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3일, 새누리당 비주류 비상시국위원회 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김무성은 이런 '내부고발'을 했다.

 

당을 해체하면 그 재산은 모두 국고에 귀속이 됩니다. 현재 새누리당 재산이 얼마인가 저희가 알아보지는 않았습니다마는 시도당 건물과 그도 빚이 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마는 그러한 재산들이 조금 있는 것 같은데 이 또한 과거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에 재벌들을 등쳐서 형성한 재산이라는 점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국가에다 헌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터넷 <YTN 뉴스>, 2016년 12월 13일.

 

새누리당이 전두환 쿠데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건 천하가 다 아는데 이게 내부고발이라고? 뭐, 좀 민망한 내부고발이긴 하다. 그래도 내 귀엔 내부고발처럼 들린다.

 

정치적으로 말해 당의 재산 연혁이 그 당의 뿌리를 직접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1997년 신한국당이 민주당과 합당하면서 김대중의 마포민주당사를 넘겨받았다고 해서, 새누리당의 뿌리가 정치적으로 그 마포민주당사 가격만큼 민주당에 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새누리당 재산 연혁의 경우에 전두환 살인정권의 돈이 그 뿌리라면 새누리당이 정치적으로 전두환 살인정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결정적 방증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묻건대, 지금까지 김무성 말고 새누리당의, 혹은 새누리당을 탈당한 어떤 유명 정치인이 새누리당의 뿌리가 전두환 살인정권임을 '돈 얘기'로 고발한 적이 있었는가?

 

김무성은 새누리당의 정체성을 고발하고 그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한 셈이다. 탈당 혹은 새누리당 해체요구의 예비 단계로 보인다. 한데 김무성뿐만 아니라 새누리당 비박세력이 정말 그럴 준비를 하고 있다면 더 성찰해야 한다. 자신들이 그동안 그런 정당에 소속돼 대한민국 국정을 농단해왔던 이력을 인정하고, 역사적 자숙기간을 거쳐야 한다.

 

특별히 김무성은 밑도 끝도 없이 습관적인 선전공세로 '좌파' 운운하는 사고방식은 '리셋'하기 바란다. 김무성이 새누리당식으로 생각하는 좌파는 좌파가 아니다. 더군다나 나는 대한민국에 정상적인 좌파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있다면 영남패권주의에 침묵하거나, 투항하는 사이비 좌파, 영남좌파만이 존재할 뿐이다. 공부하기 바란다. 그것이 새출발하는 길이다.

 

 

돈 얘기를 하려다 보니 생각나는 과거사가 있다. 전두환은 새누리당에 '검은 돈'을 '재산'으로 남겼다는데, 민주당을 부정하고 열린우리당을 만들어 탈당한 노무현은 민주당에 재산은커녕 '검은 돈'을 '부채'로 남겼다. 다음은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손석희와 열린우리당 최규성 사무처장이 나눈 대화다. 음미해보기 바란다.

 

손 앵커는 대선 때 받은 불법자금의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 이상이 나오면 대통령직을 걸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이른바 '10분의 1 발언'을 거론한 후 "그 액수에 대해서 파악을 안 하고 있다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최 의원은 "그 액수는 새천년민주당의 불법자금이다. 열린우리당은 새천년민주당의 자산과 부채를 승계한 당이 아니다"고 대답하고 새천년민주당에서 요구하고 있는 대선빚 변제 문제에 대해서도 "그런 빚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터넷 <한국일보>, 2005년 3월 25일. 

 

약 10여일 뒤 민주당 대변인 유종필은 'CBS(FM) 레이다 초대석'에 출연해 대한민국의 거의 아무도 진지한 관심이 없던 그 억울한 '돈 문제'에 대해 이렇게 하소연했다.

 

결론적으로 대선 빚이 44억원이 있는데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당 의원들이 탈당해 나갈 때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과 또 대선 자금이 적혀있는 대선 장부, 그리고 쓰고 남은 대선 잔금까지 돈 되는 것은 전부 패키지로 싸가지고 나갔어요.

민주당에 남긴 것은 대선 빚 44억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연수원도 팔고 당사도 정리하고 또 사무처 직원도 대부분 다 해고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해결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리고 또 노무현 대통령 홍보물 만드는 회사가 차압을 붙여서 지금도 선관위에서 나오는 돈을 떼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차압부채는 또 회사도 김원기 국회의장의 동생으로 저희가 알고 있습니다. <노컷뉴스>, 2005년 4월 5일.

 

뭐, 이런 저런 관련 사연들이 많이 있지만, 구차하기 짝이 없는 지난 돈 문제를 더 이상 상세하게 듣고 싶지 않은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만 생략한다. 그 돈은 결국 어떻게 됐을까? 열린우리당을 흡수한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통합이 있었고, 그 대선 빚은 허공을 맴돌다 결국 '도로 민주당'의 빚으로 귀의했다.

 

  

 

근데 내가 애초 무슨 얘기를 하려 했는지…, 잘 모르겠다. 전두환이 재벌들에게 강탈한 돈이 새누리당의 돈이라면 그 돈은 결국 노동자들을 착취해서 만들어진 돈인데, 그 돈을 다시 노동자들 착취하는 데 투입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착취를 한다능…? 아님 노무현의 대선 불법자금은 민주당이 받았으므로, 열린우리당은 완벽하게 깨끗하다는 법리적 주장은 '노벨 법학상'을 줘야 한다능…?

 

아,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났다. 자본주의 정치에서 돈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돈이야말로 아주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예컨대 누군가 대한민국을 살릴 만한 훌륭한 정치 인재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전두환만큼 돈이 없어 정당을 만들 수가 없다거나, 노무현처럼 불법·합법 대선자금을 떼먹을 자신이 없어 대통령에 출마하지 못 할 수도 있다고 상상해보라. 불공정 경쟁 아닌가?

 

누가 모르냐고? 그럼 민주주의를 돈의 지배로부터 최대한 방어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새누리당을 해체하도록 압박하고, 역사의 피 묻은 당 재산을 국고에 귀속시키도록 만들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돈에 의해 결정적으로 지배받는다는 것을 잘 안다면, 국민 모두가 그렇게 할 것을 우선 요구해야 한다.

 

 

아놔 근데, 이 진지한 순간에 뜬금없이 '돈의 화신' 이명박이 아른거리는 걸 어쩌란 말인가? 내 무의식은 알고 있는 것이다. '돈과 정치의 상호관계'에 대해 이명박만큼 우리에게 깊은 영감을 준 정치인이 또 없었다는 것을! 웃지 말고, 다음 발언을 진지하게 감상해보라. 얼른 듣기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이런 경지는 아무나 쉽게 도달할 수 있는 지경이 아니다.

 

1만 명의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 <조선닷컴>, 2008년 5월 31일.

 

이 글을 정치경제철학적으로 나름 멋있게 끝내고 싶었는데, 갑자기 말끝이 막힌다. 잘 나가다가 착지에서 망한 것 같다. 이럴려고 글을 썼는지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 이게 다 박근혜…, 아니 이명박 때문이다.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6.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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