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밀항선 하나에 두 명의 사냥꾼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5년 6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클리셰를 통과해 도달한 한 편의 영화 같은 서사
지독하게 낯익은 이야기, 그런데 눈을 뗄 수 없다

처음엔 제목이 조금 낯설었다.
‘밀항선’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간감과 ‘사냥꾼’이라는 단어의 날카로움이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며 이 두 단어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곧 이 소설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좌천당한 경찰, 넘지 말아야 할 선, 그리고 배신.
사실만 이것만 놓고 보면 어쩌면 너무나도 익숙하고 뻔한 구조다.
수많은 누아르 영화나 하드보일드 소설에서 봐왔던 클리셰라고 해도 좋을 설정이기 때문이다.
아빠가 좋아하시는 한국식 액션 영화들도 생각났다.
'달콤한 인생'이나 '신세계', 요즘으로 따지면 '광장' 같은,
맨몸, 칼 하나, 총 하나만 들고도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장르들.
대사를 나누고, 감정은 숨긴 채 정해진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
하지만 이 소설은 영화보다도 더 말이 없고, 더 고요하다.
그 고요함이 오히려 읽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고, 더 집중하게 만든다.
물론 이 고요함이 진짜 고요하다는 건 아니고 자신의 마음을 숨긴다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익숙함과 고요함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는다.
어쩌면 뻔하게 보이는 서사의 틀 안에서도 자신만의 스타일, 자신만의 문장을 밀고 나가는 작가님의 힘이 느껴졌다. 남성적인 듯하면서도 절제되고 섬세한 문장, 그리고 촘촘하게 설계된 플롯이 이 이야기의 긴장감을 끝까지 놓지 않게 만들고, 결국 우리는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읽게 된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클리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클리셰의 매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정확히 어디서 힘을 줘야 하는지를 아는 방식으로 써내려갔기 때문에 클리셰 속에 새로움을 읽게 되는 것이다.


'누가 사냥꾼이고, 누가 사냥당하는가.'
이 질문은 이야기 내내 반복된다. 어쩌면 둘 다 사냥꾼일 수도 있고, 어쩌면 둘 다 누군가에게 사냥당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만들어낸 구조 속, 결국 그 누구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다 읽고 나서야 더 묵직하게 남는다. 이야기 속 결말보다도 그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사람들의 선택과 상처들이 자꾸만 마음에 남는다.
특히 좋았던 건 인물들이 ‘감정을 겉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이고, 표현보다 선택이 앞서는 인물들. 이 무뚝뚝한 방식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고,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우리는 다들 그렇게 감정을 눌러가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밀항선 하나에 두 명의 사냥꾼'은 액션의 껍질을 두르고 있지만, 실은 관계와 인간에 대한 소설이다.
살기 위한 본능 속에 숨어 있는 외로움과 상처, 그 복잡한 감정들을 작가는 거칠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냈다.
그래서 이 결말이 꽤 많이 씁쓸했다. 모든 사람들의 상황들이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만큼이나 와닿았으니까 말이다. 한 편의 느리고 차가운, 그러나 지독히 뜨거운 영화 같은 소설 그래서 그런지 읽고 나면 그 날카로운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