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 - 독송과 다라니 기도를 위한
상욱.현안 옮김 / 위앙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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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경전, 그러나 따뜻한 문장

- 읽으며 기도하고, 천천히 수행하고



나는 무교다.

하지만 종교적인 분위기 중에서 가장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을 고르라면, 나는 주저 없이 사찰을 말한다.

기독교와 천주교를 믿는 가족도 있고, 나 역시 성경을 가까이해보려 노력한 적도 있었지만, 나를 가장 안정시키는 건 사찰의 풍경이었다.

사찰 마당을 걷고, 부처님 불상 앞에서 조용히 인사하고, 나지막이 들려오는 목탁 소리에 마음을 비워보는 그 시간이 좋았다.


그러다 이번에 처음으로 접한 책이 바로 위앙북스에서 출간한 '독송과 다라니 기도를 위한 여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이다.

줄여서 '약사경'이라고 불리는 이 경전의 이름은 어렴풋이 들어본 적 있지만, 실은 어떤 내용인지도 잘 몰랐다.

금강경, 반야심경, 천수경 정도만 이름을 알고 있는 내겐 이번 독서가 일종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게다가 이 책은 단순히 읽는 경전이 아니라, 독송하고 기도하는 실천서처럼 구성되어 있어 마음을 비우고 시작하기에 좋았다.

무엇보다 약사경에 나오는 부처님이 '약사여래'라고 말 그대로 약사, 의료의 전반을 뜻하는 부처님이라 '치유 수행'이라는 말에 조금 더 관심이 생겼다.

몸과 마음이 쉽게 지치고 병들기 쉬운 요즘, 경전을 통해 조금이나마 나를 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책을 펼치자마자 느낀 건, 굉장히 정갈하고 품격 있는 책이라는 인상이었다.

양장본이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두께, 왼쪽에는 해설, 오른쪽에는 원문이라는 구성도 참 친절했다.

하나의 구절을 눈으로 읽고, 해석을 곱씹으며 다시 입으로 소리 내어 읽어보니 내용이 훨씬 잘 와닿았다.

불교 경전에 대한 깊은 이해는 없지만, 최소한 내가 지금 읽는 문장이 어떤 뜻을 품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더 충만해지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 책을 읽었다고 정확하게 기도하는 방법도 읽는 방법도 잘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배울 수 있는 건 많았다고 자부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을수록 문장의 울림이 깊어졌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의례적인 종교 관념의 기도문처럼 다가왔던 문장들이

두 번, 세 번 읽다 보면 점점 나에게 진정한 뜻에 대해서 말을 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중간중간 등장하는 다라니 구절들은 마치 내 안의 불안을 잠재우는 주문처럼 다가왔다.

나는 아직 수행자도, 독실한 불자도 아니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 이 책을 마주하고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행에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읽으면서 마음속에 가장 많이 떠올랐던 단어는 역시 치유였다.

여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은 단순히 병을 낫게 해달라는 바람이 담긴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마음의 병을 먼저 살피고, 나와 이웃, 세상에 빛과 평안을 기원하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그 메시지가 참 다정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 책은 신앙심보다 마음가짐을 먼저 챙겨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처음으로, 경전을 필사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성경 필사를 하듯, 나도 이 경전을 한 줄씩 적으며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건 단순한 글쓰기나 따라 쓰기 이상의 의미일 것이다.

마음속 어지러운 생각들을 잠시 내려놓고,  이 순간 내가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지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

필사는 어쩌면 그 묵묵한 수행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여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은 분명 경전이지만, 일상 속에서 조용히 자신을 돌보고 싶은 이들에게 좋은 안내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느꼈던 건 그저 마음이 조금 더 맑아졌다는 것과 조용히 나를 다독이는 시간이 생겼었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의 고요가 지금의 나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했다.


불교에 뜻이 있는 사람, 불교에 관심이 있거나 경전, 경문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해 보고 싶다.

많은 가르침,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진 못하지만 무언가 우리가 평소 생각하던 그 어려운 불교의 틀을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나 역시 불교의 가르침이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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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혜린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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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이야기, 낯선 문장

- 고고한 번역, 불친절한 아름다움


'데미안'은 더 이상 낯선 책이 아니다. 너무도 많은 이들이 이미 한 번쯤은 접해봤을 고전이고,

심지어 누군가에게는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이제는 덜 끌리는 책일지도 모른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은 몇 번이고 다시 찾는 명작 중의 명작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 익숙한 작품을, 전혀 다른 얼굴로 다시 만났다. 바로 전혜린님의 번역본을 통해서였다.


​이번에 읽은 데미안은 북하우스에서 출간된 전혜린님 타계 60주기 기념 복원본이다.

독일 유학파 여성 지식인이자, 국내 최초로 '데미안'의 독일어 원문을 완역한 인물!

전혜린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역자가 아니라, 번역문학의 첫 불꽃, 한국에서 헤세 열풍을 불러온 하나의 상징이라고 했다.

그녀의 존재는 단순한 언어 전달자가 아니라, 문장을 통해 세계를 다시 짜 맞추는 해석자이자 창작자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이미 데미안을 세 번이나 다른 번역본으로 접한 적이 있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전영애 역), 위즈덤하우스의 데미안(서유리 역), 더스토리의 데미안(이순학 역)까지.

그때까지는 단지 문체나 말투의 차이, 정도만을 느꼈을 뿐이었다.

하지만 전혜린님의 데미안은 지금까지의 데미안들과 완전히 달랐다.

매끄럽게 정제되지 않은 문장, 한없이 고요하면서도 날카로운 표현들.

그 안에는 단어 하나하나가 문장으로 살아 움직이는 느낌, 어딘가 낯설지만 동시에 묘하게 매혹적인 언어의 긴장감이 있었다.



그녀의 문장은 마치 싱클레어의 내면처럼 불안정하면서도, 진실했다. 마냥 유려하거나 감정선을 이끌어주려는 친절함은 없다.

하지만 그 속에는 읽는 이를 시험에 들게 만드는 사유의 흔들림, 그리고 그 불편함을 넘어서고자 하는 욕망이 숨어 있었다.

나는 페이지를 넘기며, 단순히 독자가 아니라 무언가를 절실히 이해하고 느끼려고 애쓰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은, 마치 데미안을 처음 만났을 때의 싱클레어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번에 더스토리 번역본도 함께 놓고 문장을 비교하며 읽었는데, 같은 문장이 이렇게까지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경이로웠다.

더스토리의 문장은 비교적 매끄럽고 안정적이며,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반면 전혜린님의 문장은 우리가 평소에 보던 책들의 문장보다 거칠고, 때로는 생략되고, 정제되지 않은 듯하지만,

그 속에 담긴 어떤 무게감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깊이를 품고 있었다.

그건 마치, 예전 지식인들이 써 내려간 고풍스럽고 고고한 문체, 지적이고 철학적인 기운이 배어 있는 문장처럼 보였다.



나는 그 문장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어 몇 번이고 다시 읽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 자신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문장을 해석하려는 나의 움직임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받아내는 어떤 과정처럼 느껴졌다.

물론 다른 역자분들의 글과 내용 면에서 해석 면에서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분명히 다른 느낌이 있었다. 확실히 달랐다.


이전에는 고전문학을 읽을 때 역자의 이름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책이 좋다면 그만이고, 내용이 인상 깊다면 어느 정도 번역에 불편함이 있어도 괜찮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번 경험은 달랐다. 데미안이라는 하나의 고전이, 역자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몸으로 느꼈다.

이제 나는 책을 펼치기 전, 가장 먼저 역자의 이름을 확인하게 될 것 같다. 그 이름이 어떤 문장을, 어떤 감정을, 어떤 여정을 데려올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좋은 번역은 단지 문장을 해석하고 옮기는 것만이 아니라, 그 시대와 정서, 사고방식까지 함께 데려오는 통로라는 것을 이제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혜린님의 데미안은 내게 그것을 처음으로 가르쳐 준 책이 되었다.


​데미안은 여전히 같은 이야기다.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혜린님의 문장으로 만났을 때, 나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성장했다.

이 책은 내게 또 한 번의 방황과 또 한 번의 자각을 선물했다. 그건 아마도, 좋은 번역만이 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내게, 문학을 다르게 읽는 눈과, 한 문장을 오래 들여다보는 인내를 선물했다.

이 모든 것은, 책장이 아닌 문장 사이에서 일어난 성장이었다.


새로운 데미안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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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
서윤빈 지음 / 열림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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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은 폭발이 아닌 스며듦으로 온다

- 기후 위기, 우리 안에 이미 시작된 이야기



우리는 지금 어떤 세계에 살고 있을까? 지구는 끊임없이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고, 그 신호는 이제 일상 속 깊숙이 들어왔다.

폭우와 가뭄, 산불과 미세먼지, 바다와 육지에서 죽어가는 생물들.

먼 미래에나 찾아올 줄 알았던 종말의 징후들이 현실이 되었다.


​서윤빈 작가님의 연작 소설집 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는 이 지금 우리 곁에 조용히 스며든 재난의 감각들을 문학적으로 포착해낸 작품이다.

클라이 파이(Cli-fi, 기후 소설)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지만, 단지 환경 문제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작가님은 그 재난의 한가운데에 있는 인간의 감정과 관계의 온도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기후재난을 소재로 한 소설은 많아지고 있지만, 이토록 기묘하고 조용한 방식으로 종말을 이야기하는 작품은 드물다. 

기후 재난을 다룬 소설이 이토록 흥미롭고 독특할 수 있다는걸, 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를 읽으며 처음 알았다.


최근 들어 기후변화와 재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른바 클라이 파이(Cli-fi), 즉 기후 SF 소설들이 각광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도 최근엔 무의식적으로 그런 주제를 다룬 책들에 손이 자주 가곤 했다.


총 일곱 편으로 구성된 이 소설집은 각각의 단편이 독립적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인물들의 정서와 세계관은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연작소설이 가진 장점인 단편의 날카로움과 장편의 밀도를 동시에 품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느새 하나의 거대한 재난의 시간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흔들림과 사투를 목격하게 된다.

이들은 각기 다른 얼굴로 동일한 세계의 균열을 보여주고 있다.

종말을 겪는 여러 시선, 다양한 방식, 반복되는 현실의 균열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단연 첫 번째 이야기, '게'였다.

배달 라이더인 주인공은 궂은 날씨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어딘가 믿음직하지 않은 연인, 아픈 어머니, 고장 나버린 도시. 그 모든 상황이 주인공의 삶을 짓누른다.

마지막에 가서 배달을 받은 사람의 정체나 마지막 순간의 설명을 보았을 때 떠오르는 모든 것들이 애매하기도 했지만 그 때문에 잊히지가 않았다.

이게 재난 소설이 맞나 싶으면서도 아니라고 하지도 못하겠고 아무튼 그랬다.


그리고 이 단편에서 특히 반가웠던 이름이 나오는데 바로 '후무후무누쿠누쿠아푸아아'다.

하와이의 상징적인 물고기인데, 워낙 특이한 이름 때문에 언젠가 무심코 듣고는 기억하고 있었다.

이 물고기의 이름이 소설 속에 등장했을 때는 반가움과 동시에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 생물의 낯선 이름은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안에 담긴 허무와 무기력은 결코 의미가 없거나 가볍지 않다.

지극히 현실적인 배달원의 삶 속에 문득 스쳐 지나가는 그 이름이나 금액은, 회색빛 도시의 풍경처럼 이질적이고 쓸쓸하다.

어쩌면 작가님은 물고기의 이름과 가격에서 현실의 무게가 얼마나 기묘하게 덧입혀질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게'뿐 아니라 다른 이야기들에서도 기후 재난으로 인해 달라진 사람들의 일상,

그 속에서 깨어지는 감정과 이어지려는 손길을 묘사한다.

두 번째 이야기였던 '농담이 죽음이 아니듯 우리는 땀 대신 눈물을 흘리는데'의 경우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슬픈 감정에 떠밀려서 이게 기후 재난을 가지고 쓴 소설인지,

누군가의 감정을 떠미는 소설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소설의 배경은 참혹할 정도의 기후 위기 속이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단지 기후 소설이 아니라, 기후 속의 인간을 다룬 소설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읽는 내내 쉽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여러 번 반복해 읽고 곱씹을수록 보이는 결이 있었다.

몇몇 문장은 되돌아가 다시 읽기도 했다.

연작소설이 가진 단편과 장편의 중간지점, 그 흐릿한 형식이 이 책과 유난히 잘 어울린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종말이라는 건 대단한 폭발이나 붕괴가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느린 파국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걸 보고도 웃고,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커피를 마시고, 누군가는 모르고 지나친다.

그 느슨한 인식이 오히려 가장 무서운 것이 아닐까.


​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는 SF 소설이지만, 너무 멀리 있는 세계를 상상하게 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 이 시대, 이 사회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문득문득 자각하게 만든다.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유쾌하고 위트 있다.

그러나 그 유쾌함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시대에 우리가 읽어야 할 소설은, 어쩌면 이런 소설이 아닐까.


단편소설의 속도감, 장편소설의 서사적 깊이,

그리고 연작이라는 낯선 매체가 만나 한 편의 클라이 파이 SF 소설집이 종말의 방식을 제시한다.

소리 없는 침몰처럼, 차오르는 파국처럼. 지금, 종말은 여전히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지금 이 더운 여름, 집 안에서 에어컨을 틀지 않고 잠시 망설이며 앉아 있던 시간조차 갑자기 낯설어졌다.

우리는 지금 어떤 선택 속에 살고 있는 걸까. 언제부터 이렇게 무감각해졌을까?


​나는 이 책을 통해 기후 소설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서윤빈이라는 작가도 이번에 처음 만났지만, 다음 작품이 벌써 기다려진다.

이 묘하고도 서늘한 감각을 가진 작가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또 다른 종말을 이야기해 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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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섬 기약없는 이별
진현석 지음 / 반석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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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나는 울었다.
- 그 섬의 이름은 다카시마였다.



외딴섬 기약 없는 이별은 참담하다.
그리고 조용히 무너진다. 한 장, 또 한 장 넘길수록 마음에 거센 파도가 밀려왔다. 너무도 선명한 고통.
이 책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기억의 현재형이다.

진현석 작가님의 이 소설은 일제 강점 시기, 조선인 청년들이 강제 징용되어 끌려간 일본 나가사키 근해의 작은 섬 '다카시마'를 배경으로 한다. 많은 사람이 '군함도'라고 알려진 하시마섬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알고 있다. 지금에서는 관광지로 소비되어서 검색만 해도 쏟아지는 사진 속 모습도 익숙하다. 그러나 이 책이 조명하는 다카시마는 군함도보다 더 잊혀진 장소였다. 말 그대로, 죽어야만 나올 수 있었던 그 '외딴섬'의 이야기


소설은 한 어린 소년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기영은 일본으로 떠난 형을 찾아 가족 몰래 오사카로 향하며, 자신도 모르게 이 거대한 비극에 휘말린다. 그리고 그 이후는, 누가 주인공인지도 모를 정도로 수많은 얼굴들이 차례로 등장했고, 다카시마에 갇힌 이들의 고통스러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모두 실존했던 이들이다. 이 소설은 그냥 단지 이야기라기보다, 누군가들의 기록이다.
논픽션 소설이라는 말이 이 책의 무게를 말할 수 없이 더 깊게 만들고 마음 아프게 만들었다.

읽으면서 나는 수없이 울었다. 감정적으로 무너졌고, 또 무력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어떻게 이들의 이야기가 이토록 조용히 지워질 수 있었을까?"
수많은 질문들이 끝없이 머릿속을 울렸다.우리는 왜 항상 이런 역사를 뒤늦게야 알게 되는 걸까?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진실들이 아직도 얼마나 많이 어둠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일까? 너무 끔찍했다.



강제 노역, 굶주림, 구타, 실종, 죽음.
수많은 이야기들이 내 속으로 들어와서 정말 어지럽고 참담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아팠던 건, 살아남은 사람들이 안고 갈 죄책감과 자책과 고통이었다.



작가님이 직접 일본을 여러 계절에 걸쳐 방문하고, 생존자들과 유족을 만나 나눈 인터뷰는

이야기의 틀을 넘어서 기억의 조각으로 남는다.

다카시마의 탄광에서, 한 명씩 죽어 나가는 동료를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이들.

도망치다 붙잡혀 목숨을 잃은 사람.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이들.

가장 고통스러운 건, 누가 죽었는지조차 모른 채 그 자리를 비워둬야 했던 기억이었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왜 우리는 이 역사를 모르고 있었을까? 왜 이토록 쉽게 잊었을까?
왜 지금도 군함도와 그 근처 섬들이 관광지로만 소비되고 있을까?
화려하게 포장된 사진 아래, 그날의 고통이 묻혀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는 걸까?

책을 읽으면서 가장 무서웠던 건, 이 모든 고통이 시간이 지나며 "무관심"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되고 있다는 현실이었다.
슬프고, 무서웠고, 고통스러웠다. 읽고 난 지금도 여전히 마음이 울컥거린다.

외딴섬 기약 없는 이별은 단순하게 그때 그 사람들이 당한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알려주려는 책이 아니다.
그 고통이 어떻게 지워졌는지를, 우리가 어떻게 또다시 잊고 있는지를 묻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역사 속 이름 없이 사라져 간 사람들에게 이 책은 늦은 위로이자, 작은 애도의 꽃 한 송이 같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읽고 기억해야 할 기억의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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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고전이 좋았을까 - 오래된 문장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
신은하 지음 / 더케이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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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

- 고전이 스며든 소소한 일상 이야기



최근에 다시 고전 문학에 꽂혀서 읽게 되었는데 우연하게도 주변에서도 고전 열풍이 부는 모양이다.

고전에 관련된 다양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어서 관련된 책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흐름 속에 나도 자연스럽게 편승해서 조금 더 고전에 대한 공부를 해보기로 했고, 이 책도 그런 흐름 속에서 만나게 되었다.



책을 펼치고 18페이지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바로 '케렌시아'라는 스페인어로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하는 단어 때문이었는데,

작가님이 케렌시아에 대해서 말하면서 쓰인 문장 중에 하나가 내 마음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그 케렌시아가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동네 카페일 수도 있고,

무인 책방이나 뒷산 산책로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주차장에 차를 세운 채, 차 안에서 한참을 머물다 나온다고도 한다.

바로 이 문장인데, 나도 몇 년 전 답답하고 고단했던 시기가 있었다.

어떤 위로도 와닿지 않고, 누구와 있어도 마음이 쉬지 못하던 날들. 그 시기 내 유일한 안식처는, 사람 하나 없는 조용한 주차장의 차 안이었다. 일부러 차를 끌고 나가 한적한 곳에 세워두고, 음악도 끄고, 핸드폰도 멀리한 채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무 말도, 아무 소리도 없이. 숨을 내쉴 때마다 마음이 가라앉는 그 고요함이, 유일하게 나를 편안하게 해줬다. 그래서였을까. 작가님이 말한 ‘차 안의 케렌시아’에 유난히도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왜 고전이 좋았을까'는 단순히 고전 문학을 분석하거나 해석하는 책이 아니었다.

고전을 좋아하게 된 작가님의 삶과, 그 고전들이 스며든 일상의 기록이었다.

처음엔 고전에 대한 소개하는 게 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책장을 넘겼지만, 페이지가 더해질수록 누군가의 다정한 일기장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릴 적 방과 후에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던 기억, 책 속 문장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던 순간, 그리고 어느 날의 마음을 붙잡아준 이야기들.

나 역시 그런 시간을 겪어왔기에, 이 책 속 일상과 고전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마음에 들어왔다.



책 속의 고전은 단지 위대한 책이 아니다. 누군가의 삶과 함께한 책들이다.

작가님은 문학을 학문처럼 대하지 않고, 마치 친구처럼 곁에 두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가 더 와닿았다.

고전이 좋았다는 고백은 결국 내 삶이, 나의 감정이, 나의 시간들이 그 책과 함께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고전, 자신만의 옛이야기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고전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해외의 작품을 먼저 떠올린다.

이 책 속에 나오는 변신, 호밀밭의 파수꾼, 인간실격, 고리오 영감, 안나 카레니나, 어린 왕자, 세일즈맨의 죽음, 스토너, 야간비행, 이방인, 파리대왕, 모비딕, 달과 6펜스, 월든, 노인과 바다 같은 서양의 고전 문학들은 굉장히 유명하고 깊이 있는 작품들이지만, 이렇게 고전 문학의 기준이 해외에만 머무는 듯한 분위기는 조금 아쉬울 때도 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이 책에서 박경리 작가님의 '토지'가 언급된 것이 유독 반가웠다.

토지는 비교적 근래에 쓰인 작품처럼 느껴지지만, 1969년부터 26년 동안 집필되었고,

시대의 궤적을 고스란히 담은 대하소설이라는 점에서 현대 고전이라 부르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책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국내에도 충분히 ‘고전’이라 부를 수 있는 훌륭한 현대 문학들이 많다.

조세희 작가님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황석영 작가님의 삼포 가는 길, 채만식 작가님의 태평천하, 최인훈 작가님의 광장, 오정희 작가님의 장마, 이문구 작가님의 관촌수필 등은 각각의 시대를 꿰뚫고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이다.


고전이란 결국, 오래도록 살아남는 문장과 감정이 있고,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고, 삶을 조금이라도 바꾸는 책이 아닐까 싶은데. 그런 의미에서 꼭 해외의 고전에만 집중할 필요 없이, 우리의 언어로 쓰인 한국의 현대 고전 문학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현대 사회는 점점 더 책과 멀어지고 있다. 빠르게 소비되는 컨텐츠, 점점 짧아지는 글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책을 읽는다는 건 어쩌면 사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책은 여전히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고, 방향을 바꾸고, 마음을 위로해 주는 존재라고 말이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책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고전이 아니더라도, 어떤 책이든 그 사람에게 의미가 있다면, 그 책은 충분히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말이다. 작가님 역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주는 고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이었지만, 굳이 고전이라고 특정하지 않더라도, 한 권의 책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고...


그래서 더욱 아쉽다. 지금의 독서 환경이, 더 많은 사람이 그런 경험을 누리기에는 너무 척박하다는 게 말이다.

우리는 너무 바쁘고, 너무 지쳐 있다. 책 한 권을 제대로 읽기엔 마음에 여유가 부족하다.

그럴수록 이런 책이 더 소중하다. 고전을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책이란 무엇인가, 왜 읽는가를 되묻는 이 책이 말이다.

그리고 나는 텍스트힙이라고 불리는 지금의 현상도 꽤 마음에 든다.

보여주기식 독서라도 누군가의 삶에, 시간에, 책이 함께 할 수 있는 순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모든 건 시작이 중요하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한 번 더 지금의 '케렌시아'를 떠올렸다.

한때는 차 안이었던 나의 케렌시아가 지금은 조용한 방 안으로 옮겨졌다.

책으로 둘러싸인 나만의 공간. 어릴 적엔 몰랐던, 지금은 너무도 소중한 이 고요한 시간.

책장을 넘기며 마음을 들여다보고, 과거의 나와 대화를 나누는 이런 시간이 결국 나를 살게 하는 게 아닐까?


이 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말할 것도 없이 따뜻한 선물과 같은 책이다.

그리고 아직 책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고전이나 책에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다정한 손길이다. 누군가의 삶에 책이 어떻게 녹아드는지를 보여주는 너무나 따뜻한 책, 우리 모두 이 책 속의 일상처럼 조금 더 다정해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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