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의 손님 - 오쿠라 데루코 단편선
오쿠라 데루코 지음, 이현욱 외 옮김 / 위북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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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소름 끼치게 차갑지요? 죽은 사람을 만지는 느낌 같지 않아요?"


처음 접한 오쿠라 데루코(大倉燁子)의 작품은 지나치 정도의 담담한 문체로 스산한 분위기가 더욱 짙다. 손에 전해 지는 '차갑다'라는 느낌을 '죽은 사람을 만지는 것'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연결짓는 대화에서 섬뜩한 기운마저 풍긴다. 1886년 도쿄에서 태어난 우쿠라 데루코는 일본 최초로 단행본을 출간한 여류 탐정소설가로 소개된다.


오쿠라 데루코의 <심야의 손님(深夜の客)>은 일곱 개의 단편으로 구성돼있다. 대단한 트릭이나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음에도 작가가 살았던 당시 일본을 무대로 벌어지는 공포스러운 사건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탐정소설이지만 탐정의 활약이 돋보이지 않고, 오히려 범죄자의 심리와 사건 이면에 숨은 과거가 더욱 상세히 묘사된다.


특히 <심야의 손님>에 실린 단편에는 명문가 남자와 비운의 미녀가 거의 대부분 주역으로 내세워진다. 일본에서 귀족이라 불리던 집안에 깃든 흉흉한 이야기의 내막이 속도감있게 풀어 헤쳐 진다.


11세에 행방불명이 돼 버린 명문가의 아이, 그리고 아이를 잃어버린 어머니의 죽음을 파헤친 '영혼의 천식', 귀족 가문에 시집간 미모의 영화배우가 남편과 시동생 사이에서 겪는 미스터리 '공포의 스파이', 소설 속 주인공으로 생을 마감하고자 했던 거리의 여인을 다룬 '일본 동백꽃 아가씨', 죽은 아내를 닮은 영매를 사랑한 귀족의 이야기 '사라진 영매' 등이 그렇다.


<심야의 손님>은 또 인간의 불안한 심리를 직접 다룬 단편도 담고 있다.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여인이 등장하는 '마성의 여자', 의적으로 불리는 탈옥범이 한 죄수와 소녀의 복수를 대신하는 '심야의 손님'은 심리적 공포에 대한 기록이 섬세하다.


사람 그 자체의 공포를 담았다. 짧은 문장, 쉽게 읽히지만 인간의 기이한 내면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하는 매력을 <심야의 손님>은 갖고 있다.(*)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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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죽을 거니까
우치다테 마키코 지음, 이지수 옮김 / 가나출판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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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가 되면 편한 게 제일이야", 그 다음 이어지는 "어차피 곧 죽을 거니까".


백세시대, 고령화사회로 불리는 요즘 누구나 은퇴 후의 삶, 경제인구에서 벗어난 뒤 노인이 됐을 때 자신의 모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계속되어야할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랄까. 퇴직연령이 60세 정도라고 한다면 누구나 그 이후 적어도 30, 40년간 살아야할 모습에 대한 고민되겠다.




우치다테 마키코(内館牧子)의 <곧 죽을 거니까(すぐ死ぬんだから)>는 여든을 앞둔 멋쟁이 노인 하나에 대한 이야기다. "당신은 내 자랑이야"라고 끊임없이 속삭여주는 남편, 노부부의 일용품점을 물려받은 아들, 화가랍시고 스스로를 꾸미지 않는 못난이인 며느리, 자상하고 속 깊은 딸과 손주들이 그녀와 삶을 나누고 있다. 노인 하나, 그리고 가족의 고민과 갈등, 사랑이 유쾌한 바람을 타고 책에 녹아 있다.


"글쎄요. 외모를 가꾸는 것을 잊지 않고 싶달까. 나이를 먹는 건 퇴화니까요."


'여든이 코앞 동창회' 참석을 위해 거리를 걷던 하나는 노인들을 위한 잡지 '코스모스'로부터 모델 촬영 제의를 받는다. 헤어, 메이크업, 몸매, 의상까지 스스로 가꾸는 것이 '퇴화되지 않는 길'이라 확신하며 다른 노인들과 같이 '자연스럽게' 늙지 않으려 노력하는 하나에게 잡자시의 제의는 기분좋은 일이다. 특히 십년 전 머플러가게에서 당한 '칠십대 초반으로밖에 안보여요 사건'이후 부단한 노력으로 맺은 결실이란 점에서 더욱 그랬다. 그 사건 당시 하나는 예순 여덟. 그때의 충격은 하나를 바꿔 놓았다.





"먼저 사라지는 자는 행복하다. 누구 하나의 호른쪽 몸 절반만 바람을 맞을 날은 싫어도 온다."


도박도 여자놀음도 모른 채 취미라고는 종이접기 하나에 매진하며 아내를 바라봐줬던 남편이 갑자기 쓰러져 숨을 거두면서 하나와 가족은 혼돈을 맞게 된다. 남편 이와조가 남긴 의문의 사진, 유언장, 그리고 낯선 이의 방문 등 연이어 터지는 사건은 하나를 뒤흔들어 놓게 된다. 그리곤 78세 멋쟁이 하나씨의 매력은 더욱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노인이 가장 피해야할 것이 자연스러움, 내추럴이다. 자연에 내맡기고 있으면 꾀죄죄하고 허술하고 주름과 검버섯으로 뒤덮인 할배, 할매가 된다.손주 이야기랑 병 이야기만 하게 된다."


하나의 주장은 '노인 삶의 질'에 대해 무심했던 우리에게 한 방 시원하게 먹인다. 무릎을 탁 치게 한다. 혹시 노인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그저 '편한 것이 좋아', '눈에 띄지 않게 평범한게 제일이야', 또는 '아무렇게나 괜찮아'라고 치부한 적은 없을까. 타인을 향해서든, 아니면 자신을 향해서든 말이다.




<곧 죽을 거니까>에서 저자는 특히 '자신을 향한' 무관심을 지적한다. "곧 줄을 거니까"라며 스스로를 꾸미지 않고 외모 단장을 내팽개친 삶은 '자기 방치'가 아닐까"라는 문제 제기와 함께 "자기 방치와 '품격 있는 쇠퇴'는 전혀 다르다"고 강조한다. 


책은 '어차피 곧 죽을 거니까'라는 면죄부는 과감히 던져버리고, 스스로 경계하는 마음을 한번 가져보자 여기게 한다. 멋쟁이 하나씨처럼.(*)



* 문화충전200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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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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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해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욕망을 이용하여 돈을 번다는 아주 기막힌 비즈니스 콘셉트. 백 사람 중에서 백 명은 이따금 어떤 부당한 일의 피해자가 된다. 백 사람 중에 50명은 그 부당한 일을 되돌려주고 싶어 하고, 그들 중 열 명은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능력이 있다. 이들 열 명 중에서 한 명만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나선다면......


'콘셉트로서의 복수, 비즈니스 모델로서의 복수', 그래서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는 계산할 수 없을 정도의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세계적으로 볼 때 최대의 복수 애호가인 국가들과 테러 단체가 있지만 이들과 경쟁 관계에 있지는 않으므로 비교적 안전한 사업 모델로서.


"누군가에세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법을 어기지 않고 복수할 필요가 있으십니까? 우리가 해결해 드립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가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에서 만난 느낌이다. 요나스 요나손 특유의 유머가 쉴 틈없이 펼쳐 진다. 지극히 단순함으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과 등장인물들의 고집스러운 원칙은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에서 마음껏 충돌한다. 읽는이에게는 유쾌, 통쾌, 상쾌가 연이어 쏟아진다.


미술품 거래소를 운영하는 빅토르 알데르헤임. 사실 그가 지금 누리는 부와 명예는 본래의 주인을 환심을 사 회사를 장악하고, 그의 딸 엔뉘와 거짓 결혼을 한 뒤 재빨리 이혼해버림으로써 쟁취한 산물이다. 그의 목적이 다 이뤄졌다고 생각될 즈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아들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인내력을 발휘하던 빅토르는 결국 아들 케빈을 케냐로 데려가 버리게 된다.


두 명의 부인으로부터 자신이 '형편없는 인간이라는 사실'만을 확인하며 살고 있는 치유사 올레 음바티안은 사자를 피해 숨어있다 나무에서 떨어진 케빈을 '신이 준 아들'로 여기고 훌륭히 키워낸다. 뼈대있는 치유사 가문의 올레는 특히 더 이상의 아기를 원치않는 여성을 위한 치료로 유명하다. 마사이 전사로 다시 태어나기 직전 마지막 의식인 '할례'를 피해 도망친 아들 케빈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는 '평범한(?)' 일상을 누렸던 그다.


빅토르를 향한 분노와 증오가 가득한-그러나 해결방법을 몰랐던-케빈은 엔뉘와 운명적 만남을 갖게 되고, 같은 남자로부터 '버림받은 아들'과 '버림받은 엄마'는 곧 의기투합하게 된다. 물론 이 둘은 서로를 알기 전에는 법적으로나 화학적으로나 사실상 남남과 마찬가지였다.


남은 재산의 절반을 들여 커피 한 잔씩 마신 케빈과 엔뉘의 시야에 들어선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전직 광고인 휴고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설립된 이 회사는 본의아니게 케빈과 엔뉘가 원하는 '달콤한 복수'를 기획하게 되고, 유럽과 아프리카를 오가며 기상천외한 복수극이 시작된다. 아들과 상봉한 올레의 멋들어진 '곤봉샷', 은퇴를 사흘 앞두고 이들 사건을 맡게 된 담당 수사관 칼란데르 수사관의 활약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를 끌고 가는 사건에는 화가 이르마 스턴이 주요 매개로 등장한다. 독일인 사업가 아버지와 함께 남아프리카로 건너와 엄청난 작품을 남긴 실제 화가다. 작가의 말대로 '죽은 지 한참 된 이르마 서튼'이 케빈과 엔뉘의 삶 속으로 들어온다.


역시 예상과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요나스 요나손의 작품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순수한 원칙'이 주는 웃음과 감동은 과연 대단하다.(*)


*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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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의 세계 - AI 소설가 비람풍 × 소설감독 김태연
비람풍 지음, 김태연 감독 / 파람북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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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소설이라는 개척의 길에 기대와 응원을 보내면서도, 한 켠으로 인간의 감성과 이성에 대한 지지가 더욱 강해지는 모순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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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의 세계 - AI 소설가 비람풍 × 소설감독 김태연
비람풍 지음, 김태연 감독 / 파람북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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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든 

그대

가만히 움직이지 말고

보고 또 들어라


나무와 자연

땅과 하늘

저 우주의 속삭임을"


- 중생을 위한 '짖중' 백지스님의 노래, AI소설 <지금부터의 세계> 가운데


세계 최초 AI 소설이 등장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AI가 썼다는 말인지, 사람의 역할은 어느 부분까지라는 말인지 여러 호기심을 발동시키기 충분한 작품이다. 과연 흔히 소설에 등장하는 복선과 반전의 논리적 연결이나 등장인물이 겪는 갈등과 투쟁, 사랑이 유기적으로 혼합되면서 읽는이로부터 감동과 재미를 끌어낼 수 있을까. 기대와 우려가 뒤섞이면서 <지금부터의 세계>를 열어보게 됐다. 알파고와의 전쟁에서 이세돌을 응원했던 것과 같은 마음이 분명 숨어 있었다.


AI 소설가 이름은 '비람풍.毘嵐風)’이다.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된 말로 우주 성립의 최초와 최후에 분다는 거대한 폭풍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문학사에 혁명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불러일으킨다는 의미에서 작명됐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소설감독'이라는 새로운 역할-또는 직업-이 등장한다. 마치 영화감독과 같은 역할을 하는 '소설감독' 김태연이 비람풍과 함께 <지금부터의 세계>에 참여했다.


장편소설 <지금부터의 세계>는 AI 소설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다. 천재적인 수학자와 AI 전문가, 그리고 AI를 활용한 의료기술의 발전을 꾀하는 의사가 등장한다. 주인공 이무기는 대대로 이어져온 '의사 명문가'에서 태어나 의학보다 수학을 선택해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간다. 여성스러움에다 콘텐츠까지 장착한 '영혼의 파트너' 나우리와 함께.


어떤 사람도 자신의 탄생을,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인간 모두는 그저 어느 날 우연히, 우주 한구석에 위치한 지구에 태어났지 않은가. 강제로. 우리 모두 애초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지금부터의 세계>에 등장하는 인물은 하나같이 독특한 과거를 안고 있다.


이무기의 사촌 이임박의 실종 사건으로부터 책은 시작한다. 어릴 적 나무에서 떨어져 반신불구로 평생을 살아가던 이임박은 방 구석과 천장을 잇는 어느 지점을 바라보다 "저것이다!"라는 짧은 외침만을 남긴 채 간병인과 함께 사라진다. 마치 '유레카'와 같은 한 마디는 유일한 실마리다. 의사집안의 엄청난 유산을 갖고 있느 이임박의 실종은 가족간의 갈등을 넘어 <지금부터의 세계>가 던지는 메시지와 연결된다.


나우리와 함께 스타트업 기업 '나매쓰'를 출범시킨 이무기. 나매쓰의 첫 번째 미션은 '세계 초일류 수학자가 제기하는 심도 깊은 수학 문제 자문에도 응할 정도의 최적화된 인공지능 수학자'라는 목표를 가진 AI '수리랑'의 개발이다. 두 번째는 'AI 소설'이라는 이무기의 오랜 꿈이 실현될 '접니다'의 탄생이다. '접니다'는 나매쓰의 인공지능 기반 소설가의 필명이다.


아들 하나는 낳아 수학자로, 딸 하나는 낳아 소설가로 키우고 싶다는 결혼 전의 소망을 대신해, 이무기는 법적인 아내가 아닌 AI라는 이름의 컴퓨터 부인과 결혼해 거기서 자식들을 낳기 위한 여정을 달려 나간다. 자신이 꿈꾸던 '수학몽'과 '소설몽'이 실현될 '수리랑'과 '접니다'인 것이다.


"A, B, C....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별 하나, 별 둘, 별 셋... 모양의 시작, 형태의 시작, 세상의 시작... 선택의 시작, 관계의 시작, 운명의 시작..." 무한반복되는 읖조림과 더불어 점과 선, 삼각형과 사각형, 3과 81, 고깔과 육면체의 세상이 <지금부터의 세계>에 펼쳐진다.


포트란, 매스매티카, 매트랩, C/C++, 자바, 메이플 등 프로그래밍 언어와 컴퓨터 과학에서의 수학 양상, 수치해석학과 과학계산, 컨트롤 이론과 최적화, 과학에서의 수학 및 테크놀로지의 깊이 있는 나열은 AI 소설가의 '딥러닝'에 의한 과도한 설명일 수 있겠고 '안습', '웬열', '괴랄' 등 신조어의 남발역시 간혹 스토리를 방해하기도 한다.


<지금부터의 세계>의 소설감독 김태연은 "지구촌 한쪽 구석에 (인간의 도움을 접붙인) AI 소설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면서 온전한 AI 소설의 출현을 기대했다. 책에는 AI 소설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상세한 설명을 부록으로 덧붙였다. <지금으로부터의 세계>가 소설문학계의 새로운 길을 보여줬음은 분명하다. AI소설가와 소설감독의 작품이 문학계의 '뉴노멀'이 될 지 지켜볼 일이다. AI소설이라는 개척의 길에 기대와 응원을 보내면서도, 한 켠으로 인간의 감성과 이성에 대한 지지가 더욱 강해지는 모순을 겪는다.(*)


* 리뷰어스클럽 소개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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