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의 중노미 히데요시

“저 자식은 싹수가 노란 놈이니, 집에 두는 것보다 절에 맡기는 게 좋겠네.

 


생모인 나카도 히요시마루와 의부가 견원관계인 것을 알기에 더는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나카는 히요시마루가 상심하지 않도록, 잘 타일러 가며 부탁을 했다. 

 

 

“히요시마루야! 여기서 구박받으며 사는 것 보다 절에 들어가 스님들 말씀 잘 듣고, 스님들의 행실과 학문을 보고 배우면 앞으로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어미도 너와 떨어지는 게 마음이 아프지만, 너를 위해서라도 네가 절에 들어가 착실히 수양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그래, 차라리 절간의 중노미로 들어가는 게 더 낫다. 

 

 


생모와 떨어지는 것이 싫었지만, 의부와 같이 지내는 것 또한 죽기보다 싫었던 히요시마루였던지라, 절에 들어가기로 작심을 했다.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절에 들어가겠어요. 

 

 


들어갔다기보다는 절에 맡겨진 히요시마루는 처음에는 절간의 중노미 노릇에 만족을 했다. 의부와 사사건건 부딪히지 않아서 좋았다. 밥도 굶지 않았다. 의부는 그를 구박하느라 걸핏하면 밥을 굶겼지만, 절에서는 잡곡의 주먹밥이지만 끼니때마다 먹을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어린 히요시마루는 절간에서의 생활이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남무아미타불. 

 

 


염불만 외우는 절 생활이 고리타분했다. 불교의 교리를 모를 뿐 더러 한참 뛰놀 나이였다. 활달하고 영리한 히요시마루는 고적한 절간에서 잔심부름이나 하면서, 말도 못하고 죽은 듯이 지내야하는 중노미 노릇에 금세 염증이 났다. 게다가 절에서 수행하는 스 님들 중에도 특히 젊은 스님들은 반쯤은 장난으로 히요시마루의 생김새를 가지고 놀리거나 조롱을 하였다. 

 

 


“어이, 원숭이! 사료는 먹었냐? 어디 재롱이나 한번 부려봐라. 
“스님이 될 사람이 점잖지 못하게 웬 원숭이 타령이오? 
“요, 쪼그만 잔나비 같은 놈이 그래도 인간이라고 말대꾸하는 것 보게!
“내가 원숭이라도 불도를 닦는 스님이 그래서는 안 될 짓이오. 그래서는 땡초 밖에 안 되오. 
“요 녀석, 말하는 거 보게. 너 이리와라. 뭐라고? 땡초라고!

 

 


수양이 부족한 절간의 젊은 중들은 어린 히요시마루에게 걸핏하면 손찌검을 했다. 그는 절 생활에 더욱 더 흥미를 잃어갔다. 일을 시켜도 슬슬 잔꾀만 부리고 딴청을 부렸다.

 

 


“너는 불심이 약한 것 같구나. 자꾸 꾀를 부리면 경을 칠 것이다. 

 

 


아직 불자가 된 것도 아닌 중노미가 일을 하지 않고, 뺀질뺀질하자 점잖은 노승들도 히요시마루를 꾸짖기 시작했다. 
사면초가였다. 히요시마루는 더는 절에 붙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분위기로 느꼈다. 

 

 


‘여기도 내가 있을 곳은 아닌가보다. 절을 떠나자.

 

 


그러나 중노미가 절을 떠나려면 부모가 직접 찾아와 절의 허락을 받아야만 절을 떠날 수 있었다. 

 

 


‘의부가 절간을 떠나는 것을 허락해줄리 만무다. 그냥 아무도 모르게 도망치는 수밖에 없다.

 

 


히요시마루는 작심을 하고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야음을 이용해, 절을 빠져나왔다. 일단 절을 도망쳐 나오긴 하였으나 찾아가 의지할 곳이 없었다.

 

 


“아, 이젠 어디로 간다.

 

 


집으로 가자니, 야차 같은 의부 치쿠아미가 마음에 걸려 도저히 집으로 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아침이 될 때까지 이리저리 궁리를 해 보았으나, 나이 어린 히요시마루가 갈 곳은 집밖에 없었다. 

 

 


‘그래, 일단 집에 가서 엄마를 만나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자. 

 

 


의부를 보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지만, 생모인 나카에게 사연을 설명하고, 방법을 찾기로 한 그는 일단 발걸음을 집으로 옮겼다. 야밤에 절을 빠져나왔는데, 집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중천에 떠오른 한낮이 되어 있었다. 그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탓에 혀는 바싹 마르고, 뱃가죽은 등허리에 붙은 것 같았다. 남의 눈에 안 뜨이려고 인가를 피해 멀리 돌아온 탓에 허기와 갈증은 더욱 심했다. 

 

 


‘내가 몰래 절을 빠져나온 것을 알면 의부는 나를 죽이려하겠지. 

 

 


수전 너머 멀리 판잣집이 보이는 곳에 이르자, 의부가 마음에 걸렸다. 

 

 


‘의부가 밖에 나가 없는 틈을 노려야 한다. 

 

 


집으로 곧장 들어설 수는 없었다. 허기진 배와 갈증을 참아가면서 집안의 동태를 살피던 히요시마루는 의부가 없는 것을 확신하고 나서야 몰래 집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나카는 뒤뜰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엄마, 엄마! 

 

 


어린 마음에 생모를 만난 기쁨은 컸지만, 혹시 하는 마음에 의부가 있을지 몰라, 목소리를 낮추었다. 나카는 깜짝 놀랐다.

 

 
“아니, 너 히요시마루 아니냐? 

 


나카는 젖은 손을 앞치마에 문지르며 일어나서는, 히요시마루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네가 집에 웬일이냐? 

 

 


나카는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짐작했다. 히요시마루를 안으면서 밖을 흘끔 쳐다보았다. 혹시라도 치쿠아미가 나타날까 걱정이 되어서였다. 

 

 


“엄마, 우선 물 좀 주세요.

 

 


물을 한숨에 들이켠 히요시마루는 입을 쓰윽 닫고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나카에게 솔직히 말을 했다.

 

 


“엄마, 으응, 저 절에서 도망쳐 왔어요. 

 

 


히요시마루의 눈에서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생모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나 비참했다. 어린 히요시마루는 나카의 품으로 자꾸 얼굴을 비집어 넣었다.

 

 


“왜, 뭔 일이 있었느냐?

 

 


나카는 바깥쪽을 흘끔흘끔 경계하면서 아들의 손을 끌고 방 옆으로 이어

 

“엉엉! 절간의 형들이 매일 놀리고, 구박하고…. 흑흑, 대들면 때리고, 하물며 밥도 주질 않아 죽을 것 같아 도망쳤어요. 엉엉, 엄마! 


히요시마루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새삼 자신의 신세가 너무 서러웠다. 눈물이 줄줄 흘렀으나, 닦을 생각도 않고 그냥 소리 나는 대로 울어댔다. 나카는 마음이 찡하면서 한편으론 가슴이 철렁했다. 사정이야, 어떻든 마음대로 절간을 뛰쳐나왔으니, 의부인 치쿠아미가 알면 아마 가만 두지 않을게 뻔한 일이었다. 몽둥이찜질이 시작될 것이고, 몽둥이찜질이 끝나고 받아주기라도 하면 괜찮은데, 다시 절간으로 끌고 갈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게다가 절에서는 또 도망친 죄로 매질을 할 것이고, 감시를 받으며 눈치 밥을 먹을 것이 눈에 선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신세였다. 이른바 진퇴양난이었다. 

 

 


“히요시마루야, 이유가 어떻든 네가 절을 뛰쳐나온 것을 알면 너의 의부가 그대로 두진 않을 거다. 내가 양식과 노자를 조금 준비해 줄 테니 우선 친척 집에 가 있도록 하거라. 

 

 


치쿠아미가 오기 전에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에 나카는 히요시마루에게 따뜻한 밥도 한 끼 해주질 못했다. 허둥지둥 양식과 노자를 준비해 보따리를 만들어서는 히요시마루에게 건네 주었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너의 생부가 돌아가실 때 남겨 놓은 밭을 정리하고, 남은 것이란다. 네가 장성하면 전해주려고 보관해 오던 것이란다. 헛된 데 쓰지 말고 잘 간직하고 있다가, 꼭 긴요할 때 쓰도록 해라!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으나, 집안에 분란이 일어나는 것도 싫었다. 나카는 자식의 얼굴을 품에 안았다가 팔을 풀고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어디를 가든 건강해야 한다. 여기 걱정은 하지 말고 네 몸을 잘 돌봐야 한다. 항상 조심해라. 알겠느냐? 

 

 


나카는 몸조심할 것을 신신당부하며 히요시마루에 등을 밀었다. 

 

 


“흑흑, 알았어요, 엄마, 엄마도 항상 몸 건강하세요. 제가 꼭 성공해서 잘 모실 테니까 꼭 건강하시고 잘 계셔야 해요! 

 

 


나이보다 생각이 깊었던 히요시마루였다. 나카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속으로 다시는 울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쓰윽 닦았다. 그리고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밖으로 나와 논길을 지나 마을을 떠나면서 뒤를 흘긋 돌아보았다. 나카가 앞치마로 연신 눈가를 찍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히요시마루는 몸을 돌려 고개를 한번 숙이고는 앞을 향해 뛰었다. 

 

 


‘내 꼭 성공하여 돌아오리라! 두고 보아라. 보란 듯이 어머니를 모시러 올 것이다! 

 

 


울지 않으려고 하는데 자꾸 눈물이 흘렀다. 보따리를 쥔 손을 바꿔가며 주먹으로 눈물을 꾹꾹 찍어냈다. 어린 히요시마루는 그렇게 쫓겨나듯이 고향을 등졌다. 고향을 떠나온 히요시마루는 처음에는 모친의 부탁대로 친척집에 의지해 머물렀다. 그러나 사정은 다 마찬가지였다. 친척집이라 해도 빈둥거리는 히요시마루를 보고 달갑게 여길 사람은 없었다. 

 

 


‘손님과 생선은 사흘만 지나면 악취가 난다.

 

 


손님도 아닌 히요시마루는 말할 것도 없었다. 어디를 가나 찬밥 신세였다. 그렇게 일 년여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결코 허송세월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무엇을 알아서 그랬겠냐마는, 영특한 그는 본능적으로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려 애를 썼다. 한곳에 가만히 있질 않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견문도 넓히고 소문을 모았다. 소위 말하는 정보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소문이 바로 정보다. 소문을 잘 취합하면 좋은 정보가 된다. 그리고 그건 바로 힘이다. 정보를 모으는 데 장사보다 더 좋은 건 없다.

 

 


친척집에서 눈치 밥을 먹으며 냉대를 받던 그는 장사꾼으로 나서기로 했다. ‘장사를 하기 위해선 우선 여기를 떠나야 한다.

 

 
‘그리고 기왕 가려면 정보가 많은 지역으로 가야 한다. 

 


그가 열다섯이 되는 해였다. 

 

 


당시 일본 중부 지역에서 그 세가 확장 일로에 있던 지역은 스루가국(駿河國 -현 시즈오카현 일부)이었다. 

 

 


‘사내로 태어나 기왕 출세를 결심하였으면 두려워 말고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는 혈혈단신으로 스루가국으로 들어가 세상을 배우고자 결심을 했다. 그리고 스루가국으로 들어가기 전, 자신의 포부를 실현한다는 의미로 개명을 했다. 

 

 


‘도키치로(藤吉郞) 

 

 


성은 기노시타(木下)였으니, 그대로 두고 이름만 개명했다. 한자 등(-일본발음 도)자는 등나무에서 따온 것이다. 등나무는 수명이 길고, 꽃이 아름답고 우아하다 하여, 당시 일본에서는 한자 등() 이 후지와라(藤原-뜻으로 읽으면 후지) 씨 같은 귀족들의 이름에 많이 사용됐다. 그는 이러한 지식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름에 등자를 넣었다. 거기에 좋은 일이 많이 있으라는 뜻에서 좋을 길(-일본발음 키치)자를 더했다. (-일본발음 로)은 사내아이 이름 뒤에 많이 붙이는 접사였다. 그는 이제까지와 다른 새로운 삶을 위해 입신양명 하기로 작심을 하고 이름까지 개명한 것이었다. 

 


그 무렵, 스루가국을 지배하던 영주인 다이묘는 이마가와 요시 모토(今川義元)였다. 이마가와는 당시 일본내에서 강력한 무력을 소유한 유력 영주 중의 하나였다. 이마가와의 세력범위는 관동지방에서 가장 넓은 지역에 퍼져있었다. 주변 영주들 중 감히 그를 넘볼 세력은 없었다. 

제 41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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