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 ㅣ 서양철학전집 하이엔드 고전 2
호메로스 지음 / 클래시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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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처음 접했을 때 ‘각자의 오디세이아’라는 표현이 마음에 남았다. 3천 년 가까이 전해져온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해 10년 동안 떠돌아야 했던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다. 신들의 분노와 거대한 파도, 괴물과 마녀, 달콤한 유혹을 이겨내며 결국 가족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의 여정은 현대인의 일상과는 거리가 먼 신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가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괴물과 싸우고 바다를 표류하는 일은 없더라도 우리 역시 계획하지 않았던 사건을 만나고, 때로는 방향을 잃으며, 무엇인가를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을 반복해서 경험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디세우스의 항해는 특별한 영웅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선택과 시련을 상징하는 이야기로 읽혔다.


 40대 후반의 직장인이라는 위치에서 이 책을 읽으니 젊었을 때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젊은 시절에는 오디세우스의 모험 자체가 흥미로웠을 것이다. 키클롭스와의 대결이나 세이렌의 유혹처럼 극적인 장면들이 이야기의 중심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시련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이타카로 돌아가려 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오디세우스에게는 분명한 목적지가 있었다. 아름다운 여신이 영원한 삶을 제안해도,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장소를 만나도 그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선택한다. 더 화려하고 편안한 삶보다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자연스럽게 삶의 목적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목표를 세운다. 직장에서는 더 높은 위치와 성과를 원하고, 개인적으로는 경제적인 안정과 가족의 행복을 추구한다. 하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어느 순간 처음에 왜 그것을 원했는지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오디세우스의 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이동했는가가 아니었다. 그는 수없이 길을 잃었고, 때로는 잘못된 판단 때문에 더 먼 길을 돌아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결국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을 잊지 않았다. 이 점에서 이타카는 단순한 고향이 아니라 삶에서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기준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책의 내용을 읽으며 특히 기억에 남은 표현을 세 문장으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불안 속에서도 기어코 오늘을 살아낸 자신을 초라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매일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며 맨몸으로 세상을 겪어내는 일.”

“그 지난한 버티기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이 세 문장이 특히 마음에 남은 이유는 영웅의 위대한 승리보다 평범한 인간의 ‘버티기’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의 결과를 보면서 그 사람이 걸어온 길까지 직선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삶은 그렇지 않다. 잘될 것이라고 확신했던 일이 실패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기회가 찾아오기도 한다. 계획대로 흘러가는 기간보다 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순간이 훨씬 많다.


 오디세우스 역시 완벽한 영웅이 아니었다. 때로는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믿었고, 불필요하게 이름을 밝힘으로써 더 큰 고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그의 부하들 역시 유혹을 이기지 못해 잘못된 선택을 한다. 결국 『오디세이아』의 인물들은 실수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실수와 실패 속에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모습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경험이 쌓이는 만큼 실패의 기억도 함께 늘어난다. 모든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없고, 모든 판단이 옳을 수도 없다. 당시에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선택이 시간이 지난 뒤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경우도 있다.


 젊었을 때는 실패하지 않는 것이 능력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실패를 완전히 피할 수 없다면 중요한 것은 실패 이후의 태도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결국 더 멀리 갈 수 있다.


 오디세우스가 키클롭스 폴리페모스의 동굴에서 빠져나오는 장면도 이런 관점에서 흥미롭게 읽혔다. 힘으로는 거인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지혜를 사용한다. 자신의 이름을 ‘아무도 아니다’라고 속이고 상황을 이용해 탈출한다. 그러나 안전하게 빠져나간 뒤 자신의 진짜 이름을 외치는 자만심 때문에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고, 그 결과 귀향길은 훨씬 길어진다.


 한 사람 안에 뛰어난 지혜와 어리석은 자만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이 모습이 인간을 상당히 정확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성공했을 때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다. 어려운 문제를 몇 번 잘 해결하면 자신의 판단 능력을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기 쉽고, 이전의 성공 경험을 다음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하려 한다.


 경력이 쌓인 사람에게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런 확신일지도 모른다. 경험은 분명 중요한 자산이지만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정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경험이 많을수록 자신의 판단이 틀릴 가능성을 의식적으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이렌의 이야기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세이렌의 노래를 들은 사람은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파멸한다. 오디세우스는 자신 역시 유혹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하들에게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게 하고 어떤 명령을 하더라도 풀어주지 말라고 지시한다.


 이 장면에서 흥미로운 것은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의지력을 과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강한 사람이니까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자신도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미리 행동을 제한했다.


 현대인의 삶에도 세이렌은 많다. 시장의 과도한 낙관과 공포, 주변 사람들의 성공 이야기, 사회적 지위와 소비에 대한 욕망처럼 순간적으로 우리의 판단을 흔드는 것들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그때마다 강한 의지로 버티겠다고 생각하기보다 감정이 흔들렸을 때도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자신만의 기준을 미리 만들어놓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이 점은 직장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감정이나 조직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평소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상황이 발생한 뒤 원칙을 만들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준을 바꾸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오디세우스의 여정에는 수많은 ‘머무를 이유’가 등장한다. 칼립소의 섬에서는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었고 심지어 불멸의 삶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결국 이타카를 선택한다.


 이 대목은 40대 후반이라는 나이와 맞물려 더욱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젊은 시절에는 더 많은 것을 얻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돈, 더 좋은 조건을 얻으면 자연스럽게 삶도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살아보면 선택에는 항상 포기가 함께 따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한다. 더 많은 성취를 위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줄여야 할 수도 있고,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갈수록 책임과 부담 역시 커진다. 결국 중요한 것은 ‘더 많이 얻는가’가 아니라 ‘내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얻고 있는가’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타카가 더욱 의미 있게 느껴졌다. 사람마다 자신의 이타카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일 수도 있고, 자신의 일이나 꿈, 자유로운 삶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정해주는 목적지가 아니라 자신이 돌아가고 싶은 곳을 알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리더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오디세우스는 혼자 여행하지 않았다. 수많은 동료와 함께 출발했지만 결국 이타카로 돌아온 것은 그 혼자였다. 그 과정에서 부하들의 잘못도 있었지만 지도자인 오디세우스의 판단과 행동 역시 항상 완벽하지 않았다.


 좋은 리더가 된다는 것은 모든 문제의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방향을 정하고,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을 때 수정하며, 구성원들이 공포에 빠졌을 때 앞으로 나아갈 이유를 보여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특히 조직에서 책임이 커질수록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기 쉽다. 그러나 오디세우스 역시 신들의 도움을 받고 동료들의 힘을 빌리며 수많은 사람의 조언을 통해 고향으로 돌아간다. 혼자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보다 언제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도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삶이 직선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계획을 세울 때 현재에서 목표까지 가장 짧은 길을 그린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발생하고, 때로는 원하지 않는 곳에 머물러야 하며, 이미 지나온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할 때도 있다.


 오디세우스에게 트로이에서 이타카까지의 귀환은 10년이나 걸렸다. 결과만 보면 지나치게 긴 우회였다. 그러나 바로 그 우회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가 『오디세이아』가 되었다. 아무런 시련 없이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왔다면 우리가 3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의 이야기를 읽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삶의 어려움을 바라보는 생각도 조금 달라졌다. 지금 당장은 불필요한 고생처럼 느껴지는 일이 시간이 지난 뒤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고난 자체를 미화할 필요는 없다. 피할 수 있는 어려움이라면 피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이미 발생한 어려움이라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가’에만 머무르기보다 ‘이 일을 지나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40대 후반이 되면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계획대로 이루어진 일보다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가 삶의 방향을 더 크게 바꾸었던 경우도 많았다. 당시에는 실패라고 생각했던 경험이 훗날 다른 선택의 밑바탕이 되기도 하고, 어렵게 돌아갔다고 생각했던 길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람과 기회를 만나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는 삶의 모든 우회를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느냐보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잊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를 읽고 가장 오래 남은 소감은 평범하게 하루를 살아내는 것 역시 생각보다 대단한 일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성공을 특별한 사건으로 생각한다. 큰 성과를 이루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순간을 인생의 중요한 장면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실제 삶의 대부분은 그런 순간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자신의 일을 하고,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해결하며 다시 다음 날을 맞이하는 평범한 날들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오디세우스의 위대함도 결국 단 한 번의 승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실패와 유혹 속에서도 계속해서 고향을 향해 움직였다는 데 있었던 것 같다.

40대 후반의 지금 나는 젊었을 때보다 목적지의 중요성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앞으로 더 빨리 가는 것보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고, 무엇을 더 얻을 것인가보다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해졌다.


 앞으로의 삶에도 예상하지 못한 파도는 분명히 찾아올 것이다. 계획했던 일이 틀어질 수도 있고, 내가 옳다고 믿었던 판단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때로는 세이렌의 노래처럼 달콤한 유혹을 만날 것이고, 키클롭스 앞의 오디세우스처럼 내가 가진 힘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도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모든 파도를 피하려 하기보다 내가 돌아가야 할 ‘이타카’가 어디인지를 잊지 않고 싶다. 조금 늦어도 괜찮고, 때로는 길을 돌아가도 괜찮다는 여유도 갖고 싶다. 중요한 것은 길을 한 번도 잃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었을 때 다시 방향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 직장생활의 긴 항해를 마치고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을 때, 모든 선택이 옳았다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쉽지 않은 순간에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을 완전히 잊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에는 미리 완성된 이야기가 없다. 오늘 어떤 선택을 하고, 실패한 뒤 어떻게 다시 일어서며,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끝까지 지키는지가 한 줄씩 자신의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의 가치는 파도 한 번 만나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파도를 지나면서도 자신이 돌아가고 싶은 곳을 끝내 잊지 않는 데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책을 덮은 뒤 40대 후반의 내가 가장 오래 간직하고 싶은 소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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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100만 원 버는 미국 주식 바닥의 기술
미부기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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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는 미국 주식의 저점을 찾아내는 기술적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투자자라면 누구나 가장 낮은 가격에 사고 가장 높은 가격에 팔고 싶어 한다. 나 역시 오랫동안 시장을 지켜보면서 주가가 크게 하락하면 자연스럽게 ‘이 정도면 충분히 떨어진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책은 처음부터 이러한 기대를 뒤집는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바닥의 기술’은 최저점을 맞히는 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바닥을 맞히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가격이 실제로 바닥을 형성한 뒤 변화의 징후가 나타나는지를 확인하고 행동하는 방법에 가깝다. 미래를 예언하려 하지 말고 확인된 상황에서만 행동하라는 것이다.


 40대 후반의 직장인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공감한 부분도 바로 이것이었다. 젊었을 때는 다른 사람보다 먼저 움직이는 것이 실력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남들이 아직 관심을 갖지 않을 때 발견하고, 가장 낮은 가격에 사서 큰 상승을 기다리는 모습이 이상적인 투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장을 오래 지켜볼수록 최저점과 최고점은 지나간 뒤에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책에서 말하는 ‘확정매매’는 이런 인간의 예측 욕구를 통제하기 위한 원칙으로 이해했다. 확인되지 않은 기대를 가지고 먼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한 조건이 실제로 나타났을 때 행동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기술적 방법을 설명하기 전에 상당한 분량을 투자자의 심리에 할애한다. FOMO, 손실 회피, 수익에 대한 욕심 등 실제 돈이 걸리는 순간 사람의 판단을 흔드는 감정부터 다룬다.


 이 순서가 마음에 들었다. 아무리 좋은 방법을 알고 있어도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면 실제 상황에서 원칙을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차트를 공부하는 것보다 자신의 심리를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는 책의 구성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책에서 공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표현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은 세 문장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은 최저점을 맞히는 법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바닥, 예측하면 물립니다.”
“확인된 조건에서만 행동하고, 확인되지 않으면 정지한다.”


 이 세 문장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생각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특히 첫 번째 문장은 프롤로그의 첫 문장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역설적으로 ‘바닥의 기술’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 최저점을 맞히는 방법부터 포기하라고 이야기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투자를 하다 보면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싸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100달러였던 주식이 70달러가 되면 싸 보이고, 다시 50달러가 되면 더욱 싸 보인다. 그러나 과거의 높은 가격은 현재 가격이 싸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 기업이나 산업을 둘러싼 조건 자체가 달라졌다면 50달러 역시 비싼 가격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떨어진 가격’과 ‘바닥을 확인한 가격’을 구분하는 책의 접근은 생각해볼 가치가 있었다. 떨어지는 칼날을 가장 낮은 곳에서 잡으려고 하기보다 칼이 바닥에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 집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가장 낮은 가격 몇 퍼센트를 포기하는 대신 잘못된 판단으로 큰 손실을 입을 가능성을 줄이는 방식이라고 이해했다.


 책에서 설명하는 지지와 저항, 추세, 이동평균선, 거래량과 캔들도 결국 이러한 판단을 돕는 도구다. 각각의 지표를 정답처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의 행동이 실제로 달라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숫자와 차트를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숫자는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은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 같은 차트를 보고도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상승 신호를 찾으려 하고, 사지 못한 사람은 하락 가능성을 먼저 발견하기도 한다. 결국 분석하는 대상보다 분석하는 자신의 심리가 판단을 왜곡할 수 있다.


 특히 미국 주식은 한국의 직장인에게 독특한 어려움이 있다. 미국 시장이 열리는 시간은 한국에서는 밤이다. 낮 동안 직장에서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 다시 시장을 바라보게 된다. 하루 종일 일한 뒤 피곤한 상태에서 급등하는 주식을 보면 냉정하게 판단하기보다 ‘지금이라도 사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조급함이 생기기 쉽다.


 이때 가장 위험한 감정이 FOMO라고 생각한다. 내가 사지 않은 주식이 계속 상승하면 돈을 잃은 것도 아닌데 마치 손해를 본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사람이 큰 수익을 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자신의 판단이 뒤처졌다고 생각한다. 결국 충분한 검토 없이 뒤늦게 매수하게 되고, 정작 가격이 하락하면 공포에 휩싸인다.


 책이 기술보다 심리를 먼저 설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시장의 가격은 통제할 수 없지만 자신의 행동에는 최소한의 기준을 만들 수 있다.

손절과 익절에 관한 내용도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사람은 손실과 수익을 대칭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손실이 발생하면 본전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 하고, 작은 수익이 발생하면 다시 떨어질까 두려워 빨리 확정하고 싶어진다. 그 결과 손실이 난 종목은 오래 가지고 있고, 좋은 흐름의 종목은 너무 빨리 매도하는 모순적인 행동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을 막기 위해서는 주식을 매수한 이후가 아니라 매수하기 전에 기준을 세워야 한다. 어떤 이유로 매수하는지, 어느 조건이 무너지면 내 판단이 틀렸다고 인정할 것인지, 어느 정도의 비중을 투입할 것인지 미리 결정해야 한다. 돈이 들어간 뒤에는 객관적인 판단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 대목은 투자뿐 아니라 직장생활의 의사결정과도 상당히 닮아 있다고 느꼈다. 중요한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나면 이미 투입한 시간과 비용 때문에 잘못된 방향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중단하기 어려워진다. ‘여기까지 했는데 조금만 더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투입한 시간과 앞으로 내려야 할 판단은 구분해야 한다. 처음의 가정이 틀렸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방향을 바꾸는 것이 오히려 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주식에서 손절 기준을 미리 정하는 것과 조직에서 사업의 중단 조건을 사전에 설정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비슷한 사고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0대 후반이 되면서 이러한 ‘손실 관리’의 중요성을 더욱 크게 느끼게 된다. 젊은 시절에는 큰 성공의 가능성에 먼저 눈이 가지만 시간이 지나면 얼마나 많이 버느냐 못지않게 얼마나 크게 잃지 않느냐가 중요해진다. 앞으로 책임져야 할 가족과 생활을 생각하면 한 번의 큰 성공을 위해 지나치게 큰 위험을 감수하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에 있는 ‘100만 원’보다 오히려 ‘확정매매’라는 개념이 더 오래 남았다. 매달 일정한 금액을 벌 수 있다는 기대보다 자신이 이해하고 확인한 상황에서만 행동한다는 원칙이 장기적으로 훨씬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책에서 설명하는 기술적 방법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차트는 과거와 현재의 시장 행동을 보여주지만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예상하지 못한 기업의 변화나 정책, 국제정세와 경기 상황이 발생하면 기존의 추세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또한 특정한 방법으로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동일한 결과가 반복된다는 보장은 없다. 투자법은 종교가 아니라 끊임없이 검증해야 하는 가설에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기준 역시 자신의 투자 성향과 시간, 감당할 수 있는 위험 수준에 맞춰 검증하고 수정하면서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는 중요한 원칙은 분명하다. 예측보다 확인, 수익보다 생존, 감정보다 기준을 먼저 생각하라는 것​이다.


 직장인에게는 특히 ‘하지 않는 투자’를 결정하는 기준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시장에는 매일 새로운 기회가 등장하고, 뉴스와 유튜브에는 큰 수익을 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쳐난다. 그것을 모두 따라갈 수는 없다. 오히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기준에 맞지 않는 기회를 보내주는 능력이 필요하다.


 생각해보면 시장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현금을 가지고 기다리는 기간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좋은 조건이 나타날 때 행동할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다림 역시 적극적인 의사결정일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내가 특히 경계해야겠다고 느낀 것은 ‘확신’이었다. 경험과 지식이 쌓일수록 판단이 좋아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자신의 판단을 지나치게 믿게 될 위험도 커진다. 특히 여러 번 예상이 맞으면 다음에도 자신이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그러나 시장은 개인의 경력이나 학력, 경험을 고려해주지 않는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판단했더라도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맞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틀렸을 때 그것을 얼마나 빨리 인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책에서 말하는 ‘바닥 확인’은 단순한 차트 기법 이상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보다 시장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현상을 존중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내가 바닥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시장이 실제로 바닥을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 가장 크게 남은 소감은 좋은 투자자는 미래를 정확하게 맞히는 사람이 아니라 틀릴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40대 후반의 지금은 젊었을 때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미래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사실 역시 더 잘 알고 있다. 시장뿐 아니라 직장과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충분히 검토하고 최선의 선택을 했음에도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모든 선택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선택 하나가 전체를 무너뜨리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주가가 크게 떨어졌을 때 “이제 바닥이겠지”라는 생각부터 하기보다 “바닥이라고 판단할 만한 변화가 실제로 나타났는가”를 먼저 묻고 싶다. 반대로 급등하는 종목을 놓쳤을 때도 그것을 손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여유를 갖고 싶다. 내가 참여하지 않은 상승은 손실이 아니며, 시장에는 앞으로도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다릴 줄 아는 투자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불안해서 매매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운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만 행동하고, 조건이 없다면 편안하게 시장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훈련이 필요한 태도일 것이다.


 책의 제목은 ‘바닥의 기술’이지만,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것은 바닥을 찾는 특별한 비법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낮은 가격을 잡겠다는 욕심을 내려놓는 방법에 가까웠다. 바닥에서 조금 늦게 사더라도 확인한 뒤 움직이고, 최고점보다 조금 일찍 팔더라도 자신의 기준을 지키는 것. 그 과정에서 놓친 몇 퍼센트를 아쉬워하지 않는 것.


 투자 경력이 길어질수록 얼마나 많은 기회를 잡았는가보다 얼마나 위험한 순간을 피했는지가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 시장을 이기겠다는 생각보다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겠다는 생각, 남들보다 먼저 움직이기보다 확인한 뒤 내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 태도. 그것이 『미국 주식 바닥의 기술』을 덮은 뒤 40대 후반의 내가 가장 오래 가져가고 싶은 생각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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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역사 - 숫자로 묻고 세계를 증명하다 ㅣ 소소의책 역사교양서
스네자나 로렌스 지음, 고유경 옮김 / 소소의책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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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의 역사를 읽기 전까지 수학의 역사를 생각하면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뉴턴처럼 교과서에서 배웠던 유명한 수학자와 공식들이 먼저 떠올랐다. 수학은 이미 완성된 지식을 배우는 학문이라는 인식도 강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수학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사용하는 숫자와 기호, 공식 하나에도 수백 년, 때로는 수천 년에 걸친 인간의 질문과 실패, 논쟁과 발견이 축적되어 있었다. 결국 수학의 역사는 숫자의 역사라기보다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해온 역사에 가까웠다.


 40대 후반의 직장인으로 오랫동안 숫자와 자료를 접하며 일해온 나에게 수학은 비교적 익숙한 언어다. 하지만 일상에서 사용하는 숫자는 대부분 이미 만들어진 체계 안에 있다. 어떤 수치를 비교하고 변화의 원인을 찾으며 앞으로 나타날 가능성을 판단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숫자와 계산법 자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생각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수학을 전혀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게 했다.


 책은 선사시대 사람들이 남긴 흔적에서 시작한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수를 세어야 했고 땅의 크기를 측정해야 했으며 계절과 천체의 움직임을 이해해야 했다. 처음부터 추상적인 공식을 만들기 위해 수학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수학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그리스로 이어지고 다시 중국과 인도, 이슬람 세계를 거쳐 유럽으로 연결된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수학이 어느 한 문명이나 몇몇 천재의 머릿속에서 갑자기 탄생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대와 지역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지식이 전달되고 수정되면서 발전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0’에 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지금은 0이 너무나 당연한 숫자이지만 인간이 처음부터 0을 하나의 수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없다는 상태를 하나의 숫자로 표현하고 계산의 체계 안에 포함한다는 생각 자체가 당시에는 커다란 사고의 전환이었다. 인도에서 발전한 0과 숫자 체계가 이슬람 세계를 거쳐 전파되면서 계산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


 생각해보면 인간의 중요한 발전은 이렇게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개념을 만들어내는 순간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눈앞에 보이는 것을 계산하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없음’까지 숫자로 표현할 수 있게 된 순간 인간이 사고할 수 있는 세계도 넓어진 것이다.


 책에서 실제로 공개된 본문 가운데 특히 인상 깊었던 세 문장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수학자들은 늘 어제의 발견을 토대로 오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

“어떤 문제는 우리가 가진 도구로는 아직 풀 수 없다.”

“그 밑바탕에는 언제나 수학이 있다.”


 이 세 문장은 서로 다른 시대의 수학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표현처럼 느껴졌다. 첫 번째 문장은 지식의 축적을, 두 번째 문장은 인간 지식의 한계를, 마지막 문장은 현대 사회에서 수학이 차지하는 위치를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수학자들은 늘 어제의 발견을 토대로 오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는 문장이 가장 마음에 남았다. 우리는 흔히 위대한 발견을 한 천재의 특별한 능력에 집중한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면 아무리 뛰어난 수학자라도 완전히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이전 사람들이 남긴 문제와 발견을 배우고, 거기에 새로운 질문을 덧붙이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이것은 직장생활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일을 하다 보면 경험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처음에는 하나의 업무를 해결하는 것 자체가 어렵지만 비슷한 문제를 반복해서 경험하면서 조금씩 판단 기준이 생긴다.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문제를 바라보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경험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과거에 효과가 있었던 방법이 현재에도 반드시 옳다는 보장은 없다. 수학 역시 기존의 이론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만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기존의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고,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발견하며, 때로는 오랫동안 당연하다고 믿었던 전제를 버렸기 때문에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발전 과정은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인간은 오랫동안 유클리드 기하학을 공간을 설명하는 절대적인 체계처럼 받아들였다. 하지만 기존의 전제를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전혀 새로운 기하학이 등장했다. 이는 ‘정답’이라고 믿었던 것도 어떤 조건에서는 다시 질문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나이가 들수록 이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력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경험을 신뢰하게 된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렇게 해결했다”는 판단은 업무를 빠르게 처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경험이 많다는 사실이 새로운 상황에서도 항상 옳은 판단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랜 경험 때문에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수학의 발전을 이끈 사람들은 기존 지식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면서도 그 지식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끊임없이 질문했다. 경험을 존중하되 경험에 갇히지 않는 태도라는 점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책에서 소개되는 수학자들의 인간적인 모습도 흥미로웠다. 우리는 수학을 매우 냉정하고 객관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수학의 역사 자체는 인간적인 갈등으로 가득했다. 삼차방정식의 해법을 둘러싸고 수학자들이 공개 대결을 벌였고, 뉴턴과 라이프니츠 사이에서는 미적분학을 누가 먼저 발견했는지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결국 가장 논리적인 학문을 발전시킨 사람들도 명예와 경쟁심, 자존심을 가진 인간이었다. 이 사실이 오히려 흥미로웠다. 위대한 발견은 언제나 순수한 호기심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때로는 경쟁과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발전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반대로 협력과 지식의 공유 역시 수학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지역에서 만들어진 지식이 번역되고 전달되면서 새로운 발견의 기반이 되었다. 한 문명의 지식이 다른 문명으로 넘어가고, 그곳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추가된 뒤 다시 다른 지역으로 전달되었다.


 이 과정은 오늘날 조직에서 지식이 축적되는 방식과도 닮아 있다. 뛰어난 한 사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보다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다음 사람이 그 지식을 발전시키는 조직이 장기적으로 강하다.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지식이 전달될 수 있는 구조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가운데 하나는 수학의 발전이 현실의 문제에서 시작된 경우가 많다는 점이었다. 확률론 역시 처음부터 거대한 이론을 만들기 위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도박 게임이 중간에 끝났을 때 판돈을 어떻게 공정하게 나누어야 하는가라는 현실적인 질문에서 발전했다. 인간의 아주 현실적인 문제가 새로운 사고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좋은 질문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했다. 우리는 흔히 좋은 답을 찾는 능력을 높게 평가하지만, 역사를 바꾼 발견들을 살펴보면 그 이전에 좋은 질문이 있었다. 아무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 것에 “왜 그런가?”라고 질문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현상에서 문제를 발견하는 사람이 새로운 길을 열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경력이 쌓일수록 답을 빨리 제시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게 된다. 후배들은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 답을 기대하고, 조직 역시 신속한 판단을 요구한다. 그러나 때로는 빠른 답보다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잘못된 질문에 아무리 정확한 답을 내놓아도 좋은 결과를 얻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학의 역사』는 내게 ‘답을 잘 찾는 사람’보다 ‘좋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했다.

책의 후반부에서 수학이 컴퓨터와 인공지능으로 연결되는 과정도 흥미롭다. 오늘날 인공지능이 보여주는 능력은 마치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기술처럼 느껴지지만 그 아래에는 수백 년 동안 축적된 수학적 사고가 자리하고 있다. 패턴을 찾고 데이터를 추상화하며 알고리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역시 오랜 수학적 발전 위에서 가능해졌다.


 최신 기술일수록 오히려 오래된 기초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이전의 지식이 빠르게 쓸모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새로운 기술일수록 탄탄한 기본 원리를 필요로 한다. 세상이 빠르게 변할수록 기초적인 사고 능력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이 책은 실패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꾸어준다. 수학의 역사에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문제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어떤 사람은 평생 하나의 문제를 연구하고도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방법이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19세기에 이르러서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수세기 동안 사람들이 해결하려 했던 일부 작도 문제가 애초에 주어진 조건에서는 풀 수 없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문제를 풀지 못한 것이 실패가 아니라 ‘풀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해답이 된 것이다.


 이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직장에서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실패라고 판단하기 쉽다. 그러나 충분히 검토한 끝에 어떤 방법으로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것도 중요한 성과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패했느냐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무엇을 알게 되었느냐일 것이다.


 40대 후반이 되면서 나는 지식을 바라보는 태도 역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젊었을 때는 많이 알고 정확한 답을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험이 쌓일수록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책 속의 “어떤 문제는 우리가 가진 도구로는 아직 풀 수 없다”는 문장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은 무능함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기 위한 출발점일 수 있다.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질문할 수 있고, 질문해야 새로운 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수학의 역사』를 읽고 가장 크게 남은 소감은 수학이 정답을 가진 사람들의 역사가 아니라 끝없이 질문했던 사람들의 역사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만나는 공식은 너무나 완벽해서 처음부터 그 모습으로 존재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뒤에는 수많은 사람의 실패와 논쟁, 경쟁과 협력, 그리고 때로는 평생 해결하지 못한 질문들이 있었다.


 40대 후반의 지금 나 역시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이 적지는 않다. 하지만 앞으로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을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계속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한 방법을 반복하는 것은 편하지만, 세상이 변하면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특히 인공지능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앞으로는 정해진 계산과 정보 검색, 일정한 형식의 분석은 기계가 인간보다 훨씬 빠르게 수행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무엇을 계산할 것인지, 무엇을 의심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책을 덮으며 나는 수학을 숫자와 공식의 집합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온 하나의 거대한 언어로 다시 보게 되었다. 누군가의 질문이 다음 사람의 출발점이 되고, 한 시대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수백 년 뒤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지식이란 개인이 소유하는 것보다 세대를 이어 전달되는 것에 더 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나 역시 일을 하거나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빨리 정답을 찾으려고만 하기보다 내가 지금 제대로 된 질문을 하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보고 싶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도 한 번 더 의문을 가져보고, 답을 찾지 못했다고 해서 그 과정까지 실패라고 판단하지 않는 여유도 갖고 싶다.


『수학의 역사』를 읽으며 수천 년 전 이름조차 남지 않은 사람들이 던졌던 작은 질문들이 오늘날 컴퓨터와 인공지능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이 묘한 감동으로 남았다. 내가 지금 던지는 질문의 답을 반드시 내가 찾지 못하더라도, 좋은 질문은 언젠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움직일 수 있다.


 정답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으로 남는 것. 그것이 이 책을 덮은 뒤 내가 가장 오래 간직하고 싶은 소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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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코어
오타쿠코어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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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나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오타쿠’라고 하면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게임 속 캐릭터에 깊이 빠져 있는 젊은 세대의 문화가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40대 후반의 직장인으로 오랫동안 조직생활을 해온 나에게 오타쿠라는 단어는 익숙하면서도 내가 직접 사용하는 표현은 아니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가면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오타쿠를 특정한 문화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고 한정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 진심으로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넓게 생각한다면 나 역시 무언가의 오타쿠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역시 애니메이션과 웹툰, 웹소설뿐 아니라 케이팝, 밴드, 영화와 음악까지 오랫동안 여러 대상을 좋아해온 사람이다. 책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오타쿠에게 흔히 던지는 질문을 하나씩 꺼내놓는다. “그거 다 아는 내용 아니야? 왜 또 봐?”, “가짜 캐릭터한테 왜 울어?”, “고작 종이쪼가리가 왜 그렇게 비싸?” 같은 질문들이다. 얼핏 보면 가벼운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다른 사람의 취향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라는 꽤 진지한 문제가 숨어 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취향에도 사회적인 서열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래식 음악이나 미술, 와인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 교양이나 안목이라고 부르면서 애니메이션 캐릭터나 아이돌, 웹소설에 같은 정도로 빠져 있으면 과몰입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을 좋아하느냐의 차이일 뿐, 한 대상에 관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공부하며 즐거움을 얻는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나 역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특정한 물건이나 분야를 깊이 들여다본 경험이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관심에서 시작했지만 조금씩 알아가다 보면 역사와 제작 방식, 작은 차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비슷해 보이는 것들이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르게 보인다. 바로 그 순간부터 취미는 단순한 소비를 넘어 하나의 세계가 된다.


 이 책을 읽으며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저자가 이러한 몰입을 부끄러워해야 할 행동이 아니라 인간에게 필요한 감정으로 바라본다는 점이었다. 현대인의 삶은 효율과 결과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직장에서는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했는지가 중요하고, 일상에서도 시간과 비용을 따져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고 한다. 무엇인가를 할 때 자연스럽게 “그래서 이것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취미의 세계에서는 이런 질문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 좋아하는 음악을 반복해서 듣는다고 승진하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작품의 설정을 자세히 안다고 생활이 직접적으로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시간을 들여 좋아하는 것을 보고, 듣고, 수집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을 하는 순간이 즐겁기 때문이다.


 책에서 공개된 표현 가운데 특히 인상 깊었던 세 문장을 짧게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그거 다 아는 내용 아니야? 왜 또 봐?”
“가짜 캐릭터한테 왜 울고불고 난리야?”
“고작 종이쪼가리가 왜 그렇게 비싸?”


 이 문장들은 책의 목차에도 등장하는 질문들이다. 얼핏 보면 오타쿠를 놀리는 말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이 책이 말하려는 핵심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반복해서 보는 이유가 있고, 허구의 인물에게도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가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종이 한 장으로 보이는 물건에도 자신만의 의미가 존재한다.


 특히 “왜 또 봐?”라는 질문이 기억에 남았다. 우리는 이미 본 영화나 드라마를 다시 보고, 오래전에 들었던 음악을 반복해서 듣는다.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같은 장면에서 웃고 같은 장면에서 감동한다. 효율이라는 기준으로만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새로운 것을 보는 편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만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는다. 익숙한 장면과 음악을 통해 과거의 감정을 다시 만나는 경험 자체가 즐거움이 될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이러한 감정의 가치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는 생각도 들었다. 젊은 시절에는 새로운 경험이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새로운 장소를 방문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일정한 나이가 지나면 생활의 상당 부분이 반복된다. 아침에 출근하고 업무를 처리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이 이어진다. 책임은 늘어나지만 순수하게 설레는 순간은 줄어들기 쉽다.


 그래서 40대 후반의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한 ‘오타쿠’는 젊은 세대의 특수한 문화라기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에 가까웠다. 어떤 물건의 새로운 모델이 나오면 찾아보고 싶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나오면 읽어보고 싶으며, 관심 있는 분야라면 다른 사람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작은 차이까지 알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감정이 있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어느 정도는 오타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갭차이’, ‘실패의 서사’, ‘구원서사’, ‘규격 외 존재’, ‘수미상관’처럼 사람들이 특정한 이야기에 끌리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도 재미있었다. 사람들이 작품 속 인물을 좋아하는 데는 단순히 외모가 멋지거나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실패한 사람이 다시 일어나는 과정에 마음이 움직이기도 하고, 평소 냉정했던 인물이 예상하지 못한 따뜻함을 보여주는 순간에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이런 이야기들은 현실의 인간관계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완벽한 사람보다 약점과 빈틈이 있는 사람에게 친근함을 느끼고,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의 이야기에 감동한다. 작품 속 캐릭터를 좋아하는 마음 역시 인간이 이야기를 통해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일 수 있다.


 특히 실패와 구원의 이야기가 반복해서 사랑받는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다. 현실에서는 한번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서는 실패했던 인물이 다시 일어나고, 외면받던 사람이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며, 혼자였던 사람이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난다. 우리는 그 과정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삶에서도 가능할지 모르는 두 번째 기회를 상상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상의 세계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을 단순한 현실도피라고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이야기 속 인물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현실에서 쉽게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발견하기도 한다. 좋은 영화 한 편이나 소설 한 권을 읽은 뒤 오랫동안 그 이야기가 머릿속에 남는 이유도 결국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면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 역시 조금씩 굳어지는 것을 느낀다. 처음 만난 사람의 말투와 행동, 직책과 경력만으로 어느 정도 그 사람을 파악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타쿠 코어』를 읽으며 사람에게는 회사에서 보여주는 모습보다 훨씬 다양한 세계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평일에는 무표정하게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이 주말에는 특정 밴드를 따라 전국 공연장을 다닐 수도 있고, 엄격해 보이는 상사가 집에서는 오래된 만화책을 모으는 사람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별것 아닌 취미처럼 보이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일상의 피로를 견디게 해주는 중요한 세계일 수 있다.


 이 점에서 취향을 존중한다는 것은 단순히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상대방에게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면 회사에서 보이지 않았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나 역시 과거에는 취미에도 어느 정도 합리적인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같은 기능을 하는 물건을 여러 개 가지고 있거나, 일반인이 보기에는 작은 차이에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행동을 굳이 설명하려고 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모든 취향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좋아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생활을 무너뜨릴 정도로 소비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책임을 다하면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좋아하는 것을 즐긴다면, 그것을 반드시 효율이나 필요성으로 설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취미에는 어느 정도 비합리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즐거울 수도 있다.


 40대 후반이 되면서 특히 공감하게 된 부분은 ‘좋아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능력’이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지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것 안에서 생활하기 쉬워진다. “그걸 지금 알아서 뭐 하겠나”, “그 나이에 그런 것을 왜 좋아하나”라는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태도가 반복되면 삶의 세계는 조금씩 좁아질 것이다.


 반대로 나이와 상관없이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깊이 파고드는 사람은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가진다. 그 관심이 음악이어도 좋고 운동이나 책, 자동차, 시계, 만년필, 영화처럼 무엇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좋아하느냐보다 여전히 무언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내게 취미에 관한 책이면서 동시에 나이 들어가는 방식에 관한 책처럼 읽혔다.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에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보다 자신이 실제로 즐거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일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젊은 시절에는 인정받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책을 덮고 가장 오래 남은 감정은 ‘좋아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귀한 능력’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잘하는 능력은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무엇인가를 깊이 좋아하는 능력은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 대상을 오래 좋아하려면 관심과 시간, 애정이 필요하다. 좋아하기 때문에 더 알고 싶고, 더 알고 있기 때문에 작은 차이를 발견하며, 그 차이를 발견하면서 다시 즐거움을 얻는다.


 40대 후반의 지금 나는 앞으로 새로운 취미를 반드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보다, 이미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너무 쉽게 사소한 것으로 취급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직장과 가족, 사회적 책임이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것만으로 한 사람의 삶 전체가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런 목적 없이 좋아하는 것을 들여다보는 시간도 삶의 일부다.


 또한 다른 사람의 취향에 대해서도 조금 더 관대해지고 싶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 누군가가 열광하고 있다면 “그게 왜 좋아?”라고 판단하기 전에 “그 사람에게는 어떤 점이 그렇게 좋은 걸까?”라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 작은 차이가 사람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오타쿠라는 단어를 특정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덮고 나서는 그 의미가 조금 달라졌다. 좋아하는 책을 반복해서 읽는 사람도, 하나의 운동에 몇 년을 빠져 있는 사람도, 특정한 물건을 수집하고 그 작은 차이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넓은 의미에서는 모두 자신의 세계를 가진 오타쿠일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좋아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느냐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세상을 더 많이 알게 되는 대신 쉽게 감탄하지 않게 되고, 무엇을 보더라도 먼저 필요성과 효율을 따지는 사람이 되기 쉽다. 하지만 모든 것을 계산하면서 살아간다면 삶에서 설명할 수 없는 즐거움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무엇인가를 보고 괜히 설레고, 필요 이상으로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지고, 다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혼자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을 잃지 않고 싶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내 안에 호기심과 열정이 남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40대 후반의 내가 가장 오래 간직하고 싶은 소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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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골 -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권민창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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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떠오른 이미지는 조직이나 기존 질서에 쉽게 순응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반골’이라는 말에는 대체로 고집이 세고 권위에 저항하며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이라는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내가 받아들인 반골의 의미는 조금 달라졌다.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전에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는 사람에 가까웠다.


 40대 중반의 직장인으로 오랜 시간 조직생활을 해오다 보면 ‘순응’과 ‘소신’ 사이에서 고민하는 순간이 적지 않다. 조직에는 이미 만들어진 규칙과 관행이 있고, 그것을 따르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인 경우가 많다. 특히 경력이 쌓이고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아질수록 새로운 길을 선택하기보다 검증된 방식을 따르게 된다. 젊었을 때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쉽게 문제를 제기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말을 해야 하고 어떤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은지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반골은 지금의 나에게 꽤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었다. 나는 경험이 많아져서 신중해진 것인가, 아니면 실패가 두려워 안전한 선택만 하고 있는 것인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과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는 것은 분명 다른데, 어느 순간 그 둘을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반골은 단순히 사회와 조직에 반항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그것이 다수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 남들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때 잠시 멈춰 “왜?”라고 질문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 선택의 결과까지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이러한 태도는 말처럼 쉽지 않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특히 조직에서는 상사와 동료의 평가가 자신의 위치와 기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분위기에 맞춰 침묵하거나 다수의 의견에 동조하게 된다. 그것이 반드시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조직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곳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타협과 양보는 필요하다.


 하지만 타협이 반복되면서 자신의 기준 자체가 사라지는 순간은 경계해야 한다. 처음에는 상황 때문에 한 번 양보했지만, 어느 순간 무엇이 옳다고 생각했는지조차 잊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골을 읽으며 내가 가장 중요하게 받아들인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모든 일에 반대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자신이 왜 동의하고 왜 반대하는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메시지를 내가 인상 깊게 받아들인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남들이 모두 같은 길을 간다는 이유만으로 그 길이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반골은 세상과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 사람이다.”
“타인의 기준으로 성공한 삶보다 자신의 기준으로 선택한 삶이 오래 남는다.”

 그중에서도 두 번째 문장이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느꼈다. 반골의 본질은 다른 사람에게 반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행동 사이의 거리를 줄이는 데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돌아보면 조직에도 반골형 인물이 있다. 회의에서 모두가 동의하는 분위기인데도 다른 의견을 말하고, 오랫동안 해오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때로 조직에서 불편한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회의가 길어지고 의사결정이 늦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을 보며 ‘굳이 저렇게까지 이야기해야 하나’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조직의 중요한 실패는 아무도 몰라서 발생하기보다, 누군가는 알고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커지는 경우도 많다.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침묵하고, 윗사람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의견을 접다 보면 잘못된 판단이 조직 전체의 결정으로 굳어진다. 그런 순간에는 오히려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반골을 무조건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태도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생각을 말할 용기만큼이나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용기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근거가 바뀌었는데도 기존의 주장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소신이 아니라 아집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반골은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충분히 듣되 최종 판단은 스스로 하고,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면 수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 점은 오랜 경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욱 중요하다고 느꼈다. 경력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경험한 성공과 실패가 판단의 기준이 된다. 경험은 분명 큰 자산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생각을 막는 벽이 되기도 한다. “내가 해봐서 안다”라는 말이 가장 위험한 순간은 과거와 현재의 조건이 이미 달라졌는데도 같은 답을 적용할 때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반골 정신은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먼저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과거의 내가 만든 기준에 현재의 나까지 무조건 순응할 필요는 없다. 10년 전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가치와 지금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달라질 수도 있고, 젊은 시절 세웠던 성공의 기준을 평생 유지할 이유도 없다.


 40대 중반은 그런 의미에서 삶을 다시 바라보기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의 사회 경험이 쌓였고 자신이 잘하는 것과 잘하지 못하는 것도 조금씩 알게 된다. 동시에 앞으로 살아갈 시간도 충분히 남아 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주변의 기대와 지금까지 만들어놓은 모습 때문에 새로운 선택을 하지 못한다면, 안정은 얻을 수 있어도 자신의 가능성을 지나치게 일찍 제한할 수 있다.


 특히 책을 읽으며 ‘성공’이라는 기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좋은 직장, 높은 직책, 많은 소득, 넓은 집처럼 사회적으로 쉽게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준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현실에서 삶을 안정시키는 데 분명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갖추고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사회적 기준으로는 평범해 보여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결국 어느 쪽이 성공한 삶인지 다른 사람이 대신 결정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스스로 알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 부분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젊을 때는 목표가 비교적 명확하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인정받고, 승진하고, 경제적으로 안정되는 것이 중요한 목표가 된다. 하지만 어느 정도 그 과정을 지나온 뒤에는 새로운 질문이 생긴다. ‘그래서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그래서 오히려 어렵다. 다른 사람의 삶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다. 가족관계와 성격, 가치관, 원하는 삶의 모습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답을 찾으려면 다른 사람의 기준에서 조금 떨어져 자신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책을 읽으며 반골은 거창한 선택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회의에서 모두가 동의할 때 다른 의견을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 필요하지 않은 소비를 주변 사람들이 한다는 이유만으로 따라 하지 않는 것,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길이라도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다른 선택을 하는 것처럼 일상의 작은 판단에서도 반골의 태도는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온다.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그때 “나는 소신대로 했으니 괜찮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자신의 판단이 왜 틀렸는지 돌아보고 다음 선택을 수정해야 한다.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것은 결과까지 자신이 받아들이는 것과 함께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동안 얼마나 독립적으로 판단해왔는지도 돌아보게 되었다. 충분히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믿었지만 사실은 조직의 분위기나 주변의 평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기준에 영향을 받은 선택도 많았을 것이다. 인간은 완전히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앞으로는 중요한 선택을 할 때 한 번쯤 “아무도 나를 평가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해보고 싶다. 그 답이 실제 선택과 너무 다르다면, 내가 무엇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반골을 읽고 난 뒤 가장 크게 남은 소감은,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자기 생각을 지키는 일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젊을 때는 가진 것이 많지 않아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직장과 가족, 사회적 위치와 평판처럼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진다. 그래서 새로운 길보다 익숙한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렇다고 무조건 지금까지의 삶을 뒤집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을 통해 내가 얻은 결론은 훨씬 현실적이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일부러 반대할 필요는 없다. 다만 중요한 순간만큼은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40대 중반의 지금 나는 젊었을 때보다 세상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옳고 그름이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 문제도 많고, 조직에서는 개인의 소신만으로 결정할 수 없는 일도 많다.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이 무조건적인 반항이 아니라 생각하는 반골이라고 느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되 생각까지 맡기지 않고, 조직의 질서를 따르되 잘못된 관행에는 질문하며, 성공을 추구하되 성공의 기준까지 남에게 맡기지 않는 태도다.


 앞으로 나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 되기보다 중요한 순간에 내 생각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동시에 내 생각이 틀렸을 때는 체면 때문에 고집하지 않고 수정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어쩌면 그것이 경험을 쌓은 사람에게 필요한 진짜 용기일지도 모른다.


 반골은 내게 세상에 반항하라고 말하는 책으로 남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의 기준과 내 기준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책으로 남았다.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결정하고 그 선택에 책임지는 것. 그리고 시간이 흘러 뒤를 돌아보았을 때 “적어도 중요한 순간에는 내 생각으로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이 책을 덮은 뒤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소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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