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출정 <유키나가의 갈등>


   임진왜란 발발 여섯  전인 1591 가을이었다조선 침략을 결정한 히데요시는 일본 전국의 영주들에게 조선출정 명령을 내렸다.


“조선 정벌을 위해 현해탄이 내려다보이는 나고야(名護屋)지역을 전진 기지로 삼는다그곳에 거성을 축성하라.


축성은 속전속결로 이루어져 이듬해에 성이 완성됐다히데요시는 그곳을 본진으로 삼고 전국에서 이십만의 병력을 모아 집결시켰다.


“유키나가그대는 출정 군사 칠천을 동원하라!


히데요시가 유키나가에게 내린 명령이었다.

히데요시는 전국에 있는 영주들에게 녹봉에 따라 군사 수를 배정했다군사 칠천을 끌고 참전하라는 명령을 받은 유키나가는 영지 내의 열다섯  이상오십  이하의 장정들에게 소집 명령을 내렸다처음에는 열여덟  이상 사십  이하로 제한을 두었으나정상적인 신체를 가진 장정으로 칠천을 긁어모을 수가 없어,나이 제한의 폭을 넓혔다.

영지 내의 열다섯 살에서 오십  이하의  병이 없는 남자는 모두 차출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영지에 남은 남자들은 영주가 성을 비운 사이 있을지 모르는 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군사 병력과 신체적결함을 안고 있는 자들뿐이었다.

히데요시의 추상 같은 명에 따라 임진왜란   전인 1592 2 하순에는 이미 전국의 유력 영주들이 각자의 군대를끌고사가(佐賀나고야성 주변에 모여 히데요시의 출정 명령만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유키나가도 반강제로 끌어모은 병사들을 끌고 규슈 북쪽에 있는 나고야로 올라와 산성 남쪽 아래에 주둔했다.


“츠시마에 전령을 띄워라.


‘출정을 위해 나고야성에  있네간바쿠 전하(關白-히데요시의 관직) 이곳으로 오기 전에 조선 측으로부터 교역을확대시킨다는 허가를 받아내야 하네시간이 없네.

유키나가는 나고야에 있으면서도 화평 교섭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대마도에 있는 사위와 수시로 긴밀하게연락하며 조선과의 교역 확대를 통한 화평 교섭을 위해 애썼다.

‘조금  노력해 조선과의 화평이 성립된다면 군사들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 생업에 종사할  있게 된다만일 이대로 조선에 건너가게 된다면많은 사람이 희생될 것은 뻔한  사람의 오판으로  없고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다면그처럼 무의미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어떡해서든지 이번 전쟁을 막아야 한다.


그는 조선 침략으로 인해 일어날 참사를 충분히 예견했고영주로서 뿐만 아니라천주교도로서도 그런 불행하고 무고한 일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인간적으로종교적으로 싸움을 막으려는 그의 마음은 절실했다.


“주군간바쿠 전하로부터 전령이  있습니다.


전날 대마도에서 돌아온 전령으로부터 ‘조선쪽 움직임 없음. 이라는 보고를 받고 전전긍긍하던 차였는데이어서 히데요시가 파견한 전령이 막사로 찾아왔다는 보고였다.

히데요시는 원래대로라면 정월에 나고야성으로  예정이었다그런데 여러 사정으로 인해 움직이질 못하고 아직 교토에 남아 있었다그로서는 여간 다행이 아닐  없었다만일 히데요시가 나고야성으로 온다면 전쟁을 지연시키거나 막을방법은 없기 때문이었다.


‘주군이 오기 전에 화평을 끌어내지 못하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유키나가는 여러 정황으로 보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체감하고 있었다.


“이제  이상 지체할 겨를이 없으니 어서 빨리 화평교섭 결과를 끌어내라고 도주에게 전하라.


마음이 급한 나머지 대마도에서 돌아온 전령을 쉬라는 말도 없이 곧바로 돌려보냈는데곧이어 히데요시로부터 전령이왔다는 보고가 올라온 것이었다.


‘이제 어쩌면 좋단 말이냐?

“우선 안으로 안내하라.


유키나가는 자신의 군막에서 전령을 기다리면서 갑옷과 군의를 걸쳤다.

간접적으로나마 출정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기기 위해서였다그러나 역시 불안한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히데요시가 참다못해 전령을 보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것이   아닌지?

‘혹시 할복 명령이?

“후우읍.


유키나가는 숨을 크게 들이키며 마음을 가다듬었다전령은 혼자였다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불쑥 히데요시의 명령서를 품에서 꺼내 내밀었다예를 다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위로 올려 서신을 건네받았다둘둘 말린 서신은 묵직했다그 끈을 푸는 유키나가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즉시 교토로 올라올 것.


묵직했던 촉감과는 달리 서신의 내용은 간단했다즉시 교토(京都)로 출두하라는 명령뿐이었다.


“무슨 일이오간바쿠 전하께서 아무런 내용도 적지 않고 단지 교토로 올라오라니도대체 무슨 일이오?


“글쎄요제가 알기로는 교토에서 역정을 내실 만한 특별한 일이 있지는 않습니다영주님께서 가보시면 아시게 되겠지요.


전령을 통해 히데요시의 심중을 파악하려 했으나전령도 입장이 곤란한지 더는 묻지 말라는 투로 답을 끊었다.다만 신속히 움직이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눈치는 주었다히데요시의 심기가 편치 않다는 의미였다.

유키나가는 시종 겸 호위 둘만을 데리고 즉시 교토로 올라갔다사가(佐賀)에서 교토까지는 이천 리 길이었다.쉬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도 보름 이상이 걸리는 길이었다.조금이라도 히데요시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유키나가의 마음은 급했다발걸음은 절로 움직였다히데요시의 말 한마디에 목이 떨어질 수도 있었다. 


히데요시의 측근으로서정치는 ‘히데요시’문화는 ‘센노리큐(千利休)’로 평가받을 정도로은은하고 소박한 일본의 차도 문화를 완성시켜 차도의 성인이라 칭송받던 당대의 실력자인 리큐가 히데요시의 명령으로할복 후 교토에 효수된 사건이 있었다그런데 그 이유가리큐가 히데요시의 조선 출병을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유키나가는 조금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주군숙소로 향할까요?

“아니다꾸물거릴 시간이 없다곧장 간바쿠 전하의 거성으로 향하도록 하라.

“그럼분부대로….


유키나가는 교토에 도착한 후히데요시의 근황과 속마음을 탐문할 여유도 없이 곧바로 히데요시의 거성인 쥬라쿠다이성(聚樂第)으로 들어갔다평소 같으면 숙소에 먼 들러 히데요시 측근들에게 연통을 놓아 분위기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준비하는 것이 순서였으나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히데요시가 자신을 총애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변덕이 심했던 터라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히데요시는 천하를 호령하는 절대 권력자였다그의 말 한마디에 누구라도 언제든지 생사가 갈릴 수 있었다.


“누구냐?


히데요시의 거성인 쥬라쿠다이 입구에 다다르자 경비병들이 기다란 장창을 내밀며 수하했다. 


“히고 성주 고시니 유키나가님이다간바쿠 전하를 뵈러 왔다.


유키나가의 호위를 맡고 있는 도리베가 앞으로 나섰다.


“잠깐 기다리시오.

천하를 호령하는 히데요시의 거처인지라 경비가 삼엄했다조금 지나자 히데요시의 측근이 성루에서 직접 내려와 유키나가를 맞이했다.


“유키나가 님용서하십시오불온한 움직임은 없지만요즘 전하의 심기가 편치 않은지라….


유키나가는 히데요시의 심기가 편치 않다는 말에 다시 한 번 긴장했다.


“유키나가 님이 대령했사옵니다.

화려한 금박으로 장식된 문 앞에서근시는 정중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안쪽을 향해 고했다히데요시의 근시가 자신의 도착을 알리는 소리를 들으며유키나가는 밖에서 무릎을 꿇고 안쪽의 대답을 기다렸다잠깐의 정적이 흘렀으나 그에게는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들여보내라!


이윽고 근시의 목소리와는 대조적으로 나이 들어 갈라진높고 급한 히데요시의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격앙된 목소리였다언성이 심상치 않았다유키나가는 태연한 척하려 하였으나 저도 모르게 몸이 후들후들 떨림을 느꼈다히데요시가 상당히 격노하고 있다는 것을 목소리를 통해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근시가 문을 옆으로 당겨 열자넓은 다다미 방 안쪽에서 그가 벌떡 일어서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유키나가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방 입구에서부터 허리를 숙여 납작 엎드렸다무릎을 꿇고 기어들어가 몸을 최대한 낮추어 예를 표했다.


“전하신 유키나가 분부를 받아 대령했사옵니다.


히데요시는 일어선 채로 유키나가에게 다가왔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구나그건 그렇고조선에서는 아무런 답신이 없느냐?

히데요시는 먼 길에 수고했다는 치하의 말도 없었다다짜고짜로 유키나가를 향해 언성을 높였다.


“죄송하옵니다전하하지만 사절의 보고에 의하면 조선 측에서 조만간 사신을 보낼 것이라 하옵니다.

“사신유키나가짐이 지금 사신 따위를 기다리고 있다 생각하는가조선의 왕을 입조시키랬더니 사신은 다 무어더냐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더 이상 기다릴 수 없으니본때를 보여줘라지금 즉시 나고야로 돌아가 군사를 끌고 출정하라.

“하아전하명심하여 분부대로 거행하겠나이다!


서슬이 퍼런 히데요시의 모습을 접하고는 유키나가는 더 이상 대꾸를 했다가는 자신의 목숨도 안전치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반드시 조선을 초토화시키고조선의 왕을 사로잡아 전하 앞에 대령하겠습니다.

“그게 내 말이다내 그대에게 선봉으로 1번 대를 맡길 테니 앞장을 서도록 하라만일 더 이상 꾸물거렸다가는 먼저 그대의 신상에 화가 미칠 것이다그리고 2번 대는 가토 기요마사가 맡을 것이니라그러니 나고야로 돌아가는 즉시 출정하라머뭇거리지 말고 지금 당장 돌아가 실행하도록 하라.


조선의 왕을 사로잡아 바친다는 소리에 히데요시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졌음을 느낀 유키나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하의 은혜 황공무지로소이다.


성격이 불같은 히데요시였다명령을 거역하거나 토를 달았다간 그 자리에서 목이 떨어져 나갈 수도 있었다되도록 빨리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전하그럼 즉시 출정하기 위해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어서 물러가 조선으로 출정하라꾸물대지 마라.

유키나가는 즉시 출정한다는 핑계를 대고 곧바로 히데요시가 있는 쥬라쿠다이성을 빠져나왔다.


‘휴우이쯤으로 끝난 게 다행이다.


히데요시로부터 질책을 받고 나고야로 돌아온 유키나가는 즉시 군사를 수습했다.

“지금 즉시 본진을 정리해 츠시마(대마도의 일본명)로 건너간다.

그로서는 나고야 역시 안심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전국 각 지역의 영주들이 각자의 군사를 이끌고 여기저기 주둔하고 있었고그 수가 이십만에 달했다영주들 중에는 이번 출진을 통해 자신의 군공을 쌓고자 하는 자들도 있었다군공을 쌓아 히데요시의 총애를 받게 되면 자신의 영지가 안정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그런 자들은 한시라도 빨리 조선에 건너가고 싶어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또한 히데요시에게 총애를 받고 있는 자신을 질투하는 자도 있었다그들이 히데요시에게 자신을 모함한다면 언제 할복 명령을 갖고 전령이 달려올지 모를 상황이었다.무고라 할지라도 히데요시의 마음이 바뀌면 그 자리에서 참수를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생각만 해도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아무튼 나고야를 벗어나기 전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을뿐더러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위기를 느낀 유키나가는 부랴부랴 군사를 이끌고 나고야를 빠져나왔다도보로 북쪽으로 올라와서배를 타고 대마도에 도착한 것이 임진년 음력 3월 초하루였다자신의 영지인 규슈의 히고(肥後)를 떠나온 것이 그 해 정월이었으니벌써 석 달이 지났던 터였다.

허겁지겁 도망치듯 나고야를 빠져나와 대마도에 들어서자 조금은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유키나가는 여전히 화평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그는 날씨와 현해탄의 파도를 핑계 삼아 계속 출정을 미루었다.

그런 한편 사위를 시켜 조선 조정과 교역 재개를 전면적으로 허락하라고 협상을 유도했으나조선쪽은 요지부동이었다음력 4월에 들어서 다시 히데요시가 보내온 전령이 대마도로 들어왔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유키나가도 이젠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음을 잘 알았다그는 전령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결정을 내렸다.


“명일 일기와 관계없이 출정하리다여기 있다가 출정하는 모습을 보고 간바쿠 전하에게 그대로 전해 주시오.



 제 3 화에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    출 정 < 1번대>
               
저벅, 저벅, 저벅.

“츠시마(대마도의 일본명)대는 승선하라. 대열을 유지하라.” 


어둠이 채가시지 않은 새벽녘이었다. 동편의 해는 아직 떠오를 기미도 보이질 않아, 주위는 어두컴컴했다여명의 바다는 시커먼 빛을 뿜어냈다
대마도의 오우라 (尾浦)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서쪽 구릉 위에는 갑옷으로 무장을 한 왜장이 착잡한 표정으로 군사들의 승선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선정벌군 제 1대 총대장 고니시 유키나가 (小西行長), 그가 앉아있는 의자 뒤쪽으로 둥그렇게 장막이 둘러쳐져 있었고, 양옆으로는 허리에 칼을 차고 무장을 한 근위장들이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앞쪽으로는 초병으로 보이는 자들이 창을 곧추 세우고, 횡렬로 도열해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군막 안팎의 공기는 사뭇 삼엄하면서도 무거웠다. 


 “지금 승선하는 대열이 츠시마대인가?
 
“예,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주군. 


  무언으로 선착장을 내려다보던 유키나가가 무거운 분위기를 깨려는 듯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유키나가의 느닷없는 질문에 옆에 있던 근위장 하나가 황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얼른 답했다. 


  “흐으음.


 유키나가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새어나오는가 싶더니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휘이익. 파락파락.


쌀쌀한 새벽 바람이 듬성듬성 이어 놓은 군막의 빈틈을 파고 들어오는지, 바람소리에 이어 천막이 떨리는 소리가 군막 안으로 울려 퍼졌다.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은 차가웠다. 새벽 냉기를 애써 외면하듯, 유키나가는 미동도 않고 언덕 아래 선착장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나이 당시 서른넷이었다. 윤곽이 뚜렷하고 얼굴빛이 희어 겉으로 보기에는 무장보다는 학자에 가까운 이지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었던 터라, 웬만한 일에는 꿈쩍도 않던 그였는데, 오늘따라 그의 표정에 비장함이 감돌고 있었다.

언덕 아래 선착장 앞쪽에는 조선 출정의 명령을 받고 대마도에 모여든 병사 일만 팔천이 군선에 올라타느라 분주했다. 병사들은 모두 창과 칼, 철포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살풍경이었다.


“승선이 끝나는 대로 바로 출항한다. 우리 츠시마대가 선두에 선다.


요시토시(宋義智-소 요시토시)는 부장들에게 선두에 서라는 명령을 내렸다. 대마도의 젊은 도주였다. 선대인 요시시게가 병사하자, 양자였던 그가 약관의 나이에 도주의 자리를 물려받아 대마도를 통치하고 있었다. 조선 출병 제1번대 총대장 유키나가의 사위이기도 했다.


“명일 새벽 조선으로 출정할 것이네.


조선 출정은 전날 전격적으로 결정되었다. 약 한 달간을 대마도에 머물며 조선 출병을 가늠하던 총대장 유키나가가 결단을 내린 것이다. 출정을 결정한 유키나가는 요시토시를 따로 불러들였다.


“히데요시(豊臣秀吉-도요토미 히데요시) 전하로부터 즉시 출정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네. 이젠 더는 머뭇거릴 수 없음을 이해하게. 더꾸물거리다간 우리 모두의 목숨이 성치 못할 것이야.


유키나가는 다다미방 상좌에 앉아 사위 요시토시를 굳은 얼굴로 바라보며, 조선과의 화평 교섭을 이제 그만 체념하라는 듯 명령반 조언반의 말투로 말을 꺼냈다. 구절마다 힘이 들어가 말의 매듭이 딱딱 끊어졌다. 자신의 말에 토를 달지 말고 따르라는 무언의 강요가 배어 있었다.


“잘 알겠습니다. 장인어른, 그럼 명령에 따라 내일 미명에 출정하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도주 요시토시도 출정을 저지시키는 것이 무리임을 알았다. 이젠 조선과의 화평을 유지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출정을 위해 각오를 새롭게 해야 했다. 장인의 곤혹스러워하는 얼굴에서 그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말을 아꼈다. 장인의 심기를 어지럽게 할 것 같아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후 그대로 물러 나왔다. 요시토시 역시 히데요시의 독촉이 없었다 하더라도 출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었다. 화평 교섭을 위해 조선에 파견한 사절로부터는 여전히 아무런 답신이 없었다.
게다가 약 이 만에 가까운 군사가 한 달여를 대마도에 머물다 보니 양식에서 뿐만 아니라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병사들의 폭행, 약탈, 강간 등이 끊이질 않았다. 도민들에 대한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각 부대는 출정 준비를 하고 명일 미명까지 오우라항으로 집결하라.


유키나가는 사위인 요시토시에게 가장 먼저 출정을 알린 후, 곧 전령을 띄웠다. 각 부대를 끌고 있는 영주들에게 군령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군령에 이의를 다는 영주는 없었다. 그만큼 군령은 엄격했다.


“주군. 각대의 영주님들이 군막 쪽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군막 안에 앉아 있던 유키나가에게 근위장이 다가와 보고하였다.


“따뜻한 차를 준비해 놓아라.


유키나가는 간이 의자에서 일어나 장막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각 부대를 끌고 있는 영주들이 말을 타고 언덕을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승선에 앞서 총대장인 자신에게 예를 표하고자 군막 쪽으로 다가오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찻물을 끓이느라 피워놓은 화로의 불이, 냉랭하고 삼엄했던 군막안의 공기를 따뜻하게 데워놓았다. 유키나가는 군막 안으로 들어온 각대의 영주들에게 차례차례 따뜻한 차와 함께 격려의 말을 건넸다.


“츠시마 도주가 앞에 설 것이오. 그 뒤를 따르시오. 쉽지 않은 항해 길이 될 터인즉 모두들 조심하길 바라오.무운을 빌겠소.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먼저 승선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차를 나눠 마시고, 서로 예를 표한 후 오우라항을 향해 내려가는 각 대의 영주들을 유키나가는 다시 한 번 착잡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후우, 결국은 이렇게 되고 말 것을….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애를 썼단 말인가?


유키나가는 일본 규수 지방 히고(肥後, 현 구마모토 지역)의 영주였다. 그는 일본 전국을 통일해 천하인이 된 히데요시의 측근 심복이었다.
조선 정벌 제1번대 대장직을 임명받은 것은 약 한 달 전의 일이었다.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하는 수 없이 1번대 총대장을 맡았으나, 그는 내심, 이번 조선 출정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히데요시를 주군으로 모시며 모든 일에 충성을 다했으나, 이번 조선 출정만큼은 반대편에 서 있었다.

그래서 명령을 받고 전진기지인 대마도로 들어오긴 했지만, 일기를 핑계로 차일피일하며 출정을 미루어 왔던 것이다.

그는 이번 조선 출정을, 히데요시의 지나친 자만과 과욕이 만들어낸 것으로 보고 있었다. 국제사회에 대한 정보력 부재 속에서 이루어진 이번 출정이 자칫하면 히데요시의 권력뿐만 아니라, 어쩌면 자신과 사위의 기반마저도 위협할 수 있었다.


대마도는 오래전부터 조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교역을 독점해왔다. 그러던 차에, 중종 5(1510)에 삼포왜란이 일어나,화가 난 조선이 삼포의 왜관을 폐쇄하고, 일본과의 모든 교역을 중지시켰다. 그러자, 조선과의 교역을 통해 재정을 충당해오던 대마도는 재정적으로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관계 개선을 위해 대마도주는 삼포왜란의 주모자인 왜구를 잡아 바치는 등, 조선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끈질길 노력 끝에 제한적이지만 교역이 재개되어 이제 겨우 조선 측의 신뢰를 회복해가는 상황이었다. 삼포왜란 후 조선 조정은 일본 지역에서 오직 대마도만을 교역상대로 인정했다. 그러나 아직도 삼포 중, 부산포만이 개항된 상태인데다가, 부산포 왜관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었다. 교역을 일부 허락받긴 했지만 아직 조선 측의 완전한 신뢰를 회복하진 못했다.


“만일 히데요시 전하가 조선을 침략한다면 조선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조선과의 교역을 확대시킨다는 꿈은 더욱 요원해집니다. 게다가 조선의 뒤에는 명이 있습니다. 히데요시 전하가 조선과 명을 정벌하여 통치한다는 것은 망상에 불과합니다.

요시토시는 조선과 명을 정벌하여, 자신이 직접 통치하겠다는 히데요시의 계획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를 누누이 유키나가에게 전했다. 선대가 사망하고 새롭게 도주가 된 요시토시는 유키나가의 사위였으며, 같은 천주교도였다. 독실한 천주교도인 유키나가는 천주교 신부들과의 교류를 통해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정세에도 비교적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조선과 명과는 사위인 요시토시를 통해 히데요시 모르게 비밀리에 교역을 해왔다. 교역을 통해 얻은 이익은 영지 재정에 충당되었다. 그 덕에 통치가 안정되어 있었다. , 조선과의 교역이 영지의 통치를 안정시켜주었던 것이었다. 또한 사위가 조선통인지라 비교적 다른 영주들보다 조선과 명에 대한 정보가 밝았다.


‘주군인 히데요시 님이 뛰어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그러나 남만(南蠻)은 차치하더라도 조선과 명에 대한 정보도 견식도 없지 않은가. 만일 이번 조선 출정에서 실패하면 히데요시 님뿐만 아니라, 내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


주변국의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던 그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히데요시가 조선과 명으로 출정하는 것을 막고자 했다. 사위인 대마도주와 머리를 맞대고 조선과의 화평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궁리를 해왔지만 여의치 않았다. 조선의 정세에 어두운 히데요시는 막무가내로 조선의 왕이 일본으로 건너와 자신을 알현하라고 독촉했고, 조선 조정은 통신사 파견 이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어떡해서든지 중간에서 전쟁을 막고 화평을 끌어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희도 같이 무너질 것입니다. 아무튼 전쟁만은 막아야 합니다.


유키나가는 사위의 의견을 높이 샀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전쟁을 막으려 애를 써왔다. 조선 조정의 요구로 오도열도에 있던 조선인 반민과 포로들을 모두 송환했다. 그의 끈질긴 노력과 중개 덕분에 그동안 묵묵부답이었던 조선 조정도 통신사를 파견해 왔고, 얼마간의 화평 교섭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통신사가 돌아간 후, 조선 조정은 통신사를 파견한 것으로 모든 외교적 예를 다했으니 더 이상 교섭은 없다는 눈치였다. 통신사 파견으로 조선인 반민과 포로 송환에 대한 빚은 갚았으니, 더는 성가시게 하지 말라는 태도였다. 한쪽에서는 말을 안 들으면 무력을 동원하여 정벌을 한다는데, 다른 한쪽인 조선은 태평세월이었다.

유키나가는 오히려 조선 측보다는 자신과 사위의 마음이 더 다급했음을 느꼈다. 그는 사위를 직접 파견해 조선과 외교적인 해결을 요구하는 한편, 전쟁이 일어나면 다 죽을 것이라는 위협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이독경이었다. 말 그대로 조선 조정은 말을 못 알아듣는 황소가 앞발을 버티고 떼를 쓰듯, 땅속 깊이 박힌 돌멩이 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조선에서는 아무런 답이 없는가?
“예, 그렇습니다. 그러나 장인어른,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어허, 이럴 수가. 위정자들이 벽창호와 조금도 다를 바 없으니, 백성들이 불쌍하구나!


유키나가는 조선 측이 야속했다. 조선과의 외교적 성과를 기다리며 초조해하던 유키나가에게 히데요시의 전령이 처음 나타난 것은 두 달 전이었다. 한해 전에 조선 통신사가 다녀간 후로, 조금은 유연해진 히데요시였다.


“다음은 조선의 왕이 직접 건너오도록 하라.
“꼭 이행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히데요시의 명을 받은 유키나가는 그렇게 하리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유키나가는 조선의 왕이 일본으로 건너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잘 알고 있었다.
히데요시의 조선정벌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그렇게 대답한 것뿐이었다.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다.


조선의 왕을 일본으로 건너오게 할 것이라는 유키나가의 말을 믿고 기다리던 히데요시는 아무런 보고가 없자 조선 정벌을 명령했다.




제2화에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 시종, 히데요시 -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도키치로는 노부나가를 주군으로 모시는 데 성공했다. 그의 처지에서 보면 노부나가는 그가 사무라이로 출세해 일국의 성주가 되겠다는 그의 야심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조금은 위험한 도박이었지만 그의 계략이 계획대로 적중한 것이다. 때는 1554, 도키치로 나이 열일곱이었다. 도키치로는 성내에 머무는 것은 허락되었지만, 주군인 노부나가에게 범접도 할 수 없는 말단 시종으로, 온갖 잡일을 처리하는 신분이었다. 그러나 어떤 일이 맡겨져도 싫은 내색 없이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 그러면서도 주군인 노부나가의 성격과 사고, 그리고 그릇 등을 살피기 위해 많은 정보를 모았다. 


‘생각대로 재미있는 주군이다. 내가 생각하던 그대로다. 잘만 하면 여기서는 사무라이로 출세할 수 있다. 


그는 냉정하게 노부나가라는 인물을 정확히 꿰뚫어 간파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눈치 하나로 살아온 도키치로였다. 하나를 보면 열을 미루어 짐작할 줄 알았다. 어린 시절에 겪은 그의 경험은 그의 삶의 방향과 행동양식을 결정하는 바탕이 되었다. 성내에서 기반이 약한 그는 우선 다른 사람의 신뢰와 인덕을 쌓는데 전념했다. 그래서 남의 일을 내일처럼 했다. 궂은 일 마른일 가리지 않았다. 시키지 않는 일도 알아서 척척 해냈다. 게다가 특유의 붙임성이 있었다. 성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료들이나 상관인 가신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칭찬이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였다. 


“여자라면 스루가 여인이 최고지! 
“그게 뭔 말이야? 스루가 여인네들은 도도하다고 소문이 자자 하던데. 
“도도하긴 뭐가 도도해. 내가 스루가에 있을 때, 처음에는 바늘 장사를 했지. 그런데 아낙들이 얼마나 사치를 좋아하는지 방물만 보면 환장을 하더라고. 그래서 방물을 취급하기 시작했지. 내가 옥가락지 같은 방물을 가지고 가기만 하면 주변 아낙들이 거짓말 조금 보태 마치 개미떼처럼 모이더라니까. 그리고 말이야, 돈이 없는 아낙들은 나를 보면서 눈을 게슴츠레 뜨고 코맹맹이 소리로 말을 걸면서 추파를 던지고 암튼 별 짓을 다하더구먼. 아이고 내가 나이가 어려 다행이었지, 나이만 조금 있었으면 스루가 여자들은 남아나질 않았을 거라고. 아무튼 스루가 여자들은 사치가 아주 심하고, 헤픈 것 같아. 옥가락지나 비녀 하나만 가지고 가면 ‘아마 날 잡아 잡수’ 하는 여자들이 수두룩할 걸. 
“정말이야? , 언젠가 한번 가봐야겠는 걸. 


사람들이 모여 잡담을 나눌 때면, 그는 항상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오랫동안 바늘 행상을 하면서 수집한 정보와 직접 체험한 경험을 잘 섞어 때로는 진실하게, 때로는 과장을 해가면서 듣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다. 


“생긴 것하곤 다르게 말을 참 재미있게 하는군.
“도키치로는 나이는 어리지만 경험이 많고 게다가 행상으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견문을 넓혀 모르는 것이 없어. 타 지역에 대해서도 아주 박식하고 말이야. 얼굴은 비록 원숭이를 닮았지만, 열사람 이상의 몫을 하는 친구야.


그는 자신만이 지니고 있는 경험과 장점을 최대한 살려 노력하면서, 조금씩 주변 사람의 신망을 얻었다. 모든 것은 철저한 계획이었다. 자연스레 시간이 흐르면서 동료들뿐만 아니라 노부나가 주변에 있는 하급 가신들의 입에서도 그에 대한 이야기가 오르내렸다. 이와 같은 피나는 노력이 있어, 그가 성으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성 밖 출입이 허용되었다. 첩자라는 의심이 풀린 것이었다. 신분은 여전히 말단 시종이었다. 상관인 가신의 명이 있으면 장터에 나가 성내에서 필요로 하는 자잘한 물자를 구입하는 일을 주로 했다. 오랫동안 행상을 경험한 그였다. 시장의 구조와 상인들의 생리를 잘 알고 있었다. 경험을 통해 좋은 물건을 싸게 구입하여 판매하여야 이문이 많이 남는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고, 또 그 방법도 숙지하고 있던 그였다. 그러니 그로서는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이요, 게다가 성의 물품을 구매하는 처지였으니 용이 날개를 얻은 것과 진배없었다. 그의 수완 덕분에 성내에서는 이전보다 힘들이지 않고 필요한 물자를 쉽게 그리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다. 


‘도키치로와 함께 장터에 가면 물건 구입이 쉽고 비용도 적게 든다.


그의 수완 덕에 점차 성의 재정이 이전보다 많이 절약되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눈치 빠르고 영악한 도키치로는 구매자의 지위를 이용하여 상인들에게 뇌물을 받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뇌물로 가신들의 주머니를 채워 주었다. 가신들은 이전보다 구매품의 질이 좋아지고 비용도 절감되자, 당연히 영주에게 칭찬을 들었다. 재정을 아낀 공로로 영주에게는 능력을 인정받고, 자신의 호주머니도 불룩해지니, 이거야 말로 ‘꿩 먹고 알 먹기’였다. 그의 수완이 소문이 되어 가신들은 모두 그와 함께 장터에 나가길 원했고, 무슨 일만 있으면 우선 그를 찾았다. 도키치로는 가신들의 환심을 사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장터를 다니면서 쉴 새 없이 타 지역에서 온 떠돌이 장사꾼들로부터 다른 지역의 정보를 속속들이 입수했다. 가신들은 약간의 뇌물로 충분하지만, 영주인 노부나가가 원하는 것은 뇌물이 아니라 정보라는 것을 그는 꿰뚫고 있었다. 그는 ‘정보가 언젠가 힘이 될 것’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남들보다 체구가 작은 내가 무술로 싸움터에서 공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거야 말로 오히려 명을 재촉하는 일이다. 무공이 아닌 정보와 지략으로도 얼마든지 공을 세울 수 있다. 무공으로 공을 세우든, 정보와 지략으로 공을 세우든 논공행상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정보와 지략을 무기로 삼은 그는 닥치는 대로 인맥을 만들고 정보를 모았다. 성내의 필요한 물건 구매에서 시작하여, 타 지역의 움직임, 세세하게는 남의 가정사까지 하여간 모르는 것이 없는 정보통이 되었다. 그의 주군인 노부나가는 시대의 이단아였다. 그는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던 모든 관행이나, 체제를 철저히 무시했다. 과감하고 획기적인 사고로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다.
오랜 옛날부터 일본의 모든 군사 체제는 반농 반병 체제였다. 모든 영주들은 독자적으로 직업적인 병사를 소유하지 못했다. 그래서 영내의 남자들은 평상시에는 농사를 짓다가, 싸움이 일어났다 하면 동원되어 싸움터로 나갔다. 그러다 보니 만일 농번기에 싸움이라도 일어나게 되면 그해 농사는 그대로 망치는 것이었다. 한해 농사를 망치면 싸움에 동원된 농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세수가 줄어든 영주도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흉작으로 세금이 안 걷히면 그만큼 재정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흉작임에도 세금을 가혹하게 걷다가 농민들의 반란으로 쫓겨난 영주들도 비일비재했다. 그런 탓에 영주들 사이에는 무언의 약속이 있었다. 


‘싸움은 농한기에.


그런데 전국시대 들어 유력 영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세력을 확장한 유력 영주들이 서로 전국을 통일하려는 움직임이 만연했다. 그러다보니 여기저기서 동맹 관계에 따라 싸움이 일어났다. 결국, 시도 때도 없이 싸움이 일어나, 농번기, 농한기 구별이 없어져 버렸다. 


‘이러한 반농 반병 체제로는 싸움에 대한 전문성을 갖기 어렵다.


노부나가는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었다. 


‘농민들이야 싸움에 지더라도 지배자만 바뀔 뿐, 그들의 존속에는 큰 변함이 없다. 그러나 우리 같은 무사 계급은 싸움에 한번 패하면 끝장이다. 생과 사가 걸린 문제이다!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농민과 병사를 구별해야 한다. 그렇게 돼야, 병사는 언제든지 싸움에 대비할 수 있고, 농민들은 농업에 종사할 수 있다. 농민은 자기 일인 농업에 종사할 수 있어 수확이 늘어날 것이고, 그럴수록 세수가 늘어 안정된 재정을 조달할 수 있다. 반면에 병사들은 훈련을 통해 전문성을 갖추게 되어 싸움에 능하게 된다. 일석이조다. 


천하포무를 꿈꾸는 노부나가는 시대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전국시대 처음으로 직업군인 체제를 도입해나갔다. 또한 노부나가는 신분의 관계없이 능력 위주로 인사를 단행했다. 오랫동안 가문에 충성을 해온 가신이라도 무능력하거나 공적이 없는 자는 가차 없이 내쳐 버렸다. 반면 출신 성분이 하급 무사 출신이거나, 외부에서 온 자라도 능력이 인정되면 가신으로 임명했다. 철저한 능력 위주의 인사였다. 


‘능력을 발휘하여 영주님의 눈에 들기만 하면 나 같은 놈이라도 출세가 가능하다. 이야말로 나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닌가?’                                                              제 48화에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노부나가의 시종 도키치로>

도키치로는 결심이 서자, 즉시 노부나가가 머무는 거성으로 향했다. 나무로 성책을 쌓아놓은 목책성이었다. 
도키치로가 성 앞으로 다가서자, 양쪽에서 보초를 서던 초병이 창을 꼬나들고 수하를 했다. 


“누구냐? 무슨 용무냐? 
“아, ! 장사꾼이옵니다. 나카무라 출신으로 기노시타 도키치로라고 합니다. 실은 영주님께서 성에서 일할 인부를 뽑는다는 소릴 듣고 인부가 되고자 찾아 왔습니다. 


도키치로는 살살 웃어가며 말을 꾸며댔다. 


“자네 들어봤나? 
수하를 하던 초병은 도키치로가 하는 말을 듣고 금시초문이란듯 반대편에 있는 초병에게 물었다.


“난들 아나!


반대편에 서 있는 초병이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그럼, 어떡하지? 잠깐 내 안에 들어가서 물어보고 오겠네! 


확인 안 하고 잘못 처리했다간 경을 칠 수도 있었기에, 초병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초병이 확인차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도키치로는 뒤가 켕겼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똥줄이 탔으나, 시침을 뚝 떼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될 대로 대라! 죽을 잘못을 하는 것도 아닌데, 거짓말 조금했다고 죽이기야 하겠냐?
“보초 서기가 힘들지 않으세요?


도키치로는 초병의 경계를 풀기 위해 특유의 붙임성을 살려 말을 걸었다.


“힘들어도 교대로 하니까 할만은 하네.
“저는 나카무라 출신인데, 저잣거리에서 바늘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영주님을 뵙고 싶어서 이렇게 왔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의 경계를 풀려고 실실 웃어가며 말을 거는데, 


“저리 물렀거라.


초병은 그의 말에 더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자신을 경계하며 무뚝뚝하게 서 있는 초병의 경계를 풀게 하려고 이리저리 궁리를 했지만, 달리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런 차에 성 안쪽에서 머리를 단정히 땋아 올리고 칼을 찬 사무라이가 아까 들어간 초병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저 놈입니다. 저 놈이 인부를 모집해서 왔다고 했습니다. 


초병은 창으로 도키치로를 가리키며 사무라이에게 고했다. 


“너 이놈. 어디서 인부를 구한다는 소리를 들었느냐? 


칼을 옆구리에 찬 사무라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키치로의 위 아래를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는 의심이 섞인 심문투로 물었다. 첩자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분명했다. 


“네, 소인은 원래 오와리 나카무라 출신으로서 저잣거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만, 성에서 인부를 구한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 왔습니다. 


도키치로는 능청스럽게 거짓말로 둘러댔다. 


“저잣거리에서 그런 소문을 들었다고? 

“예, 그렇사옵니다. 


사무라이는 도키치로가 태연한 표정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고는 초병들에게 명령했다.

 
“저놈을 잡아서 안으로 들여라! 


사무라이의 추상같은 명령을 받은 초병들은 즉시 창을 꼬나 쥐고 도키치로를 노렸다. 


“이놈, 꼼짝 말거라. 고분고분 말을 듣는 것이 몸에도 이로울 것이다. 


초병들은 양쪽에서 창으로 경계를 하며 다가왔다. 도키치로가 순순히 따르자, 창끝을 그의 몸에다 대고 창날로 툭툭 치며 안으로 밀어 넣었다.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러십니까? 


도키치로는 고분고분하게 병사들의 지시대로 따르면서도 자신이 결백하다는 뜻으로 변명을 했다. 


“네, 이놈. 주둥이를 닥쳐라.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곧 알게 된다. 


실눈을 뜨고 뒤 따라오던 사무라이는 느물느물해 하는 도키치로를 보고 언성을 높여 꾸짖었다. 초병들은 도키치로를 성문 안으로 몰고 들어갔다. 안쪽에 있던 초병들에게 도키치로를 인계하고는 그들은 다시 성문 밖으로 나갔다. 성안은 성 밖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삼엄한 경계태세였다.


“이놈을 포승줄로 묶도록 하라.


성안으로 들어서자 사무라이는 도키치로를 포승으로 묶도록 하였다. 첩자일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어이구, 제가 무슨 죽을죄를 졌다고 포승을 거십니까?
“조용히 해라. 이놈!


졸지에 포승으로 결박된 도키치로는 오른쪽 왼쪽으로 꼬불꼬불하게 굽은 길을 따라 점점 안쪽으로 끌려들어갔다. 성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넓었다. 여기저기 목조 건물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들어가자 앞쪽에 돌로 단이 쌓아져있고 그 둔덕 위에는 영주가 머무는 천수각이 위로 솟아있었다. 


“이제 됐다. 여기 꿇려라! 


도키치로를 끌고 간 사무라이는 천수각 아래쪽 단층 목조 건물 앞에서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고는 자신은 쪽마루로 가 앉았다. 병사들은 도키치로의 어깨를 창대로 눌렀다. 무릎이 꿇려졌다. 그러자 여기저기 사방에서 칼을 차거나, 창을 든 병사들이 몰려들었다

.


“소스케, 잘 왔다. 저놈의 목을 벨 준비를 해라!
“첩자입니까? 잘 알겠습니다.


소스케라고 불린 사내는 정수리를 보기 좋게 싹 밀고 머리를 땋아 올린 젊은이였다. 그는 바닥에 꿇어앉아 있는 도키치로의 옆으로 다가와서는 칼을 스윽 뽑아 들고 칼등을 그의 목뒤에 천천히 갖다 대었다. 도키치로의 목 힘줄이 퍼렇게 일어섰다. 목이 서늘해져왔다. 도키치로는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너 이놈 장터에서 인부를 구한다는 소릴 듣고 왔다 했으렸다? 


사무라이는 비수로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로 다시 물어 왔다. 


“네, 이놈. 이실직고 하렸다. 어디서 온 누구인지 똑바로 밝혀라. 만일 한 치라도 거짓을 늘어놓는다면, 그 목은 떨어져 땅바닥에 구를 것이다. 
“죄송합니다. 살려주십시오. 실은 인부를 구한다는 소문을 들은 것이 아니고 성에서 일하고 싶어 찾아온 것입니다. 거짓말을 안 하면 성안으로 들여보내 주지 않을 것 같아 그랬습니다요. 


도키치로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사실을 고했다.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싹싹 비는 시늉을 하면서 목숨을 구걸했다. 설마 죽기야 하겠는가 했는데 서슬이 퍼런 칼이 목에 닿자 겁이 덜컹 난 것이었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단숨에 목이 떨어질 형세였다. 


“제발 노여움을 푸시고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두 팔이 뒤로 묶인 도키치로는 방아깨비가 방아 찧듯이 연신 머리를 땅에 박았다간 들어 올리며 목숨을 구걸했다. 얼굴은 완전 우거지상이 되어 영락없는 비루한 원숭이 모습 그대로였다. 


‘이 자식, 이거 완전 원숭이 아닌가? 


도키치로가 울상이 되어 얼굴이 찌그러지자, 사무라이는 그 얼굴을 보며 기괴하다고 느낄 때였다. 


“무슨 일로 이리 소란 스럽느냐? 


미성이었지만,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호기심 많은 청년 영주 노부나가였다. 영주의 숙소인 천수각에 있다가 웅성거리는 소릴 듣고 궁금해서 직접 내려온 것이었다. 


“주군, 별일 아니옵니다. 


사무라이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이놈이 수상해서 심문 중입니다. 성에서 인부를 구한다는 소문을 듣고 왔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미심쩍은 데가 많습니다. 어쩌면 첩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놈인가? 네 이놈, 고개를 들어봐라.


노부나가가 앞으로 성큼 다가와 들고 있던 말채찍으로 도키치로의 턱을 들어 올렸다. 


“전하! 저는 첩자가 아니옵니다. 다만 전하의 밑에서 일을 하고 싶어 찾아 왔을 뿐입니다. 오와리 나카무라 출신입니다. 정말입니다. 


채찍 손잡이에 얼굴이 얹어진 도키치로는 필사적으로 변명을 했다. 속으로는 이젠 죽었구나 싶었다.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거의 울음이 터져 나오기 직전이었다. 울상이 되어 사정을 하는 그의 모습을 유심히 보던 노부나가가 갑자기 표정을 바꾸며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너, 사람이 맞느냐?
“네?
“너, 원숭이가 아니더냐?
“네?
“우하하하하하하. 너는 사람이라기 보단 원숭이 그대로다. 그것도 털이 다 빠진 늙은 잔나비. 우하하하하하하? 너 나이가 몇이냐? 
“네? , . 열여섯 아니, 열일곱 이옵니다요. 
“열일곱? 그런데 왜 이리 늙었느냐? 너야말로 겉늙은 잔나비로구나. 우하하하하. 
노부나가가 도키치로의 얼굴을 보고 재미있다는 듯이 놀리며, 웃음을 터뜨리자 옆에 있던 가신들과 병사들도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전하, 저는 첩자가 아니옵니다. 저를 믿어주시고 우선 이 포승을 풀어 주시면 제가 재미나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뭐라고? 재미있는 걸 보여준다고? 
“예, 제 얼굴이 원숭이를 닮아서 그런지, 원숭이 춤을 잘 춥니다. 
“원숭이 춤? 


노부나가는 ‘원숭이 춤’이라는 소릴 듣고 질문하듯이 주위에 있는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부하들도 의미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엇이더냐? 
“이걸 풀어주시면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노부나가의 명령으로 포박이 풀리자, 도키치로는 손을 땅에다 대고 머리를 숙여 고맙다는 의사 표시를 한 후, 손을 털고 일어났다. 이어서 손을 머리위로 올리고 다리를 구부려 원숭이 흉내를 냈다. 원숭이처럼 ‘끼엑, 끼엑’ 괴성을 지르며 마당 안을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마츠시다 성주 밑에 있을 때, 아녀자들 앞에서 자주하던 재롱이라, 익숙한 동작이었다. 그가 원숭이 흉내를 내면 보는 사람마다 배를 움켜쥐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와하하하하하하하, 와하하하하하하, 저놈 좀 보아라!
“퀴키키, 퀴키키”


노부나가가 재미있어하자, 도키치로는 한 술 더 떠 괴성을 지르며 앉았다가 일어섰다가 흙을 주워 먹는 시늉을 하였다. 또 가만히 있는가 싶으면, 등에서 털을 뽑아다가 이를 잡는 시늉을 하였다. 주변 사람들을 개의치 않는 영락없는 원숭이 모습 그대로였다. 

“와하하하, 그놈 재밌는 놈이구나. 죽이긴 아깝다. 아사노, 그대가 거두어 두어라. 성내에 두고 잡일이라도 시켜라. 


호기심이 많은 노부나가였다. 그는 재밌는 놀이감을 발견이라도 한 듯 만면에 희색을 띠고 도키치로를 끌고 온 사무라이에게 명령하였다. 


“전하. 그러나 저놈이 누구인지, 또 무슨 목적으로 여길 왔는지 아직 아무 것도 확인이 안 되었습니다. 첩자일 수도 있으니 좀 더 심문을 한 후에 결정하시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도키치로를 심문하던 아사노라는 사무라이가 정색을 하며 이의를 제기했다.


“아사노, 무엇이 그렇게 두렵더냐? 첩자가 그렇게 무섭더냐? 하물며 저 잔나비가 첩자라 하자. 그렇다면 여기 두고 우리가 이용할 생각은 왜 못 하느냐? 두말 말고 따르도록 하라. 


젊은 군주의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아무런 검증이 안 된 자를 성내에 머물게 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전국시대 가신들의 사고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노부나가는 그만큼 대범했다. 아니 괴팍했다. 나이 든 가신들일 수록 노부나가의 행동과 판단이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하아, 잘 알겠습니다. 분부대로 시행하겠습니다. 

 

노부나가가 단호하게 말을 끊으며 재차 명을 내리자, 아사노는 다시 한번 허리를 숙이고는 물러섰다. 불같은 성격의 젊은 군주였다. 까딱 잘못하여 명령을 거역하는 것으로 오인되면 용서 없었다. 아사노는 더 토를 달지 않고 따르기로 했다. 계속 자기주장을 하였다간 그 자리에서 목이 떨어 질 수도 있었다

 제 47화에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노부나가와 히데요시> 미치광이 영주

 

오와리 지역의 맹주인 오다가는 신흥 세력임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으로 주변 지역을 공략해 그 세를 점점 확대하여 나가는 중이었다. 원래는 지방관으로 파견된 오다 가문이 전국시대로 접어 들자, 교토 동쪽 지역의 맹주로 등장했다. 
도키치로가 고향을 떠나올 때는 오다 노부나가의 선친인 노부히데가 영주였다. 그의 친부도 선대인 노부히데가 출정한 전투에 참가했다가, 부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던 터였다. 
노부히데의 장자로서 새롭게 영주가 된 노부나가에 대해서는, ‘바보, 멍청한 말썽꾸러기.’라는 좋지 않은 소문이 널리 퍼져있었다. 
당시 일본의 관례는 장자 상속으로, 장자가 가문을 이어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므로 성주의 장자는 어린 시절부터 제왕학을 위해 학문에 힘쓰는 것은 기본이요, 게다가 전국시대라는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며 검술과 승마술 등 무예도 익혀야 했다. 영지의 통치를 위해서, 그리고 가문을 떠받치는 부하 사무라이들을 다스리기 위해서라도 영주에 걸맞은 행동을 요구받았다. 
그런데 노부나가는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모든 것들을 무시했다. 검술과 말을 타는 것은 좋아했으나, 형식에 얽매이는 것과 통제받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그는 기존의 모든 관행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좋아했다. 걸핏하면 괴팍한 행동을 해, 노부나가를 곁에서 모시는 중신들을 곤경에 빠뜨리곤 하였다. 
가장 곤란한 문제가 성주의 장자로서 차려입어야 될 의관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천조가리 비슷한 허름한 저고리를 몸에 걸치고는, 허리는 끈으로 동여맨 채, 칼과 호리병을 허리춤에 찔러 넣고 저잣거리를 활보했다. 배가 고프면 좌판에 있는 오이나 참외 등을 집어 껍데기째 먹었다. 그마저도 없으면 무나 야채도 마다하지 않았다. 


“저게 영주의 장자란다. 거지새끼가 따로 없구먼, 그려.


사람들은 노부나가의 모습을 보고 뒤에서 손가락질을 했다. 그러니 노부나가의 교육을 부탁받은 중신들은 영주를 볼 면목이 없었다. 그렇다고 영주의 아들을 때려서 가르칠 수도 없는 입장이라, 참으로 진퇴양난이었다. 
이런 중신들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부나가는 틈만 나면 저잣거리로 나갔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모아 씨름판을 벌이는 것도 좋아했다. 스스로 상금을 걸어놓고 씨름판에서 우승한 자에게는 상을 주었다. 혹자는 그런 것이 모두 나중에 천하를 지배하기 위해 필요한 장정들을 모으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한다. 
호사가들이 하는 말이니, 그거야 누가 알 수 있으랴? 
아무튼 노부나가의 그런 괴이한 행동 때문인지, 그의 주변에는 힘깨나 쓰는 왈패와 불량배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일을 하지 않아도 노부나가를 따라다니며 시키는 대로 힘자랑을 하면, 상품이나 상금을 받을 수가 있었으니, 그들로서는 노부나가가 부처님보다 더 고마운 존재였다.

 
“노부나가님이야 말로 우리들의 오야붕(대장)이다. 


그러나 많은 저자 사람들은 노부나가의 기행에 대해 뒤에서 손가락질을 하였다. 권력을 이어 받을 영주의 장자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기이한 행동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저잣거리에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노부나가의 대한 험담이 자자했다. 


‘영주의 장자가 멍청할 뿐 아니라, 망나니들과 어울려 저리 법석을 떠니, 그 자리가 오래 못 갈 것이다. 
“저 또 나타났네 그려. 
“누가? 
“저것 좀 봐! 노부히데님의 적자인 노부나가 도련님이 나타나 저잣거리가 시끌시끌하잖아. 
“에구, 저 망나니가 오늘은 또 무슨 짓을 벌이려고……. 
“오늘도 장사는 글렀네. 빨리 물건 걷어치우고 피해야겠구먼. 
“그러게 말이네. 또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우리만 손해지 뭐! 
“그래도 도련님은 우리 장사꾼 물건은 안 건드리잖아, 그러니 그냥 있어도 괜찮지 않겠어? 
“아무튼 씨름판이 벌어지면 장사는 날 새는 거여. 
“그래 그 말이 맞아! 씨름판 주변에 사람이 몰려,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다가 싸움판이 벌어지고, 물건 상하면 우리만 손해지 뭐! 어차피 오늘 장사는 끝난 것 같네, 빨리 걷어치우고 스루가로 넘어가 봐야 겠네. 


도키치로도 과거 행상을 할 때, 여기저기 장터를 다니면서 오다 노부나가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바늘 행상을 할 때는 멀리서 그의 모습을 직접 보기도 했다. 


‘나와는 별 상관없는 인물이다.


그러다 보니 그의 기억 속에는 ‘망나니’로만 각인되어있었다. 
그런데 그 노부나가가 오와리의 성주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시 기억을 더듬었다. 우스꽝스런 복장이 기억에 어렴풋이 담겨있었다. 노부나가의 모습은 도키치로의 눈에도 우습게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주 직을 이을 적자의 모습은 아니었다. 언뜻 보기에 악동의 망나니 그대로였다. 
기억을 더듬는 그의 뇌리 한편으로 날카로운 눈빛이 떠올랐다. 노부나가의 눈빛이었다. 눈매가 날카로웠고 살아있었다. 도키치로는 노부나가의 눈빛을 기억해 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바보 천치, 말썽꾸러기, 망나니’의 눈빛과는 달랐다. 
그러고 보니 체형도 늘씬하고 잘 단련된 근육질의 몸매를 하고 있어, 자신과는 다르다고 느꼈던 것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말하는 멍청한 망나니만은 아니다. 


도키치로의 되살려진 기억 속에 떠올려진 노부나가는 자신보다 두세 살 위의 모습이었고, 복장은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단순한 망나니만은 아닌 무언가를 내면에 감추고 있는 모습이었다.
도키치로는 즉시 주변 지역의 정보를 꿰차고 있는 마츠시타의 중신 야기누마를 찾아가, 은근 슬쩍 오와리의 정세와 노부나가에 대해 물었다.


“야기누마님. 오와리의 새 성주 노부나가님이 멍청이라는 소문이 자자한데, 중신들이 왜 성주 자리를 넘기도록 가만히 있었을까요?
“글쎄, 누가 알겠느냐? 다만 부친상을 당한 노부나가가 장례식장에서 부친의 영정에 향을 바치는 대신, 재를 뿌렸다고 한다. 불효막심한 행위지! 
“그래요?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행위를 할 수가 있습니 까? 
“그로 인해 교육을 맡았던 중신 히라테(平手)가 보다 못해 자신이 잘못 가르쳐 그런 것이라며 할복자살을 하였다고 한다. 새 성주의 모든 잘못은 자신에게 있다고 하면서…. 그러나 직접 보지 않고 그 진위를 누가 알 수 있겠느냐? 


야기누마의 말을 듣고 난 후, 도키치로는 노부나가라는 인물이 더욱 궁금해졌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못 참는 성격의 그였다. 


‘일단 가자. 가서 확인을 해보자. 망나니라면 곧 무슨 사단이 날 것이고, 그러면 오히려 기회는 더 빨리 올지도 모른다. 어차피 이 곳에 있어 봤자 기회는 없다. 


도키치로는 그 길로 보따리를 싸, 성주인 마츠시타에게 하직 인사를 했다. 


“고향 집에 일이 생겨,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보살펴주신 영주님의 은혜는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마츠시다는 조금 아쉬웠으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도키치로를 만류할 명분이 없었다. 


“모든 일이 수습되면 다시 돌아오도록 하라. 


도키치로는 성주의 허락을 받자, 그 길로 오와리로 향했다. 당시 그의 나이 만 16세였다. 또래보다 키도 작고 체격도 왜소했다. 게다가 얼굴이 쭈글쭈글 해 힐끗 보면 나이 먹은 중년으로도 오해를 받을 정도였다. 도키치로는 오와리 국경을 넘어서면서 간자로 의심 받을 것이 두려워, 보따리를 어깨에 걸쳐 메고, 예전 장사꾼의 모습으로 변복을 했다. 
오와리에 들어서서는 고향집이 지척임에도 들르지 않고, 곧장 장이 서는 저잣거리로 향했다. 그리고 노부나가에 대한 소문과 정보를 수집했다.

 
‘망나니 성주, 노부나가.


노부나가에 대한 대부분의 평가는 여전히 안 좋은 것뿐이었다. 그러나 가끔 다른 평가도 없진 않았다. 


“비범한 주군이다. 천하를 통일할 인물이다. 노부나가님이 천하를 통일하여 전쟁없는 태평성대가 시작될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떠도는 소문을 듣고 옮기는 사람들은 모두 전자인 망나니라는 평가였다. 그러나 직접 노부나가를 보았다거나, 그를 접했던 사람들의 평가는 사뭇 달랐다. 
오와리로 넘어온 도키치로는 행상을 하면서 한동안 열심히 귀동냥으로 소문을 모았다. 그는 노부나가가 어떤 인물인지 세심히 살피고자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시장이 갑자기 혼란스러워지더니,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노부나가님이다. 


사람들이 양쪽으로 갈라섰다. 한 가운데를 자신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젊은 친구가 말을 타고 달려왔다. 한쪽 어깨는 맨살이 그대로 드러난 상태였다.


“다다닥, 다다닥. 


중신의 복장을 한 가신들이 말을 탄 채 그 뒤를 열심히 따르고 있었다.


“허, . 이 오와리가 어떻게 되려고 저러는가?


저잣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노부나가가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성주가 되었음에도 복장은 망나니 복장 그대로였다. 
도키치로도 말을 타고 빠르게 지나가는 노부나가를 멀리서 보 았다. 복장은 우스울지 모르지만 말을 탄 자세에는 위엄이 서려있음을 느꼈다. 


‘말을 저렇게 잘 타고, 위엄이 서려있는 걸 보면 멍청이는 아닐 것이다. 만일 멍청이라면 이곳이 이렇게 번창할리가 없다. 새롭게 저잣거리를 넓히고 세금도 싸게 해, 각처의 장사꾼이 이곳에 몰려 와 나날이 번창하고 있지 않는가? 그로 인해 오히려 세수입은 더 늘어나고……. 
‘명군이 될 가능성이 크다. 
도키치로는 무릎을 탁 쳤다. 그리고는 자신의 판단에 운명을 맡기기로 작정했다. 그는 즉시 좌판을 거두었다. 


“부딪쳐보자.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자. 

 

제 46 화에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