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영혼의 이용
마쓰다 아오코 지음, 권서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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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臺) 여행 중에 있었던 일이다. 센다이는 토호쿠(東北) 지방 대표 도시지만 그보다 지진이나 쓰나미 피해로 더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주변 온천을 즐기는 재미가 있어 아키우(秋保) 온천 마을을 찾기로 하고 아침 일찍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라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한 명 앞에 있었고, 서서히 뒤로 직장인이나 학생들이 줄지어 가는 정도. 한 학생이 종종 걸음으로 내 옆을 지나며 잠시 목례하더니 앞에 서있던 학생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여느 학생들처럼 서로 손바닥을 마주치더니, 소곤소곤 수다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새치기한 거 아냐?'잠깐 들었을 뿐 워낙에 작은 목소리로 얘기한데다 어린 학생들이라 별 생각을 갖지 않았다.


어느새 길게 늘어난 줄이 타야할 버스가 다가오는 순간 감탄할 일이 벌어졌다. 뒤에 나타났던 학생이 나를 향해 고개 숙여 "죄송합니다"라고 인사를 하더니 줄의 맨 뒤로 달려 가는 것이었다. 잠시 '새치기'를 의심했던 순간이 미안할 만큼의 행동이었다. 작은 목소리로 친구와 대화하는 모습부터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않겠다는 몸에 벤 행동이 '미담'으로만 느껴졌었다.


그런데 마쓰다 아오코(松田青子)에겐 달랐던가 보다. 그는 일본 여성이 처한 환경, 관습, 제도가 외부의 시선과는 큰 차이를 둔 채 '사라져버려야할' 문제로 인식했다. 교복, 아이돌, 스턴건 등을 소재로 다룬 <지속가능한 영혼의 이용(持續可能な魂の利用)>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앞으로 소녀와 '아저씨'의 생활권을 철저하게 분리한다."


'받드는 아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게이코(敬子). 어느덧 중년의 그녀는 남자 '아저씨'로부터 큰 상처를 받고 비정규직이던 직장마저 잃었다. 한 달간의 해외생활에서 보아온 외국의 여자아이들과 확연히 다른 일본의 여자아이들에게서 느끼는 이질감. 게이코의 눈에는 '사랑스러우면서도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을 것만 같은 목소리를 내는 최약체'로 일본의 여학생이 보여진다. 무엇보다 작은 목소리의 아주 연약한 생명체. '이래서는 일본 여자아이들이 지고 말 거야'라는 생각까지.


그러던 게이코가 한 여자아이돌의 매력에 빠져든다. XX라고 불리는 그녀는 그룹의 '센터'다. 부조리한 사회나 사회적 압력에 저항하는 힘을 노래하는 XX. 아이돌 같지 않은 노래를 부르고, 이이돌 같지 않은 춤을 추고, 아이돌 같지 않은 의상을 입은, 웃지 않는 아이돌은, 웃지 않는 XX가 게이코에겐 멋있었다.


책은 일본의 여자 아이돌이 가진 선천적인 조건이 '아저씨'들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함을 강조한다. '아저씨'를 위한 아이돌이라. 우리나라의 많은 독자들은 거부감을 느낄만도 한 가정이지만 게이코는 심각하다. 훓듯이 쳐다보는 시선, 호시탐탐 접근할 기회를 노리는 커다란 몸, 불쑥불쑥 내뱉는 음란한 말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 있는 범죄를 저질 가능성까지 지닌 '아저씨'를 향한 분노와 혐오가 가득하다.


'명백히 교복은 상대를 무시해도 된다. 건드려도 된다는 표식이었다.'고 인식하는 게이코에게 그만큼의 이질감을 느끼지만 피해자의 입장을 '일반화의 오류'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을 터. <지속가능한 영혼의 이용>에 좀 더 귀기울여 보자. 학교, 직장, 어딜 가나 있는 '아저씨'는 그들에게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강한 존재로 여겨졌을 것이다. 때문에 '철저하게 분리'된 날을 기억하는 것은 게이코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영혼은 닳는다. 영혼은 지치고, 영혼은 닳는다. 영혼은 영원히 충만하게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니다. 불합리한 일을 겪거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영혼은 닳는다. 영혼은 살아 있으면 닳는다. 그래서 우리는 영혼을 오래 지속시키며 살아가야 한다." 핑크 스턴건을 지니고 살 수밖에 없는 아이돌 출신의 아유무, 그리고 게이코가 영혼을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에 우리가 관심을 둬야하는 이유다. 누구의 영혼이건 서서히 지치고 닳아가기 때문에.(*)


* 문화충전 200%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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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섬 민박집의 대소동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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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체야?"

"또 고양이섬?"


직경 500m가 안 되는 조그마한 섬에서 기이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이곳은 사와타리지마(砂渡島), 통칭 고양이섬이다. 마을 주민이래야 고작 서른 명 안팎이고, 사람보다 고양이가 훨씬 많이 산다. 지나치게. 주위가 절벽이고 모래사장도 거의 없다. 2차 대전 와중에야 겨우 담수가 나오는 우물을 파게 됐다는 섬. 그 전에는 밤에 고양이만 남는 무인도였다.


와카다케 나나미(若竹七海)의 <고양이섬 민박집의 대소동(猫島ハウスの騒動)>에 붙여진 장르는 '일상 미스터리'란다. 정치권이나 기업, 국가간 벌어지는 거대한 음모가 담긴 미스터리가 아닌, 보통의 소소한 일상을 이어가는 사람사는 이야기 중에 벌어지는 사건이라는 뜻이라 짐작된다.


이 작은 섬에는 고양이섬 신사, 고양이를 테마로 하는 각종 선물가게, 역시나 낡은 민박집, 카페 등 관광 수입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주인공 교코는 방학을 맞아 할머니를 도와 '고양이섬 민박집'을 운영한다. 열 일곱 미소녀 교코가 똑부러지게 민박집 1층 선물가게를 도맡던 중 평화롭던 섬에 기이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고양이섬 민박집의 대소동>이 벌어진다.


칼에 찔린 고양이 인형이 발견되면서 고마지 형사반장의 날카로운 추리력이 발동된다. 단지 인형이라 하더라도 '고양이 신사'와 '고양이 부적'을 판매하는 고양이 천국 '고양이섬'에서는 엄청난 사건일 수밖에. 그러나 절벽에서 날아온 남자와 마린바이크를 탄 바다족-육지의 폭주족에 대비되는 말이라고- 일원이 부딪혀 함께 사망하는 황당한 일이 터지면서 18년 전 일어났던 전설의 사건마저 소환된다.


교코의 작은 할아버지가 포함된 강도단이 벌인 '간토은행 삼억 엔 사건'이다. 모든 가담자는 탈주 중 사망하고, 훔친 돈마저 함께 태워 없어진 것으로 알려진 사건. 유일한 생존자인 교코의 작은 할아버지는 형무소에서 생을 마쳤지만, 사라진 삼억 엔에 대한 사람들의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 스스로 집을 지어 새로운 터전을 가꾸고자 하는 사람, 기발한 고양이 소품을 만들어 매상을 올리려는 사람, 성인소설을 번역하며 나이들어가는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 은행을 그만두고 고양이섬에 정착한 부부 등 소박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고양이섬 민박집의 대소동>에 함께 묻어 난다.


너무나 작은 공동체, 긴밀한 인간관계, 서로 돕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삶을 이어가는 섬 사람들. 그들은 그들보다 몇 배나 많은 고양이들과 더불어 공생한다. 몸집부터 성격, 출신, 털 색깔까지 각양각색의 고양이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먹이를 주면서.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 이 사람 누구지?" 그런 섬에서 벌어진 대형 사건 속에서 교코의 머리를 때리는 섬칫한 생각. 오랜 시간, 아주 가까이 있어 왔던 사람이지만, 그에게서 스쳐가듯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장면은 오싹한 분위기마저 연출한다.


'고양이의 보은', '고양이의 저주'가 육지사람에게는 그저 이야기꺼리일 뿐이지만, 이곳 고양이섬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필연적으로 함께 살아가는 처지기도 하고, 알면 알수록 고양이의 신비한 능력은 이미 마을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있기 때문일터. 고양이섬 파출소에 나와 있는 나나세 순경의 대활약-본인은 모르지만-과 수시로 터지는 우스꽝스러운 실수역시 <고양이섬 민박집의 대소동>이 가진 매력이다.


책에서 유독 눈길을 끌었던 것은 바로 고양이섬의 음식이다. 일본 여행에서 골목골목 맛집을 경험하는 재미, 료칸같은 곳에서 내놓는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요리가 떠오른다. 한 번 상상해보자. 아침에 잡은 신선한 전갱이를 올리브오일로 구워내고, 하자키 토종닭 사육장에서 방금 보트로 배달된 채소로 만든  라따뚜이와 샐러드, 그리고 고양이섬 유일한 베이커리인 '체셔캐츠 치즈'의 갓 구운 빵과 커피라니 무척이나 궁금하지 않은가. 


고양이섬 민박집의 메인 요리라는 하자키 목장의 특제 안심 스테이크, 콩을 넣은 버터 라이스, 고양이섬 근해에서 잡은 신선한 생선과 아보카도 소스는 또 어떨지. 소프트크림을 접시에 올려놓고 냉동과일과 고양이 모양 쿠키로 장식한 다음 초콜릿 소스로 고양이 얼굴을 그려넣은 '고양이 아이스'도 마찬가지고. <고양이섬 민박집의 대소동>내내 등장인물들의 찬사를 받는 음식, '고양이섬 덮밥'이야말로 꼭 맛보고 싶을 지경이다.


"문제는 인간이란 생물은 너무 멍청해서 고양이의 말을 알아들을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고양이의 탄식. 연이어 터지는 사건은 책 전반을 통해 교묘하게 엮여있다는 사실을 독자는 발견하게 된다. 고양이와 사람, 나와 이웃, 어제와 오늘이 얽히고 섥혀 있어 반전을 거듭한다. 역시나 놀라운 진실은 고양이의 눈을 통해서만 발견되니, 독특한 재미를 주는 책 <고양이섬 민박집의 대소동>이다.(*)


*문화충전 200%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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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브랜든 1~2 세트 - 전2권 사람 3부작
d몬 지음 / 푸른숲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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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든, 올미어, 라키모아의 대화와 생각에서 우리는 ‘인간의 정의는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의 조건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브랜든>은 거듭 묻는다. ˝당신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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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브랜든 1~2 세트 - 전2권 사람 3부작
d몬 지음 / 푸른숲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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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스스로를 '사람'이라 증명할 수 있는가."


브랜든은 우연히 다른 세계-혹은 지구-로 이동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으로부터 브랜든은 '사람이 아닌' 존재로 인식되고, 브랜든은 스스로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d몬의 <브랜든>은 '사람이란 무엇인가', 그 이전에 '당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또 다른 세계에서 만난 '사람'은 우리 사람과는 외관, 사고, 의사소통, 감정 등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여 준다. 구형 머리와 간단한 뼈대만 지닌 기계와도 닮은 그 사람은 '올미어'라고 불린다. 올미어는 브랜든에게 말한다. "'사람(올미어)'는 '사람'이 아닌 생물의 감정과 연결에 따른 의사소통의 유무를 자유롭게 조종할 수 있다"며 "내 기준의 '사람'에 충족하지 못한다"고 결론 내린다. 황당할 수밖에 없는 브랜든에게 되묻는 올미어. "그렇다면 무엇으로 스스로를 '사람'이라 증명할 수 있는가."


"'브랜든'이라는 개체 발견.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생물체. 스스로를 '사람이라고 주장하나 근거없음."


올미어는 자신의 종족의 안전을 위해 새롭게 발견한 생물체인 브랜든에 관한 관찰을 시작한다.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을 가진 올미어에게는 기쁨, 슬픔, 외로움 등이 필요없다. 단지 존재하는 개념은 '사회'라는 것.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생물체에 대한 올미어의 관찰은 점차 브랜든과의 상호 작용으로 발전한다.


<브랜든>에 침팬지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태어날 때부터 사람과 함께 생활하면서 스스로 '사람'으로 여기고 있던 침팬지가 텔레비전 속 성난 침팬지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리모컨을 던져 화면을 깨버린다. 극도로 우울해진 침팬지를 두고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부순 것에 겁이 났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작 침팬지는 텔레비전 속 침팬지-사람으로 인식하는-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이 이야기에서 침팬지는 명백히 '사람'이 아니며,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다. 다만 사회가 규정해주는 사실과 개인의 생각 중 어느 것이 본질에 가까이 있는 것인지 의문을 던질 뿐이다. 


브랜든은 차원의 문을 통해, 올미어의 능력에 의해 여러 지구를 방문하게 되고, '라키모아'라는 종족-그들도 거기선 '사람'이다-이 존재하는 지구에도 머물며 '함께 존재하는 법'을 실천한다. 올미어와의 첫번째 만남 이후 다시 자신의 지구로 돌아온 브랜든이 '공간이동 연구'에 정진했다는 사실이 슬쩍 드러난다. 브랜든 역시 여러 지구에 대해, 여러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올미어로부터 '사람'이 아닌 '벌레'와도 같은 취급을 받던 브렌든은 라키모아의 지구에서는 '신'과 '사람'의 중간자, 즉 '대리인'으로 인정받는다. "신 따위는 없어. 오직 사람만이 있지"라고 되뇌이는 브랜든. 그는 올미어의 '계승'을 인정하고, 라키모아의 어린 '생명'을 존중하게 된다. 여러 차례 지구와 다른 지구를 오간 브랜든은 "스스로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거야"라며 본능을 말한다.


브랜든, 올미어, 라키모아의 대화와 생각에서 우리는 '인간의 정의는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의 조건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브랜든>은 거듭 묻는다. "당신은 무엇입니까."(*)


* 리뷰어스클럽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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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아파트먼트 - 팬데믹을 추억하며
마시모 그라멜리니 지음, 이현경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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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0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어느 곳에서 이제 노인이 되어버린 마티아는 팬데믹을 기억하며 글을 전한다.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끔찍하게 싫어하던 누군가와 함께 아파트에 격리됐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코로나가 유행하던 그 때 마티아는 아홉 살 어린아이였다.


마시모 그라멜리니의 <이태리 아파트먼트>는 마치 논픽션처럼 읽힌다. 현재 우리가 직접 겪었거나 겪고 있는 일, 텔레비전 뉴스와 신문 지상에서 경험하는 이웃의 이야기가 어린 아이의 시각에서 부담없이 서술된다. 우리도 언젠가 코로나를 추억할 순간이 온다면 <이태리 아파트먼트>와 비슷한 감상을 내비치지 않을까 싶다.


"결국엔 다 괜찮아 질 거야. 괜찮지 않으면 아직 끝이 아닌 거야(Everthing will be okay in the end. If it's not okay, it's not the end)"


책은 존 레논이 남긴 문구에서 시작된다. 등교제한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며, 친구들로부터 튀어나온 이때문에 토끼라고 놀림받지 않는다는 생각에 '자유로와질 것'이라고 여겼던 마티아. 그러나 금세 '이름과 성이 몹시 짜증나는 바이러스'가 자신에게 오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코로나는 아이스크림 가게 문을 닫게 했고, 아파트 마당에서 뛰어놀 수 없게 했으며, 엄마와 누나의 따뜻한 포옹도 하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재판소 폐쇄로 엄마는 두번째 남편이자 마티아의 아빠와의 이혼마저 연기됐고, 마티아는 이름조차 부르고 싶지 않았던 아빠와의 동거가 기다리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정부는 방역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오늘 거리두기를 유지하면 내일 더 힘껏 포옹할 수 있습니다." 엄마, 누나와의 따스한 포옹의 기회마저 바이러스가 가져가버린 현실. 엄마는 손씻기와 비접촉을 과할 정도로 강조하고 있다.


"그럼 내일 우리가 포옹할 수 있어?"

"마티아, 저건 일반적인 내일을 말해. 일주일 후일 수도 있고, 한 달, 일 년 뒤일 수도 있어."


누나의 지적은 옳았다. 얼마지나지 않아 텔레비전에서는 '봉쇄'라는 단어를 무서운 음의 외국어를 사용해서 '록다운(lockdown)'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젬마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한 층만 올라가는 일마저도 누군가 금지해버렸다. 아홉 살 마티아 의사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듯 <이태리 아파트먼트>는 우리와 멀지 않은 일상을 그대로 그리고 있다. 격리된 마티아와 가족이 생활하는 아파트의 관리사무실, 주방, 발코니, 차고, 마당, 엘리베이터 등에서 코로나 시기에 벌어지는 에피소드와 감상을 담았다. 사람들이 발코니에서 소통하고, 누군가는 '네순 도르마(Nessun dorma)'를 열창한다. "새벽이 되면 승리하리라"는 가사에 이웃들은 박수를 보내지만, 그 노래 소리도 점차 줄어든다.


<이태리 아파트먼트>는 특히 가족의 중요성, 코로나로 인한 가족의 재구성을 다뤘다. 아빠가 다른 누나와 마티아는 서로 '등을 맞대는' 동지임을 끊임없이 확인하며 '록다운'을 이겨내고, 새 연인을 따라 나섰던 아빠는 가족 구성원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관심을 갖게 된다. 마티아는 꼬마 비스킷의 모험에 관한 이야기 '스타비스킷'을 잠들기 전 매일 엄마에게 속삭이고, 그토록 싫었던 아빠에 대한 마음이 점차 열린다.


"영웅은 지옥에 떨어진다. 괴물들과 싸웠지만 돌아오는 길로 들어섰을 때 남은 이는 자신뿐이다....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끝난 게 아니라고, 혼자가 아니라고 그에게 속삭인다. 우리가 있다고, 우리는 여기까지 오면서 그가 배운 그 모든 것이라고."


마티아가 본 세상은 결국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비록 과거보다 훨씬 나빠진 환경이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몇 년 뒤 사람들은 왜곡된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 시간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우리가 수천 년 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문 닫은 아이스크림 가게에 누군가가 붙여 놓았던 글귀. "다 잘 될 거야". 그 말처럼 사람들은 새로운 일상에 다시 적응할 것이다. 마티아도 그렇게 코로나를 추억했다. 책은 먼훗날, 혹은 가까운 미래에 생각하게 될 '지금'을 다시 보게 한다. '코로나 때문에'가 아니라 '코로나 덕분에' 가질 수 있는 점이 있다면 이또한 '다 잘되기 위한' 과정일 것이라는 희망으로.(*)


*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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