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문재인의 아내 김정숙은 이런 발언을 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김정숙씨는 “여자 페미니스트들은 우리(여성들)가 이렇게 많은 걸 했는데 왜 육아의 고통과 책임을 우리만 져야 되느냐. 애는 국가가 보육하고 나는 그걸 떠나서 돈 벌어오면 된다는 식으로 중무장하면서 간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 2017년 1월 19일.
여성이라면 여러 의미에서 폐부를 찔린 듯한 아픔을 느낄 것이다.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라도, 논리적으로 반박을 할 수 있든 없든, 직감적으로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켁켁거릴 수밖에 없는 뭔가 모를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김정숙의 발언을 하나하나 헤집듯이 반박할 생각은 없다. 이런 건 내가 아니라도 많은 여성(사람)들이 (하려고만 한다면)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하게 충분히 반박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김정숙의 발언 자체의 함의보다, 이런 거시기한 발언이 정치전략적으로 유용하게 소비되는 대한민국 정치구도에 더 관심이 많다. 그리고 사실 이런 문제는 내가 굳이 따지지 않으면 나서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러니 정말 지겨운 일이지만 이런 글을 쓰는 나를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우선 김정숙의 발언과 관련해 이런 흥미로운 분석기사가 있었는데, 이로부터 얘기를 시작해보자.
문재인 전 대표 역시 얼마 전 육아를 전적으로 여성의 몫으로 보고, 워킹맘의 업무시간을 단축하자는 발언으로 논란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 일각에서는 "여성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미래 영부인의 여성관이 이렇다면 표를 주고 싶지 않은[않다는] 말도 나온다. 인터넷 <YTN뉴스>, 2017년 1월 20일.
여러분은 내가 이 기사의 어디에서 흥미를 느꼈다고 생각하는가? 바로 이 부분이다. "미래 영부인의 여성관이 이렇다면 표를 주고 싶지 않은[않다는] 말도 나온다"! 이제 퀴즈를 풀어보기 바란다. 분명히 나처럼 흥미로운 부분이 생길 것이다.
퀴즈: 문재인을 지지하는 유권자들, 특별히 여성유권자들 중 김정숙의 발언에 반감을 느껴 다른 후보에게 표를 던질 유권자가 몇 명이나 될까?
나는 거의 없을 거라고 본다. 있더라도 잃는 표보다 얻는 표가 1표라도 더 많을 거라 본다. 그 한표라도 더 많은 표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았던, 아마도 스스로를 영남패권주의자가 아니라 정상적인 보수라고 합리화하는 유권자가 대세를 이루는 영남에서 1표라도 더 많이 나올 가능성이 가장 높다.
아, 뭐 실제론 기대한만큼 별 성과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반지지층적 발언을 하는 캠페인 자체를 결코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 밑져봐야 본전이기 때문이다. 이런 발언을 듣고도 이탈하지 못하는 지지층이 있는데 왜 이런 반지지층적 노력을 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지지층을 배신할수록 1표라도 더 많이 얻을 가능성이 있는데 왜 배신하지 않는단 말인가! 누가 따지기라도 하면 이랬다 저랬다 헷갈리게 만들면 그만인데.
자, 이제 대한민국 정치의 기이한 현상을 설명했으니, 그 본질을 들여다 볼 준비가 어느 정도 끝났다. 표는 페미니스트에게서 얻고, 정책은 마초를 위해 펴는 현상! 이런 일이 왜 일어날까? 생각하다보면 어떤 기시감 같은 게 느껴지지 않는가? 그 기시감을 느꼈다면 친노문세력의 비밀을 절반쯤은 푼 셈이다.
친노문세력은 영남패권주의 본당 새누리당과의 적대적 공생을 자신들의 존재의 근거로 삼는 집단이다. 그들은 호남에서 표를 얻은 뒤 영남을 위한 정책을 편다. 영남에서 새누리당 지지를 뻿어야 하므로! 그들은 페미니스트에게서 표를 얻은 뒤 마초를 위한 정책을 편다. 영남 마초에게서 새누리당 지지를 뺏어야 하므로! 그들은 노동자에게서 표를 얻은 뒤 재벌을 위한 정책을 편다. 영남 재벌을 위한 새누리당 지지를 뺏어야 하므로!
난 "표를 얻은 뒤"라고 표현했다. 한데 호남, 여성, 노동자 등이 표를 주기 전에 뭔가를 깨달을 수도 있다. 바로 그 순간 캠페인은 유권자에 대한 호소가 아니라 '겁박!'으로 바뀐다. "문재인을 안 찍겠다고! 그럼 너는 새누리당을 돕는 반민주세력이다. 새누리당 에비~! 새누리당 안 무서워? 푸하하하" 이렇게 해서 민주세력은 반동적 인질이 되고, 영남과 적대적 공생을 하며 민주세력의 표를 강탈하는 반동적인 친노문은 역사를 구하는 민주세력으로 전도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어떤 정치세력이 적대적 공생의 영남패권주의세력인 친노문의 이런 반동적 겁박에 굴복하지 않고 민주적 주관을 가진 자주적 결사체를 도모하면 어떻게 될까? 이미 수십 년 동안 충분히 봐왔지 않은가? 그런 자주적인 반영남패권주의 결사체는 하루 아침에 반민주적 지역당(호남당)으로 몰린다. 그렇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여성당이 되고, 노동당이 되고, 천하에 둘도 없는 퇴행적 집단으로 이데올로기적 조롱을 받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영남패권주의 정치체제의 비밀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모든 정치적 이성, 즉 지역적, 성적, 계급적 이성이 영남패권주의 체제에 굴복하며 함몰되는 근원적 이유다. 이런 복마전 속에서 그럭저럭 비굴하게 살아남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친노문세력의 푸들 정당으로 살아가면 된다. 예컨대 스스로 진보연하는 정의당이 친노문세력의 눈치만 보는 위성정당으로 살아가는 비굴한 처세술을 관찰해보라.
하물며 대중들이 개인적으로 이런 영남패권주의의 인질 상태를 벗어나려고 상상하는 건 얼마나 두렵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새누리당과 '적대적 공생'을 해온 짝패 영남패권주의세력인 친노문을 대통령으로 망상하라는 윽박에 순응하며 그저 끌려다닌다. 표면적으로는 분명히 그렇게 보인다.
친노문세력은 지금 시대의 완장을 차고 있다. 폭주하는 그들은 겁박당한 민심의 표면적 상황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그 만행에 재미 들린 그들은 대한민국 영남패권주의의 현실적 작동 메커니즘인 '적대적 공생' 체제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예찬한다. 그렇게 그 '적대적 공생' 체제를 뒷받침해주는 현 영남패권주의 헌법은 부끄럽게 수명이 연장돼가고 있다.
나는 지금 대한민국 백성들의 직관적 경험이 폭발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 경험적 폭발이 하늘에 닿을 날이 머잖아 반드시 올 것이다. 나는 민주주의를 위한 개헌이 그 역사적 귀착점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민주적 개헌으로 소수자, 약자도 반민주적 영남패권주의세력에 질식되지 않고 숨을 쉴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와야만 하지 않겠는가? 그날이 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역사를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7. 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