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종, 히데요시 -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도키치로는 노부나가를 주군으로 모시는 데 성공했다. 그의 처지에서 보면 노부나가는 그가 사무라이로 출세해 일국의 성주가 되겠다는 그의 야심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조금은 위험한 도박이었지만 그의 계략이 계획대로 적중한 것이다. 때는 1554, 도키치로 나이 열일곱이었다. 도키치로는 성내에 머무는 것은 허락되었지만, 주군인 노부나가에게 범접도 할 수 없는 말단 시종으로, 온갖 잡일을 처리하는 신분이었다. 그러나 어떤 일이 맡겨져도 싫은 내색 없이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 그러면서도 주군인 노부나가의 성격과 사고, 그리고 그릇 등을 살피기 위해 많은 정보를 모았다. 


‘생각대로 재미있는 주군이다. 내가 생각하던 그대로다. 잘만 하면 여기서는 사무라이로 출세할 수 있다. 


그는 냉정하게 노부나가라는 인물을 정확히 꿰뚫어 간파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눈치 하나로 살아온 도키치로였다. 하나를 보면 열을 미루어 짐작할 줄 알았다. 어린 시절에 겪은 그의 경험은 그의 삶의 방향과 행동양식을 결정하는 바탕이 되었다. 성내에서 기반이 약한 그는 우선 다른 사람의 신뢰와 인덕을 쌓는데 전념했다. 그래서 남의 일을 내일처럼 했다. 궂은 일 마른일 가리지 않았다. 시키지 않는 일도 알아서 척척 해냈다. 게다가 특유의 붙임성이 있었다. 성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료들이나 상관인 가신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칭찬이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였다. 


“여자라면 스루가 여인이 최고지! 
“그게 뭔 말이야? 스루가 여인네들은 도도하다고 소문이 자자 하던데. 
“도도하긴 뭐가 도도해. 내가 스루가에 있을 때, 처음에는 바늘 장사를 했지. 그런데 아낙들이 얼마나 사치를 좋아하는지 방물만 보면 환장을 하더라고. 그래서 방물을 취급하기 시작했지. 내가 옥가락지 같은 방물을 가지고 가기만 하면 주변 아낙들이 거짓말 조금 보태 마치 개미떼처럼 모이더라니까. 그리고 말이야, 돈이 없는 아낙들은 나를 보면서 눈을 게슴츠레 뜨고 코맹맹이 소리로 말을 걸면서 추파를 던지고 암튼 별 짓을 다하더구먼. 아이고 내가 나이가 어려 다행이었지, 나이만 조금 있었으면 스루가 여자들은 남아나질 않았을 거라고. 아무튼 스루가 여자들은 사치가 아주 심하고, 헤픈 것 같아. 옥가락지나 비녀 하나만 가지고 가면 ‘아마 날 잡아 잡수’ 하는 여자들이 수두룩할 걸. 
“정말이야? , 언젠가 한번 가봐야겠는 걸. 


사람들이 모여 잡담을 나눌 때면, 그는 항상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오랫동안 바늘 행상을 하면서 수집한 정보와 직접 체험한 경험을 잘 섞어 때로는 진실하게, 때로는 과장을 해가면서 듣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다. 


“생긴 것하곤 다르게 말을 참 재미있게 하는군.
“도키치로는 나이는 어리지만 경험이 많고 게다가 행상으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견문을 넓혀 모르는 것이 없어. 타 지역에 대해서도 아주 박식하고 말이야. 얼굴은 비록 원숭이를 닮았지만, 열사람 이상의 몫을 하는 친구야.


그는 자신만이 지니고 있는 경험과 장점을 최대한 살려 노력하면서, 조금씩 주변 사람의 신망을 얻었다. 모든 것은 철저한 계획이었다. 자연스레 시간이 흐르면서 동료들뿐만 아니라 노부나가 주변에 있는 하급 가신들의 입에서도 그에 대한 이야기가 오르내렸다. 이와 같은 피나는 노력이 있어, 그가 성으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성 밖 출입이 허용되었다. 첩자라는 의심이 풀린 것이었다. 신분은 여전히 말단 시종이었다. 상관인 가신의 명이 있으면 장터에 나가 성내에서 필요로 하는 자잘한 물자를 구입하는 일을 주로 했다. 오랫동안 행상을 경험한 그였다. 시장의 구조와 상인들의 생리를 잘 알고 있었다. 경험을 통해 좋은 물건을 싸게 구입하여 판매하여야 이문이 많이 남는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고, 또 그 방법도 숙지하고 있던 그였다. 그러니 그로서는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이요, 게다가 성의 물품을 구매하는 처지였으니 용이 날개를 얻은 것과 진배없었다. 그의 수완 덕분에 성내에서는 이전보다 힘들이지 않고 필요한 물자를 쉽게 그리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다. 


‘도키치로와 함께 장터에 가면 물건 구입이 쉽고 비용도 적게 든다.


그의 수완 덕에 점차 성의 재정이 이전보다 많이 절약되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눈치 빠르고 영악한 도키치로는 구매자의 지위를 이용하여 상인들에게 뇌물을 받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뇌물로 가신들의 주머니를 채워 주었다. 가신들은 이전보다 구매품의 질이 좋아지고 비용도 절감되자, 당연히 영주에게 칭찬을 들었다. 재정을 아낀 공로로 영주에게는 능력을 인정받고, 자신의 호주머니도 불룩해지니, 이거야 말로 ‘꿩 먹고 알 먹기’였다. 그의 수완이 소문이 되어 가신들은 모두 그와 함께 장터에 나가길 원했고, 무슨 일만 있으면 우선 그를 찾았다. 도키치로는 가신들의 환심을 사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장터를 다니면서 쉴 새 없이 타 지역에서 온 떠돌이 장사꾼들로부터 다른 지역의 정보를 속속들이 입수했다. 가신들은 약간의 뇌물로 충분하지만, 영주인 노부나가가 원하는 것은 뇌물이 아니라 정보라는 것을 그는 꿰뚫고 있었다. 그는 ‘정보가 언젠가 힘이 될 것’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남들보다 체구가 작은 내가 무술로 싸움터에서 공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거야 말로 오히려 명을 재촉하는 일이다. 무공이 아닌 정보와 지략으로도 얼마든지 공을 세울 수 있다. 무공으로 공을 세우든, 정보와 지략으로 공을 세우든 논공행상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정보와 지략을 무기로 삼은 그는 닥치는 대로 인맥을 만들고 정보를 모았다. 성내의 필요한 물건 구매에서 시작하여, 타 지역의 움직임, 세세하게는 남의 가정사까지 하여간 모르는 것이 없는 정보통이 되었다. 그의 주군인 노부나가는 시대의 이단아였다. 그는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던 모든 관행이나, 체제를 철저히 무시했다. 과감하고 획기적인 사고로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다.
오랜 옛날부터 일본의 모든 군사 체제는 반농 반병 체제였다. 모든 영주들은 독자적으로 직업적인 병사를 소유하지 못했다. 그래서 영내의 남자들은 평상시에는 농사를 짓다가, 싸움이 일어났다 하면 동원되어 싸움터로 나갔다. 그러다 보니 만일 농번기에 싸움이라도 일어나게 되면 그해 농사는 그대로 망치는 것이었다. 한해 농사를 망치면 싸움에 동원된 농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세수가 줄어든 영주도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흉작으로 세금이 안 걷히면 그만큼 재정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흉작임에도 세금을 가혹하게 걷다가 농민들의 반란으로 쫓겨난 영주들도 비일비재했다. 그런 탓에 영주들 사이에는 무언의 약속이 있었다. 


‘싸움은 농한기에.


그런데 전국시대 들어 유력 영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세력을 확장한 유력 영주들이 서로 전국을 통일하려는 움직임이 만연했다. 그러다보니 여기저기서 동맹 관계에 따라 싸움이 일어났다. 결국, 시도 때도 없이 싸움이 일어나, 농번기, 농한기 구별이 없어져 버렸다. 


‘이러한 반농 반병 체제로는 싸움에 대한 전문성을 갖기 어렵다.


노부나가는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었다. 


‘농민들이야 싸움에 지더라도 지배자만 바뀔 뿐, 그들의 존속에는 큰 변함이 없다. 그러나 우리 같은 무사 계급은 싸움에 한번 패하면 끝장이다. 생과 사가 걸린 문제이다!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농민과 병사를 구별해야 한다. 그렇게 돼야, 병사는 언제든지 싸움에 대비할 수 있고, 농민들은 농업에 종사할 수 있다. 농민은 자기 일인 농업에 종사할 수 있어 수확이 늘어날 것이고, 그럴수록 세수가 늘어 안정된 재정을 조달할 수 있다. 반면에 병사들은 훈련을 통해 전문성을 갖추게 되어 싸움에 능하게 된다. 일석이조다. 


천하포무를 꿈꾸는 노부나가는 시대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전국시대 처음으로 직업군인 체제를 도입해나갔다. 또한 노부나가는 신분의 관계없이 능력 위주로 인사를 단행했다. 오랫동안 가문에 충성을 해온 가신이라도 무능력하거나 공적이 없는 자는 가차 없이 내쳐 버렸다. 반면 출신 성분이 하급 무사 출신이거나, 외부에서 온 자라도 능력이 인정되면 가신으로 임명했다. 철저한 능력 위주의 인사였다. 


‘능력을 발휘하여 영주님의 눈에 들기만 하면 나 같은 놈이라도 출세가 가능하다. 이야말로 나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닌가?’                                                              제 48화에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노부나가의 시종 도키치로>

도키치로는 결심이 서자, 즉시 노부나가가 머무는 거성으로 향했다. 나무로 성책을 쌓아놓은 목책성이었다. 
도키치로가 성 앞으로 다가서자, 양쪽에서 보초를 서던 초병이 창을 꼬나들고 수하를 했다. 


“누구냐? 무슨 용무냐? 
“아, ! 장사꾼이옵니다. 나카무라 출신으로 기노시타 도키치로라고 합니다. 실은 영주님께서 성에서 일할 인부를 뽑는다는 소릴 듣고 인부가 되고자 찾아 왔습니다. 


도키치로는 살살 웃어가며 말을 꾸며댔다. 


“자네 들어봤나? 
수하를 하던 초병은 도키치로가 하는 말을 듣고 금시초문이란듯 반대편에 있는 초병에게 물었다.


“난들 아나!


반대편에 서 있는 초병이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그럼, 어떡하지? 잠깐 내 안에 들어가서 물어보고 오겠네! 


확인 안 하고 잘못 처리했다간 경을 칠 수도 있었기에, 초병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초병이 확인차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도키치로는 뒤가 켕겼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똥줄이 탔으나, 시침을 뚝 떼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될 대로 대라! 죽을 잘못을 하는 것도 아닌데, 거짓말 조금했다고 죽이기야 하겠냐?
“보초 서기가 힘들지 않으세요?


도키치로는 초병의 경계를 풀기 위해 특유의 붙임성을 살려 말을 걸었다.


“힘들어도 교대로 하니까 할만은 하네.
“저는 나카무라 출신인데, 저잣거리에서 바늘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영주님을 뵙고 싶어서 이렇게 왔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의 경계를 풀려고 실실 웃어가며 말을 거는데, 


“저리 물렀거라.


초병은 그의 말에 더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자신을 경계하며 무뚝뚝하게 서 있는 초병의 경계를 풀게 하려고 이리저리 궁리를 했지만, 달리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런 차에 성 안쪽에서 머리를 단정히 땋아 올리고 칼을 찬 사무라이가 아까 들어간 초병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저 놈입니다. 저 놈이 인부를 모집해서 왔다고 했습니다. 


초병은 창으로 도키치로를 가리키며 사무라이에게 고했다. 


“너 이놈. 어디서 인부를 구한다는 소리를 들었느냐? 


칼을 옆구리에 찬 사무라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키치로의 위 아래를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는 의심이 섞인 심문투로 물었다. 첩자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분명했다. 


“네, 소인은 원래 오와리 나카무라 출신으로서 저잣거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만, 성에서 인부를 구한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 왔습니다. 


도키치로는 능청스럽게 거짓말로 둘러댔다. 


“저잣거리에서 그런 소문을 들었다고? 

“예, 그렇사옵니다. 


사무라이는 도키치로가 태연한 표정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고는 초병들에게 명령했다.

 
“저놈을 잡아서 안으로 들여라! 


사무라이의 추상같은 명령을 받은 초병들은 즉시 창을 꼬나 쥐고 도키치로를 노렸다. 


“이놈, 꼼짝 말거라. 고분고분 말을 듣는 것이 몸에도 이로울 것이다. 


초병들은 양쪽에서 창으로 경계를 하며 다가왔다. 도키치로가 순순히 따르자, 창끝을 그의 몸에다 대고 창날로 툭툭 치며 안으로 밀어 넣었다.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러십니까? 


도키치로는 고분고분하게 병사들의 지시대로 따르면서도 자신이 결백하다는 뜻으로 변명을 했다. 


“네, 이놈. 주둥이를 닥쳐라.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곧 알게 된다. 


실눈을 뜨고 뒤 따라오던 사무라이는 느물느물해 하는 도키치로를 보고 언성을 높여 꾸짖었다. 초병들은 도키치로를 성문 안으로 몰고 들어갔다. 안쪽에 있던 초병들에게 도키치로를 인계하고는 그들은 다시 성문 밖으로 나갔다. 성안은 성 밖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삼엄한 경계태세였다.


“이놈을 포승줄로 묶도록 하라.


성안으로 들어서자 사무라이는 도키치로를 포승으로 묶도록 하였다. 첩자일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어이구, 제가 무슨 죽을죄를 졌다고 포승을 거십니까?
“조용히 해라. 이놈!


졸지에 포승으로 결박된 도키치로는 오른쪽 왼쪽으로 꼬불꼬불하게 굽은 길을 따라 점점 안쪽으로 끌려들어갔다. 성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넓었다. 여기저기 목조 건물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들어가자 앞쪽에 돌로 단이 쌓아져있고 그 둔덕 위에는 영주가 머무는 천수각이 위로 솟아있었다. 


“이제 됐다. 여기 꿇려라! 


도키치로를 끌고 간 사무라이는 천수각 아래쪽 단층 목조 건물 앞에서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고는 자신은 쪽마루로 가 앉았다. 병사들은 도키치로의 어깨를 창대로 눌렀다. 무릎이 꿇려졌다. 그러자 여기저기 사방에서 칼을 차거나, 창을 든 병사들이 몰려들었다

.


“소스케, 잘 왔다. 저놈의 목을 벨 준비를 해라!
“첩자입니까? 잘 알겠습니다.


소스케라고 불린 사내는 정수리를 보기 좋게 싹 밀고 머리를 땋아 올린 젊은이였다. 그는 바닥에 꿇어앉아 있는 도키치로의 옆으로 다가와서는 칼을 스윽 뽑아 들고 칼등을 그의 목뒤에 천천히 갖다 대었다. 도키치로의 목 힘줄이 퍼렇게 일어섰다. 목이 서늘해져왔다. 도키치로는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너 이놈 장터에서 인부를 구한다는 소릴 듣고 왔다 했으렸다? 


사무라이는 비수로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로 다시 물어 왔다. 


“네, 이놈. 이실직고 하렸다. 어디서 온 누구인지 똑바로 밝혀라. 만일 한 치라도 거짓을 늘어놓는다면, 그 목은 떨어져 땅바닥에 구를 것이다. 
“죄송합니다. 살려주십시오. 실은 인부를 구한다는 소문을 들은 것이 아니고 성에서 일하고 싶어 찾아온 것입니다. 거짓말을 안 하면 성안으로 들여보내 주지 않을 것 같아 그랬습니다요. 


도키치로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사실을 고했다.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싹싹 비는 시늉을 하면서 목숨을 구걸했다. 설마 죽기야 하겠는가 했는데 서슬이 퍼런 칼이 목에 닿자 겁이 덜컹 난 것이었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단숨에 목이 떨어질 형세였다. 


“제발 노여움을 푸시고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두 팔이 뒤로 묶인 도키치로는 방아깨비가 방아 찧듯이 연신 머리를 땅에 박았다간 들어 올리며 목숨을 구걸했다. 얼굴은 완전 우거지상이 되어 영락없는 비루한 원숭이 모습 그대로였다. 


‘이 자식, 이거 완전 원숭이 아닌가? 


도키치로가 울상이 되어 얼굴이 찌그러지자, 사무라이는 그 얼굴을 보며 기괴하다고 느낄 때였다. 


“무슨 일로 이리 소란 스럽느냐? 


미성이었지만,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호기심 많은 청년 영주 노부나가였다. 영주의 숙소인 천수각에 있다가 웅성거리는 소릴 듣고 궁금해서 직접 내려온 것이었다. 


“주군, 별일 아니옵니다. 


사무라이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이놈이 수상해서 심문 중입니다. 성에서 인부를 구한다는 소문을 듣고 왔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미심쩍은 데가 많습니다. 어쩌면 첩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놈인가? 네 이놈, 고개를 들어봐라.


노부나가가 앞으로 성큼 다가와 들고 있던 말채찍으로 도키치로의 턱을 들어 올렸다. 


“전하! 저는 첩자가 아니옵니다. 다만 전하의 밑에서 일을 하고 싶어 찾아 왔을 뿐입니다. 오와리 나카무라 출신입니다. 정말입니다. 


채찍 손잡이에 얼굴이 얹어진 도키치로는 필사적으로 변명을 했다. 속으로는 이젠 죽었구나 싶었다.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거의 울음이 터져 나오기 직전이었다. 울상이 되어 사정을 하는 그의 모습을 유심히 보던 노부나가가 갑자기 표정을 바꾸며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너, 사람이 맞느냐?
“네?
“너, 원숭이가 아니더냐?
“네?
“우하하하하하하. 너는 사람이라기 보단 원숭이 그대로다. 그것도 털이 다 빠진 늙은 잔나비. 우하하하하하하? 너 나이가 몇이냐? 
“네? , . 열여섯 아니, 열일곱 이옵니다요. 
“열일곱? 그런데 왜 이리 늙었느냐? 너야말로 겉늙은 잔나비로구나. 우하하하하. 
노부나가가 도키치로의 얼굴을 보고 재미있다는 듯이 놀리며, 웃음을 터뜨리자 옆에 있던 가신들과 병사들도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전하, 저는 첩자가 아니옵니다. 저를 믿어주시고 우선 이 포승을 풀어 주시면 제가 재미나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뭐라고? 재미있는 걸 보여준다고? 
“예, 제 얼굴이 원숭이를 닮아서 그런지, 원숭이 춤을 잘 춥니다. 
“원숭이 춤? 


노부나가는 ‘원숭이 춤’이라는 소릴 듣고 질문하듯이 주위에 있는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부하들도 의미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엇이더냐? 
“이걸 풀어주시면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노부나가의 명령으로 포박이 풀리자, 도키치로는 손을 땅에다 대고 머리를 숙여 고맙다는 의사 표시를 한 후, 손을 털고 일어났다. 이어서 손을 머리위로 올리고 다리를 구부려 원숭이 흉내를 냈다. 원숭이처럼 ‘끼엑, 끼엑’ 괴성을 지르며 마당 안을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마츠시다 성주 밑에 있을 때, 아녀자들 앞에서 자주하던 재롱이라, 익숙한 동작이었다. 그가 원숭이 흉내를 내면 보는 사람마다 배를 움켜쥐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와하하하하하하하, 와하하하하하하, 저놈 좀 보아라!
“퀴키키, 퀴키키”


노부나가가 재미있어하자, 도키치로는 한 술 더 떠 괴성을 지르며 앉았다가 일어섰다가 흙을 주워 먹는 시늉을 하였다. 또 가만히 있는가 싶으면, 등에서 털을 뽑아다가 이를 잡는 시늉을 하였다. 주변 사람들을 개의치 않는 영락없는 원숭이 모습 그대로였다. 

“와하하하, 그놈 재밌는 놈이구나. 죽이긴 아깝다. 아사노, 그대가 거두어 두어라. 성내에 두고 잡일이라도 시켜라. 


호기심이 많은 노부나가였다. 그는 재밌는 놀이감을 발견이라도 한 듯 만면에 희색을 띠고 도키치로를 끌고 온 사무라이에게 명령하였다. 


“전하. 그러나 저놈이 누구인지, 또 무슨 목적으로 여길 왔는지 아직 아무 것도 확인이 안 되었습니다. 첩자일 수도 있으니 좀 더 심문을 한 후에 결정하시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도키치로를 심문하던 아사노라는 사무라이가 정색을 하며 이의를 제기했다.


“아사노, 무엇이 그렇게 두렵더냐? 첩자가 그렇게 무섭더냐? 하물며 저 잔나비가 첩자라 하자. 그렇다면 여기 두고 우리가 이용할 생각은 왜 못 하느냐? 두말 말고 따르도록 하라. 


젊은 군주의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아무런 검증이 안 된 자를 성내에 머물게 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전국시대 가신들의 사고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노부나가는 그만큼 대범했다. 아니 괴팍했다. 나이 든 가신들일 수록 노부나가의 행동과 판단이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하아, 잘 알겠습니다. 분부대로 시행하겠습니다. 

 

노부나가가 단호하게 말을 끊으며 재차 명을 내리자, 아사노는 다시 한번 허리를 숙이고는 물러섰다. 불같은 성격의 젊은 군주였다. 까딱 잘못하여 명령을 거역하는 것으로 오인되면 용서 없었다. 아사노는 더 토를 달지 않고 따르기로 했다. 계속 자기주장을 하였다간 그 자리에서 목이 떨어 질 수도 있었다

 제 47화에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노부나가와 히데요시> 미치광이 영주

 

오와리 지역의 맹주인 오다가는 신흥 세력임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으로 주변 지역을 공략해 그 세를 점점 확대하여 나가는 중이었다. 원래는 지방관으로 파견된 오다 가문이 전국시대로 접어 들자, 교토 동쪽 지역의 맹주로 등장했다. 
도키치로가 고향을 떠나올 때는 오다 노부나가의 선친인 노부히데가 영주였다. 그의 친부도 선대인 노부히데가 출정한 전투에 참가했다가, 부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던 터였다. 
노부히데의 장자로서 새롭게 영주가 된 노부나가에 대해서는, ‘바보, 멍청한 말썽꾸러기.’라는 좋지 않은 소문이 널리 퍼져있었다. 
당시 일본의 관례는 장자 상속으로, 장자가 가문을 이어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므로 성주의 장자는 어린 시절부터 제왕학을 위해 학문에 힘쓰는 것은 기본이요, 게다가 전국시대라는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며 검술과 승마술 등 무예도 익혀야 했다. 영지의 통치를 위해서, 그리고 가문을 떠받치는 부하 사무라이들을 다스리기 위해서라도 영주에 걸맞은 행동을 요구받았다. 
그런데 노부나가는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모든 것들을 무시했다. 검술과 말을 타는 것은 좋아했으나, 형식에 얽매이는 것과 통제받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그는 기존의 모든 관행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좋아했다. 걸핏하면 괴팍한 행동을 해, 노부나가를 곁에서 모시는 중신들을 곤경에 빠뜨리곤 하였다. 
가장 곤란한 문제가 성주의 장자로서 차려입어야 될 의관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천조가리 비슷한 허름한 저고리를 몸에 걸치고는, 허리는 끈으로 동여맨 채, 칼과 호리병을 허리춤에 찔러 넣고 저잣거리를 활보했다. 배가 고프면 좌판에 있는 오이나 참외 등을 집어 껍데기째 먹었다. 그마저도 없으면 무나 야채도 마다하지 않았다. 


“저게 영주의 장자란다. 거지새끼가 따로 없구먼, 그려.


사람들은 노부나가의 모습을 보고 뒤에서 손가락질을 했다. 그러니 노부나가의 교육을 부탁받은 중신들은 영주를 볼 면목이 없었다. 그렇다고 영주의 아들을 때려서 가르칠 수도 없는 입장이라, 참으로 진퇴양난이었다. 
이런 중신들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부나가는 틈만 나면 저잣거리로 나갔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모아 씨름판을 벌이는 것도 좋아했다. 스스로 상금을 걸어놓고 씨름판에서 우승한 자에게는 상을 주었다. 혹자는 그런 것이 모두 나중에 천하를 지배하기 위해 필요한 장정들을 모으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한다. 
호사가들이 하는 말이니, 그거야 누가 알 수 있으랴? 
아무튼 노부나가의 그런 괴이한 행동 때문인지, 그의 주변에는 힘깨나 쓰는 왈패와 불량배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일을 하지 않아도 노부나가를 따라다니며 시키는 대로 힘자랑을 하면, 상품이나 상금을 받을 수가 있었으니, 그들로서는 노부나가가 부처님보다 더 고마운 존재였다.

 
“노부나가님이야 말로 우리들의 오야붕(대장)이다. 


그러나 많은 저자 사람들은 노부나가의 기행에 대해 뒤에서 손가락질을 하였다. 권력을 이어 받을 영주의 장자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기이한 행동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저잣거리에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노부나가의 대한 험담이 자자했다. 


‘영주의 장자가 멍청할 뿐 아니라, 망나니들과 어울려 저리 법석을 떠니, 그 자리가 오래 못 갈 것이다. 
“저 또 나타났네 그려. 
“누가? 
“저것 좀 봐! 노부히데님의 적자인 노부나가 도련님이 나타나 저잣거리가 시끌시끌하잖아. 
“에구, 저 망나니가 오늘은 또 무슨 짓을 벌이려고……. 
“오늘도 장사는 글렀네. 빨리 물건 걷어치우고 피해야겠구먼. 
“그러게 말이네. 또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우리만 손해지 뭐! 
“그래도 도련님은 우리 장사꾼 물건은 안 건드리잖아, 그러니 그냥 있어도 괜찮지 않겠어? 
“아무튼 씨름판이 벌어지면 장사는 날 새는 거여. 
“그래 그 말이 맞아! 씨름판 주변에 사람이 몰려,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다가 싸움판이 벌어지고, 물건 상하면 우리만 손해지 뭐! 어차피 오늘 장사는 끝난 것 같네, 빨리 걷어치우고 스루가로 넘어가 봐야 겠네. 


도키치로도 과거 행상을 할 때, 여기저기 장터를 다니면서 오다 노부나가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바늘 행상을 할 때는 멀리서 그의 모습을 직접 보기도 했다. 


‘나와는 별 상관없는 인물이다.


그러다 보니 그의 기억 속에는 ‘망나니’로만 각인되어있었다. 
그런데 그 노부나가가 오와리의 성주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시 기억을 더듬었다. 우스꽝스런 복장이 기억에 어렴풋이 담겨있었다. 노부나가의 모습은 도키치로의 눈에도 우습게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주 직을 이을 적자의 모습은 아니었다. 언뜻 보기에 악동의 망나니 그대로였다. 
기억을 더듬는 그의 뇌리 한편으로 날카로운 눈빛이 떠올랐다. 노부나가의 눈빛이었다. 눈매가 날카로웠고 살아있었다. 도키치로는 노부나가의 눈빛을 기억해 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바보 천치, 말썽꾸러기, 망나니’의 눈빛과는 달랐다. 
그러고 보니 체형도 늘씬하고 잘 단련된 근육질의 몸매를 하고 있어, 자신과는 다르다고 느꼈던 것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말하는 멍청한 망나니만은 아니다. 


도키치로의 되살려진 기억 속에 떠올려진 노부나가는 자신보다 두세 살 위의 모습이었고, 복장은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단순한 망나니만은 아닌 무언가를 내면에 감추고 있는 모습이었다.
도키치로는 즉시 주변 지역의 정보를 꿰차고 있는 마츠시타의 중신 야기누마를 찾아가, 은근 슬쩍 오와리의 정세와 노부나가에 대해 물었다.


“야기누마님. 오와리의 새 성주 노부나가님이 멍청이라는 소문이 자자한데, 중신들이 왜 성주 자리를 넘기도록 가만히 있었을까요?
“글쎄, 누가 알겠느냐? 다만 부친상을 당한 노부나가가 장례식장에서 부친의 영정에 향을 바치는 대신, 재를 뿌렸다고 한다. 불효막심한 행위지! 
“그래요?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행위를 할 수가 있습니 까? 
“그로 인해 교육을 맡았던 중신 히라테(平手)가 보다 못해 자신이 잘못 가르쳐 그런 것이라며 할복자살을 하였다고 한다. 새 성주의 모든 잘못은 자신에게 있다고 하면서…. 그러나 직접 보지 않고 그 진위를 누가 알 수 있겠느냐? 


야기누마의 말을 듣고 난 후, 도키치로는 노부나가라는 인물이 더욱 궁금해졌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못 참는 성격의 그였다. 


‘일단 가자. 가서 확인을 해보자. 망나니라면 곧 무슨 사단이 날 것이고, 그러면 오히려 기회는 더 빨리 올지도 모른다. 어차피 이 곳에 있어 봤자 기회는 없다. 


도키치로는 그 길로 보따리를 싸, 성주인 마츠시타에게 하직 인사를 했다. 


“고향 집에 일이 생겨,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보살펴주신 영주님의 은혜는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마츠시다는 조금 아쉬웠으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도키치로를 만류할 명분이 없었다. 


“모든 일이 수습되면 다시 돌아오도록 하라. 


도키치로는 성주의 허락을 받자, 그 길로 오와리로 향했다. 당시 그의 나이 만 16세였다. 또래보다 키도 작고 체격도 왜소했다. 게다가 얼굴이 쭈글쭈글 해 힐끗 보면 나이 먹은 중년으로도 오해를 받을 정도였다. 도키치로는 오와리 국경을 넘어서면서 간자로 의심 받을 것이 두려워, 보따리를 어깨에 걸쳐 메고, 예전 장사꾼의 모습으로 변복을 했다. 
오와리에 들어서서는 고향집이 지척임에도 들르지 않고, 곧장 장이 서는 저잣거리로 향했다. 그리고 노부나가에 대한 소문과 정보를 수집했다.

 
‘망나니 성주, 노부나가.


노부나가에 대한 대부분의 평가는 여전히 안 좋은 것뿐이었다. 그러나 가끔 다른 평가도 없진 않았다. 


“비범한 주군이다. 천하를 통일할 인물이다. 노부나가님이 천하를 통일하여 전쟁없는 태평성대가 시작될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떠도는 소문을 듣고 옮기는 사람들은 모두 전자인 망나니라는 평가였다. 그러나 직접 노부나가를 보았다거나, 그를 접했던 사람들의 평가는 사뭇 달랐다. 
오와리로 넘어온 도키치로는 행상을 하면서 한동안 열심히 귀동냥으로 소문을 모았다. 그는 노부나가가 어떤 인물인지 세심히 살피고자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시장이 갑자기 혼란스러워지더니,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노부나가님이다. 


사람들이 양쪽으로 갈라섰다. 한 가운데를 자신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젊은 친구가 말을 타고 달려왔다. 한쪽 어깨는 맨살이 그대로 드러난 상태였다.


“다다닥, 다다닥. 


중신의 복장을 한 가신들이 말을 탄 채 그 뒤를 열심히 따르고 있었다.


“허, . 이 오와리가 어떻게 되려고 저러는가?


저잣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노부나가가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성주가 되었음에도 복장은 망나니 복장 그대로였다. 
도키치로도 말을 타고 빠르게 지나가는 노부나가를 멀리서 보 았다. 복장은 우스울지 모르지만 말을 탄 자세에는 위엄이 서려있음을 느꼈다. 


‘말을 저렇게 잘 타고, 위엄이 서려있는 걸 보면 멍청이는 아닐 것이다. 만일 멍청이라면 이곳이 이렇게 번창할리가 없다. 새롭게 저잣거리를 넓히고 세금도 싸게 해, 각처의 장사꾼이 이곳에 몰려 와 나날이 번창하고 있지 않는가? 그로 인해 오히려 세수입은 더 늘어나고……. 
‘명군이 될 가능성이 크다. 
도키치로는 무릎을 탁 쳤다. 그리고는 자신의 판단에 운명을 맡기기로 작정했다. 그는 즉시 좌판을 거두었다. 


“부딪쳐보자.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자. 

 

제 46 화에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노부나가와 히데요시

<방물 장사 히데요시>

 

이름을 개명한 도키치로는 곧장 스루가국으로 들어간 후, 처음에 장작을 파는 일을 시작했다. 큰 자본 없이 손쉽게 할 수 있는 장사였기 때문이었다.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베어 도끼로 보기 좋게 패어 장작을 만든 후 시장에 내다가 파는 일이었다. 어린 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열심히 하였다. 그러나 나무를 베다 파는 일은 힘도 많이 들었고, 고생한 만큼 수입도 많질 않았다. 게다가 텃세가 심하였다. 나무를 베러 산에 올라갔다가 덩치 큰 나무꾼들을 만나면 슬슬 꽁무니를 빼고 소득도 없이 하산해야 했다. 산에서는 힘이 곧 법이었다. 체구가 작은 그는 나무조차 쉽게 벨 수가 없었다.


‘무슨 장사를 해야 생계에 위협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고심을 하던 그는 장터에서 소문을 모았다. 


“떠돌이가 할 수 있는 장사 중엔 바늘 장사가 으뜸이지.


도키치로는 손바닥을 쳤다. 즉시 지니고 있는 밑천을 탈탈 털어 바늘 장사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귀족을 제외한 서민들은 모두 집에서 직접 옷을 지어 입었다. 그러기에 바늘은 집집마다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이었다. 또한 바늘은 부피가 크질 않았다. 덩치가 조그만 도키치로서는 휴대하기 좋았다. 그에게 안성맞춤의 장사였다. 장작 장사는 산에 올라가 나무를 패다가 가까운 시장에 내다 파는 일이었다. 시장과 가까워야 운반하는데도 일손이 적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가 없어 한곳에 머무르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바늘 장사는 오히려 한곳에 머물어서는 망하기 십상이었다. 바늘은 소모품도 아니었다. 부러지지 않는 한,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만큼 단골손님을 많이 확보해야만 했다. 발이 빠른 그는 각처를 돌아다니며 고객을 확보했다. 그만큼 활동영역이 넓다 보니 그의 귀로는 많은 정보가 들어왔다. 


‘이거야 말로 내가 원하던 장사 아닌가? 


부지런한 그는 손님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는 소문만 들으면 천리를 마다않고 찾아갔다. 타고난 천성으로 붙임성이 좋았던 그였다. 수완도 뛰어나, 많은 고객을 확보했다. 처음에는 바늘만 취급했으나, 점차 품목을 늘려나갔다. 아낙네들이 장식품을 원하는 것을 알고는 잽싸게 방물도 함께 취급했다. 눈치가 빨랐으니 손님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 조달해 주었다. 그와 거래를 하는 손님 들은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그의 수완에 만족해했다. 그는 신용을 첫째 신조로 여겼다. 그러다보니 고정 고객도 많이 생겼다.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꽤 많은 이문을 얻기 시작했다. 
도키치로는 행상을 하는 한편으론, 소문도 주워듣고, 필요한 정보도 모으곤 하였다. 이문이 꽤 쏠쏠했으나 웬일인지 품에 돈이 들어와도 마음은 그리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내 야심은 장사로 돈을 벌어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성공은 사무라이가 되어 일국의 성주가 되는 일이다. 


각지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수집한 소문과 정보를 배경으로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낸 그는 자신도 출세를 하면 성주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도키치로는 출세를 위해서 사무라이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결심이 서자 바로 바늘 장사를 집어치웠다. 그리고는 장사를 하면서 만들어 놓은 인맥과 여러 경로를 통해 자신이 의탁할 만한 성주를 찾았다. 바탕없고 가문 없는 농민 출신인 자신을 받아들여 줄 성주를 물색하여야만 했다. 그가 쳐놓은 그물에 걸린 게 성주 마츠시타 카헤이(松下嘉兵衛)였다. 마츠시타는 도토미국(遠江國-현 하마마츠지역)에 있던 히쿠마성(引馬城)의 지성인 즈다절(頭陀寺)의 영주였다.


“비록 작은 성의 성주이지만, 인품은 거대한 성의 성주를 맡겨도 부족하지 않은 성군이다.


마츠시타의 인품을 사람들은 높게 평가했고, 그 평판이 도키치로의 귀에도 들어온 것이다. 


‘그러한 성주라면 신분 차별을 하진 않을 것이다. 나 같은 농민 출신이라도 능력만 제대로 발휘하면 충분히 인정을 해 줄 것이다.


도키치로는 마츠시타의 수하로 들어가기로 작심을 하고는 행상을 하던 품목들은 모두 처분해, 약간의 돈만을 챙겨, 그 길로 마츠시타의 거성인 즈다절로 찾아갔다. 


‘아무리 성군이라지만, 나 같은 근본도 모르는 놈을 받아줄까?


내심 걱정이 없진 않았다.


‘조그만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부딪쳐야 한다, 부딪치지 않고는 아무것도 시작 되지 않는다.


장사꾼의 속성이 그랬다. 


‘조금이라도 이문이 보이면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는다.’라는 게 그들의 신조였다. 그러한 체질과 습관이 뼛속 깊이까지 배어있던 도키치로였다. 
가신이 되고자 찾아왔다는 도키치로를 본 마츠시타는 그의 능력보다는 원숭이같이 기묘한 그의 생김새에 먼저 관심을 나타냈다. 그러자 임기응변에 강한 도키치로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외모를 이용할 꾀를 내었다. 원숭이 닮은 얼굴을 비관하고, 숨기는 것보다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면 무얼 못하랴 하는 각오였다. 어린 시절 부터 ‘원숭이 닮았다.’라는 소리를 그토록 싫어했지만, 그는 즉흥적으로 궁리를 해 혀를 잇몸 위를 내밀고, 손을 흔들며 원숭이 흉내를 냈다. 그가 흉내 내는 원숭이 짓은 얼굴도 얼굴이려니와 동작 또한 진짜 원숭이로 착각할 정도로 똑같았다. 진짜 원숭이 뺨칠 정도였으니, 그의 흉내를 보고 배를 잡고 웃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고 못할쏘냐. 


환심을 살 수 만 있다면 못 할 게 없었다. 장사를 통해 터득한 가치관이었다. 


‘이문을 위해서는 벨이야 못 빼주랴. ‘자존심이 밥 먹여 준다더냐? 그 따윈 관심도 없다. 
‘머리 회전이 빠른 놈이로군. 


도키치로의 즉흥적인 행동을 보고 마츠시타는 그 나름대로 도키치로가 눈치가 빠른 인물이라는 것을 바로 간파해 냈다. 그는 도키치로의 임기응변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성에 머무르면서 멸사봉공하도록 하라. 


마츠시타는 도키치로가 용모는 기괴했지만 밉지가 않았다. 게다가 풍자와 해학적인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즉석에서 도키치로에게 하인 노릇을 하도록 허하였다. 아무리 혼탁한 전국시대라 할지라도, 독립된 성을 다스리는 성주의 하인으로 발탁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외부에서 날아들어 온 출신 성분을 알 수 없는 자가 성주를 가까이서 모시는 하인이 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만큼 마츠시타의 그릇이 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 보는 눈이 날카로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주는 도키치로가 지니고 있는 특유의 붙임성과 영리한 두뇌, 그리고 민첩성을 높이 평가해 자주 불러 가까이 했다. 도키치로 역시 성주의 그런 마음을 어렴풋이 읽어내고 실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항상 남보다 더 생각하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언제나 성주의 의중을 읽어내려 노력하였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성주의 지시가 있기 전에 미리 알아서 준비해 놓았다.


“말을 준비하라.“네, 이미 밖에 대령해 놓았습니다.


성주가 가신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출타할 것을 예측해 앞서 말을 준비해 놓거나, 출타가 끝나 돌아올 즘이면 미리 목욕물을 끓여놓았다. 


‘호오, 과연 눈치가 빠른 놈이구나. 내 눈이 틀리진 않았어. 


점점 도키치로에 대한 성주의 평가가 높아지니, 다른 하인들이 부러워도 했고, 질투도 했다. 게다가 마츠시타는 가끔 자신의 정실과 시녀들이 머무는 내전으로 도키치로를 대동하고 갔다. 그리고는 그 앞에서,

“도키치로! 원숭이 흉내를 내보아라.
“하아.
“우하하하하. 어쩜 저리도 똑같을 수가 있을까? 오호호호. 


원숭이 흉내를 내며 우스운 몸동작과 해학적으로 연극을 하면 아녀자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자연 도키치로는 성주뿐만 아니라 성주 주변의 아녀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그러자, 같은 하인들뿐만 아니라 성주의 중신 사무라이들도 조금씩 도키치로를 경계하고 견제했다. 


‘흥, 한심한 것들. 


자신을 질투하는 그들을 보고 도키치로는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닭이 어찌 봉황의 뜻을 알리오. 


그는 사무라이가 될 야망을 품고 있는 자신을 한낱 원숭이 흉내나 내는 재롱둥이로 보고 그것을 질투하는 자들에게 오히려 연민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을 한낱 광대처럼 부리는 성주에게도 실망을 했다. 


‘이곳은 내가 원하던 기회는 없다. 나 같은 미천한 자에게 기회 가 없다는 것은 출세도 없다는 의미다. 지금의 신분에 만족한다면 이곳에 있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이곳에서는 신분상승은 없다. 사무라이로서 출세하기 위해서는 이곳을 떠나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한다. 


성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그였지만, 성주인 마츠시다의 인품과 성내의 상황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전국시대에 미천한 출신에서 사무라이로 신분상승을 하기 위해서는 공을 세워야 했다. 그리고 공을 세우는 첩경은 싸움터였다. 전투에서 전공을 세워, 그 수완을 인정받아야 출세가 가능했다. 그런데, 성주인 마츠시다는 싸움을 통해 영지를 확장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안정 지상주의로 현상 유지에 만족했다. 원래 사회나 조직이 혼란스러워야 변화가 일어나고, 신분의 이동이 있기 마련이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듯이 혼란 속에서 수완을 발휘하는 자가 신분상승의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평안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기득권 세력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치세 속에서 나 같은 놈이 출세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도키치로는 하층민 출신인 자신이 사무라이로 출세하기 위해서 는 싸움을 통해 공을 세우고 수완을 인정받아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사회의 변혁과 혼란이 없으면 출세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곳에서는 차라리 하늘의 별을 따는 것이 더 빠르리라. 


그는 마음을 정리하고, 성을 떠나기로 했다. 그런 그때 자신의 고향인 오와리의 소식이 귀에 들려왔다. 


‘오다 노부히데가 타계하고 그의 장자인 노부나가가 영주가 되었다. 


오와리는 도키치로의 고향이었다

 

제 45 화에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절의 중노미 히데요시

“저 자식은 싹수가 노란 놈이니, 집에 두는 것보다 절에 맡기는 게 좋겠네.

 


생모인 나카도 히요시마루와 의부가 견원관계인 것을 알기에 더는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나카는 히요시마루가 상심하지 않도록, 잘 타일러 가며 부탁을 했다. 

 

 

“히요시마루야! 여기서 구박받으며 사는 것 보다 절에 들어가 스님들 말씀 잘 듣고, 스님들의 행실과 학문을 보고 배우면 앞으로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어미도 너와 떨어지는 게 마음이 아프지만, 너를 위해서라도 네가 절에 들어가 착실히 수양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그래, 차라리 절간의 중노미로 들어가는 게 더 낫다. 

 

 


생모와 떨어지는 것이 싫었지만, 의부와 같이 지내는 것 또한 죽기보다 싫었던 히요시마루였던지라, 절에 들어가기로 작심을 했다.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절에 들어가겠어요. 

 

 


들어갔다기보다는 절에 맡겨진 히요시마루는 처음에는 절간의 중노미 노릇에 만족을 했다. 의부와 사사건건 부딪히지 않아서 좋았다. 밥도 굶지 않았다. 의부는 그를 구박하느라 걸핏하면 밥을 굶겼지만, 절에서는 잡곡의 주먹밥이지만 끼니때마다 먹을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어린 히요시마루는 절간에서의 생활이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남무아미타불. 

 

 


염불만 외우는 절 생활이 고리타분했다. 불교의 교리를 모를 뿐 더러 한참 뛰놀 나이였다. 활달하고 영리한 히요시마루는 고적한 절간에서 잔심부름이나 하면서, 말도 못하고 죽은 듯이 지내야하는 중노미 노릇에 금세 염증이 났다. 게다가 절에서 수행하는 스 님들 중에도 특히 젊은 스님들은 반쯤은 장난으로 히요시마루의 생김새를 가지고 놀리거나 조롱을 하였다. 

 

 


“어이, 원숭이! 사료는 먹었냐? 어디 재롱이나 한번 부려봐라. 
“스님이 될 사람이 점잖지 못하게 웬 원숭이 타령이오? 
“요, 쪼그만 잔나비 같은 놈이 그래도 인간이라고 말대꾸하는 것 보게!
“내가 원숭이라도 불도를 닦는 스님이 그래서는 안 될 짓이오. 그래서는 땡초 밖에 안 되오. 
“요 녀석, 말하는 거 보게. 너 이리와라. 뭐라고? 땡초라고!

 

 


수양이 부족한 절간의 젊은 중들은 어린 히요시마루에게 걸핏하면 손찌검을 했다. 그는 절 생활에 더욱 더 흥미를 잃어갔다. 일을 시켜도 슬슬 잔꾀만 부리고 딴청을 부렸다.

 

 


“너는 불심이 약한 것 같구나. 자꾸 꾀를 부리면 경을 칠 것이다. 

 

 


아직 불자가 된 것도 아닌 중노미가 일을 하지 않고, 뺀질뺀질하자 점잖은 노승들도 히요시마루를 꾸짖기 시작했다. 
사면초가였다. 히요시마루는 더는 절에 붙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분위기로 느꼈다. 

 

 


‘여기도 내가 있을 곳은 아닌가보다. 절을 떠나자.

 

 


그러나 중노미가 절을 떠나려면 부모가 직접 찾아와 절의 허락을 받아야만 절을 떠날 수 있었다. 

 

 


‘의부가 절간을 떠나는 것을 허락해줄리 만무다. 그냥 아무도 모르게 도망치는 수밖에 없다.

 

 


히요시마루는 작심을 하고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야음을 이용해, 절을 빠져나왔다. 일단 절을 도망쳐 나오긴 하였으나 찾아가 의지할 곳이 없었다.

 

 


“아, 이젠 어디로 간다.

 

 


집으로 가자니, 야차 같은 의부 치쿠아미가 마음에 걸려 도저히 집으로 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아침이 될 때까지 이리저리 궁리를 해 보았으나, 나이 어린 히요시마루가 갈 곳은 집밖에 없었다. 

 

 


‘그래, 일단 집에 가서 엄마를 만나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자. 

 

 


의부를 보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지만, 생모인 나카에게 사연을 설명하고, 방법을 찾기로 한 그는 일단 발걸음을 집으로 옮겼다. 야밤에 절을 빠져나왔는데, 집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중천에 떠오른 한낮이 되어 있었다. 그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탓에 혀는 바싹 마르고, 뱃가죽은 등허리에 붙은 것 같았다. 남의 눈에 안 뜨이려고 인가를 피해 멀리 돌아온 탓에 허기와 갈증은 더욱 심했다. 

 

 


‘내가 몰래 절을 빠져나온 것을 알면 의부는 나를 죽이려하겠지. 

 

 


수전 너머 멀리 판잣집이 보이는 곳에 이르자, 의부가 마음에 걸렸다. 

 

 


‘의부가 밖에 나가 없는 틈을 노려야 한다. 

 

 


집으로 곧장 들어설 수는 없었다. 허기진 배와 갈증을 참아가면서 집안의 동태를 살피던 히요시마루는 의부가 없는 것을 확신하고 나서야 몰래 집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나카는 뒤뜰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엄마, 엄마! 

 

 


어린 마음에 생모를 만난 기쁨은 컸지만, 혹시 하는 마음에 의부가 있을지 몰라, 목소리를 낮추었다. 나카는 깜짝 놀랐다.

 

 
“아니, 너 히요시마루 아니냐? 

 


나카는 젖은 손을 앞치마에 문지르며 일어나서는, 히요시마루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네가 집에 웬일이냐? 

 

 


나카는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짐작했다. 히요시마루를 안으면서 밖을 흘끔 쳐다보았다. 혹시라도 치쿠아미가 나타날까 걱정이 되어서였다. 

 

 


“엄마, 우선 물 좀 주세요.

 

 


물을 한숨에 들이켠 히요시마루는 입을 쓰윽 닫고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나카에게 솔직히 말을 했다.

 

 


“엄마, 으응, 저 절에서 도망쳐 왔어요. 

 

 


히요시마루의 눈에서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생모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나 비참했다. 어린 히요시마루는 나카의 품으로 자꾸 얼굴을 비집어 넣었다.

 

 


“왜, 뭔 일이 있었느냐?

 

 


나카는 바깥쪽을 흘끔흘끔 경계하면서 아들의 손을 끌고 방 옆으로 이어

 

“엉엉! 절간의 형들이 매일 놀리고, 구박하고…. 흑흑, 대들면 때리고, 하물며 밥도 주질 않아 죽을 것 같아 도망쳤어요. 엉엉, 엄마! 


히요시마루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새삼 자신의 신세가 너무 서러웠다. 눈물이 줄줄 흘렀으나, 닦을 생각도 않고 그냥 소리 나는 대로 울어댔다. 나카는 마음이 찡하면서 한편으론 가슴이 철렁했다. 사정이야, 어떻든 마음대로 절간을 뛰쳐나왔으니, 의부인 치쿠아미가 알면 아마 가만 두지 않을게 뻔한 일이었다. 몽둥이찜질이 시작될 것이고, 몽둥이찜질이 끝나고 받아주기라도 하면 괜찮은데, 다시 절간으로 끌고 갈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게다가 절에서는 또 도망친 죄로 매질을 할 것이고, 감시를 받으며 눈치 밥을 먹을 것이 눈에 선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신세였다. 이른바 진퇴양난이었다. 

 

 


“히요시마루야, 이유가 어떻든 네가 절을 뛰쳐나온 것을 알면 너의 의부가 그대로 두진 않을 거다. 내가 양식과 노자를 조금 준비해 줄 테니 우선 친척 집에 가 있도록 하거라. 

 

 


치쿠아미가 오기 전에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에 나카는 히요시마루에게 따뜻한 밥도 한 끼 해주질 못했다. 허둥지둥 양식과 노자를 준비해 보따리를 만들어서는 히요시마루에게 건네 주었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너의 생부가 돌아가실 때 남겨 놓은 밭을 정리하고, 남은 것이란다. 네가 장성하면 전해주려고 보관해 오던 것이란다. 헛된 데 쓰지 말고 잘 간직하고 있다가, 꼭 긴요할 때 쓰도록 해라!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으나, 집안에 분란이 일어나는 것도 싫었다. 나카는 자식의 얼굴을 품에 안았다가 팔을 풀고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어디를 가든 건강해야 한다. 여기 걱정은 하지 말고 네 몸을 잘 돌봐야 한다. 항상 조심해라. 알겠느냐? 

 

 


나카는 몸조심할 것을 신신당부하며 히요시마루에 등을 밀었다. 

 

 


“흑흑, 알았어요, 엄마, 엄마도 항상 몸 건강하세요. 제가 꼭 성공해서 잘 모실 테니까 꼭 건강하시고 잘 계셔야 해요! 

 

 


나이보다 생각이 깊었던 히요시마루였다. 나카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속으로 다시는 울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쓰윽 닦았다. 그리고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밖으로 나와 논길을 지나 마을을 떠나면서 뒤를 흘긋 돌아보았다. 나카가 앞치마로 연신 눈가를 찍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히요시마루는 몸을 돌려 고개를 한번 숙이고는 앞을 향해 뛰었다. 

 

 


‘내 꼭 성공하여 돌아오리라! 두고 보아라. 보란 듯이 어머니를 모시러 올 것이다! 

 

 


울지 않으려고 하는데 자꾸 눈물이 흘렀다. 보따리를 쥔 손을 바꿔가며 주먹으로 눈물을 꾹꾹 찍어냈다. 어린 히요시마루는 그렇게 쫓겨나듯이 고향을 등졌다. 고향을 떠나온 히요시마루는 처음에는 모친의 부탁대로 친척집에 의지해 머물렀다. 그러나 사정은 다 마찬가지였다. 친척집이라 해도 빈둥거리는 히요시마루를 보고 달갑게 여길 사람은 없었다. 

 

 


‘손님과 생선은 사흘만 지나면 악취가 난다.

 

 


손님도 아닌 히요시마루는 말할 것도 없었다. 어디를 가나 찬밥 신세였다. 그렇게 일 년여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결코 허송세월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무엇을 알아서 그랬겠냐마는, 영특한 그는 본능적으로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려 애를 썼다. 한곳에 가만히 있질 않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견문도 넓히고 소문을 모았다. 소위 말하는 정보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소문이 바로 정보다. 소문을 잘 취합하면 좋은 정보가 된다. 그리고 그건 바로 힘이다. 정보를 모으는 데 장사보다 더 좋은 건 없다.

 

 


친척집에서 눈치 밥을 먹으며 냉대를 받던 그는 장사꾼으로 나서기로 했다. ‘장사를 하기 위해선 우선 여기를 떠나야 한다.

 

 
‘그리고 기왕 가려면 정보가 많은 지역으로 가야 한다. 

 


그가 열다섯이 되는 해였다. 

 

 


당시 일본 중부 지역에서 그 세가 확장 일로에 있던 지역은 스루가국(駿河國 -현 시즈오카현 일부)이었다. 

 

 


‘사내로 태어나 기왕 출세를 결심하였으면 두려워 말고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는 혈혈단신으로 스루가국으로 들어가 세상을 배우고자 결심을 했다. 그리고 스루가국으로 들어가기 전, 자신의 포부를 실현한다는 의미로 개명을 했다. 

 

 


‘도키치로(藤吉郞) 

 

 


성은 기노시타(木下)였으니, 그대로 두고 이름만 개명했다. 한자 등(-일본발음 도)자는 등나무에서 따온 것이다. 등나무는 수명이 길고, 꽃이 아름답고 우아하다 하여, 당시 일본에서는 한자 등() 이 후지와라(藤原-뜻으로 읽으면 후지) 씨 같은 귀족들의 이름에 많이 사용됐다. 그는 이러한 지식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름에 등자를 넣었다. 거기에 좋은 일이 많이 있으라는 뜻에서 좋을 길(-일본발음 키치)자를 더했다. (-일본발음 로)은 사내아이 이름 뒤에 많이 붙이는 접사였다. 그는 이제까지와 다른 새로운 삶을 위해 입신양명 하기로 작심을 하고 이름까지 개명한 것이었다. 

 


그 무렵, 스루가국을 지배하던 영주인 다이묘는 이마가와 요시 모토(今川義元)였다. 이마가와는 당시 일본내에서 강력한 무력을 소유한 유력 영주 중의 하나였다. 이마가와의 세력범위는 관동지방에서 가장 넓은 지역에 퍼져있었다. 주변 영주들 중 감히 그를 넘볼 세력은 없었다. 

제 41화에 계속...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