사한 것이다. 죽은 남자는 말했었다. 스스로 파놓은 구덩이에 빠져있다고. 그런데 빠져나올 방법을 모르겠다고.


서로에 대한 걱정과 불안, 염려까지도 감추는 데 급급했던 세 자매는 세주의 시어머니가 될뻔했던 여자의 등장으로 급격한 반전을 이룬다. 언제나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전부 별일 아닌 것처럼 지냈던 5년 동안의 '비밀과 오해'는 순간 막내 비주의 용기로 녹아내리게 된다. 그해 결혼 전날 밤 예비형부의 집에서 나오던 비주, 이를 발견한 유주, 그리고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 치는 남자를 목격한 세주. 각자가 가슴에 품었던 '비밀과 오해'가 어떠한 까닭이었는지 덤덤하게 그려진다.


"아무도 내겐 묻지 않았어요." 막내의 외침은 왜 사람들이 숱한 오해를 품으면서도 비밀을 간직할 수밖에 없는지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다.



또 세 자매 곁에 머물고 있는 세 남자에 관한 묘사는 <비밀과 오해>가 단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표현한다. 학원 강사로 일하는 세주, 작은 출판사 직원인 유주,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비주. 모델을 꿈꾸는 한참 연하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선한 마음을 가진 안정된 금융회사 직원, 한참 나이가 많은 이혼남 등 세 자매와 역설적으로 어울리는 세 남자가 가진 '비밀과 오해'도 책은 찬찬히 음미하게 만들어 준다.


엄마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먼저 떠나기전 40개의 발가락은 완벽한 가족이었다. 된장과 고추장을 진하게 풀어낸 찌개, 으깬 두부가 들어간 쑥갓 무침, 심심한 미역 줄거리 볶음, 달걀을 입힌 동그란 소시지 등 엄마에게서 비롯된 요리가 세 자매의 손끝에서 무심히 되살아나고 있듯 무지개 매니큐어를 바른 30개의 발가락이 허공을 향해 다시 꼼지락 거리는 마지막 장면이 무척이나 정겹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뮬란 새로운 여정 디즈니 오리지널 노블
엘리자베스 림 지음, 성세희 옮김 / 라곰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눈 덮힌 설원에서 훈족과의 전투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남장 병사 핑은 동료인 야오, 링, 치엔포, 그리고 대장 리샹과 함께 전멸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기지를 발휘한다. 절대적 수적 열세를 뒤집기 위해 눈사태를 일으켜 적을 물리치는 것. 성공을 직감한 찰나 훈족 샨유가 휘두른 칼날을 미처 짐작하지 못하고, 샹 대장이 몸을 던져 핑을 대신한다.


핑의 새로운 여정, 다시 말해 뮬란의 또다른 모험은 이렇게 출발한다. 디즈니가 탄생시킨 엘리자베스 림의 <뮬란>은 애니매이션 원작과는 색다른 감동을 전해 준다. 웅장한 배경음악도 없고, 화려한 그래픽도 없지만 순수한 텍스트를 통해 만끽하는 장면만으로도 상상력을 충분히 자극한다.

 


다친 아버지를 대신해 여성임을 숨기고 '핑'이라는 이름의 남장 병사로 전쟁에 참여한 뮬란은 자신을 지키고자 큰 부상을 당한 샹의 회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 다짐한다. 희미해져만 가는 의식, 엄청난 고열에 시달리는 샹의 목숨은 이미 가망이 없어 보이지만, 뮬란은 작은 희망을 놓지 않고 그를 기꺼이 보살피며 황제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전쟁이 끝났고 이 땅에서 나의 시간도 끝났다. 지금 내가 가장 안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너 같은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야, 핑. 내가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사람." 샹의 따뜻한 말에도 뮬란의 자신으로 인해 대장이 다쳤다는 자책감과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은 점점 강해질 뿐이다.


황제를 향한 긴 여정 속 지친 병사들이 하룻밤 머물기 위해 마련한 천막. 대장 샹 곁에서 잠시라도 쉴 틈이 없었던 뮬란도 얼핏 잠으로 빠져든다. 그 사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새로운 여정'이 뮬란 앞에 열리게 된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녹청색 빛을 뿜어내며 샹을 바라보던 리 장군의 영혼을 만난 뮬란은 대장을 구할 방도를 듣게 되고, 그를 위한 목숨 건 여정을 다짐한다. 샹을 살려낼 유일한 방법은 바로 지옥에 있는 염라대왕의 마음을 바꾸는 것. 뮬란은 리 가문의 수호신 쉬쉬-엄청난 몸집의 돌사자-와 짧은 만남과 동시에 곧바로 함께 지옥으로 향한다.


이승과 저승을 잇는, 그러나 절다 돌아갈 수 없을 지 모르는 마지막 길 '무원의 다리'를 건너 뮬란과 쉬쉬는 염라대왕 앞에 선다. 주름으로 일그러진 얼굴에 불그레한 두 뺨, 불타는 듯이 붉고 노랗게 깜빡거리는 두 눈, 버드나무 몸통처럼 두꺼운 목, 쉬쉬의 갈기 못지 않게 빽빽하고 헝클어진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염라대왕은 뮬란에게 거역할 수 없는 내기를 건다.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이승의 기억을 버리고 있을 샹의 영혼을 찾아 동이 트기 전에 지옥을 벗어난다면 자유와 샹의 생명을 되찾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뮬란은 염라대왕의 죄수로 영원히 지옥에 남아야 한다.


다리들이 공중에 떠있고, 강물이 구름 사이로 흐르고, 강력한 마법이 도처에 일어나고, 거울들이 영혼 깊숙이에 말을 걸며, 여러 사연을 지닌 악령들이 곳곳에서 덤벼드는 곳. 뮬란은 '핑'이 아니라 '뮬란'이라는 본래의 모습으로 위대한 모험을 펼쳐나가게 된다.



<뮬란>은 디즈니 애니매이션 캐릭터 가운데 가장 주체적인 여성상을 표현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책에서도 뮬란은 끊임없이 중국이 요구하는 전통적인 여성상을 깨고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 함께 그려진다. 날카로운 칼로 뒤덮힌 '검의 산'을 오르는 순간 뮬란은 또다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한다. 자신의 오랜 자아에 묶여 있던 끈들을 잘라내고 뮬란에서 핑으로, 신붓감에서 병사로, 순종적인 딸에서 자신의 삶을 주도하는 여성으로.


'검의 산'을 벗어날 즈음 뮬란의 눈에 들어온 빛바랬지만 여전히 황금빛을 발하는 명검. 검에 새겨진 첫 글자는 퓰란의 성과 같은 글자 '파'였다. '꽃'을 뜻하는 '파'다.


"꽃, 역경을 뚫고 피어난 그 꽃이 가장 귀하고 아름답다." 검의 글귀는 저승에서의 모험, 이를 넘어 <뮬란>의 삶을 관통한다. 지옥에 어울리지 않는 영웅의 검은 "총명하고 용감하며 친절한 사람, 믿을 수 있는 정직한 사람"이라는 샹이 원하는 비밀의 여성, 즉 뮬란과 절묘히 부합한다.


뮬란은 지옥의 악령과의 전쟁 속에서 자신의 기억, 깊은 내면과의 싸움도 함께 벌여 나간다. 망각의 여신 멩포의 유혹역시 멈추지 않고 뮬란을 괴롭힌다. 가마솥 지옥에서의 불의 악령 '훠과이을 물리치고, '거울의 지옥'을 벗어난 뮬란은 더이상 남장 병사 '핑'이 아니다. 자신의 본모습으로, 진짜 여자의 모습으로 검을 치켜든 뮬란은 가면을 벗어 던진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세상과 맞설 용기가 생겼으므로.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자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행할 수 있는 자유도 갖고 싶어. 비록 내게 주어진 길에서 벗어나게 된다 해도 말이야. 이젠 두렵지 않아. 내가 핑이든 뮬란이든 중요하지 않아. 내가 나 자신에게 진실하다면 진짜 내가 누구인지 드러날 테니까."



"나는 파뮬란이다. 가족과 중국을 위해 목숨을 거는 소녀,죽어가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온 소녀. 마침내 거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 전투에 전투를 거듭한 소녀."


다시 만난 멩포는 '아름다움이 있는 곳에는 힘과 용기와 회복력이 있다는 걸 상기시켜주는 꽃', 목련을 뮬란에게 선물한다. 사모하는 샹 대장과 세상에 맞설 비밀을 간직하게 된 뮬란은 '영웅의 심장' 그대로를 안고 새로운 여정을 다시 떠난다. 애니매이션 원작을 떠올리며 <뮬란-새로운 여정>을 음미한다면 책의 더 큰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어니 트윌과 종이 심장 시어니 트윌과 마법 시리즈 1
찰리 N. 홈버그 지음, 공보경 옮김 / 이덴슬리벨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러고 보니 <해리 포터>가 등장한 지도 20년이 지난 것 같다. 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 벌어지는 어마어마한 사건과 비밀을 마주하게 되는 해리 포터가 친구 론, 헤르미온느와 함께 멋진 모험에 빠져드는 실로 '마법같은' 이야기에 열광했던 추억이 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선과 악의 대결에서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라는 강력한 힘이 주는 감동, 그리고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에 빠져 들었다.


찰리 N. 홈버그의 판타지 <시어니 트윌과 종이 심장>은 마법학교를 갓 졸업하고 실제 마법사가 되기 위한 견습생 소녀의 모험기다.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오로지 실력으로 인정받으며, 선한 의도를 가진 선배의 조력을 받아 성장해가는 전형적인 주인공 시어니 트윌은 '진부한 스타일'이라는 선입견을 깨뜨리는 '당돌함'과 '유머'라는 무기를 지니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붙인 '시어니 트릴' 시리즈로 불릴 무수한 후속작을 기대하게 할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다.



"더 놀랄 일이 있을까요?"


태기스 프래프 마법학교 최고 졸업생 시어니는 마뜩찮은 심정으로 에이비오스키 마법사의 손에 이끌려 에머리 세인 마법사의 집 앞에 선다. 그토록 열망하던 금속 마법사의 꿈이 무너지고,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평생 종이 마법사-인기 없는-의 길을 걷게 된 시어니가 종이해골 '존토'를 만난 후 던지는 푸념이다. 실제 자신에게 닥칠 무시무시한 '놀랄 일'을 꿈에도 모른 채.


불공평했지만 불평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시어니는 특유의 자존감과 타고난 능력을 발휘하며 종이 마법사의 가르침에 순응한다. 비록 잔뜩 쌓인 종이들이 '자신의 무덤'으로 느껴지더라도 말이다. 갑자기 사라진 장학금으로 인해 마법사의 꿈을 포기하고 요리학교로 옮겨야할 위기에서 시어니를 구해준 은인이 바로 눈 앞에 있는 세인 마법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더욱 그랬다. '기적'같이 시어니에게 나타난 세인의 장학금, 그리고 함께 '기적'을 만들어가야할 콤비의 탄생 과정이 흥미롭다. 영국에서 12명밖에 없는 종이 마법사, 그리고 시어니는 13번째 종이 마법사가 되기 위해 세인의 가르침을 받는다.


"숨 쉬어."


온전하게 접어 만들면 온전하게 움직이게 된다는 세인의 첫 번째 가르침은 <시어니 트윌과 종이 심장> 속에서 시어니에게 가장 필요한 주문이 된다. 견습생이 되기 위해 학교에서 키우던 강아지 '비지'를 어머니께 맡기고 왔다는 시어니의 이야기를 듣게 된 스승 세인이 종이개 '펜넬'을 밤새 손수 만들어 주는 장면은 두 사람의 인연을 더욱 끈끈하게 엮어 준다.



"자네는 앞으로 모험을 하며 살겠군." - 세인

"그럼요, 마법사님이랑 같이 사는 것 자체가 모험이겠죠." - 시어니


이제 막 인사를 나눈 스승과 제자의 일상이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신체 마법사 리라의 등장은 순식간에 독자를 긴장하게 만든다. 한 손에 피가 든 유리병을 쥔 냉혹한 미녀 마법사 리라, 사람의 마음을 갖고도 그 심장까지 훔치려 하는 그녀와 시어니의 한 판 승부가 시작된다.


3층 다락방에 놓여 있던 거대한 종이 글라이더를 타고 리라를 쫓는 시어니의 모험은 여느 판타지 소설 못지않게 이채롭다.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꿈이 가득한 심장 속에서 뜨거운 피를 타고 흐르는 시어니의 멋진 여정이 숨가쁘게 그려진다. 완전한 마법사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 견습생 시어니와 종이 강아지 펜넬의 활약이 즐겁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재료여, 창조자가 명한다. 내가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평생 나와 연결될지어다." 종이와 평생을 약속한 시어니의 이야기가 더욱 여운을 남기는 것은 판타지의 상상을 넘어 결국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 잔잔히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누군가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할 순간 조금의 미련없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역시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책은 보여 준다. '대신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해야하기 때문'에 그렇다.


<시어니 트윌과 종이 심장> 이후 다양한 재료를 다룬 마법이 선사할 상상력, 신체 마법과 같은 흑마법이 보여줄 새로운 위기, 그리고 그 가운데 시어니와 세인의 활약이 그려질 다음 이야기가 더욱 기대된다.(*)


* 리뷰어스클럽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라피나와 일곱 개의 별 세라피나 시리즈 4
로버트 비티 지음, 김지연 옮김 / 아르볼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이번에도 흑표범 소녀 세라피나는 '선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발톱을 드러내고 전력 질주한다. 세라피나 시리즈 4번째 이야기 <세라피나와 일곱 개의 별>은 플레이아데스 성단(Pleiades star cluster)에 얽힌 설화, 켈트족과 드루이드교 사제들이 남긴 마법에 대한 전설, 세라피나가 살고 있는 빌트모어 대저택이 갖고 있는 비밀을 정교하게 엮어낸 미스터리 판타지다.


인간과 흑표범(퓨마)의 모습을 자유자재로 변신할 수 있는 소녀 세라피나, 영롱한 사파이어 눈빛을 통한 놀라운 통찰력을 가진 제시, 동물과 소통이 가능하며 치유의 능력을 지닌 세라피나의 가장 친한 친구 브레이든. 등장인물 소개만으로도 새로운 판타지로 몰입할 기대를 갖기에 충분하다.


1900년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쉬빌의 빌트모어 대저택은 아름답고 고즈넉한 풍경을 그려내고 있지만, 몇 달째 이어지고 있는 평화가 세라피나는 못내 불안하다. 빌트모어의 주인 밴더빌트의 조카이자, 세라피나의 친구인 브레이든마저 학업을 위해 뉴욕으로 떠난 지금 세라피나는 깊은 상실감에 빠져있다.



빌트모어 대저택을 향해 달리는 열세 대의 마차 행렬. 한 명 한 명 대저택에 들어서면서 세라피나의 불안감은 점차 현실로 다가온다. 아무 관심없는 듯 세상을 둘러보는 제시와의 첫 만남은 닥쳐올 위기를 암시하고, 세라피나와의 묘한 인연이 시작된다.


"내가 원하는 삶은 여기에 있어. 너도 여기에 있고." 


걱정에 휩싸인 세라피나 앞에 꿈처럼 나타난 브레이든. 잠시의 안정을 깨는 흰사슴의 등장은 곧이어 빌트모어 대저택이 마주할 무시무시한 사건의 출발을 알린다. 뒤이어 터져 나온 한 발의 총성. 두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믿기 힘들 정도로 새하얀 사슴은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브레이든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사슴을 치료하려 애쓴다. 이후 흔적도 없이 다시 사라진 브레이든과 흰사슴.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인지 분간되지 않는 혼돈은 그 범위를 점점 넓혀만 간다. 


사냥을 떠난 빌트모어의 손님들과 빌트모어를 지키온 식구들이 하나 둘 정체모를 적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고, 세라피나는 선량한 사람들과 빌트모어를 보호하기 위한 싸움을 벌여 나간다. '누구에게나 해야 할 일이 있고 내 할 일은 이거야.'라는 신념을 갖고.


점차 아무도 믿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진 세라피나는 자신을 숲 속에서 발견해 사랑으로 키워온 아빠에게 고심을 털어 놓는다.


"늪에 빠졌다고 포기해 버리면 어둠은 짙어지고 배고픔과 추위와 피곤함은 심해질 뿐이야. 지치고 앞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겠지만 그래도 계속 앞으로 밀고 나가야지. 믿음을 가지고... 네가 아는 진실에 대한 믿음 말이다. 명심하거라. 유일한 탈출구는 정면 돌파뿐이야"



아주 크고 고약한 늪에 빠진 세라피나는 적이 사방에 도사리고 있고, 죽음이 도처에 널려 있는 빌트모어를 구하기 위해 다시 이를 악문다. 도무지 늘어만 가는 여러 형태의 적,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는 점점 더해가고 읽는이는 더욱 이야기에 빠져 든다. 모든 혼돈의 근원을 찾기 위해 다시 뭉친 세라피나와 브레이든, 그리고 제시의 활약에 절로 응원을 보내게 된다.


'일곱 개의 별이 현실 세계에 투영하면 그 안에 깃든 마법도 함께 투영된다. 동시에 거울이 거울을 비추듯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도 그 마법 속에 투영된다.'


<세라피나와 일곱 개의 별>은 <헤리 포터>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처럼 미지의 세계를 향한 모험이 아닌 보다 현실적인 세상을 지키는 활약을 그려낸다. 우리가 존재하는 삶에서 반드시 아끼고 지켜야할 가치를 세라피나의 전투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세라피나의 가장 큰 무기는 무시무시한 어금니, 뾰족한 발톱이 아니라 가족과 친구, 그리고 그에 대한 믿음과 배움이라는 가치였음을 일깨워준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스승이 존재한다'는 세라피나의 깨달음이 바로 그것이다. 눈부신 검은 털을 휘날리며 세상을 지키는 세라피나의 다음 활약역시 궁금해진다.(*)


* 리뷰어스클럽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 미 에브리싱
캐서린 아이작 지음, 노진선 옮김 / 마시멜로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시의 지나칠 정도의 솔직함에 빙그레 미소 짓다가도, 애덤의 무책임하고 철없는 행동에 분개한다. 아이들의 쉴 새없는 소동에 폭소하다가도, 부모님이 전하는 따뜻한 마음에 가슴 한 켠이 애틋해진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숨죽이고 제시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함께 호흡하게 된다. 가족의 의미를 새삼 떠올리고, 삶에 대한 자세를 고쳐잡게 하는 책 <유 미 에브리싱(You Me Everthing)>이다.


마치 카페에 앉아 차를 홀짝이며 오랜 친구의 얘기를 듣듯 책장을 넘기게 되는 <유 미 에브리싱>은 주인공 제시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삶이 주는 무게와 상관없이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제시의 유머 감각이 매 장마다 이어진다. 



"이따금 인생은 우리 몫으로 정해진 최고의 행복과 최악의 불행을 하나로 합쳐서 같은 날에 던져준다."


스물 셋 제시가 남자친구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아들 윌리엄을 얻던 날, 그녀는 이렇게 회상한다. <유 미 에브리싱>의 첫 구절인 이 한마디는 십년이 지나서까지 그녀의 삶을 관통하게 된다.


'죽기 전 소원'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더한 엄마의 요청에 의해 제시는 열살이 된 윌리엄과 함께 영국 맨체스터 집을 떠나 프랑스 도르도뉴의 고성호텔 로시뇰성으로 5주 간의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는 십년 전 제시의 남자친구이자 윌리엄의 아빠 애덤이 살고 있다. 윌리엄한테 아빠와의 '진정한 관계'를 맺어주려는 제시의 기대와 절망, 갈등과 희망이 휴가기간 내내 반복된다. 도르도뉴(Dordogne)는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실제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주다.


아빠라는 존재의 도움없이-양육비를 제외하고- 아들을 키워온 제시는 자신만의 비밀을 품고 있다. 누구에게도 편히 털어놓을 수 없는 그녀의 불안과 공포는 더더욱 윌리엄에게 필요한 아빠를 찾아주려 애쓰게 만든다.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윌리엄은 너무나 쉽게 아빠 애덤을 자신의 영웅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제시가 질투심과 배신감을 느낄 정도로 '남자끼리의 시간'에 환호한다. 제시와 윌리엄, 아직 젊은 엄마와 열살 아들은 동시에 성장통을 겪으며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그려 낸다. 제시는 "우리가 저지른 가장 아름다운 실수라는 초강력 접착제로 붙어 있는 두 파편일 뿐"이라는 시선으로 애덤을 바라본다. 바로 그 접착제는 윌리엄이고.


제시를 따라 차례로 휴가지에 합류하는 친구 나타샤, 베키와 셉 부부가 보여주는 삶은 <유 미 에브리싱>이라는 요리의 훌륭한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서로 상대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내려는듯 싸움을 거듭하는 제임스와 루퍼스 형제, 폭풍눈물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지닌 아기 포피 등 베키의 삼남매가 일으키는 소동도 책의 재미를 더한다.



십년 전 아빠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가족'을 떠나야 했던 애덤이 숨겨온 비밀, 제시가 내키지 않은 프랑스 여행을 결심하게 된 배경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유 미 에브리싱>은 대전환을 이룬다.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네겐 아직 살아갈 날이 많아. 그걸 기억하렴. 원하는 게 있으면 가져. 무작정 해."라는 엄마의 기대는 제시의 결심을 재촉하게 된다.


너무나 평범한 삶이란 것이 그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절실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고 산다. 책은 기쁨과 슬픔을, 행복과 불행을 항상 동시에 안겨주는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미래가 불확실하다. 내일 버스에 치여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다. 묵묵히 살아가며 모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반면 나는 어떤 것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단 하나도." 제시의 말대로 스스로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소한 일을 소중한 특별함으로 느낄 수 있을 때 자신의 삶에 대한 존중은 깊어질 것이다. 


결코 완벽하지 않지만 너무나 특별한 운명과 사랑을 경험한 사람, 천국과 지옥을 수도 없이 오가며 스스로의 삶을 이뤄가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더는 미래를 두려워하며 살아가지 않는다. 그래 봐야 얼마 남지 않은 내 시간만 낭비하는 셈이니까... 때로는 어둠으로 들어가야 우리가 얼마나 빛나는지 알 수 있다. 사랑에 둘러싸여 있으면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유미에브리싱 #캐서린아이작 #마시멜로 #장편소설 #문화충전 #서평이벤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