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헌책방 -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에 관하여
다나카 미호 지음, 김영배 옮김 / 허클베리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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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초년병 시절 직장에 상당히 큰 규모의 도서관이 있었다. 외부 방문객은 서고에 들어가지 않고 검색대에서 찾은 책을 데스크에 신청하면 찾아서 대출해주는 시스템이었고, 직원은 내부에 들어가 원하는 책을 직접 고를 수 있었다. 지금도 같은 시스템인지는 모르겠으나 20여 년 전에는 그랬다. 간혹 바쁜 일과가 지나쳐갈 즈음, 혹은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도서관에 들러 서가에 꽂힌 책을 쭉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휴식으로 삼았던 적이 있었다.



다나카 미호(田中美穂)처럼 직접 행동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그 때 '도서관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책과 관련된 직업을 갖는다면 즐겁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문득문득 했던 것 같다. 학창 시절 '정신세계사'에서 출간한 책-기(氣), 상고사, 명상 등-의 매력에 빠져 가까운 전문 서점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적도 있었다. 당시에도 '이런 책방, 나만의 책방이 있으면 좋겠다'고 여겼던 것 같다. 꽤 시간이 흐른 지금 다나카 미호의 <나의 작은 헌책방(わたしの小さな古本屋)>에 남다른 끌림이 있었던 이유를 굳이 찾아보니 그렇다.


<나의 작은 헌책방>은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소중한 메시지를 전한다. 직업보다 직장에 더욱 관심이 많은 요즘, 성취보다 연봉에 더욱 신경쓸 수밖에 없는 환경에 살아가면서 '내가 즐거운 일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를 만들어 준다. 다나카 미호의 용단과 도전이 멋지게 보일 수도, 무모해 보일 수도 있겠다. 어느 쪽이든 스스로에게 충분히 던져볼 가치가 있는 질문을 책은 대신 알려준다.



스물 한 살 저자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그날, 헌책방을 차리기로 결심했다. 말도 안되는 예산을 들고 부동산 중개소와 인테리어 공장을 발로 뛰며 '스스로 원하는 공간'을 만들어 낸다. 단돈 100만 엔으로 아무 경험도 없던 그녀가 20년 간 이뤄낸 자취는 벤처기업의 성공신화나 벼락부자가 된 주식 투자자들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작지만 소중한 일터를 만들고, 그곳을 소중히 여기며 찾는 사람들을 맞고, 그 공간에서 더욱 즐거운 일과 삶을 가꿔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반갑다.


왠지 글자 모양이 마음에 들어 만든 책방 이름은 '벌레문고(蟲文庫)'. 특별히 깊은 뜻은 없었지만, 지나고 보니 대부분 금방 기억해주는 이름이 됐다. 일본 오카야마(岡山) 구라사키(倉敷)의 '미관지구'라고 불리는 옛 거리에 위치한 벌레문고는 작은 관광지를 찾는 이들이 '읽기 위한 책'을, '추억이 깃든 책'을 발견하는 명소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나의 작은 헌책방>은 서점을 내기 위한 입문서라기 보다 '자기 일'을 찾아냈고, 만들어 가는 청년의 일기처럼 읽힌다. 문득 생각한 헌책방 운영을 시작하면서 두 마리의 고양이와의 감상, 오로지 서점을 위해 기념품을 만들고, 음악회를 열어가는 과정이 수수하게 그려졌다. 벌레문고를 찾는 손님과의 애틋한 인연도 귀하게 다뤄진다. 저자는 서점 사장님이기도 하지만, '이끼 연구가'로도 알려져 있다.


"이끼는 몇 억 년 전 옛날부터 거의 모습을 바꾸지 않고 지금도 이렇게 우리 주위에 당당하게 피어 있는 것입니다. (이끼는) 겸손하게 독자적인 새로운 생활 환경을 만들어 냈습니다."


저자가 몇 번을 읽어도 가슴 뭉클해지는 말이라고 한다. 그녀가 말하는 이끼와 헌책방은 교묘히 닮아 있다. 인터넷 시대에 어쩌면 낡아빠진 유물같은 '헌책방'이 당당하게 피어나고, 겸손하고 독자적인 환경을 만들어 내는 모습이 정겹다. 아날로그 감성이라 치부하기에는 더욱 거창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다.



<나의 작은 헌책방>을 집필한 본래 의도는 진로나 창업 노하우를 전하는 이미지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창업 노하우를 알려줄 수 있을 만한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헌책방을 열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면서 "결과적으로 '이런 사례도 있었습니다'라는 책이 됐다"고 문고판 후기에서 고백한다.


"이런 헌책방에 미래가 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른다. 그래도 꽤 즐거운 직업이라고 생각한다"는 다나카 미호의 무덤덤한 말이 부럽다. 이 역시 이끼와 비슷하지 않을까.(*)


* 리뷰어스클럽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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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요테의 놀라운 여행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13
댄 거마인하트 지음, 이나경 옮김 / 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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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데오와 코요테가 노란 바탕의 스쿨버스에 몸을 싣고 미국 전역을 달린다. 그들이 가진 여행의 목적은 불행하게도 없다. 스스로를 버리기 위해, 혹은 스스로를 찾기 위한 여정 속에서 아빠와 딸은 '2003년형 인터내셔널 3800' 버스 안 가장 편안하고 은밀한 자리를 읽는이에게 내준다. 마음껏 웃고 울도록 말이다.


코요테 선라이즈와 로데오는 서로를 '아빠'와 '딸'로 부르지 않는다. 그저 로데오와 코요테가 있을 뿐이다. 가족을 잃은 과거를 돌아보지 않기 위해 스쿨버스를 집 삼아 떠돈다. 고향에 '아빠'와 '딸'을 두고 그렇게 로데오와 코요테가 만들어가는 <코요테의 놀라운 여행>은 시작됐다. 슬픔이 너무 많은 세상으로부터 탈출,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끼리 고속도로와 주유소에 선을 긋는다.


벌써 5년 째. 자매와 엄마가 없는 동생이자 언니, 그리고 딸인 코요테는 늘상 외롭다. 그러나 로데오의 본심을 알기에 코요테는 최선을 다해 여행에 동참한다. 주유소에서 우연히 만난 꼬마들에게 슬러시와 바꾼 고양이 '아이반'의 승차를 시작으로 <코요테의 놀라운 여행>은 새로운 의미를 알린다. 설탕처럼 달콤하고 무언극처럼 조용한 이 녀석은 코요테와도 닮아 있다.


매주 토요일 태평양 표준시로 정오에 가져온 할머니와의 전화 통화는 플로리다에 있던 예거-로데오와 코요테의 버스 이름-를 그들의 집과 추억이 있는 포플린 스프링스로 부른다. 엄마와 언니, 동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코요테의 좌충우돌 모험이 즐겁고도 슬프다. 과거를 돌아보지 않기로 한 약속, 그 과거를 뛰어넘어야 하는 또 하나의 약속이 코요테와 로데오 사이에 팽팽하게 흘러 간다.


예쁜 새, 설탕빵, 귀염둥이, 몽키 파이, 설탕자두, 데이지, 곰돌이, 벌새, 아기새, 나비..블루베리, 설탕자두...


로데오가 코요테를 부르는 애칭은 다양하다. 댄 거마인하트의 <코요테의 놀라운 여행>은 서로가 '아빠'와 '딸',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치유에 대한 기록으로도 읽힌다. 코요테에게는 아빠가, 로데오에게는 딸 엘라가 존재함을 다시 확인해가는 과정이다. 무엇으로 불리던 변하지 않는 가치는 그들을 다시 한 곳으로 불러 모은다. "내 이름을 불러줘." 힘겹게 말하는 코요테의 간절함이 진한 감동을 준다.


"레스터, 태미를 사랑하는 이유가 뭐야?"

"태미는 웃는 게 굉장해. 거의 늘 밝아."

"그건 아무나 태미를 사랑할 이유밖에 안 되잖아요."

"그럼 너는?"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로데오는 망가져버릴테니까."


서로를 사랑하지만, 합쳐질 수 없었던 옛 연인 태미를 찾아가는 레스터와 코요테의 대화는 흔하디 흔한 '사랑하는 이유'에 대한 생각을 고쳐준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유는 자신만의 것이어야함을 코요테는 가르친다. 피할 수도, 맞설 수도 없는 이유를 코요테는 상실과 이별을 통해 배웠다. 뭔가를 잃어버리면 그걸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로데오, 코요테와 함께 미국 대륙을 횡단하다보면 어느덧 목적지가 아니라, 또 다른 출발점에 다다랐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즈음 로데오와 코요테, 우리는 알게 된다. 뭔가를 향해 달려가는 건 뭔가로부터 달려가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그것도 훨씬.(*)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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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개정판
김훈 지음 / 푸른숲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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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알지만, 사람은 알지 못한다. 발바닥에 박힌 굳은살, 코 옆에 난 가느다란 수염이 느끼는 땅과 바람, 사람의 냄새와 소리를. 그래서 개는 짖는다. 사람은 알지만, 개는 알지 못한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딜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인지. 그래서 사람은 운다. 그래서 사람은 운다. 사람이나 개나 그 삶은 슬프고 아름답다.


김훈의 <개>가 16년 만에 개정판이 나왔다. 작가는 "큰 낱말을 작은 것으로 바꾸고, 들뜬 기운을 걷어내고, 거칠게 몰아가는 흐름을 가라앉혔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개정판 <개>에서 주인공 '보리'의 삶은, '보리'가 바라본 세상은 아지랑이 피어나듯 더욱 잔잔하게 스며든다. 



보리는 수몰지역에서 태어난 진돗개 수컷이다. 고깃덩어리보다 할머니가 지어준 보리밥을 더 잘먹어서 보리다. 책은 '보리의 사랑과 희망과 싸움'에 관한 이야기다. 보리는 스스로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개의 고통과 슬픔, 개로 태어나 살아가는 기쁨과 자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끝내 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지라도.


"말은 온 세상에 넘친다. 개는 그 말을 알아듣는데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사람들은 오직 제 말만을 해대고, 그나마도 못 알아들어서 지지고 볶으며 싸움판을 벌인다. 늘 그러하니, 사람 곁에서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개의 고통은 크고 슬픔은 깊다."



엄마의 젖꼭지를 서로 차지하느라 형제들끼리 밀쳐내고 올라타면서 버둥거리던 싸움을 통해 세상의 첫 공부를 마친 보리는 스스로의 몸뚱이를 비벼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배우게 된다. 태어나면서 다리가 부러져 제 젖도 먹지 못하고 사그러져가는 첫째를 삼킨 엄마. 그 엄마가 새끼들을 떠나가는 모습 속에서 보리는 개의 숙명을 제대로 이해한다.


고향을 떠나-사실 개에게 고향은 의미가 없다-바닷가 새 주인을 섬기게 된 보리. 마을의 냄새를 맡고 새 가족의 냄새를 살피고 지켜준다. 흰순이의 고단함을, 악돌이의 포악함을 회피하지 않고 보리는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 사람들이 터전을 떠나가고, 터전이 사람들을 밀어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보리는 말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눈치가 모자란다. 사람들에게 개의 눈치를 봐달라는 말이 아니다. 사람들끼리의 눈치라도 잘 살피라는 말이다."



다시 만난 할머니와의 마지막 날을 대비하는 보리는 짖을 때와 짖지 않을 때를 구분한다. 길게 짖는 보리의 소리는 사람을 향해, 그들의 삶과 터전을 향한 것이다. '우우, 우우우, 우우우우'라고.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보리가 있다. 진돗개 보리가 길게 짖는 소리에, 보리가 디디는 발바닥 굳은살에 우리의 감각을 집중해야하는 까닭이다.


<개>의 작가 김훈은 초판 서문에서 "세상의 개들을 대신해서 짖기로 했다"며 "짖고 또 짖어서, 세상은 고통 속에서 여전히 눈부시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고 했다. 사람이 사람의 아름다움을 알게 될 때까지.(*)


*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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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여행사 히라이스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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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패키지 해외여행을 가듯 비용만 지불하면 자신이 원하는 장소와 시간을 여행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면 우리는 언제, 어느 곳을 찾아 떠나게 될까. 고호의 <과거여행사 히라이스>는 이같은 상상에서 출발한 11개의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행복했던 추억을 되새기러, 불행한 미래를 돌려놓기 위해, 꼭 한번 다시 보고싶은 이를 찾아, 혹은 역사적 순간을 함께 하기 위해 등. 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한 이유를 지닌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과거여행사의 이름 히라이스(Hiraeth).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뜻하는 웨일스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도저히 돌아갈 수 없기에 더욱 간절한 그때, 그곳이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 <과거여행사 히라이스>는 이같은 고객의 꿈을 간단히 풀어준다. 금전적 이익을 위해 정보를 흘리거나, 죽은 자를 살리는 등 시대적 오류를 일으키는 행위를 금지하는 '시간법'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돈만 내면 그렇다. 


"왜 사람들이 '현재'를 아무렇게 흘려보내는지 알 것 같군. 그건 바로 누리고 있는 순간순간이 언젠간 과거가 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잃어버린 동생의 복수를 위해 과거를 찾는 '해피 크리스마스', 미라로 발견된 두 여인의 기구한 사연을 밝히기 위한 여행 '선춘옥뎐', 분단의 거리만큼이나 멀었던 시간의 거리를 지닌 이산가족 상봉의 뒷이야기 '시간의 거리'와 '네 아버지의 이야기' 등 여행자들이 과거여행사 히라이스를 찾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그 남자를 만나면서 내 인생은 꼬였다." 엄마의 일기장을 본 딸은 지금의 자신보다 어렸을 엄마와 아빠의 첫 만남을 막기 위해 나서는 독특한 에피소드가 '고의적 실수'편에 이어진다. 이삼십대 여성을 상대로 젊은 시절 엄마를 만난다면 하고픈 말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꿈을 포기하지마', '늦게 결혼해도 돼', '삼성전자 주식부터 사' 등을 제친 압도적 1위는 '절대 아빠랑 결혼하지 마!'라니.


일제시대 당시 첩의 딸로 태어난 '개년'이라는 이름을 가진 할머니의 여행은 힘든 세월만큼 주름졌을 손을 맞잡아 주고플 정도의 아프다. 1935년 갖은 구박을 받는 '어린 개년'을 만나고, 1944년 첫사랑의 배신을 알게 되고, 1973년 일본으로 건너가 정을 나눴던 고마운 인연에게 인사하는 여정을 거치는 할머니의 모습은 참으로 뭉클하다. 마치 영화 <타이타닉>을 재구성해보는 듯한 '시한부 소녀의 모험'편도 이채롭다.


<과거여행사 히라이스>는 과거여행이라는 상품을 고객에게 판매하려는데 집중하는 서울지부의 캡틴, 그리고 여행자를 돕는 세일러의 시각에서 펼쳐진다. 그들이 던지는 충고는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평가하지 말라. 과거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을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라는 의미를, 특히 '현재'의 소중함을 잊지말라는 뜻을 담았을 것이다.(*)



*문화충전 200%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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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티 씽 - 반짝이는 것은 위험하다
자넬 브라운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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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바닥에서 두 눈을 부릅뜬 채 머리카락을 너울거리며 흘러 다니다가 서로 부딪치곤 하는 시체들에 관한 이야기가 잠든 타호호수. 그리고 웅장한 대저택 스톤헤이븐에 관한 이야기다. 자넬 브라운의 <프리티 씽>. 폭력적인 아빠를 인생에서 일찍 내쫓아버리고 엄마와 함께 바닥의 하루를 떠돌던 니나는 이곳에서 첫사랑을 만나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꿈꾸지만, 대부호 '리블링'가에 의해 산산이 깨져 버린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엄마의 암, 궁핍한 환경을 벗어날 수 없었던 니나는 누군가 뭔가를 훔쳐가도 신경도 쓰지 않을 부자들만 골라 사기와 절도를 이어간다. 엄마 릴리는 늘 기차여행하는 사람처럼 살았고, 다음에 내릴 정거장은 멋질 것이라 기대해왔지만 암이라는 선고는 지금 거기가 종착역일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또 한 명의 여자 바네사. 리블링가의 장녀로 자신의 보조개와 미소, 수표로 해결하지 못할 일이 아무 것도 없는 풍족한 인생을 살아왔다. 걸치지도 않을 명품을 수복이 쌓아두고, 수백만 달러의 자금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려도 아쉬움이 없었던 그녀지만 부모의 연이은 죽음으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인생을 시작한다.


니나와 바네사. 항상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며 사기 행각을 벌여오던 니나, SNS에 빠져 남에게 보이기 위한 인생을 살던 바네사. 두 여자는 '가짜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장소로 스톤헤이븐을 선택하고, 각자의 욕망과 가족의 진실을 위해 서로를 내던진다.




"괴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갓 태어난 아이는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어중간한 사람이 될 수도 있는 잠재력이 있지 않을까. 그러다가 인생이, 환경이, 이미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던 성향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나쁜 행동이 보상을 받고, 약점이 처벌받지 않을 때, 우리가 절대 달성할 수 없는 이상을 갈망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점점 더 비통해하면서 괴물이 되어 가는 거다. 우리는 세상을 보고 세상 안에서 우리의 위치를 측정하면서 점점 한 위치에 갇히게 되는 거다. 그러는 동안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괴물이 된다."


<프리티 씽>은 니나와 바네사의 시각이 교차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곤궁했던 니나의 삶과 고백, 바네사의 풍족한 삶이 변화하는 배경, 그리고 두 여자가 스톤헤이븐에서 '진짜'를 숨겨둔 채 다시 만나게 되는 과정이 숨가쁘게 전개된다. 서로의 오해와 분노, 욕망, 질투는 두 여자가 가면을 벗게 되는 순간까지 진행된다. 


간신히 1퍼센트로 살아가는 방법을, 절대로 살아갈 수 없는 1퍼센트의 삶의 방식을 알게 되지만 절대 그 속으로 올라갈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는 니나의 모습은 기회마저 불공정한 우리 사회와 닮아 있다. 마치 브로드웨이 극장 맨 앞줄에 앉아 무대 위에서 펼쳐지고 있는 연극에 동참하고 싶다는 마음을 간절히 품지만 결국에는 무대 위로 올라갈 계단이 없음을 깨닫는 일과 같다.




"그 누구도 우리 내면을 들여다봐서는 안되고 우리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서는 안돼. 바깥에는 우리가 약하다는 징후를 보이기만을 기다리는 늑대들이 우글거린다고". 아빠가 남긴 교훈은 바네사를 더욱 옭아매는 구속이자, 그녀가 거짓의 삶을 벗어던질 계기가 된다. 화려한 상속녀 바네사가 가진 내면의 어두움은 니나의 절망과도 닿아 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인생을 지배하는 자와 인생에 지배 당하는 자의 이분법으로 시작됐던 <프리티 씽>은 애증관계에 놓인 니나와 바네사의 치열한 내면의 변화와 함께 반전을 거듭한다."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갖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것을 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달라이 라마의 말은 <프리티 씽>의 결말에 이르기까지 공허하게 떠돈다. 어디서 시작됐건 무심코 '괴물'이 되어가고, 한편으로는 '괴물'에게서 벗어나려는 갈망은 우리의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반짝이는 것은 위험하다.(*)


* 문화충전 200%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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