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패권주의란?

 

나는 현대적 의미의 영남패권주의를 영남인들이 폭압적인 정치권력을 통해 호남인들을 차별·배제하는 전략으로 전국적 규모의 경제적 지배관계를 확대재생산하고 이러한 지역적 지배관계에 대해 사회·문화적인 차원에서 은밀하게 이데올로기적 동의를 얻어내는 극우 헤게모니라고 이해한다. 33쪽.

 

위 정의(定義)는 다소의 보완설명이 필요하다.

 

1987년 6월 항쟁을 분수령으로 '폭압적인 정치권력=영남파시즘' 체제는 '이데올로기적 동의=민주화 이후의 영남패권주의' 체제로 이행해왔다. 이 이행에서 특히 주목할 사실은 노무현의 집권이다. 나는 노무현 이데올로기를 '은폐된 투항적 영남패권주의'로 규정했는데, 이 노무현 시대 이후 이른바 개혁·진보 진영까지 '이데올로기적 동의'를 바탕으로 영남패권주의 체제를 자발적으로 승인한다. 이제 그들은 새누리당의 존재를 겉(이념적)으로는 반민주의 상징으로 설정하지만, 속(현실적)으로는 그저 호남(인)에서의 득표를 위한 겁박수단으로 이용할 뿐이다.

 

그 미래를 현실적인 차원에서 다시 예단하면 이렇다. 친노가 주축이 된 개혁·진보 세력은 이제 골백번을 집권해도 노무현이 집권 전 약속했던 '새누리당(한나라당) 해체'를 실현할 수 없다. 노무현 이데올로기를 추종하는 그들은 대연정 제안을 계기로 '새누리당 승인'을 했던 노무현 이데올로기에 따라 투항적 영남패권주의 이데올로기를 실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그 경우 그들은 노무현(이데올로기와 실천적 행위)을 역사적으로 탄핵해야 하는데, 나는 노무현을 종교적으로 추종하는 그들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제 플랜B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단기적인 새누리당의 해체가 아니라 장기적인 새누리당의 고사다. 비박이 새누리당 바깥으로 나오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분권형 대통령제나 내각제 개헌이 정치공학적 매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공학이 앞서는 것으로 보이는 이 개헌의 경우라도 독일식 비례대표제의 관철만 할 수 있다면 민주주의는 결정적으로 전진할 것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는 새누리당 박근혜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친박 이정현의 정국구상과는 성질이 완전히 다르다. 호남출신인 그가 전두환의 정당 새누리당에 대한 호남의 역사적 승인을 강요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하긴 뭐, 노무현의 '새누리당 승인' 제안까지 경험한 이제 와서 더 못 볼꼴이 뭐가 있겠는가? 오히려 새삼 슬픈 일은 노무현의 대연정 제안은 시치미 뚝 떼고 이정현의 영호남 연정모색만 무슨 반동처럼 생각하는 친노의 음습한 습성이다.

 

플랜B가 불가능하다면 이제 플랜C(사실 이는 플랜이랄 것도 없다)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호남도 새누리당을 승인하고, 그저 모든 정당의 정책만을 평가하며 마치 역사 속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사는 것이다.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계층·계급적 정책투표를 해야 한다며 횡설수설하는 이른바 지식교양인들이 원하는 바로 그 모습이다. 그들이 호남에서 완벽하게 지역주의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모습은 호남이 완벽하게 전국 평균 지지율로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모습이다. 위선이 아닌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그렇다는 의미다.

 

친노의 우상 노무현은 '선한 의도를 가진 악한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어쩌면 악한 결과를 합리화하며), 그런 역사적 퇴행을 꿈꿨다. 민주당을 부정하고 열린우리당을 만들면 영남도 자신의 '선한 의도'를 이해할 거라고. 그래서 허깨비처럼 실체 없는 '영호남지역주의'가 눈 녹듯 사라질 거라고. 하지만 노무현은 영남에 그런 식으로 어처구니없이 정의를 구걸하다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참담한 실패를 역사의 유산으로 남겼다.

 

이제 호남은 노무현의 그 퇴행적 영남패권주의 역사관을 떠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최악인 것은 노무현의 그런 퇴행적 영남패권주의 역사관을 치켜들고 실패를 부정하며 끈질기게 발호하는 친노다. 그들은 역사의 가시밭길에서 흔히 마주하는, 피할 수 없는, 그래서 너무나 익숙한, 아닌 척하며 가시덤불을 위장해주는 가시덤불의 위선적 도우미들이다. 달리 어찌할 것인가? 호남은 가시밭길을 장식하는 이 역사의 덤터기를 숙명적으로 극복해야만 한다.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6.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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