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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전문

 

민주주의의 위기와 호남의 선택

 

김욱

 

. 현 상황, 민주주의 위기의 두 측면

 

역사 속에서 민주주의의 진보란 일회성 이벤트로 얻어지는 단일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피를 흘려 쟁취하는 역사적 사건일 뿐만 아니라 일상을 통해 끊임없이 확인하고 지켜나가야 하는 지속적인 혁명이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그 지속적인 혁명을 추동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스스럼없이 퇴행을 거듭할 것이며, 우리에게 역사적 대가를 요구하며 그 존재 의의와 필요성을 교훈적으로 깨우쳐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오늘의 현실을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 우리의 민주주의는 지금 이대로 좋은가?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지금 이대로 충분히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결코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 됐는가? 두 측면에서 민주주의의 위기 국면이 발생하고 있다. 하나는 (아마 전 세계적으로도) 유사 이래 처음 겪는 새로운 사태이며, 다른 하나는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오랜 기간 겪어온 진부한 구태다. 짐작하듯이 전자는 인터넷 댓글 여론조작 문제이며, 후자는 (호남을 중심으로 말하자면) 호남에서의 일당지배체제로의 회귀 유혹이다. 이 두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다시 심각한 퇴행을 시작할 것이다.

 

. 인터넷 시대의 민주주의 위기: 댓글 여론조작의 일상화

 

우리의 과거 경험을 돌이켜보면 드루킹 사태는 사실 벌어질 일이 벌어진 것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과거의 경험이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제도환경을 합법적불법적 수단을 총동원해서 극단적으로 이()용하는 온갖 종류의 개인적집단적 이익 추구 현상을 말한다. 이런 현상은 한편으로는 그 대응을 위한 법적 진화를 촉진시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성숙한 사회문화와 결합해 사회적 진보를 지체시키기도 한다. 어쨌거나 우리 사회가 이런 식으로 제도환경을 극단적으로 이()용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생각한다면 이에 대한 법적정치적 대책을 철저히 강구할 수밖에 없다.

 

내가 드루킹 사태가 벌어질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말한 이유는 우리 인터넷 환경과 관련돼 있다. 우리나라의 독점적 포털 사이트는 현재 절대 다수 국민이 뉴스를 접하는 창구가 돼 있다. 과거 어떤 개별 언론사나 심지어 국가권력도 장악해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언론 독점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독점력에도 불구하고 뉴스의 정파성 혹은 편향성 위험은 오히려 뒤로 밀려나 있다. 과거에는 이 문제가 언론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문제였지만 포털 뉴스는 그나마 여러 매체의 뉴스가 각 개별 언론사에서 선정돼 올라오기 때문에 편향성보다는 상업성이 더 문제일 수 있다.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는 독점적 뉴스 창구를 악용하는 댓글조작, 즉 여론조작의 함정이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댓글 사건처럼) 국가권력을 동원한 여론조작까지 등장했다면 이것이 왜 오늘날 민주정치를 위한 핵심과제일 수밖에 없는지를 알려준다.

 

과거 우리가 언론자유를 민주주의의 근본 조건이라고 생각하며 중시했던 이유는 여론 형성을 위한 공정한 게임의 규칙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이 여론형성의 자유시장기능이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위기에 처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뉴스가 인터넷 포털에서 독점적으로 제공되고, 절대 다수 국민이 이 포털 뉴스를 집단적으로 접하는 대한민국 특유의 인터넷 환경 자체가 이미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위험을 자초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전체주의 국가처럼 독점적 창구에서 제공되는 한정된 뉴스에 특정 정파와 유착한 조직에서 불법적조직적으로 매크로 댓글을 달고, 공감추천수 우선으로 그 댓글을 노출시켜 그것이 지배적 여론인 양 모두가 읽게 만든다면 그것에 영향 받지 않을 국민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생각해보면 애초에 이런 식의 포털 뉴스 제공방식을 방치한 채 누구도 악용하지 않기를 기대했던 것 자체가 사회적인 위험 불감증이었다. 비유하자면 어떤 견제도 없는 절대권력이 민주적으로 잘 작동하기를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순진무구함이었다.

 

혹자는, 특히 (생뚱맞게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이 여론조작 문제를 하찮은 일처럼 호도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예컨대 국정원을 동원한 국가범죄는 아주 중한 범죄지만 사인이 주도한 정치범죄는 사소한 탈선이 아니냐는 태도가 그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범죄의 주체가 국가인지 사인인지가 아니라 이 여론조작 사태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단언컨대 이 사태를 정상화시키지 않는 한 우리나라에 민주주의는 없다. 그리고 이런 비민주적 상황에서 누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나아가 선출직 공무원이 되든지 그 정당성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다. 이는 군사 쿠데타 정권에 대한 정당성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는 이치와 논리적으로 완전히 동일하다.

 

더불어 이 여론조작 사건의 수혜세력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댓글조작의 영향력이 미미하므로 별일 아니라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정말 그런가? 정말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그런 일들이 횡행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실제로 지난 대선과정에서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몇몇 주자들의 급작스런 지지율 등락과정을 보면 댓글 여론조작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자행됐는지 확인하고도 남는다. 이미 이런 사실만으로도 지난 대선의 정당성정통성 시비가 일어날 소지가 충분하다. 내 보기에 불법의 형식면에서는 국정원 댓글 사건이 더 충격적이지만, 지지율 등락이라는 내용(효과)면에서는 드루킹 사건이 훨씬 더 파괴적이었다고 본다. 어떤 정파든 이런 일을 겪고도 단지 사건을 적당히 무마하고 넘어가려는 태도만을 보인다면 그건 앞으로도 이런 일을 정치적 양념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정말 그런 생각이라면 나는 그들이 누구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세력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이에 덧붙여 반드시 짚고 넘어갈 일이 있다. 사람들은 정말 인터넷 댓글에 크게 영향을 받는가? 학자들은 생물처럼 변하는 여론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 왔다. 지면 관계상 자세히 논할 순 없지만 우리에게 시사점을 주는 실험 한 가지만을 소개한다. 1950년대 초의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시(Solomon E. Asch)의 실험이다.

 

이 실험은 (누가 봐도 거의 분명한) 기준선과 같은 길이의 비교선 막대를 고르는 아주 단순한 실험이었다. 이 실험엔 영문을 모르는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7~9명의 실험협조자들이 전원일치로 정답을 교란시켰다. 이런 실험을 반복적으로 실시했는데, 그런 일을 당한 단 한 사람은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10명중 2명은 자기 판단을 고수했고, 2명은 한 두 차례 집단의 의견에 동조했으며, 나머지 6명은 집단의 잘못된 의견에 동조한 횟수가 그보다 훨씬 많았다.(엘리자베스 노엘레 노이만, 침묵의 나선, 사이, 2016, 80~83쪽 참조.)

 

이런 실험 외에도 집단으로부터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특성에 대한 연구는 많다. 뻔히 보이는 막대 길이에 대한 자신의 판단조차 고립을 두려워하며 확신하지 못 하는 인간의 유약한 심리를 정치에 악용하면 민주주의가 어떤 지경에 빠지겠는가?

 

민주주의는 모든 참여자들의 합리적 의견을 존중하는 바탕위에서 성립해야만 한다. 만약 이런 게임의 규칙이 무너지면 민주주의를 통해 확보하려는 정당성정통성도 당연히 함께 무너진다. 언제든 그리고 누구든, 조직적인 인터넷 여론조작으로 권력을 잡고 유지한다면 이 권력의 정당성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다. 이는 폭압적 무력으로, 막걸리와 고무신으로, 언론통제로 잡고 유지한 권력에 대해 정당성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는 것과 논리적으로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지금 중차대한 기로에 서 있다. 정치인이든 국민이든,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가 붕괴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의 민주주의에는 희망이 없다.

  

. 호남에서의 민주주의 위기: 일당지배체제로의 회귀 유혹

 

현 문재인 정권에 대한 호남의 지지율이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런 여론조사 역시 일정부분 여론 형성과정의 왜곡이 반영된 것일 수 있지만 차치하고 논한다. 호남의 입장에서 현 문재인 정부는 꽤 만족스러운 정권으로 보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그간의 영남패권주의 정권과 현 정권의 차이가 뭘까? 현 문재인 정권은 왜 호남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일까? 아주 간단하다. 민주평화당의 존재 때문이다. 말을 바꾸면 지난 총선을 통해 실현된 호남에서의 복수정당제 때문이다.

 

과거 민정당 계열의 영남패권주의 정권은 호남을 그저 영남의 결속을 강화시켜주는 외적 계기이자 관리대상으로 간주할 뿐이었다. 다른 한편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노무현 정권에게 호남은 그저 자신들에게 표를 찍어주는 인질이자 영남에 뿌리를 내리기 위한 폄훼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노무현 정권을 지역주의 양비론으로 시작해 은폐된 투항적 영남패권주의로 끝난 정권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현 문재인 정권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하는 순간 호남은 이제 즉시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현 문재인 정권의 속마음이야 어떻든 그들은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으며, 이번 지방선거와 다음 총선에 이르기까지 계속 민주평화당과의 피로한 경쟁을 해야만 한다. 호남인들에게는 이런 사태가 생소할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아직 한참을 더 나아가야 한다. 정치학자 최장집은 우리나라의 정치적 과제를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논한 바 있다. 나는 이 관점에 동의하지 못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제도(형식)적인 차원에서도 민주화 도정에 있다. 굳이 그런 식으로 표현하자면 영남군부독재 이후의 영남패권주의시대를 살고 있다. 군사정권의 종식은 그저 민주주의의 진일보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정치는 그간 역사적으로 보수/진보가 아닌 영패/반영패 모순이 주된 모순으로 작용해왔으며, 아직도 진행 중에 있다. 이 주된 모순을 우선적으로 극복해야만 한다.

 

우리나라가 아직 제도(형식)적인 차원에서도 민주화 도정에 있다는 자명한 근거가 있다. 영호남에서의 일당지배체제 이데올로기와 그 체제로의 회귀 가능성이다. 그간 영남은 패권적 지배를 위해서, 호남은 민주적 저항을 위해서 그런 체제를 지속해왔다. 소수지역 호남은 저항을 위해 김대중을 내세운 일당지배체제와 노무현을 내세운 전략적 선택으로 대선 승리를 쟁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 이후, 호남의 전략적 선택호남불가론이라는 자기 함정을 파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이제 호남은 반영남패권주의 투쟁의 방법을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 호남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스스로를 일당지배체제라는 비민주적인 체제에 가두고 전략적 희생을 감수해왔다. 호남 외부에서는 이 현실을 호남 신성화이데올로기로 포장하여, 호남의 일당지배체제를 역이용했다. 그래서 나는 호남 세속화를 주장했으며, 그 첫 조건이 바로 호남의 정치적 선택이 가능한 복수정당제였다. 그리고 주지하듯이 지난 2016년 총선을 통해 이런 내 소망이 실현됐다. 오랜 기간 희생을 강요한 비민주적 체제에 대해 호남은 스스로 균열을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다시 이 민주주의 선거혁명이 위기에 처해 있다. 전 대통령 박근혜 탄핵에도 불구하고 자유한국당이 영남의 지지에 힘입어 고사 위기를 극복하는 것으로 관찰되자 애초에 자유한국당을 극복하고자 했던 바른미래당이 오히려 궁지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한국당을 힘겨워하는 바른정당과 호남의 전략적 선택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없게 된 안철수 정파는 세력 확장의 한계를 느끼고 합당을 했다. 그리고 과거사에 대한 정치적 성찰 없이 자유한국당과 우호관계를 모색하는 (최소한 이데올로기적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세력과 단호하게 결별한 민주평화당이 탄생했다. 문제는 호남이 이런 정치적 사태의 맥락을 이해하고 있느냐이다.

 

사실 자유한국당의 생존력, 즉 영남패권주의 이데올로기의 뿌리 깊은 생존력에 당황한 것은 기회주의적 바른정당만이 아니었다. 호남도 마찬가지였다. 영남이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호남도 과거로 회귀하려는 방어본능을 보이고 있다. ‘영남의 자유한국당이 건재한데 호남만 분열되면 전략적으로 영남패권주의에 저항하는데 불리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어난 것이다. 어쨌든 전국적으로 더 넓은 범위의 지지를 받는 더불어민주당에 호남이 일체로 편승해 그간 해오던 방식대로 영남패권주의의 본산인 자유한국당에 저항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호남이 복수정당제를 포기하고 다시 일당지배체제로 회귀하는 건 명백히 역사의 퇴행이다. 호남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서 호남의 민주화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호남의 민주화, 즉 호남의 복수정당제를 통해서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추동해내야 한다. 복수정당제를 통한 호남의 민주화가 호남을 인질로 잡으려는 은폐된 영남패권주의세력에게 얼마나 큰 정치적 압박이 되고 있는지를 상기해야 한다.

 

민주평화당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현 정부의 호남 우호전략을 강요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 사실을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호남도 민주평화당이 살아야 호남의 민주주의가 살고, 호남의 민주주의가 살아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도 산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호남이 복수정당제 확립이라는 민주화를 스스로 포기하면 대한민국은 결코 민주화될 수 없다. 그 역사적 사연이 어떠했든, 호남과 영남이 앞으로도 계속 일당지배체제를 지속시켜나감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제도적현실적으로 민주화됐다고 말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차원에서 말하건대, 민주평화당의 존재 그 자체에 호남의 민주주의는 물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실현 가능성이 달려 있다. 호남이 민주평화당을 죽이고 다시 일당지배체제로 회귀한다면 호남은 스스로 영남패권체제의 인질을 자청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호남이 다시 인질이 되면 대한민국은 상상 속에서만 적대하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공생관계로 다시 회귀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옛 체제로는 영남패권주의라는 반민주적 적폐를 결코 청산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이 적대적 공생관계를 상상적이라고 규정하는 이유는 양 세력은 실제로 적대해 상대를 소멸시킬 생각도 없고, 소멸시킬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 진보와 퇴행의 모든 가능성이 민주평화당의 생존력과 호남의 선택에 달려 있다.

  

. 호남의 선택을 위하여

 

민주국가에서 선거란 선거일과 선거일 사이에 누적된 정치적 평가를 유권자가 하루 동안 진행되는 투표행위를 통해서 표출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선거에서 어떤 정당과 후보를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는 단순히 선거 운동기간 동안의 공약과 관심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선거일은 일상적으로 누적되는 정치적 의사를 그저 한꺼번에 결산하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날마다, 끊임없이, 유권자의 장기간에 걸친 여론형성과정이 조작되고 왜곡된다면 투표과정이 제 아무리 공명정대하게 이루어진다고 해도 민주적 정당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드루킹 사건은 단지 지난 대선과정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을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소재로만 이용해서는 안 된다. 이런 일을 겪고도 제도적법적으로 대비책을 강구하지 못 하면 오늘의 피해자가 내일의 가해자로 서로 앞 다퉈 변신해가며 민주주의의 앞날을 전근대적 수렁에 빠트릴 것이다. 드루킹 사건은 매크로 조작 등 불법행위가 주로 부각됐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현재와 같은 조건 하에서는 몇 천 명 열성적인 조직만으로도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댓글 여론조작을 시도할 수 있다. 또한 정상적인 댓글이라 할지라도 인터넷 접근이 쉬운 계층 위주로 과잉 대변되는 문제를 막기 힘들다. 보다 근원적이고 철저한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민주국가에서 언론의 자유를 통한 여론형성을 특별히 존중하는 것은 그 자정능력에 기초해 비례적으로 반영된 국민의 다양한 생각의 분포를 참고하는 데 있는 것이지 불과 몇 천 명이 절대 다수를 대변하는 양 지속적으로 여론형성을 왜곡조작하는 것을 보장하려는 데 그 취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근원적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포털 뉴스의 인링크 방식 폐지, 댓글 실명제, 공감추천제(공감추천순 노출) 폐지, 검색 기능만 허용하는 것 등, 모든 가능한 대책을 합리적으로 검토한 후 강력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 대책에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달려 있다.

 

이념과 제도에 대해서는 나름의 확신을 피력할 수 있지만 호남의 선택에 대해서 내가 말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 모든 것은 호남 스스로가 선택할 일이다. 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라면 나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간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했지만, 대한민국 정치는 상대다수대표 선거제도에 기초한 대통령제를 바탕으로 다수지역인 영남 출신 정치인이 제왕적패권적 권력을 휘두르는 전근대적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호남은 호남대로, ‘힘을 합쳐 자유한국당과 그 산물인 적폐와 싸우자는 더불어민주당의 전략적 태도에 현재까지는 절대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한데 문제는 이것이 다른 한편으로 호남의 복수정당제를 부정 혹은 위협하는 난해한 정치적 부작용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경우라도 호남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현 정권의 호남에 대한 우호적 태도는 그저 현 정권의 자발적 선의의 산물이 아니다. 정치를 그런 식으로 비과학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호남이 스스로의 각성으로 정당 선택 가능성을 실현시킨데 따른 과실일 뿐이다. 나는 호남 스스로 이런 사실을 잊는 것을 크게 우려한다. 만약 호남이 이런 사실을 잊고, 앞으로 선거를 통해 민주평화당을 소멸시킴으로써, ‘상상 속에서만 적대하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공생관계를 회귀시킨다면, 이것이야말로 호남의 정치적 이익은 물론이고, 이 나라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불행한 선택이 될 것이다. 나는 적어도 그것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호남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민주평화당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명확히 되새겨야 한다. 복수정당제의 한 축인 민주평화당이 우선 호남에서 존재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호남의 민주주의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달려 있다. 그러므로 민주평화당은 우선 호남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에 이 점을 설득시켜야 한다. 나는 민주평화당이 자신에게 부여된 이 역사적 소명을 분명히 인식하고, 또 그것을 꿋꿋이 실현시켜나갈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이 땅의 민주주의에 대한 간절한 희망과 함께 그렇게 믿는다.

 

http://www.kjdaily.com/read.php3?aid=1525258329437329018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8. 05.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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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배 "오늘 이 자리에서 논의해야 할 핵심 내용이 모두 담겨 있다."

정동영 "신당 창당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글이다."

 

영패야합을 반대한다

 

김욱

 

. 2018년의 영패합당

 

1. 양당 대표 안철수유승민의 영패 발언

 

다음은 국민의당 대표 안철수의 소신에 찬 발언들이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지역으로, 이념으로 나눠놨던 이 나라 드디어 한 마음으로 통합 될 것이다.” -안철수의 2017대선 신촌유세 중에서, 국민의당(보도자료), 201757.

 

““당내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치한 분이 많은데, 숙원이 남북통일 아니냐라면서 남북통일을 목표로 둔 사람들이 영·호남 통합도 안 되면 어떻게 남북통일이 가능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안철수의 대한성공회 주교 김성수와의 만남 중에서, 연합뉴스, 2017121.

 

지역구도와 지역감정으로 정치해온 정치인들이 판사 판결에도 그렇게 지역감정 프레임을 들이댄다. 어처구니없지만 지난 30년간 그들은 그렇게 정치해왔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인공지능의 딥 러닝 시대에 지역감정 말하고 있다. 우리 정치가 얼마나 낡았는가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안철수의 당대표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 중에서, 국민의당(보도자료), 2017124.

 

다음은 바른정당 대표 유승민의 소신에 찬 발언이다.

 

제가 얘기하는 지역주의 극복은 호남이나 영남 등 특정 지역을 배제하자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대구에서 4선 의원을 한 저로서는 지금 대구 사람들이 얼마나 먹고살기 어려운지 누구보다 잘 압니다. 호남과 마찬가지로 영남에서도 특정 정당에 일방적으로 투표해 왔고, 그게 수십 년 쌓이면서 지역 경제가 피폐해지고 수도권과의 격차는 더 커졌습니다. 이제 깨어 있는 많은 유권자가 지역을 볼모로 지역주의에 기댄 정치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 국민의당 내에서 통합에 반대하는 분들은 그럼 한국당과도 손잡을 수 있다는 거냐고 하는데, 지방선거와 총선·대선은 다릅니다. 지방선거는 지역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를 뽑는 인물 위주 선거입니다. 심지어 기초의원은 아예 정당 공천을 폐지하자는 얘기도 나오는데 후보 단일화 가능성을 완전히 닫는다는 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유승민의 인터뷰 중에서, 인터넷 문화일보20171222.

 

2. 영패 발언의 이데올로기적 의미

 

영패합당파 안철수유승민의 위 발언은 다음과 같은 영패 이데올로기를 의미한다.

 

1961년 박정희 이후 2018년 문재인까지 김대중(최규하)을 제외하고 모두 영남출신 대통령이지만 우리나라에 영패는 없고 진보/중도/보수만 있다. 나쁜 정치인들이 지역감정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나쁜 정치인들에 휘둘린 영호남 유권자는 둘 다 공평하게 잘못했다(양비론). 따라서 영패 과거사에 대한 성찰은 불필요하고 영호남 모두 앞으로만 잘하면 된다(과거 없는 미래). 반합당파(특히 호남정치인들)는 합당파와는 달리 구태 속에서 여전히 지역감정을 이용하려 한다. 지금까지 양당시절 호남이 민주당을 지지해왔듯이 영남은 자유한국당을 지지해왔을 뿐이다. 그러니 자유한국당의 정통성정당성(정당의 역사와 정체성)을 따지지 마라. 자유한국당은 그저 공과가 있는 보수당일 뿐이다. 즉 자유한국당의 기원이 광주학살을 자행한 전두환의 당이라는 것도 따지면 안 된다. 이런 맥락에서 지방선거의 경우 자유한국당과도 연대할 수 있다. 박근혜 탄핵도 과거사 성찰의 계기가 아니라 그때그때의 민심에 따른 일회적 사건이었을 뿐이다. 자유한국당과는 지금도 지방선거에서는 전략적 연대가 가능하니, (유승민이 탈당 시 요구했던 정도의 수준까지) 자유한국당이 변신한다면 (논리적으로) 합당을 못할 이유도 없다(영패투항). 그렇게 전두환당과도 함께하면 그것이 영호남 화합(통합)이다. 이런 미래를 반대하는 건 곧 영호남 화합을 추구한 김대중 정신을 배신하는 것이니 구태 반합당파는 각성해야 한다. 이것(지역감정은 정치인들 농간이고, 이에 휘둘린 영호남 모두 잘못했다는 양비론으로 무구한 사람들을 현혹시킨 후 결국 영패투항으로 끝맺는 영패정치)이 대한민국의 지역문제 해결책이고, 인공지능의 딥 러닝 시대의 새정치다!

 

이제 안철수유승민의 이데올로기적 정체를 알았으니, 각자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기 바란다. 당신의 양심이 뭐라고 하는가? 합당에 찬성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를 결심하는 건 아주 쉽다. 당신의 정의로운 양심이 위 안철수유승민의 영패 이데올로기가 옳다고 수긍하면 합당에 찬성하면 되고, 옳지 못한 퇴행적 기만이라고 외치면 합당에 반대하면 된다. 그뿐이다!

 

. 2003년의 영패분당

 

1. 전 대통령 노무현의 영패발언

 

다음은 전 대통령 노무현의 소신에 찬 발언들이다.

 

지역문제를 고려해서 특별히 특별한 정책을 시행하지 않는 것이 저는 지역문제의 해결책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지역에 있어서의 소외감이라든지 지역갈등이라든지 지역감정이라든지 이것 다 정치인이 만들어낸 허구이다. 분명히 제가 말씀드리겠다. 그러면 92년 이전 30년동안 대구출신의 대통령이 막강한 권력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국가의 자원을 주무를 때 진짜 호남을 소외시켰나? 인정하시겠나? 30년 동안에 대구경북이 살이 찐 부자가 됐으면 얼마나 부자가 되었나? 그때 대구경북이 덕 많이 봤나? 일일이 거기에 대해서 솔직하게 대답을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부산경남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대구경북이 소외됐다 호남정권 시절에 소외됐다 그것 할 수 없는 일이다.” -노무현의 대구경북 언론인 만남 중에서, 오마이뉴스, 2003819.

 

“[한나라]당의 역사성과 정통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대타협의 결단으로 극복하자는 것입니다.” -노무현의 지역구도 등 정치구조 개혁을 위한 제안: 당원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중에서, 프레시안, 2005728.

 

정치가 제대로 된다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양대산맥이 계속 유지돼 가야 한다.” -노무현의 여 의원 만찬간담회 중에서, 연합뉴스, 2006827.

 

, 영패는 없고, 따라서 영남이 덕 본 것도 없고, (광주학살에도 불구하고) 지역감정은 정치인이 만들어 낸 허구, (당시) 새천년민주당은 지역주의 부패정당이니 법통을 부정해야 하고, 한나라당의 역사성과 정통성은 대타협의 결단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노무현의 영패 양비론 이데올로기와 위 안철수유승민의 영패 양비론 이데올로기가 겨자씨만한 차이라도 있는가?! 호남을 모욕하는 영패 양비론 이데올로기는 2003년에 발화되어 영패 투항으로 비극적 종말을 고하더니, 15년이 지난 2018년엔 마치 무슨 새로운 정치나 되는 것처럼 희극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각자 맡은 배역만을 달리해 반복되는 희극이다! 이 희극적 역사 속에서 다시 영패 두더지 잡기를 해야 할 시점이 왔을 뿐이다.

 

2. 문재인과 안철수유승민, 누가 더 퇴행적인가?

 

2012927,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문재인은 광주전남 핵심 당원 간담회에 참석해 노무현 정부 시절의 분당사태에 대해 이렇게 사과했다.

 

제가 관여했던 일은 아니지만 그 일(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이 참여정부의 큰 과오였다고 생각합니다. 호남에 상처를 안겨주고 참여정부의 개혁역량을 크게 떨어뜨렸습니다. 지금도 그 상처가 우리 속에 남아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문재인의 광주전남 핵심 당원 간담회 중에서, 오마이뉴스, 2012928.

 

생각해보기 바란다. 분당을 과오라고 인정해 뒤늦게 사과가 필요했다고 해도 왜 민주당의 전국 지지자에게가 아니라 호남에 상처를 안겨주었다며 호남에 사과한 것일까? 진심이든 아니든, 사과의 논리는 노무현의 영패 이데올로기, 즉 호남 정치인을 호남과 분리해 잡초취급함으로써 호남 유권자를 조롱하고, ‘양비론으로 영패에 대한 정당한 저항을 부정하고, 그런 식으로 민주당에 대한 호남의 오랜 세월 90% 지지를 지역주의 부패정당 지지를 한 것으로 비하하면서 분당한 것을 사과한 것이다. 물론 현 대통령 문재인의 실재가 어떨지는 계속 두고 봐야 한다. 하지만 그는 2003년의 영패분당 사태에 대해서 적어도 입으로는 분명히 호남에 사과했다.

 

그런데 안철수유승민은 어떤가? 문재인이 과오라고 인정하고 사과한 2003년의 그 지긋지긋한 영패분당을 성찰의 계기로 삼기는커녕 형태를 바꿔 영패합당으로 다시 반복하겠다는 것 아닌가? 자유한국당 문제는 어찌 되는가? 노무현의 양대산맥인정정도가 아니다. 유승민은 아예 자유한국당과 지방선거 연대까지 당당하게 예고하고 있다. 그 끝이 어디겠는가? 김영삼은 ‘TK와 남이 아닌 PK’의 지지를 업고 부당한 전두환당과 합당했을 뿐이다. 그런데 안철수는 마치 김영삼이 3당합당을 하기 위해 호남의원들까지 전리품처럼 끌고 가겠다는 것과 비슷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나아가 안철수유승민은 박근혜 탄핵사태에도 불구하고 영패정치에 대한 일말의 성찰조차 거부하면서 심지어 영패합당을 미래를 위한 영호남 화합이라고 기만까지 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문재인과 안철수유승민은 누가 더 영패 이데올로기에 퇴행적으로 중독돼 있는가? 안철수유승민은 이미 성찰 없는 영패합당 시도로 문재인의 사과를 넘었고, 자유한국당과의 지방선거 연대론으로 한나라당을 승인하자는 데 그친 노무현의 양대산맥론도 간단히 넘어섰으며, 심지어 당권으로 호남의원들까지 인질로 잡아 전두환당인 자유한국당과의 (통합이 눈에 보이는) 연대를 예고하며 함께 가즈아고 외침으로써 김영삼의 PKTK 영패합당너머로까지 퇴행하고 있다. 최악인 것은 안철수유승민과 그들을 추종하는 영패합당파들은 자신들의 영패 이데올로기가 호남의 반영패 민주정신과 저항적 개혁역사를 능멸하는지조차 모르는 것처럼 부끄러움도 없이 당당하다는 사실이다.

 

. 반합당(신당)파는 왜 불신 받는가?

 

반합당(신당)파는 앞으로 우리 정치사의 큰 시험에 들게 될 것이다. 그 시험문제는 이런 것이다. 국민의당 (원외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지만) 의원 중 정치적 상황과 상관없이 더불어민주당의 유혹을 꿋꿋하게 견딜 수 있는 의원이 얼마나 될까? 안철수는 자유한국당이 바른정당 탈당파를 받아들이면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당 의원 빼가기를 할 것이고, 이후 국민의당이 30석 정도로 줄어드는 것이야말로 확실하게 소멸하는 길(인터넷 경향신문, 201815)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심지어 반합당파가 독자적으로 신당을 창당하는 경우에도 이후 정치여건(지방선거 결과 등)과 상관없이 꿋꿋하게 독자적인 정당의 목표와 신념을 갖고 자신들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 즉 나는 신당이 변주된 영패세력 간의 적대적 공생이라는 그 큰 구심력을 이겨내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과연 이겨낼 역량이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따라서 안철수가 자신이 아니면 국민의당 (특별히 호남)의원들의 더불어민주당 편향이나 흡수를 막을 수 없다며 반합당파를 의심하는 것, 그 자체는 어느 정도 공감을 한다.

 

한데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정치인들 스스로가 나보다는 더 잘 알 것이다. 정치인이 정치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정치적 신념을 위해 정치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그저 입신양명을 위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목표는 정치적 신념 실현이지만 어쩔 수 없이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 행동을 하면서 끊임없이 변명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떤 길을 가든지 결국 자신의 선택이자 책임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현 국민의당 사태와 같은 격변기에는 자신이 왜 정치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건 결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각자의 실존 문제다.

 

. 무엇을 위해 정치할 것인가?

 

누군가 나는 어느 길을 가든 입신양명을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이고, 이해관계가 모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그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줄 수가 없다. 자신이 자신의 이해관계는 가장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그런 확신이 삶의 좌표라면 그렇게 각자 제 갈 길을 가고 역사의 심판을 기다리면 될 것이다. 다만 내가 정치에 대해 무슨 말인가를 해줄 수 있다면 그건 뭔가 정치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겠다는 정치인에 대한 학자로서의 조언일 것이다. 그 조언은 이런 것이다.

 

영패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정치 후진국 대한민국은 복수정당체제가 아니다. 전국적인 차원에서만 보면 다당제로 보이지만 영호남 사정은 판이하게 다르다. 호남은 2016년 총선을 통해 복수정당체제를 확립해 많은 것을 얻고 있다. 그런데 호남의 복수정당체제는 다시 영패합당이라는 악재를 만나 위기에 처해 있다. 영남도 사실상 일당체제였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복수정당체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불확실하다. 민주국가에 살고 있다는 우리가 지금껏 복수정당제 확립을 고민하는 것이다. 현재의, 나아가 미래의 정치인들이 반드시 목표로 삼아야 하는 과업이 있다면, 그건 전국에 걸친 복수정당제(다당제)확립이다. 우리도 이젠 나라의 성장에 걸 맞는 전국적인 민주정치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선 호남의 경우만 제한적으로 말하자면) 호남에서 복수정당제라는 제도의 확립만을 위해 이념이나 정책이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과 경쟁하며 굳이 복수정당제를 유지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있을 수 있다. 짐작컨대 더불어민주당과 합당해 자유한국당과의 적폐투쟁에 나서는 게 더 의미 있는 일 아니냐는 생각도 일부 있는 듯하다. 정말 국민의당 반합당(신당)파와 더불어민주당은 당장이라도 합당을 해도 좋을 만큼 정체성이 같다고 보는가? 만약 그렇다고 생각하면 안철수의 의심이 분명한 근거가 있다는 말이 된다.

 

정당의 정체성 혹은 정강은 겉보기에 비슷하지만 판이한 속사정을 가질 수도 있고, 겉보기엔 판이하게 다르지만 속사정은 비슷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처럼 위선의 이데올로기가 설치는 나라에선 정당의 겉보기만을 보고, 혹은 진보/중도/보수 차원에서만 정치를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 상기하자면 노무현의 대북송금 특검법수용이 한나라당(유인태)과 영남(추미애)에 대한 선물로 논해지기도 했다. 즉 영패관계가 남북관계까지 지배할 정도의 나라인 것이다. 이런 사정이 지금이라고 크게 다를 것 같은가? 국민의당 반합당(신당)파는 애초 더불어민주당과 왜 결별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친노패권때문이란 용어로 설명됐지만 정확히 얘기하면 친노문 영패 이데올로기때문이었다. 그에 대한 저항을 호남이 지지승인한 것이다. 호남은 반드시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호남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일당독재가 재구축되면 호남은 대한민국 영패 정치체제 속에서 다시 어떤 수모를 당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 정치적 메커니즘의 작동방식을 잊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반합당(신당)파의 정체성이 합당을 필요로 할 만큼 같다고만 생각하는 건 개인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흔들리는 위선일 가능성이 크다. 탄핵사태를 상기해보기 바란다. 오직 국민의당만이 일관되게 탄핵을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명예퇴진 탄핵 기회주의’, 바른정당은 생존을 위한 탄핵민심 수용’, 자유한국당은 탄핵반대세력이 주도했다. 이것이 정확히 현 국면에서 발현된 각 정당의 뿌리 깊은 영패/영패 양비론 기회주의/반영패정체성이다. 반합당(신당)파는 활로를 위해 어떻게든 우선 호남을 설득해야 한다. 그 설득의 명제는 이런 것이다. ‘호남은 민주적으로 공평한 자기 몫을 당당히 얻기 위해 과거의 일당독재 시절이 더 좋았다고 보는가, 아니면 복수정당제에 따른 호남민심 구애 경쟁이 계속되는 것이 더 좋다고 보는가?’ 이 질문과 대답, 그리고 그 입증에 반합당(신당)파의 미래가 달려 있다.

 

우선 시급한 것은 반영패 정신으로 호남을 설득하는 것이겠지만 전국적인 지지호소도 호남의 설득 논리와 별개인 것은 결코 아니다. 대한민국을 민주화시키기 위해 영패와 투쟁해야 하는 것은 단지 호남만의 역사적 숙명이 아니다. 왜 호남만이 그 무거운 역사적 짐을 져야 하는가? 따라서 반합당(신당)파는 무엇보다 민주주의와 평화개혁 정신을 가장 선명하게 실천하고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개헌에 힘을 쏟아 소수당도 대한민국의 모든 패권에 맞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이것만 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이 바뀔 것이다. 여러분들이 확신을 갖고 어렵게 정치를 해서 바로 이 일을 해내는 데 기여했다고 자랑스러워하는 날이 반드시 오기를 바란다.

 

2018110

 

http://www.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68153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8.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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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문재인의 아내 김정숙은 이런 발언을 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김정숙씨는 여자 페미니스트들은 우리(여성들)가 이렇게 많은 걸 했는데 왜 육아의 고통과 책임을 우리만 져야 되느냐. 애는 국가가 보육하고 나는 그걸 떠나서 돈 벌어오면 된다는 식으로 중무장하면서 간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 2017년 1월 19일.

 

여성이라면 여러 의미에서 폐부를 찔린 듯한 아픔을 느낄 것이다.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라도, 논리적으로 반박을 할 수 있든 없든, 직감적으로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켁켁거릴 수밖에 없는 뭔가 모를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김정숙의 발언을 하나하나 헤집듯이 반박할 생각은 없다. 이런 건 내가 아니라도 많은 여성(사람)들이 (하려고만 한다면)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하게 충분히 반박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김정숙의 발언 자체의 함의보다, 이런 거시기한 발언이 정치전략적으로 유용하게 소비되는 대한민국 정치구도에 더 관심이 많다. 그리고 사실 이런 문제는 내가 굳이 따지지 않으면 나서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러니 정말 지겨운 일이지만 이런 글을 쓰는 나를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우선 김정숙의 발언과 관련해 이런 흥미로운 분석기사가 있었는데, 이로부터 얘기를 시작해보자.

 

문재인 전 대표 역시 얼마 전 육아를 전적으로 여성의 몫으로 보고, 워킹맘의 업무시간을 단축하자는 발언으로 논란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 일각에서는 "여성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미래 영부인의 여성관이 이렇다면 표를 주고 싶지 않은[않다는] 말도 나온다. 인터넷 <YTN뉴스>, 2017년 1월 20일.

 

여러분은 내가 이 기사의 어디에서 흥미를 느꼈다고 생각하는가? 바로 이 부분이다. "미래 영부인의 여성관이 이렇다면 표를 주고 싶지 않은[않다는] 말도 나온다"! 이제 퀴즈를 풀어보기 바란다. 분명히 나처럼 흥미로운 부분이 생길 것이다.

 

퀴즈: 문재인을 지지하는 유권자들, 특별히 여성유권자들 중 김정숙의 발언에 반감을 느껴 다른 후보에게 표를 던질 유권자가 몇 명이나 될까?

 

나는 거의 없을 거라고 본다. 있더라도 잃는 표보다 얻는 표가 1표라도 더 많을 거라 본다. 그 한표라도 더 많은 표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았던, 아마도 스스로를 영남패권주의자가 아니라 정상적인 보수라고 합리화하는 유권자가 대세를 이루는 영남에서 1표라도 더 많이 나올 가능성이 가장 높다.

 

아, 뭐 실제론 기대한만큼 별 성과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반지지층적 발언을 하는 캠페인 자체를 결코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 밑져봐야 본전이기 때문이다. 이런 발언을 듣고도 이탈하지 못하는 지지층이 있는데 왜 이런 반지지층적 노력을 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지지층을 배신할수록 1표라도 더 많이 얻을 가능성이 있는데 왜 배신하지 않는단 말인가! 누가 따지기라도 하면 이랬다 저랬다 헷갈리게 만들면 그만인데.

 

자, 이제 대한민국 정치의 기이한 현상을 설명했으니, 그 본질을 들여다 볼 준비가 어느 정도 끝났다. 표는 페미니스트에게서 얻고, 정책은 마초를 위해 펴는 현상! 이런 일이 왜 일어날까? 생각하다보면 어떤 기시감 같은 게 느껴지지 않는가? 그 기시감을 느꼈다면 친노문세력의 비밀을 절반쯤은 푼 셈이다.

 

친노문세력은 영남패권주의 본당 새누리당과의 적대적 공생을 자신들의 존재의 근거로 삼는 집단이다. 그들은 호남에서 표를 얻은 뒤 영남을 위한 정책을 편다. 영남에서 새누리당 지지를 뻿어야 하므로! 그들은 페미니스트에게서 표를 얻은 뒤 마초를 위한 정책을 편다. 영남 마초에게서 새누리당 지지를 뺏어야 하므로! 그들은 노동자에게서 표를 얻은 뒤 재벌을 위한 정책을 편다. 영남 재벌을 위한 새누리당 지지를 뺏어야 하므로!

 

난 "표를 얻은 뒤"라고 표현했다. 한데 호남, 여성, 노동자 등이 표를 주기 전에 뭔가를 깨달을 수도 있다. 바로 그 순간 캠페인은 유권자에 대한 호소가 아니라 '겁박!'으로 바뀐다. "문재인을 안 찍겠다고! 그럼 너는 새누리당을 돕는 반민주세력이다. 새누리당 에비~! 새누리당 안 무서워? 푸하하하" 이렇게 해서 민주세력은 반동적 인질이 되고, 영남과 적대적 공생을 하며 민주세력의 표를 강탈하는 반동적인 친노문은 역사를 구하는 민주세력으로 전도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어떤 정치세력이 적대적 공생의 영남패권주의세력인 친노문의 이런 반동적 겁박에 굴복하지 않고 민주적 주관을 가진 자주적 결사체를 도모하면 어떻게 될까? 이미 수십 년 동안 충분히 봐왔지 않은가? 그런 자주적인 반영남패권주의 결사체는 하루 아침에 반민주적 지역당(호남당)으로 몰린다. 그렇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여성당이 되고, 노동당이 되고, 천하에 둘도 없는 퇴행적 집단으로 이데올로기적 조롱을 받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영남패권주의 정치체제의 비밀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모든 정치적 이성, 즉 지역적, 성적, 계급적 이성이 영남패권주의 체제에 굴복하며 함몰되는 근원적 이유다. 이런 복마전 속에서 그럭저럭 비굴하게 살아남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친노문세력의 푸들 정당으로 살아가면 된다. 예컨대 스스로 진보연하는 정의당이 친노문세력의 눈치만 보는 위성정당으로 살아가는 비굴한 처세술을 관찰해보라.

 

하물며 대중들이 개인적으로 이런 영남패권주의의 인질 상태를 벗어나려고 상상하는 건 얼마나 두렵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새누리당과 '적대적 공생'을 해온 짝패 영남패권주의세력인 친노문을 대통령으로 망상하라는 윽박에 순응하며 그저 끌려다닌다. 표면적으로는 분명히 그렇게 보인다.

 

친노문세력은 지금 시대의 완장을 차고 있다. 폭주하는 그들은 겁박당한 민심의 표면적 상황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그 만행에 재미 들린 그들은 대한민국 영남패권주의의 현실적 작동 메커니즘인 '적대적 공생' 체제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예찬한다. 그렇게 그 '적대적 공생' 체제를 뒷받침해주는 현 영남패권주의 헌법은 부끄럽게 수명이 연장돼가고 있다.

 

   

나는 지금 대한민국 백성들의 직관적 경험이 폭발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 경험적 폭발이 하늘에 닿을 날이 머잖아 반드시 올 것이다. 나는 민주주의를 위한 개헌이 그 역사적 귀착점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민주적 개헌으로 소수자, 약자도 반민주적 영남패권주의세력에 질식되지 않고 숨을 쉴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와야만 하지 않겠는가? 그날이 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역사를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7.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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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진명이 결국 천기누설을 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내 모임 '더 좋은 미래' 주최 강연회에서 원내대표 우상호 등 현역 의원 15명을 상대로 그들의 내년 대선에 관해, 아니 이 땅의 정치에 대해 차마 못 할 소리를 입밖에 내버리고 말았다. 우선 들어보자.

 

새누리당의 분당 가능성도 정권교체에 큰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새누리당이 붙어있으면 민주당에 매우 유리하지만 새누리당이 찢어져 나가면서 비박이 반 총장 등 쪽으로 가면 (판세가) 민주당에 쉽지만은 않다민주당에서 새누리당이 쪼개지지 않게 관리하는 것도 사실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인터넷 <한국일보>, 2016년 12월 19일.

 

"민주당에서 새누리당이 쪼개지지 않게 관리"? 자신들의 집권을 위해서? 나는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의 '적대적 공생'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면서도 이렇게까지 대놓고 막나갈 줄은 몰랐다. '더 좋은 미래'라고? 새누리당과 적대적으로 공생하는 미래가 지금보다 더 좋은 미래인가?

 

나는 새누리당이 해체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성찰하는 세력이 밖으로 나와 쪼개지기를 바란다. 나온 세력은 자신들의 성찰적 입장에 따라 새 정당을 만들든, 다른 당과 연대를 하든, 지지자들이 미래지향적으로 승인할 경우 다른 당과 통합을 하든, 개별적으로 다른 당에 입당을 하든, 다방면으로 활로를 모색하기 바란다. 그리고 남아 있는 세력은 시간과 함께 새누리당을 안고 고사되기를 바란다. 이렇게 '영남 있는 민주화'를 바라고 촉구하는 것이 개혁적인 생각이 일말이라도 있는 사람의 정상적인 사고 아닌가?

 

다음은 국민의당 천정배의 발언이다. 김진명의 '적대적 공생' 발언과 비교해보기 바란다.

 

이제 새누리당의 합리적 개혁적 인사들은 정말로 결단을 내려 새누리당을 나와야 한다. 이제껏 저질러온 잘못에 대해 국민들께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고 한시라도 빨리 새누리당과 의절해야한다. https://twitter.com/jb_1000, 2016년 12월 16일.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은 자신들의 집권을 위해서, '적대적 공생'이 필요하므로, 새누리당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백주대낮에 이런 소리를 듣고 앉아 있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란 사람들이 한심하다. 그들이 '개혁성향의 모임'이라고? 이 나라의 개혁성향이란 게 부끄럽다.

 

나는 친노에게도 인간의 양심이란 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스스로 친노라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누구라도 대답해보기 바란다. 바로 그런 탐욕적 꼼수 때문에 친노세력은 새누리당 해체가 아니라면 하다못해 성찰적 세력이 새누리당 밖으로 나와야 한다고 촉구하는 것을 그렇게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건가? 그래서 걸핏하면 밑도 끝도 없이 아무데(한테)나 대고 '새누리당 2중대'라는 노래를 불렀는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우상호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으니 이에 대해 반드시 해명하기 바란다. '적대적 공생'론은 노무현의 '양대산맥'론을 계승하는 더불어민주당의 공식 입장인가? 대놓고 말하는 공식 입장은 아니어도 굳이 감출 것 없는 자랑스러운 이데올로기인가? 자랑은 못 해도 세상을 속이면서 집권하기 위한 부끄러운 이데올로기인가? 그게 아니면 김진명 개인적인, 아니 친노라면 누구나 함께 공감하는 위선적 정치공학인가?

 

만약 '적대적 공생'론이 부끄러운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더불어민주당은 지금이라도 새누리당의 해체, 최소한 분열을 촉구하기 바란다. 그리고 탈 새누리당 의원들이, 즉 새누리당을 지지했던 영남인들이 새로운 정치를 모색하기를 촉구하기 바란다.

 

작가 김진명도 그런 3류소설 같은 하질의 정치공학만을 늘어놓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박수를 받으며 좋아할 일이 아니다. 나라의 미래를 생각해 생각이 닿는데까지 뭐가 잘못됐는지 한번 성찰해보기 바란다. 더불어민주당의 집권을 위해 온전한 새누리당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역겹다!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6.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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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3일, 새누리당 비주류 비상시국위원회 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김무성은 이런 '내부고발'을 했다.

 

당을 해체하면 그 재산은 모두 국고에 귀속이 됩니다. 현재 새누리당 재산이 얼마인가 저희가 알아보지는 않았습니다마는 시도당 건물과 그도 빚이 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마는 그러한 재산들이 조금 있는 것 같은데 이 또한 과거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에 재벌들을 등쳐서 형성한 재산이라는 점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국가에다 헌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터넷 <YTN 뉴스>, 2016년 12월 13일.

 

새누리당이 전두환 쿠데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건 천하가 다 아는데 이게 내부고발이라고? 뭐, 좀 민망한 내부고발이긴 하다. 그래도 내 귀엔 내부고발처럼 들린다.

 

정치적으로 말해 당의 재산 연혁이 그 당의 뿌리를 직접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1997년 신한국당이 민주당과 합당하면서 김대중의 마포민주당사를 넘겨받았다고 해서, 새누리당의 뿌리가 정치적으로 그 마포민주당사 가격만큼 민주당에 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새누리당 재산 연혁의 경우에 전두환 살인정권의 돈이 그 뿌리라면 새누리당이 정치적으로 전두환 살인정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결정적 방증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묻건대, 지금까지 김무성 말고 새누리당의, 혹은 새누리당을 탈당한 어떤 유명 정치인이 새누리당의 뿌리가 전두환 살인정권임을 '돈 얘기'로 고발한 적이 있었는가?

 

김무성은 새누리당의 정체성을 고발하고 그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한 셈이다. 탈당 혹은 새누리당 해체요구의 예비 단계로 보인다. 한데 김무성뿐만 아니라 새누리당 비박세력이 정말 그럴 준비를 하고 있다면 더 성찰해야 한다. 자신들이 그동안 그런 정당에 소속돼 대한민국 국정을 농단해왔던 이력을 인정하고, 역사적 자숙기간을 거쳐야 한다.

 

특별히 김무성은 밑도 끝도 없이 습관적인 선전공세로 '좌파' 운운하는 사고방식은 '리셋'하기 바란다. 김무성이 새누리당식으로 생각하는 좌파는 좌파가 아니다. 더군다나 나는 대한민국에 정상적인 좌파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있다면 영남패권주의에 침묵하거나, 투항하는 사이비 좌파, 영남좌파만이 존재할 뿐이다. 공부하기 바란다. 그것이 새출발하는 길이다.

 

 

돈 얘기를 하려다 보니 생각나는 과거사가 있다. 전두환은 새누리당에 '검은 돈'을 '재산'으로 남겼다는데, 민주당을 부정하고 열린우리당을 만들어 탈당한 노무현은 민주당에 재산은커녕 '검은 돈'을 '부채'로 남겼다. 다음은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손석희와 열린우리당 최규성 사무처장이 나눈 대화다. 음미해보기 바란다.

 

손 앵커는 대선 때 받은 불법자금의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 이상이 나오면 대통령직을 걸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이른바 '10분의 1 발언'을 거론한 후 "그 액수에 대해서 파악을 안 하고 있다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최 의원은 "그 액수는 새천년민주당의 불법자금이다. 열린우리당은 새천년민주당의 자산과 부채를 승계한 당이 아니다"고 대답하고 새천년민주당에서 요구하고 있는 대선빚 변제 문제에 대해서도 "그런 빚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터넷 <한국일보>, 2005년 3월 25일. 

 

약 10여일 뒤 민주당 대변인 유종필은 'CBS(FM) 레이다 초대석'에 출연해 대한민국의 거의 아무도 진지한 관심이 없던 그 억울한 '돈 문제'에 대해 이렇게 하소연했다.

 

결론적으로 대선 빚이 44억원이 있는데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당 의원들이 탈당해 나갈 때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과 또 대선 자금이 적혀있는 대선 장부, 그리고 쓰고 남은 대선 잔금까지 돈 되는 것은 전부 패키지로 싸가지고 나갔어요.

민주당에 남긴 것은 대선 빚 44억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연수원도 팔고 당사도 정리하고 또 사무처 직원도 대부분 다 해고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해결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리고 또 노무현 대통령 홍보물 만드는 회사가 차압을 붙여서 지금도 선관위에서 나오는 돈을 떼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차압부채는 또 회사도 김원기 국회의장의 동생으로 저희가 알고 있습니다. <노컷뉴스>, 2005년 4월 5일.

 

뭐, 이런 저런 관련 사연들이 많이 있지만, 구차하기 짝이 없는 지난 돈 문제를 더 이상 상세하게 듣고 싶지 않은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만 생략한다. 그 돈은 결국 어떻게 됐을까? 열린우리당을 흡수한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통합이 있었고, 그 대선 빚은 허공을 맴돌다 결국 '도로 민주당'의 빚으로 귀의했다.

 

  

 

근데 내가 애초 무슨 얘기를 하려 했는지…, 잘 모르겠다. 전두환이 재벌들에게 강탈한 돈이 새누리당의 돈이라면 그 돈은 결국 노동자들을 착취해서 만들어진 돈인데, 그 돈을 다시 노동자들 착취하는 데 투입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착취를 한다능…? 아님 노무현의 대선 불법자금은 민주당이 받았으므로, 열린우리당은 완벽하게 깨끗하다는 법리적 주장은 '노벨 법학상'을 줘야 한다능…?

 

아,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났다. 자본주의 정치에서 돈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돈이야말로 아주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예컨대 누군가 대한민국을 살릴 만한 훌륭한 정치 인재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전두환만큼 돈이 없어 정당을 만들 수가 없다거나, 노무현처럼 불법·합법 대선자금을 떼먹을 자신이 없어 대통령에 출마하지 못 할 수도 있다고 상상해보라. 불공정 경쟁 아닌가?

 

누가 모르냐고? 그럼 민주주의를 돈의 지배로부터 최대한 방어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새누리당을 해체하도록 압박하고, 역사의 피 묻은 당 재산을 국고에 귀속시키도록 만들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돈에 의해 결정적으로 지배받는다는 것을 잘 안다면, 국민 모두가 그렇게 할 것을 우선 요구해야 한다.

 

 

아놔 근데, 이 진지한 순간에 뜬금없이 '돈의 화신' 이명박이 아른거리는 걸 어쩌란 말인가? 내 무의식은 알고 있는 것이다. '돈과 정치의 상호관계'에 대해 이명박만큼 우리에게 깊은 영감을 준 정치인이 또 없었다는 것을! 웃지 말고, 다음 발언을 진지하게 감상해보라. 얼른 듣기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이런 경지는 아무나 쉽게 도달할 수 있는 지경이 아니다.

 

1만 명의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 <조선닷컴>, 2008년 5월 31일.

 

이 글을 정치경제철학적으로 나름 멋있게 끝내고 싶었는데, 갑자기 말끝이 막힌다. 잘 나가다가 착지에서 망한 것 같다. 이럴려고 글을 썼는지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 이게 다 박근혜…, 아니 이명박 때문이다.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6.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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