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로니카의 아이들
미치 앨봄 지음, 장성주 옮김 / 윌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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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로 유명한 미치 앨봄, 그의 새로운 소설이자 그가 꼭 하고자 했던 이야기라는 말에 끌려서

이 책을 잡게 되었다. 이 책은 처음부터 아프고 조용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절규하지 않으면서도

한 줄 한 줄이 뼛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처음에 봤던 살로니카라는 단어조차 낯설었다 하지만 읽고 나니, 낯선 도시의 이름이 내 마음속에서 오래 반향을 울린다. 그곳에 살았던 아이들이 있었고,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사실.그리고 누군가는 그들을 기억하고, 그날의 진실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


책은 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절절하다. 작가인 미치 앨봄은 유대인 공동체의 삶과 그들의 비극을 개인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것도 아이들의 이야기로 말이다. 무언가 거대한 비극을 말할 때, '아이들'로 시작한다는 것은 가슴이 많이 아프다.

그래서 나는 다큐 시사를 볼 때도, 사건 사고 이야기를 볼 때도 아이들이 나오는 것은 최대한 피한다.

옛날부터 그런 것은 아니고 언젠가부터 그랬는데 너무 힘들어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감정적으로도 그렇고 객관적으로도...


그리스의 작은 마을 '살로니카'는 원래 작은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던 도시였다고 한다.

세파에 밀려 떠나온 여러 민족들이 모여 살았던 그곳.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모든 것을 차례대로 집어삼켰고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늑대들에 의해서 하나둘 집어삼켜지는 사람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말할 수 없어서, 말하지 못해서, 결국 잊힌 기억으로 남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너무 아리고 시렸다. 누군가에게는 역사이고, 누군가에겐 현재진행형인 이야기


나는 사실 전쟁도, 홀로코스트도, 유대인 문제도 언제나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한국이 휴전국이긴 해도 당장에 전쟁이 날 거란 생각도 안 했으니까 말이다.

이건 부끄러운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다만 이것이 잊히고 지나간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말이다.


문득 며칠 전에 보았던 이스라엘 폭격 영상이 떠올랐다.

음속 미사일이 떨어지는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 촬영한 영상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와 있었다.

그들은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지르면서도 높은 건물에서 대피하지도 못하고

그저 창문 밖으로 마치 별처럼 쏟아지는 미사일의 모습을 찍고 있었다.

반격으로 지상에서 쏘아 올려지는 미사일의 모습들도 보였다.

순식간에 주변에 떨어져서 폭발하는 그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전쟁은 그렇게 우리랑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우크라이나도 그렇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불과 8000km 떨어진 나라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과거와 현재가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것은 아이들이라는 것도 떠올랐다.

어른들의 전쟁에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아이들. 전쟁과 유대인 학살은 다르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과 사람들은 철저히 이용당하고, 상처받고, 사라져 갔다.


니코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소년이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언제나 옳다고 믿었고, 그 신념은 그 아이의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 그 자체였다.

니코의 금발 머리와 푸른 눈동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가려주었고,

그 외모는 그를 그 시대에서 살아남기 좋은 '도구'였다.

하지만 진실만을 말하던 아이가 결국 그 누구보다도 거짓을 깊이 등에 업고 살아가야 했다는

사실이 이 책의 가장 큰 슬픔이자 모순이다.

니코는 소년으로써 짊어지기에는 너무 가혹한 죄의식을 평생 안고 살아간다. 그것도 아무한테도 말하지도 못하고 말이다.

결국 진실만을 말하고, 사람을 믿었기에 이용당한 아이는 진실을 가장한 거짓을 전하게 된 비극의 상징이 된다.


그리고 니코의 형인 세바스티안은 외모도, 성격도, 모든 것이 동생인 니코와 달랐다.

동생에 대한 열등감과 질투는 점점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깊어졌고,

사랑도, 인정도 모든 것을 니코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한 세바스티안의 내면은 전쟁과 함께 더욱 어두워진다.

그는 사랑받고 싶었던 어린 소년이자, 자신 스스로를 잃어버린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 파니.... 전쟁과 학살이라는 이름 앞에서 여성이라는 것은 늘 위험한 요소로 작용한다.

파니는 전쟁 속에서 그리고 홀로코스트의 사건 속에서 순수함을 읽고 현실을 깨닫게 되는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당장 전쟁이 아니더라도 보호받지 못하는 제3국의 여자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많이 먹먹했다.

아이들이 내몰린 현실이 너무나 잔혹하다는 걸 다시 한번 곱씹었다.

파니는 그런 시련 속에서 살아남아 진실을 말하는 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비극을 완성 시키는 장본인인 말도 꺼내기 싫을 정도로 불쾌했던 남자 우도 그라프...

히틀러를 추종하며, 자신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분류하고 이용하는 정말 너무 싫은 사람이었다.

그의 말 한마디로 니코와 수많은 유대인들의 삶이 무너지는 걸 보면서

정말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홀로코스트 사건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살로니카의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잔인함을 앞세오지도 않는다.

그저 그날의 공기와 냄새와 침묵을 천천히 따라가게 한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말이 이토록 절절하게 다가오는 책은 드물다


그들을 기억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이 책은 묻지 않고 가르쳐 준다.

어째서 미치 앨봄이라는 작가가 이 이야기를 그 토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잊어선 안된다. 잊혀선 안된다. 끝까지 모두가 알아야 한다. 그런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홀로코스트 서사가 아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유대인 학살의 이야기 너머, 그리스의 살로니카에서 일어났던 비극을 담고 있다.

그동안 역사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던 그리스 유대인들에 대한 잔혹한 학살, 그리고 그 안에 있었던 한 소년의 이야기

작가는 잊힌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직접 발로 뛰고, 수십 명의 생존자와 유족을 인터뷰하며 이 작품을 완성했다.


그의 따뜻한 시선은 이번에도 여전하지만, 이번엔 그 따뜻함이 더 차갑고 어두운 진실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더 아프고,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작가의 진심이 한 줄 한 줄 꾹꾹 눌려 담겨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감히 말하자면 이 책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할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살로니카의 아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곁에서 기억해 달라고 조용히 속삭이고 있다.

나치로부터 피해를 입은 모든 사람들,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단지 '사람' 이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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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건너는 교실
이요하라 신 지음, 이선희 옮김 / 팩토리나인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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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해도 괜찮은 수업, 그때 우리가 꿈꾸던 교실

공식도, 정답도 중요하지 않아.



어릴 적 과학 시간은 늘 조금은 어려웠다.

자연이나 동식물 같은 것에 자연 과학에 대한 호기심은 늘 강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다양한 공식을 외우고, 실험 결과를 정확히 맞히는 것이 전부였던 과학 수업들이

시험 성적에 얽매여 모든 걸 외워야 하는 그런 수업 방식들이 숨 막히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나는 오랫동안 과학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만약, 그때 이런 수업을 했더라면?"


이요하라 신 작가님의 '하늘을 건너는 교실'은 '야간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지금은 잘 볼 수 없지만 국내도 얼마 전까지 야간 고등학교가 많았는데 대체적으로 야간 고등학교라고 하면

공부를 못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시선이 꽤 많았던 것 같다 특히나 상고에 야간반이라면 특히나 선입견이 많았던 모양인데

이 책을 읽으면 그 주인공들이 나쁜 행동을 해서, 어긋나서, 공부를 못해서 야간 고등학교를 갔다는 시선은 접게 된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사정으로 야간 고등학교에 온 사람들이었으니까.


나이도, 국적도, 삶의 경로도 모든 것이 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모여 과학부 활동을 하며 '화성 크레이터를 재현하는 실험'을 함께한다. 처음에는 그저 실험의 과정을 따라가는 이야기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소설은 점점 더 깊은 층위로 우리를 데려간다.그 실험을 통해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고, 누군가에게 이해받는 경험을 처음으로 하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이 작품이 특별하게 다가온 건, 무언가를 '알고 싶어 한다'는 감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오랜만에 다시 떠올리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별빛, 물, 바람, 빛, 시간 같은 일상의 과학적 현상에 질문을 던지고, 그 궁금증을 실험으로 풀어나간다. 그 과정이 꼭 '배움' 같지 않아서 더 좋다. 마치 친구와 놀듯, 선생님과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탐구의 시간 속에서 독자인 나도 어느새 그 실험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소설의 줄거리는 어쩌면 익숙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다정하고 유쾌한 선생님, 개성 강한 동료들, 소소한 갈등과 따뜻한 감동이 담긴 마무리.

하지만 이런 클리셰가 전혀 식상하지 않게 느껴지는 건, 그 안에 담긴 진심이 너무도 따뜻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예상 가능한 전개 안에서도 우리가 한때 품었던 꿈, 그리고 한때 잊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아무래도 나는 촌스러운 사람 같다. 사람들이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뻔하고 따뜻한 이야기들이 아직도 이렇게 좋으니 말이다.



나는 과학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처음으로 조금 부럽게 느껴졌다.

'과학'이라는 것이 어렵고 복잡한 학문이 아니라 세상과 나 자신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 책은 궁금한 것을 떠올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함께 고민하고, 시도하고,

그 끝에서 세상과 만나는 그 순간이야말로 가장 특별한 ‘배움’이라고 말하고 있다.


책장을 덮고 난 후, 나도 모르게 창밖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소설 속 사람들처럼 어쩌면 나도, 조금은 엉뚱한 호기심을 품은 사람이던 그때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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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항선 하나에 두 명의 사냥꾼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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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셰를 통과해 도달한 한 편의 영화 같은 서사

지독하게 낯익은 이야기, 그런데 눈을 뗄 수 없다



처음엔 제목이 조금 낯설었다.

‘밀항선’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간감과 ‘사냥꾼’이라는 단어의 날카로움이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며 이 두 단어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곧 이 소설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좌천당한 경찰, 넘지 말아야 할 선, 그리고 배신.

사실만 이것만 놓고 보면 어쩌면 너무나도 익숙하고 뻔한 구조다.

수많은 누아르 영화나 하드보일드 소설에서 봐왔던 클리셰라고 해도 좋을 설정이기 때문이다.


아빠가 좋아하시는 한국식 액션 영화들도 생각났다.

'달콤한 인생'이나 '신세계', 요즘으로 따지면 '광장' 같은,

맨몸, 칼 하나, 총 하나만 들고도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장르들.


대사를 나누고, 감정은 숨긴 채 정해진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

하지만 이 소설은 영화보다도 더 말이 없고, 더 고요하다.

그 고요함이 오히려 읽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고, 더 집중하게 만든다.

물론 이 고요함이 진짜 고요하다는 건 아니고 자신의 마음을 숨긴다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익숙함과 고요함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는다.

어쩌면 뻔하게 보이는 서사의 틀 안에서도 자신만의 스타일, 자신만의 문장을 밀고 나가는 작가님의 힘이 느껴졌다. 남성적인 듯하면서도 절제되고 섬세한 문장, 그리고 촘촘하게 설계된 플롯이 이 이야기의 긴장감을 끝까지 놓지 않게 만들고, 결국 우리는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읽게 된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클리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클리셰의 매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정확히 어디서 힘을 줘야 하는지를 아는 방식으로 써내려갔기 때문에 클리셰 속에 새로움을 읽게 되는 것이다.



'누가 사냥꾼이고, 누가 사냥당하는가.'

이 질문은 이야기 내내 반복된다. 어쩌면 둘 다 사냥꾼일 수도 있고, 어쩌면 둘 다 누군가에게 사냥당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만들어낸 구조 속, 결국 그 누구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다 읽고 나서야 더 묵직하게 남는다. 이야기 속 결말보다도 그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사람들의 선택과 상처들이 자꾸만 마음에 남는다.


특히 좋았던 건 인물들이 ‘감정을 겉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이고, 표현보다 선택이 앞서는 인물들. 이 무뚝뚝한 방식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고,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우리는 다들 그렇게 감정을 눌러가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밀항선 하나에 두 명의 사냥꾼'은 액션의 껍질을 두르고 있지만, 실은 관계와 인간에 대한 소설이다.

살기 위한 본능 속에 숨어 있는 외로움과 상처, 그 복잡한 감정들을 작가는 거칠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냈다.

그래서 이 결말이 꽤 많이 씁쓸했다. 모든 사람들의 상황들이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만큼이나 와닿았으니까 말이다. 한 편의 느리고 차가운, 그러나 지독히 뜨거운 영화 같은 소설 그래서 그런지 읽고 나면 그 날카로운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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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떠 있는 것 같아도 비상하고 있다네 : 니체 시 필사집 쓰는 기쁨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유영미 옮김 / 나무생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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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의 시, 한 줌의 빛

니체의 시에서 발견한 조용한 위로와 철학 너머의 감정



니체라는 이름은 언제나 단단하게 다가온다. 권력 의지, 초인, 영원회귀.

그가 남긴 말들은 냉철하고 논리적인 철학의 언어로 우리의 삶을 통과해왔다.

그렇기에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는 이 ‘니체의 시’라는 말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그 니체가 시를 썼다고? 부드럽고, 아득한 말들이 가득한 그 시말인가?



그동안 철학자 중에서 니체를 좋아한다고 여러 번 말을 했지만 사실 니체의 시는 들은 적이 없었다.

‘니체의 시’라는 낯선 조합, 그리고 필사본이라는 형식이 꼭 이 책을 읽고 말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평소에 좋아했던 고전 철학자의 무게 있는 문장들이 고스란히 내 손끝에서 살아난다는 상상을 하니 기분이 좋았기도 하고...


표지부터 적혀 있는 '쓰는 행위' 자체가 독서의 완성을 넘어선다고 느꼈다.

최근에 내가 필사를 많이 하면서 느낀 것들도 있고, 이 책을 통해서 한 편의 시를 천천히 손으로 옮기며,

문장 하나하나의 호흡과 감정을 담고, 그렇게 니체의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언어가 손끝으로 전해지니,

필사가 독서와 동시대의 독백이 된다는 걸 온몸으로 실감했다.

그리고 니체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표지 제목처럼 ‘뜬 것 같지만 비상하고 있다’는 문장은 니체 철학의 핵심을 조용히 드러낸다.

자유로운 존재, 일시적이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존재.

읽고 쓸수록, 그 의미가 머릿속에서 맴돌며 나 스스로에게도 묘한 울림을 줬다.



니체는 흔히 무겁고 난해하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이 시집은 달랐다. 짧지만 뜨겁고, 냉철하지만 따뜻했고 당당했다.

철학자의 단단한 걸음걸이를 느끼는 동시에, 어쩐지 애잔하고 친숙함마저 느껴졌던 건

평소에 좋아하던 철학자의 말이기 이전에 직접 써보는 이 필사라는 접근 방식 덕분이겠지?



책은 정말 표지도 특별했고 마음에 쏙 들었지만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필사를 해야 하는 페이지가 줄이 아닌 페이지가 꽤 많았다는 거다 페이지 디자인들도 너무 예뻤고 구성도 좋았지만 그 감성보다는 필사에 집중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좀 걱정스러울 수 있는 페이지라고 봤다 나는 일단 그냥 쓰기는 했는데 줄이 없는 페이지에 글을 쓴다는 건 꽤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기 때문에.... 사실 나도 몇 번이나 펜을 다시 놨다 들었다를 반복했다 다른 페이지를 먼저 할까? 하다가 결국 적고야 말았지만!

나처럼 용기가 없는 사람이들이라면 조금 힘들게 느껴진다는 점이 아쉬워서 다음엔 줄이 있는 페이지가 많았으면 좋겠다


시를 읽고 읽으면서 느낀 건 니체는 시에서조차 삶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되, 마치 그 삶을 사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말한다. 그러면서도 철학에선 느낄 수 없었던 불안정한 삶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고, 절망 너머에서 희망의 잔해를 어루만지는 듯한 시선도 보였다. 그건 철학자가 아니라, 외로운 시인으로써의 니체가 말하고 싶었던 숨겨진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철학자는 고뇌 속에서 질문하고, 시인은 고요한 숨결로 그 질문을 껴안는다고. 그리고 니체는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은 단지 시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읽고 따라 쓰면서부터 스스로 무언가를 쓰고 싶게 만들고, 조용히 마음을 열게 만드는 책이다.


새로운 니체의 시선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이나 철학자로서의 니체가 어렵다고 느낀 분들이라면 이 책으로 니체를 시작해 보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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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과 꿀
폴 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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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에서 피어난 서정

- 디아스포라, 그리고 잊히지 않는 울림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작품의 내용보다도 폴 윤이라는 작가의 이력 때문이었다.

'이주민 가정에서 성장한 체험을 바탕으로 정체성과 갈망, 시간과 역사 속에 놓인 인간이라는 문제를

독특하고 고요한 서정으로 그려낸다.'는 이 한 문장이 이상하리만큼 내 마음을 오래 붙잡았던 것 같다.


이주민이라는 말.

같은 뿌리를 가졌지만 다른 땅으로 밀려나서 자란 사람들.

나는 그들의 감수성이 궁금했고, 그들이 어떤 감정을 품고 살아가는지,

그 마음의 풍경이 나와 닮았을까? 아니면 아주 다를까? 하는 그 질문이

바로 이 책을 펼치게 만든 시작이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면서 문득,

나는 어째서 이주민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나와 다를 거라고 생각했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르고, 또 닮았는데, 그 다름을 궁금해하면서도

동시에 어쩐지 구분 지으려고 했던 그 마음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나는 '디아스포라'라는 단어의 정확한 뜻을 몰랐다.

낯선 단어였다. 찾아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특정 민족이나 집단이 원래 살던 곳을 떠나 세계 각지로 흩어져 살면서

자신들의 문화나 정체성을 유지하는 현상, 또는 그 흩어진 사람들"


그 자체가 이주민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들의 상황과 감정과 정체성,

그 모든 것을 이토록 단단히 담고 있는 단어가 있었다고

나는 책을 읽기 전에 먼저 단어 하나를 배웠고, 그 뜻을 마음속에 새긴 채

'벌집과 꿀' 속의 7편의 이야기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 이야기들은 모두 달랐다. 시간도, 공간도, 인물의 얼굴도 다르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담긴 것은

자신의 자리를 끊임없이 묻고, 붙잡고, 외면하고, 결국엔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자신의 위치를 알지 못해서 방황하는 사람, 정체성을 부정당해 조용히 무너지는 사람,

사랑을 안고 떠났지만 삶의 무게 앞에서 그 사랑마저 흔들리는 사람

그 하나하나의 삶이 어쩌면 나와는 전혀 닿지 않는 듯하면서도 이상하게 아리고 먹먹했다.



벌집과 꿀을 처음 만났을 땐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살아가는 나에게,

정말 익숙하지 않은 아무 멀고 먼 세계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문화, 역사, 고통은 냉정하게 말해서 나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뿌리에 대한 그리움과 살아남아야 한다는 마음은 어쩌면 닮아 있다.


떠밀려 떠난 자라에서도, 낯선 땅에서도, 사람들은 끝내 포기하지 않고 삶을 이어간다.

무언가를 잃었기 때문에 가 아니라, 무언가를 여전히 지키고 싶기 때문에...

그런 삶의 방식은 나에게 너무나 위대하게 느껴졌다.

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그리고 벌집과 꿀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너무나 아름답고 섬세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래서인지 점차 이 책 속의 이야기가 단순히 낯선 세계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삶을 이어가는 방식이나 사랑을 품는 방식, 고요히 절망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들이 생경한 동시에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졌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서도 내 마음을 가장 깊이 파고든 이야기는 '역참에서'였다.


주인공 ‘유미’는 조선인이지만, 일본에서 살아온 시간이 더 길다.

그에게 조선은 단지 출생지일 뿐, 살았던 곳도 사랑했던 곳도 아니었다.

그의 언어, 정서, 일상은 모두 일본에 있었고, 어쩌면 그 누구보다 일본인으로서 살아온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본 사회로부터 ‘진짜 일본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 다시 조선으로 입양을 보내지게 된다.


문제는, 정작 그 자신은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조선은 그에게 너무 낯설고, 이미 뿌리내렸던 땅은 그를 거부했다.

유미는 어디에서도 온전한 내가 될 수 없는, 완전히 고립된 나로 남는다.

그리고 그가 돌아갈 조선에서의 그를 향한 침묵과 눈빛이 어떨지 알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격투기 선수 추성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추성훈 선수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완전한 일본인으로 인정받기 어려웠다.

한국계라는 점 때문에 일본 내에서 일종의 차별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일본으로 귀화한 사실 때문에 비판과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마치 한국을 버리고 일본을 선택했다는 인식이 강했다는 것이다.


결국 일본에서 자신은 한국인이라고 생각했지만,

한국에서 살게 되면서 자신은 사실은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서

유미 또한 그런 상황에 마주할 거라고 생각했다. 일본에서는 외부인이었고, 조선에서는 일본에서 온 사람이었다.

그를 온전히 받아들일 곳은 어디에 있을까?


'역참에서'는 나에게 국적이나 출신이라는 것이 단순히 여권에 적힌 단어 이상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했다.

이건 '내가 누구인가'라는 가장 근본적이고 외로운 질문으로 이어진다.


벌집과 꿀이라는 책은 그 자체로도 깊고 조용한 물결 같은 작품이라서,

그 서정과 울림이 문장에서도 자연스럽게 스며나오는 것 같았다.

언어 하나하나가 서정적이고, 마음에 깊게 박혔다. 이 책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삶은 언제나 부서지고, 다시 이어지고, 결국엔 기억으로 남는다.

벌집과 꿀은 그러한 삶을 꿀처럼 천천히 흘러내리게 한다.

아팠지만 아름다웠던 시간을 한 방울씩 떠올리며, 나는 이 이야기를 오래도록 간직할 것 같다.


나는 그들 중 누구의 삶도 정확하게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지만,

결국 이 책 속의 이야기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걸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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