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숲 - 합본
신영복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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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정확히 10년만에 이 책을 다시 읽었다. 21세기를 눈 앞에 둔 1998년 이 책이 처음 출간 되었을 때 읽었던 것이다. 당시, 중앙일보의 기획기사로 일주일에 한 번씩 연재 되던 걸 감칠맛나게 보곤 했던 터라 감회는 배가 되었다.

신영복 선생님의 세계여행기를 읽으며 다른 나라들이 몹시 궁금해졌다. 해외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필요한 여권을 만든 것도 이 시기였다.

지금 다시 봐도 놀라운 점은 문화와 세계사에 대한 선생님의 깊은 안목이다.

현지의 문화와 풍습을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시각으로 그럴수 밖에 없던 환경과 이유까지 짚어 내시는 사유를 보여 주신다. 무엇보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에 주목하는 시선이 아름답다.         다음의 문장들은 나를 멈짓하게 만들었다.

"진실이 아닌 위로는 결국 또 하나의 절망을 안겨줄 뿐입니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영화 [쉰들러리스트]의 사실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되고 남기신 말씀입니다. 영화와는 달리 쉰들러는 유대인들을 공장에 고용해주는 대가로 뒷돈을 받으며 장사를 했다고 합니다. 스필버그 감독은 이 사실을 알았었겠지만 영화의 감동을 위해 거짓 휴머니즘으로 치장한 것이었겠죠. 영화라는 기계장치의 매혹이면서도 한계가 아니였나 싶습니다.

"자본주의의 과정은 당신의 말처럼 상품화의 과정입니다. 도중에서 만나는 것마다 그것을 상품화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인간의 노동력은 물론이며 신체의 일부마저 상품화하고 사랑과 명예에 이르기까지 상품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의 더러운 역사를 이보다 쉽고 잘 설명하기도 어려울 거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이 문장이 무섭게 느껴집니다.

페루 나스카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그림이야기를 듣고는 무척이나 신기했습니다.                  아직도 그 그림을 어떻게 제작하고 지휘했는지 설명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에 설명되지 못하는 미스테리한 일들과 마주칠 때마다 한 없이 초라한 인간의 지식을 되돌아 보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그 사람을 알기 위하여, 그의 과거를 묻는 것 못지않게 그의 꿈을 물어봅니다. 그의 꿈을 물어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하고 싶은 게 명확했던 나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아무 생각 없이 뭐 할거냐고 묻곤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 질문 자체가 폭력이더라. 초등학생 이후 꿈을 가져 본 적 없이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도 수 없이 많다.

"꿈이란 한 개를 보여줌으로써 수많은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몽매(朦昧)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들은 크게 많지 않다. 먹고 살기 위해서 자신의 원치 않는 일이라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예술 혹은 문화를 꿈꾸는 어설픈 창작자들은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면서 문화 백수 라는 타이틀로 반란을 꿈꾸며 오늘 하루도 버티어 나간다. 꼭 자기여야 하는 건 아닌데, 그걸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정상은 사람이 살 곳이 못 됩니다. 그곳을 오르는 것은 마치 없어도 되는 물건을 만들거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농락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뒤통수를 치는 문장이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농락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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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2 오늘의 일본문학 4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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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의 추천으로 [남쪽으로 튀어] 라는 책 제목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주변에 이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아서 흥미는 배가 되었다.
[남쪽으로 튀어] 2권을 다 읽고 나니 얼마전에 읽었던 김영하님의 [빛의 제국] 생각이 났다.
두 소설의 공통점은 대학시절 운동권이였던 사람이 십 여년이 지난 현재 살아가는 모습의 이야기라는 거다.
물론, 그 외 차이점이 두 소설의 매력이다.

"그럼 나는 국민을 관두겠어."

"저게 진짜구나. 색깔이 다른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위 문장들을 읽을 때는 킥킥 대느라 정신이 없다.
몽정, 교내 폭력 이야기를 읽을 때 어렵사리 그 시절을 통과한 기억을 떠 올려 본다.

"어른이 아이의 세계에서 무력하듯이 아이는 어른의 세계에 관여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난 국민학교 때는 아니였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폭력에 시달렸다.
싸움 잘 한다는 아이의 협박에 두려워 학교 가기 두려운 적도 있었고 맞고 나서 결석하기도 했다. 지겹도록 맞아 시달리다가 고 3이 되어서야 용기를 내었다.

"이별은 쓸쓸한 것이 아니다. 서로 만나 함께 어울리다가 와 닿게 되는 결승점이다."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어서 가독력이 뛰어난 책이다.
개인적으로, 흥미 진진한 번역 소설을 읽다보면 원문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일본어로 읽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려야 했다.
언어의 미묘한 뉘앙스라는 걸 직접 느껴 보고 싶었기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한다.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다 같이 행복하게 살아가기.
잊고 있었다.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기 시작한 지 20년도 안 되었다.
87년의 모든 민중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얻어낸 것이었다.
우리는 함께 살아 나가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명심해야 겠다.

"조금씩 조금씩 표 나지 않게 처리해나가는 건 인간관계의 지혜이다."

"진심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건 인생을 모조리 걸어야 하는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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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알베르 카뮈 전집 2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8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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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강력한 권유로 읽게 된 책이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처음에는 지나가는 말로 한 번 읽어 보라고 한 줄 알았는데
다시 묻기에 책을 구입해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뫼르소라는 주인공으로 표현되는 일상의 지루함과 고단함 그리고,
과장된 몸짓을 거부하며 cool하게 삶을 사는 한 청년을 글로 표현했다.

그는 마음의 있는 여자가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사랑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나는 대답했다."

-책세상,알베르카뮈 전집2 김화영옮김 60page

그는 사회의 울타리에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 결코 과장하지 않는다. 

강렬한 태양빛에 흠뻑젖어 몽환적인 상태가 되어 우연치 않게 총으로 사람을 죽이게 된다.
그런데, 재판에서는 뫼르소가 얼마전에 양로원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하고도 울지 않았다고 하면서 이 사건을 계획적인 살인으로 몰아 갔다.

그렇게 된 또다른 이유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우연이지만 다음 재판으로는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검찰과 배심원들은 직계존속살해 사건을 대하면서 이 우연한 살인도 그와 같은 인간이 저지른 것이라는 논리로 그에게 사형을 언도한다.
아!
이런 얼토당토 않은 일들이 우리 삶에서는 비일비재 하게 일어나고 있다.

마지막은 책에서 나오는 문구로...

"사실 이건 어머니의 생각이였는데 어머니는 늘 말하기를,
사람은 무엇에나 결국은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 같은 책 106page 
 

p.s : 쓰고 나서 다시한번 읽어보니 무슨 이야긴지 모르겠다.  [이방인] 읽고나서 느꼈던 것들이 많았는데....

그리고 3년 후 [이방인]을 손에 다시 잡다.

신을 부정하고, 언어를 거부하는 '뫼르소'의 모습에서 1940년대 서구 유럽을 풍미하던 철학을 느낄수 있었다.

고전이라 불리며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이유가 뭔지 어렴풋이 알겠다. 이 소설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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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 전2권 세트
로렌 와이스버거 지음, 서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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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잡지에서 이 책을 '칫릭'으로 분류해 놓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도 같은 장르로 묶어 놓았더라구요.

칫릭(CHICK LIT) - 'CHICK' 젊은 여성을 일컫는 미국의 속어. 'LIT' 은 Literature' 의 약자로,
소비와 패션에 탐닉하는 젊은 여성들의 성공과 사랑을 다룬 소설을 말한다.

책에 묘사되어 있는 뉴욕의 거리 지명등을 보며, 마음 속은 그 곳을 벌써 헤매이더 군요.
패션잡지 편집장 어시스턴트가 주인공인지라
유행하는 옷, 가방 들을 묘사한 신조어 들을 보며 넋이 빠질 지경이에요.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뉴욕커의 모습에서
몇 년 전
회사에서 적응 못해 힘들어 하는 내 모습과 겹쳐 지게 되더라구요.
녹록하지 않은 회사라는 조직을 생각하며 쓴 웃음을 지어 보게 되네요.

"이 방은 내것이었다."

이 문장을 보면서는 호주 퍼스에서 내 방을 가졌던 기억이 나더라구요.
비록, 집 주인이 파티를 열면 방에 쳐 박혀 꼼짝도 하지 못했던 적도 있지만......,

"헤매지 않게 미리 '예행연습'을 하라는 엄마의 충고를 가볍게 무시해 버린....,"

운전에 익숙하지 않아 고속도로에서 운전대를 잡아 본 적이 없을 때
봉고로 사람들을 태우고 수안보로 가는 업무를 지시 받고도
가는 길도 모른체 갔다가 사고를 냈던 2000년의 그 날을 생각했지요.

회사라는 비인간적 조직에 처음 발 딛는 사람의 우여곡적 이야기
기대보다 훨 재미있네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1,2 권을 다 읽긴 했지만 난 반도 이해 못 한거 같다.
여자 옷과 구두의 스타일을 의미하는 수 많은 단어들 사이에서
헐떡 거렸을 뿐이다. 아마 이 부분은 영화로 보면서 채워질 수 도 있을 거 같다.

'마놀로 블라닉'
좀처럼 입에 달라 붙지 않던 슈즈 브랜드 명을 이제 말할 수 있을거 같다.ㅋㅋ

"피해망상으로 인한 런 어웨이식 말 바꾸기"

 "회사는 그렇게 돌아갔다. 그 이상은 허용되지 않았다. 사망(직계가족에 한함),
사지절단(본인의 몸), 핵전쟁(맨해튼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고 미국 정부가 확인한 겨우에 한함)
반발을 제외하고는 반드시 사무실에 나와야 한다"

"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요' 나 '그건 가능할 것 같지 않습니다' 라는 표현은
내게 허락된 말이 아니므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한 시간 내에 완수해내는 방법."

내가 처한 환경만 특수한 것인냥 받아들였지만
회사라는 조직이 원하는 건 그 곳이 서울이건 뉴욕이건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고 일어나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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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마리오네뜨
권지예 지음 / 창비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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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사랑해"

"응"

"정말"

"응"

"곧 후회하게 될거야" 

 
"네가 사랑한 나는 뭐니? 이래도 날 사랑할 수 있니?"

소설집 마지막 작품인 [사라진 마녀]에 나오는 대사의 일부분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다른 활자를 볼 때와 달리 내 경험과 일치되어서 소설을 읽는 거 같지 않다. 
한 번 들은 것도 아니고
여러번 반복해서 이 말을 들었다.
내가 왜 자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그리고는 항상 자기의 성격을 이야기하며 이래도 날 사랑할 수 있냐는 식이다.
상처로 외로워서 자기 자신을 방어하는 듯이 보이더라.
혹시, 자신이 나를 사랑하게 될까봐 두려워서.....,
사실 내가 겁내하는 건 따로 있다.
집착하는 듯이 매달리다가 그냥 돌아서 버릴까봐서 나는 내 자신을 위로하고 마음을 다스리면서
또 다른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해설) - 사랑의 소멸과 시작 - 백지영

"삶의 법칙은 늘 인간의 의지와 어긋나는 것이며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 뿐이다."

빠리에서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들을 구성했다.
나도 빠리를 다녀왔다고 그 지명들이 낫설지 않고 어렴풋이 .....,
다시 그 도시를 유영하고 싶다.
불현듯,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은 꿈이 머리에 와 앉는다.
지금은 아니다.
하지만 그 때를 준비해야 하긴 하겠다.

치열하게 삶을 살았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자기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권지예의 소설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소설집 마지막에 실려 있는 [사라진 마녀] 부터 찾아 읽게 되었다. 두번 째 읽는 것이 맞는 걸까 의문이 들 정도로 새롭게 읽히는 문장들이 속속 박혔다.

"너와의 사랑 ....., 그것도 사랑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 마치 한 순간의 신기루 같았지. 신기루는 그냥 환영일 뿐이잖아. 하지만 신기루는 사람의 마음이 간절할 때만 나타나거든."

헤어지고 나서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 때 이런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아마도,
사랑이라는 감정의 풍요가 사라진 후에 나타나게 되는 허탈함 같은 게 아닐까 싶다.
그녀를 떠 올려 보면 이 보다 더 적절한 문구가 없어 보인다. 

"다시 만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왠지 만나선 안될 거 같았다."

이 문장을 읽고 흔들리는 마음을 부여 잡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 다시 연락을 한 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당시의 감정이 되 살아날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그래도, 자꾸 그녀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말이지.
젠장할.....,

"우먼이 아닌 휴먼으로 살고 싶었을 뿐이야. 이렇게라도 살아 있는 내가 얼마나 지독한지 .....," 

[투우] 라는 단편을 읽으면서도 포스트 잍을 찾게 된다.

"예술은 노동의 아들이지 유희의 아들이 아니래. 나는 그 말 믿어. 예술가도 노동자일 뿐이야"

이 문장을 두 번, 세 번 되뇌여 보았다.
정말, 그런 걸까? 

"산다는 건, 세상의 빠져나오지 못할 올가미에 갇힌 줄도 모르고
생피를 흘리는 투우와 무엇이 다를 것인가." 

이 글의 마지막은 단편 [사라진 마녀]에 나온 문장으로 끝마쳐야 겠다.

"청춘이 제일 고통 스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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