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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과 오해
E, Crystal 지음 / 시코(C Co.) / 2020년 4월
평점 :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이 전부 사실일까요?"
"당신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숱한 비밀과 오해 때문에 나는 당신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듭니다."
<비밀과 오해>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질문과 답으로 이뤄지는 짧은 한 문장이다. 세주, 유주, 비주 세 자매가 서로에게 던진 질문일 수도 있고 그들을 둘러싼 세상을 향한 물음일 수도 있겠다. 저자 E.Ctystal의 장편소설 <비밀과 오해>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풀어가는 과정이다.

맏언니 세주의 형부가 됐어야할 남자가 결혼식을 앞두고 몸을 던져 자살한 지 5년이 지난 시점, 세 자매는 각자의 시각에서 '그 사건'의 해답을 찾아 나선다. 본의든 아니든 의문투성이인 '그 사건'에 대한 서로의 '비밀과 오해'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침 비주의 급성 충수염은 세 자매가 가진 비밀을 더 숨길 수 없도록 상황을 전개한다. <비밀과 오해>는 어느해 3월 19일부터 4월 5일까지 보름남짓 동안의 세 자매에 대한 기록이다.
세 자매의 비밀과 오해는 '그 사건'에서 비롯됐다. '그 사건'은 세 자매를 서로 무엇을 드러내고 숨겨야 하는 지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자매로 만들어 버렸다.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그 어떠한 것도 책임지지 않은 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스스로의 인생에서 도망쳐버린 남자. 그런 방식의 죽음은 남겨진 사람 모두에게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지옥을 선사한 것이다. 죽은 남자는 말했었다. 스스로 파놓은 구덩이에 빠져있다고. 그런데 빠져나올 방법을 모르겠다고.
서로에 대한 걱정과 불안, 염려까지도 감추는 데 급급했던 세 자매는 세주의 시어머니가 될뻔했던 여자의 등장으로 급격한 반전을 이룬다. 언제나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전부 별일 아닌 것처럼 지냈던 5년 동안의 '비밀과 오해'는 순간 막내 비주의 용기로 녹아내리게 된다. 그해 결혼 전날 밤 예비형부의 집에서 나오던 비주, 이를 발견한 유주, 그리고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 치는 남자를 목격한 세주. 각자가 가슴에 품었던 '비밀과 오해'가 어떠한 까닭이었는지 덤덤하게 그려진다.
"아무도 내겐 묻지 않았어요." 막내의 외침은 왜 사람들이 숱한 오해를 품으면서도 비밀을 간직할 수밖에 없는지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다.

또 세 자매 곁에 머물고 있는 세 남자에 관한 묘사는 <비밀과 오해>가 단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표현한다. 학원 강사로 일하는 세주, 작은 출판사 직원인 유주,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비주. 모델을 꿈꾸는 한참 연하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선한 마음을 가진 안정된 금융회사 직원, 한참 나이가 많은 이혼남 등 세 자매와 역설적으로 어울리는 세 남자가 가진 '비밀과 오해'도 책은 찬찬히 음미하게 만들어 준다.
엄마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먼저 떠나기전 40개의 발가락은 완벽한 가족이었다. 된장과 고추장을 진하게 풀어낸 찌개, 으깬 두부가 들어간 쑥갓 무침, 심심한 미역 줄거리 볶음, 달걀을 입힌 동그란 소시지 등 엄마에게서 비롯된 요리가 세 자매의 손끝에서 무심히 되살아나고 있듯 무지개 매니큐어를 바른 30개의 발가락이 허공을 향해 다시 꼼지락 거리는 마지막 장면이 무척이나 정겹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