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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떠 있는 것 같아도 비상하고 있다네 : 니체 시 필사집 ㅣ 쓰는 기쁨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유영미 옮김 / 나무생각 / 2025년 6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한 줄의 시, 한 줌의 빛
니체의 시에서 발견한 조용한 위로와 철학 너머의 감정

니체라는 이름은 언제나 단단하게 다가온다. 권력 의지, 초인, 영원회귀.
그가 남긴 말들은 냉철하고 논리적인 철학의 언어로 우리의 삶을 통과해왔다.
그렇기에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는 이 ‘니체의 시’라는 말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그 니체가 시를 썼다고? 부드럽고, 아득한 말들이 가득한 그 시말인가?

그동안 철학자 중에서 니체를 좋아한다고 여러 번 말을 했지만 사실 니체의 시는 들은 적이 없었다.
‘니체의 시’라는 낯선 조합, 그리고 필사본이라는 형식이 꼭 이 책을 읽고 말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평소에 좋아했던 고전 철학자의 무게 있는 문장들이 고스란히 내 손끝에서 살아난다는 상상을 하니 기분이 좋았기도 하고...
표지부터 적혀 있는 '쓰는 행위' 자체가 독서의 완성을 넘어선다고 느꼈다.
최근에 내가 필사를 많이 하면서 느낀 것들도 있고, 이 책을 통해서 한 편의 시를 천천히 손으로 옮기며,
문장 하나하나의 호흡과 감정을 담고, 그렇게 니체의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언어가 손끝으로 전해지니,
필사가 독서와 동시대의 독백이 된다는 걸 온몸으로 실감했다.
그리고 니체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표지 제목처럼 ‘뜬 것 같지만 비상하고 있다’는 문장은 니체 철학의 핵심을 조용히 드러낸다.
자유로운 존재, 일시적이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존재.
읽고 쓸수록, 그 의미가 머릿속에서 맴돌며 나 스스로에게도 묘한 울림을 줬다.

니체는 흔히 무겁고 난해하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이 시집은 달랐다. 짧지만 뜨겁고, 냉철하지만 따뜻했고 당당했다.
철학자의 단단한 걸음걸이를 느끼는 동시에, 어쩐지 애잔하고 친숙함마저 느껴졌던 건
평소에 좋아하던 철학자의 말이기 이전에 직접 써보는 이 필사라는 접근 방식 덕분이겠지?

책은 정말 표지도 특별했고 마음에 쏙 들었지만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필사를 해야 하는 페이지가 줄이 아닌 페이지가 꽤 많았다는 거다 페이지 디자인들도 너무 예뻤고 구성도 좋았지만 그 감성보다는 필사에 집중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좀 걱정스러울 수 있는 페이지라고 봤다 나는 일단 그냥 쓰기는 했는데 줄이 없는 페이지에 글을 쓴다는 건 꽤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기 때문에.... 사실 나도 몇 번이나 펜을 다시 놨다 들었다를 반복했다 다른 페이지를 먼저 할까? 하다가 결국 적고야 말았지만!
나처럼 용기가 없는 사람이들이라면 조금 힘들게 느껴진다는 점이 아쉬워서 다음엔 줄이 있는 페이지가 많았으면 좋겠다
시를 읽고 읽으면서 느낀 건 니체는 시에서조차 삶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되, 마치 그 삶을 사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말한다. 그러면서도 철학에선 느낄 수 없었던 불안정한 삶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고, 절망 너머에서 희망의 잔해를 어루만지는 듯한 시선도 보였다. 그건 철학자가 아니라, 외로운 시인으로써의 니체가 말하고 싶었던 숨겨진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철학자는 고뇌 속에서 질문하고, 시인은 고요한 숨결로 그 질문을 껴안는다고. 그리고 니체는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은 단지 시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읽고 따라 쓰면서부터 스스로 무언가를 쓰고 싶게 만들고, 조용히 마음을 열게 만드는 책이다.
새로운 니체의 시선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이나 철학자로서의 니체가 어렵다고 느낀 분들이라면 이 책으로 니체를 시작해 보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