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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 2021 개정판
김훈 지음 / 푸른숲 / 2021년 4월
평점 :
개는 알지만, 사람은 알지 못한다. 발바닥에 박힌 굳은살, 코 옆에 난 가느다란 수염이 느끼는 땅과 바람, 사람의 냄새와 소리를. 그래서 개는 짖는다. 사람은 알지만, 개는 알지 못한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딜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인지. 그래서 사람은 운다. 그래서 사람은 운다. 사람이나 개나 그 삶은 슬프고 아름답다.
김훈의 <개>가 16년 만에 개정판이 나왔다. 작가는 "큰 낱말을 작은 것으로 바꾸고, 들뜬 기운을 걷어내고, 거칠게 몰아가는 흐름을 가라앉혔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개정판 <개>에서 주인공 '보리'의 삶은, '보리'가 바라본 세상은 아지랑이 피어나듯 더욱 잔잔하게 스며든다.

보리는 수몰지역에서 태어난 진돗개 수컷이다. 고깃덩어리보다 할머니가 지어준 보리밥을 더 잘먹어서 보리다. 책은 '보리의 사랑과 희망과 싸움'에 관한 이야기다. 보리는 스스로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개의 고통과 슬픔, 개로 태어나 살아가는 기쁨과 자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끝내 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지라도.
"말은 온 세상에 넘친다. 개는 그 말을 알아듣는데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사람들은 오직 제 말만을 해대고, 그나마도 못 알아들어서 지지고 볶으며 싸움판을 벌인다. 늘 그러하니, 사람 곁에서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개의 고통은 크고 슬픔은 깊다."

엄마의 젖꼭지를 서로 차지하느라 형제들끼리 밀쳐내고 올라타면서 버둥거리던 싸움을 통해 세상의 첫 공부를 마친 보리는 스스로의 몸뚱이를 비벼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배우게 된다. 태어나면서 다리가 부러져 제 젖도 먹지 못하고 사그러져가는 첫째를 삼킨 엄마. 그 엄마가 새끼들을 떠나가는 모습 속에서 보리는 개의 숙명을 제대로 이해한다.
고향을 떠나-사실 개에게 고향은 의미가 없다-바닷가 새 주인을 섬기게 된 보리. 마을의 냄새를 맡고 새 가족의 냄새를 살피고 지켜준다. 흰순이의 고단함을, 악돌이의 포악함을 회피하지 않고 보리는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 사람들이 터전을 떠나가고, 터전이 사람들을 밀어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보리는 말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눈치가 모자란다. 사람들에게 개의 눈치를 봐달라는 말이 아니다. 사람들끼리의 눈치라도 잘 살피라는 말이다."

다시 만난 할머니와의 마지막 날을 대비하는 보리는 짖을 때와 짖지 않을 때를 구분한다. 길게 짖는 보리의 소리는 사람을 향해, 그들의 삶과 터전을 향한 것이다. '우우, 우우우, 우우우우'라고.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보리가 있다. 진돗개 보리가 길게 짖는 소리에, 보리가 디디는 발바닥 굳은살에 우리의 감각을 집중해야하는 까닭이다.
<개>의 작가 김훈은 초판 서문에서 "세상의 개들을 대신해서 짖기로 했다"며 "짖고 또 짖어서, 세상은 고통 속에서 여전히 눈부시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고 했다. 사람이 사람의 아름다움을 알게 될 때까지.(*)
*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