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화
출정 <유키나가의 갈등>
임진왜란 발발 여섯 달 전인 1591년 가을이었다. 조선 침략을 결정한 히데요시는 일본 전국의 영주들에게 조선출정 명령을 내렸다.
“조선 정벌을 위해 현해탄이 내려다보이는 나고야(名護屋)지역을 전진 기지로 삼는다. 그곳에 거성을 축성하라.”
축성은 속전속결로 이루어져 이듬해에 성이 완성됐다. 히데요시는 그곳을 본진으로 삼고 전국에서 이십만의 병력을 모아 집결시켰다.
“유키나가. 그대는 출정 군사 칠천을 동원하라!”
히데요시가 유키나가에게 내린 명령이었다.
히데요시는 전국에 있는 영주들에게 녹봉에 따라 군사 수를 배정했다. 군사 칠천을 끌고 참전하라는 명령을 받은 유키나가는 영지 내의 열다섯 살 이상, 오십 세 이하의 장정들에게 소집 명령을 내렸다. 처음에는 열여덟 살 이상 사십 세 이하로 제한을 두었으나, 정상적인 신체를 가진 장정으로 칠천을 긁어모을 수가 없어,나이 제한의 폭을 넓혔다.
영지 내의 열다섯 살에서 오십 세 이하의 큰 병이 없는 남자는 모두 차출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영지에 남은 남자들은 영주가 성을 비운 사이 있을지 모르는 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군사 병력과 신체적결함을 안고 있는 자들뿐이었다.
히데요시의 추상 같은 명에 따라 임진왜란 두 달 전인 1592년 2월 하순에는 이미 전국의 유력 영주들이 각자의 군대를끌고, 사가(佐賀) 나고야성 주변에 모여 히데요시의 출정 명령만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유키나가도 반강제로 끌어모은 병사들을 끌고 규슈 북쪽에 있는 나고야로 올라와 산성 남쪽 아래에 주둔했다.
“츠시마에 전령을 띄워라.”
‘출정을 위해 나고야성에 와 있네. 간바쿠 전하(關白-히데요시의 관직)가 이곳으로 오기 전에 조선 측으로부터 교역을확대시킨다는 허가를 받아내야 하네. 시간이 없네.’
유키나가는 나고야에 있으면서도 화평 교섭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대마도에 있는 사위와 수시로 긴밀하게연락하며 조선과의 교역 확대를 통한 화평 교섭을 위해 애썼다.
‘조금 더 노력해 조선과의 화평이 성립된다면 군사들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된다. 만일 이대로 조선에 건너가게 된다면, 많은 사람이 희생될 것은 뻔한 일. 한 사람의 오판으로 죄 없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다면그처럼 무의미한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어떡해서든지 이번 전쟁을 막아야 한다.’
그는 조선 침략으로 인해 일어날 참사를 충분히 예견했고, 영주로서 뿐만 아니라, 천주교도로서도 그런 불행하고 무고한 일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적으로, 종교적으로 싸움을 막으려는 그의 마음은 절실했다.
“주군! 간바쿠 전하로부터 전령이 와 있습니다.”
전날 대마도에서 돌아온 전령으로부터 ‘조선쪽 움직임 없음.’ 이라는 보고를 받고 전전긍긍하던 차였는데, 이어서 히데요시가 파견한 전령이 막사로 찾아왔다는 보고였다.
히데요시는 원래대로라면 정월에 나고야성으로 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여러 사정으로 인해 움직이질 못하고 아직 교토에 남아 있었다. 그로서는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만일 히데요시가 나고야성으로 온다면 전쟁을 지연시키거나 막을방법은 없기 때문이었다.
‘주군이 오기 전에 화평을 끌어내지 못하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유키나가는 여러 정황으로 보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체감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지체할 겨를이 없으니 어서 빨리 화평교섭 결과를 끌어내라고 도주에게 전하라.”
마음이 급한 나머지 대마도에서 돌아온 전령을 쉬라는 말도 없이 곧바로 돌려보냈는데, 곧이어 히데요시로부터 전령이왔다는 보고가 올라온 것이었다.
‘이제 어쩌면 좋단 말이냐?’
“우선 안으로 안내하라.”
유키나가는 자신의 군막에서 전령을 기다리면서 갑옷과 군의를 걸쳤다.
간접적으로나마 출정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역시 불안한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히데요시가 참다못해 전령을 보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건 아닌지?’
‘혹시 할복 명령이?’
“후우읍.”
유키나가는 숨을 크게 들이키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전령은 혼자였다.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불쑥 히데요시의 명령서를 품에서 꺼내 내밀었다. 예를 다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위로 올려 서신을 건네받았다. 둘둘 말린 서신은 묵직했다. 그 끈을 푸는 유키나가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즉시 교토로 올라올 것.’
묵직했던 촉감과는 달리 서신의 내용은 간단했다. 즉시 교토(京都)로 출두하라는 명령뿐이었다.
“무슨 일이오. 간바쿠 전하께서 아무런 내용도 적지 않고 단지 교토로 올라오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오?”
“글쎄요? 제가 알기로는 교토에서 역정을 내실 만한 특별한 일이 있지는 않습니다. 영주님께서 가보시면 아시게 되겠지요.”
전령을 통해 히데요시의 심중을 파악하려 했으나, 전령도 입장이 곤란한지 더는
묻지 말라는 투로 답을 끊었다.다만 신속히 움직이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눈치는 주었다. 히데요시의 심기가 편치 않다는
의미였다.
유키나가는 시종 겸 호위 둘만을 데리고 즉시 교토로 올라갔다. 사가(佐賀)에서 교토까지는 이천 리 길이었다.쉬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도 보름 이상이 걸리는 길이었다.조금이라도 히데요시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유키나가의 마음은 급했다. 발걸음은 절로 움직였다. 히데요시의 말 한마디에 목이
떨어질 수도 있었다.
히데요시의 측근으로서, 정치는 ‘히데요시’, 문화는 ‘센노리큐(千利休)’로 평가받을 정도로, 은은하고 소박한 일본의 차도
문화를 완성시켜 차도의 성인이라 칭송받던 당대의 실력자인 리큐가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할복 후 교토에 효수된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리큐가 히데요시의 조선 출병을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유키나가는 조금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주군, 숙소로 향할까요?”
“아니다.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곧장 간바쿠 전하의 거성으로 향하도록 하라.”
“그럼, 분부대로….”
유키나가는 교토에 도착한 후, 히데요시의 근황과 속마음을 탐문할 여유도 없이 곧바로 히데요시의
거성인 쥬라쿠다이성(聚樂第)으로 들어갔다. 평소 같으면 숙소에 먼 들러 히데요시 측근들에게 연통을 놓아 분위기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준비하는 것이 순서였으나,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히데요시가 자신을 총애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변덕이 심했던 터라,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히데요시는 천하를 호령하는 절대
권력자였다. 그의 말 한마디에 누구라도 언제든지 생사가 갈릴 수 있었다.
“누구냐?”
히데요시의 거성인 쥬라쿠다이 입구에 다다르자 경비병들이 기다란 장창을 내밀며 수하했다.
“히고 성주 고시니 유키나가님이다. 간바쿠 전하를 뵈러 왔다.”
유키나가의 호위를 맡고 있는 도리베가 앞으로 나섰다.
“잠깐 기다리시오.”
천하를 호령하는 히데요시의 거처인지라 경비가 삼엄했다. 조금 지나자 히데요시의 측근이
성루에서 직접 내려와 유키나가를 맞이했다.
“유키나가 님. 용서하십시오. 불온한 움직임은 없지만, 요즘 전하의 심기가 편치 않은지라….’
유키나가는 히데요시의 심기가 편치 않다는 말에 다시 한 번 긴장했다.
“유키나가 님이 대령했사옵니다.”
화려한 금박으로 장식된 문 앞에서, 근시는 정중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안쪽을 향해 고했다. 히데요시의 근시가 자신의 도착을 알리는 소리를 들으며, 유키나가는 밖에서 무릎을 꿇고
안쪽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으나 그에게는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들여보내라!”
이윽고 근시의 목소리와는 대조적으로 나이 들어 갈라진, 높고 급한 히데요시의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격앙된 목소리였다. 언성이 심상치 않았다. 유키나가는 태연한 척하려 하였으나 저도 모르게 몸이 후들후들
떨림을 느꼈다. 히데요시가 상당히 격노하고 있다는 것을 목소리를 통해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시가 문을 옆으로 당겨 열자, 넓은 다다미 방 안쪽에서 그가
벌떡 일어서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유키나가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방 입구에서부터 허리를 숙여 납작 엎드렸다. 무릎을 꿇고 기어들어가 몸을
최대한 낮추어 예를 표했다.
“전하! 신 유키나가 분부를 받아 대령했사옵니다.”
히데요시는 일어선 채로 유키나가에게 다가왔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구나. 그건 그렇고, 조선에서는 아무런 답신이 없느냐?”
히데요시는 먼 길에 수고했다는 치하의 말도 없었다. 다짜고짜로 유키나가를 향해 언성을
높였다.
“죄송하옵니다. 전하! 하지만 사절의 보고에 의하면 조선 측에서 조만간 사신을 보낼 것이라 하옵니다.”
“사신? 유키나가! 짐이 지금 사신 따위를 기다리고 있다 생각하는가? 조선의 왕을 입조시키랬더니 사신은
다 무어더냐?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으니, 본때를 보여줘라. 지금 즉시 나고야로 돌아가 군사를
끌고 출정하라.”
“하아! 전하, 명심하여 분부대로 거행하겠나이다!”
서슬이 퍼런 히데요시의 모습을 접하고는 유키나가는 더 이상 대꾸를 했다가는 자신의 목숨도 안전치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반드시 조선을 초토화시키고, 조선의 왕을 사로잡아 전하 앞에 대령하겠습니다.”
“그게 내 말이다. 내 그대에게 선봉으로 1번 대를 맡길 테니 앞장을 서도록 하라. 만일 더 이상 꾸물거렸다가는
먼저 그대의 신상에 화가 미칠 것이다. 그리고 2번 대는 가토 기요마사가 맡을
것이니라. 그러니 나고야로 돌아가는 즉시 출정하라. 머뭇거리지 말고 지금 당장 돌아가
실행하도록 하라.”
조선의 왕을 사로잡아 바친다는 소리에 히데요시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졌음을 느낀 유키나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하의 은혜 황공무지로소이다.”
성격이 불같은 히데요시였다. 명령을 거역하거나 토를 달았다간 그 자리에서 목이 떨어져 나갈
수도 있었다. 되도록 빨리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전하. 그럼 즉시 출정하기 위해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어서 물러가 조선으로 출정하라. 꾸물대지 마라.”
유키나가는 즉시 출정한다는 핑계를 대고 곧바로 히데요시가 있는 쥬라쿠다이성을 빠져나왔다.
‘휴우, 이쯤으로 끝난 게 다행이다.’
히데요시로부터 질책을 받고 나고야로 돌아온 유키나가는 즉시 군사를 수습했다.
“지금 즉시 본진을 정리해 츠시마(대마도의 일본명)로 건너간다.”
그로서는 나고야 역시 안심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전국 각 지역의 영주들이 각자의
군사를 이끌고 여기저기 주둔하고 있었고, 그 수가 이십만에 달했다. 영주들 중에는 이번 출진을 통해
자신의 군공을 쌓고자 하는 자들도 있었다. 군공을 쌓아 히데요시의 총애를
받게 되면 자신의 영지가 안정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자들은 한시라도 빨리 조선에
건너가고 싶어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또한 히데요시에게 총애를 받고 있는 자신을 질투하는 자도 있었다. 그들이 히데요시에게 자신을 모함한다면
언제 할복 명령을 갖고 전령이 달려올지 모를 상황이었다.무고라 할지라도 히데요시의 마음이
바뀌면 그 자리에서 참수를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생각만 해도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아무튼 나고야를 벗어나기 전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을뿐더러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위기를 느낀 유키나가는 부랴부랴
군사를 이끌고 나고야를 빠져나왔다. 도보로 북쪽으로 올라와서, 배를 타고 대마도에 도착한 것이
임진년 음력 3월 초하루였다. 자신의 영지인 규슈의 히고(肥後)를 떠나온 것이 그 해 정월이었으니, 벌써 석 달이 지났던 터였다.
허겁지겁 도망치듯 나고야를 빠져나와 대마도에 들어서자 조금은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유키나가는 여전히 화평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는 날씨와 현해탄의 파도를 핑계 삼아 계속 출정을 미루었다.
그런 한편 사위를 시켜 조선 조정과 교역 재개를 전면적으로 허락하라고 협상을 유도했으나, 조선쪽은 요지부동이었다. 음력 4월에 들어서 다시 히데요시가
보내온 전령이 대마도로 들어왔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유키나가도 이젠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음을 잘 알았다. 그는 전령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결정을 내렸다.
“명일 일기와 관계없이 출정하리다. 여기 있다가 출정하는 모습을
보고 간바쿠 전하에게 그대로 전해 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