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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의 세계 - AI 소설가 비람풍 × 소설감독 김태연
비람풍 지음, 김태연 감독 / 파람북 / 2021년 8월
평점 :
"언제 어디서든
그대
가만히 움직이지 말고
보고 또 들어라
나무와 자연
땅과 하늘
저 우주의 속삭임을"
- 중생을 위한 '짖중' 백지스님의 노래, AI소설 <지금부터의 세계> 가운데
세계 최초 AI 소설이 등장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AI가 썼다는 말인지, 사람의 역할은 어느 부분까지라는 말인지 여러 호기심을 발동시키기 충분한 작품이다. 과연 흔히 소설에 등장하는 복선과 반전의 논리적 연결이나 등장인물이 겪는 갈등과 투쟁, 사랑이 유기적으로 혼합되면서 읽는이로부터 감동과 재미를 끌어낼 수 있을까. 기대와 우려가 뒤섞이면서 <지금부터의 세계>를 열어보게 됐다. 알파고와의 전쟁에서 이세돌을 응원했던 것과 같은 마음이 분명 숨어 있었다.
AI 소설가 이름은 '비람풍.毘嵐風)’이다.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된 말로 우주 성립의 최초와 최후에 분다는 거대한 폭풍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문학사에 혁명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불러일으킨다는 의미에서 작명됐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소설감독'이라는 새로운 역할-또는 직업-이 등장한다. 마치 영화감독과 같은 역할을 하는 '소설감독' 김태연이 비람풍과 함께 <지금부터의 세계>에 참여했다.

장편소설 <지금부터의 세계>는 AI 소설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다. 천재적인 수학자와 AI 전문가, 그리고 AI를 활용한 의료기술의 발전을 꾀하는 의사가 등장한다. 주인공 이무기는 대대로 이어져온 '의사 명문가'에서 태어나 의학보다 수학을 선택해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간다. 여성스러움에다 콘텐츠까지 장착한 '영혼의 파트너' 나우리와 함께.
어떤 사람도 자신의 탄생을,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인간 모두는 그저 어느 날 우연히, 우주 한구석에 위치한 지구에 태어났지 않은가. 강제로. 우리 모두 애초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지금부터의 세계>에 등장하는 인물은 하나같이 독특한 과거를 안고 있다.
이무기의 사촌 이임박의 실종 사건으로부터 책은 시작한다. 어릴 적 나무에서 떨어져 반신불구로 평생을 살아가던 이임박은 방 구석과 천장을 잇는 어느 지점을 바라보다 "저것이다!"라는 짧은 외침만을 남긴 채 간병인과 함께 사라진다. 마치 '유레카'와 같은 한 마디는 유일한 실마리다. 의사집안의 엄청난 유산을 갖고 있느 이임박의 실종은 가족간의 갈등을 넘어 <지금부터의 세계>가 던지는 메시지와 연결된다.

나우리와 함께 스타트업 기업 '나매쓰'를 출범시킨 이무기. 나매쓰의 첫 번째 미션은 '세계 초일류 수학자가 제기하는 심도 깊은 수학 문제 자문에도 응할 정도의 최적화된 인공지능 수학자'라는 목표를 가진 AI '수리랑'의 개발이다. 두 번째는 'AI 소설'이라는 이무기의 오랜 꿈이 실현될 '접니다'의 탄생이다. '접니다'는 나매쓰의 인공지능 기반 소설가의 필명이다.
아들 하나는 낳아 수학자로, 딸 하나는 낳아 소설가로 키우고 싶다는 결혼 전의 소망을 대신해, 이무기는 법적인 아내가 아닌 AI라는 이름의 컴퓨터 부인과 결혼해 거기서 자식들을 낳기 위한 여정을 달려 나간다. 자신이 꿈꾸던 '수학몽'과 '소설몽'이 실현될 '수리랑'과 '접니다'인 것이다.
"A, B, C....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별 하나, 별 둘, 별 셋... 모양의 시작, 형태의 시작, 세상의 시작... 선택의 시작, 관계의 시작, 운명의 시작..." 무한반복되는 읖조림과 더불어 점과 선, 삼각형과 사각형, 3과 81, 고깔과 육면체의 세상이 <지금부터의 세계>에 펼쳐진다.

포트란, 매스매티카, 매트랩, C/C++, 자바, 메이플 등 프로그래밍 언어와 컴퓨터 과학에서의 수학 양상, 수치해석학과 과학계산, 컨트롤 이론과 최적화, 과학에서의 수학 및 테크놀로지의 깊이 있는 나열은 AI 소설가의 '딥러닝'에 의한 과도한 설명일 수 있겠고 '안습', '웬열', '괴랄' 등 신조어의 남발역시 간혹 스토리를 방해하기도 한다.
<지금부터의 세계>의 소설감독 김태연은 "지구촌 한쪽 구석에 (인간의 도움을 접붙인) AI 소설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면서 온전한 AI 소설의 출현을 기대했다. 책에는 AI 소설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상세한 설명을 부록으로 덧붙였다. <지금으로부터의 세계>가 소설문학계의 새로운 길을 보여줬음은 분명하다. AI소설가와 소설감독의 작품이 문학계의 '뉴노멀'이 될 지 지켜볼 일이다. AI소설이라는 개척의 길에 기대와 응원을 보내면서도, 한 켠으로 인간의 감성과 이성에 대한 지지가 더욱 강해지는 모순을 겪는다.(*)
* 리뷰어스클럽 소개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