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투안 그리즈만 선수 시리즈 23
선수 에디터스.한준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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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나만의 레전드'가 있다.

나에게 있어서 그런 선수는 해외에도 1년 동안 잠깐 다녀오긴 했지만

늘 국내 리그, 그것도 13시즌 동안 우리 팀에서만 뛰었고, 원클럽맨으로 은퇴를 했다.

지금의 내 팀을 응원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 축구, 즉 K리그는 수준이 떨어지고 재미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매력을 잘 안다.

경기장에서 직접 느끼는 긴장감, 선수들의 땀과 의지,

팬들과 함께 만드는 분위기는 어떤 화려한 해외 리그보다도 가슴을 뛰게 한다.

그리고 응원을 하면 할 수록 내 팀 선수들에 대한 애정은 더 깊어진다.


​그렇다고 해외 축구를 보지 않는 건 아니다. 나는 첼시를 좋아했고, 존 테리와 프랭크 램파드를 무척 좋아했다.

그들은 은퇴한 지금도 여전히 '레전드'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선수들이다.

그리고 해외 축구 선수 중에서도 내 시선을 사로잡았던 몇몇 인물이 있다.

그 중의 한 명이 바로 라리가의 간판이자 프랑스의 어린왕자라 불리는 '앙투안 그리즈만'이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라는 점도 그렇지만, 그가 데뷔하던 시기는

마침 내가 국내 축구뿐 아니라 해외 리그에도 한참 보면서 관심을 넓히던 때였다.

라리가 리그는 잘 몰랐지만, 예전에 이천수선수가 뛰었던 팀 소속 선수라는 이유로 그의 이름을 외워두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단순한 한 명의 선수가 아닌,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지킨 진정한 스타로 성장했다.

아니 단지 자리를 잡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육각형 축구 천재'라는 찬사까지 들으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얼굴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노력과 재능을 동시에 증명한 셈이다.


그래서 이번에 앙투안 그리즈만에 대한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에 오 꼭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사실 '선수選手' 시리즈라는 시리즈 자체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한 명의 선수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 스타일리시하게 표현해 '보는 책'을 넘어 '소장하고 싶은 책'을 목표로 한다는 점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선수들의 단순한 전기나 이력서식 글만 가득한 일반적인 책이 아니라,

팬들이 진심으로 '가지고 싶은 책'을 만들겠다는 출판사의 의지가 느껴졌다.



책 속에는 그리즈만의 커리어, 플레이 스타일, 그리고 그의 인간적인 면모까지 세세하게 담겨 있다.

단순히 경기 기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지금의 위치에 올랐는지,

경기장 안팎에서 어떤 매력을 보여주는지 꼼꼼히 다룬다.

물론 그의 열렬한 팬이라면 알고 있는 내용도 있겠지만, 이렇게 한 권으로 정리된 이야기를 읽으면 느낌이 새로울 것이다.

나 역시 마치 그의 커리어를 함께 걸어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이런 방식으로 한 권의 책이 되는 경험은, 팬으로서 특별한 감동을 받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시리즈가 23권이나 나왔음에도 아직 국내 선수에 대한 책이 한 권도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도 충분히 세계 무대에서 빛난 선수들도 있고, 국내에서만 뛰었어도 훌륭한 커리어를 가진 선수들이 많은데,

이런 기획물에는 여전히 해외 선수 위주로만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해외 스타를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점은 좋지만, 국내 선수들을 응원하는 팬으로서는,

꼭 우리 선수들의 이야기도 이 멋진 형식으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국내 스포츠 경기의 주인공들도 해외 선수들처럼 기록될 가치가 충분하다.


​'선수 에디터스' 시리즈는 스포츠 팬이라면 한 번쯤 꼭 소장해보고 싶은 퀄리티를 갖췄다.

앙투안 그리즈만을 좋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평소 잘 알지 못했던 해외 선수의 매력을 발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나 역시 앞으로 더 다양한 종목과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

특히 국내 선수들을 다룬 책이 나온다면 망설임 없이 사서 책장에 꽂아둘 것 같다.

이번 앙투안 그리즈만 편을 통해 선수에 대한 많은 정보와

좋은 시리즈에 대한 정보를 동시에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축구팬 나아가서 스포츠팬으로서 무척 기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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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프로듀서 퇴사하겠습니다
오조 지음 / 팩토리나인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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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히어로가 슈퍼스타처럼 사람들의 사랑과 응원을 한몸에 받는 세상.

이능력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이 타고나는 말 그대로 기본 옵션이 된 시대다.

거리를 지키는 히어로의 이름은 매일 뉴스에 오르고, 신인 히어로의 데뷔는 대형 콘서트처럼 화려하게 치러진다.

그러나 그 무대 뒤에는 스포트라이트 없이 묵묵히 시스템을 굴리는 사람들이 있다.

오조 작가님의 소설 '히어로 프로듀서 퇴사하겠습니다'는 바로 그 찬란한 무대 밖에서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조영은 샤이닝 컴퍼니 지하 사무실에서 10년째 '조 대리'라는 이름으로 일하고 있다.

서른한 살이 된 새해, 마침내 퇴사를 결심한 순간, 회사는 신인 히어로 '써리원'의 데뷔 프로젝트를 맡긴다.

정들지 않은 자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편안하지도 않은 직장에서의 마지막 미션. 그녀의 새해 계획은 이렇게 마지막 프로젝트라는 예외 조항과 함께 연장된다.


이 책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그만둬야 하는 순간이 온다', '누구에게나 붙잡아야 하는 것이 있다', '누구에게나 함께여야 하는 시기가 온다'라는 세 개의 부제로 나뉜다.

이 소설이 신선한 이유는 분명하다. 히어로물이지만, 주인공은 히어로가 아니다. 이능력은커녕 아무런 초능력도 없는, 말 그대로 무능력자인 조영이 중심에 선다.



대부분의 히어로물에서 무능력자는 조연이거나 관객 역할에 머무르지만, 여기서는 전면에 나서 이야기를 이끈다.

화려한 전투 장면보다 중요한 건 '써리원'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 무대 위로 올릴 것인가다.

이 과정에서 히어로 프로듀서라는 직업이 마치 연예 기획사의 매니저나 신인 육성팀을 떠올리게 한다.

스타를 만드는 과정, 이미지 관리, 데뷔 준비, 사건 수습까지, 다만 그 대상이 가수가 아니라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라는 점만 다르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이 세계관의 히어로 분배 시스템이다. 이능력이 넘쳐나는 시대, 한 사람이 모든 걸 감당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능력과 성향, 수요에 맞춰 파이를 잘게 쪼개 여러 히어로에게 역할을 나눈다.

이 설정 덕분에 소설 속 히어로들은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인간적인 결점과 한계를 지닌 존재로 다가온다.

마치 실제 연예계나 스포츠계의 생태계를 보는 듯한 현실감도 있다.


​조영이라는 캐릭터도 매우 현실적이다. 퇴사를 결심하고도 마지막 제안을 덥석 수락하는 모습에서 답답함과 동시에 깊은 공감이 든다.

10년을 바친 직장을 단숨에 떠나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그곳엔 처음 품었던 열정과 꿈이 남아 있고, 완전히 끝내기 전 한 번쯤 마무리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나라도 저 상황이면 비슷하게 선택했을 것 같네라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제목이나 초반의 이야기만 봐서는 단순히 히어로 세계의 이야기 같지만, 결국 이 책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보편적인 순간을 담고 있다.

화려한 전투보다, 무대 위의 영웅보다, 그 옆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맞닥뜨리는 모습과 진실과 현실들의 무게가 더 오래 남는다.


책 속의 문장 P.15-16 💬 


'나는 잘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보통 사람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인생이 편합니다.'

정말 그런가?

정말, 그런가.

남들 그러듯이 천천히 편해지지가 않았다. 서른이 넘도록 욱신거리고, 허무하고, 또 아프기만 했다.


책 속의 문장 P.16 💬 


마음속 깊은 곳에서 조영은 그런 걸 원하지 않았다. 오로지 주제 파악이라는 무능력자의 덕목이 조영의 사지를 동여매고 있을 뿐이었다.

조영은 독수리에게 심장을 쪼이는 프로메테우스처럼 주기적으로 시큰거림을 느꼈다.

잊을만하면 심장 가까운 곳에서 회전하는 별 모양의 돌. 그 돌의 이름은 꿈이었다, 아마도.


​책 속의 문장 P.120-121 💬 


'누구든 웬만하면 가질 수 있는 이능력이든, 그걸 못 가져서 발버둥 쳐 얻는 후천적인 능력이든.

다시 태어나면 둘 중에 하나만 주지 말고 둘 다 줘라. 조물주씩이나 되면서 쩨쩨하고 난리야.'



이 책에 인상 깊었던 문장들은 대부분 조영이 속으로 남기거나 생각한 이야기들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모두가 능력을 갖춘 세상에서 홀로 무능력자로 살아야 하는 억울함, 그리고 그것을 속으로 삼키는 서글픔이 절절히 전해졌다.

생일날 '나는 잘난 것이 없는 보통 사람'이라는 말로 주제 파악을 해야 하는 그 순간 얼마나 아팠을지는 상상도 되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괜찮은 건 아니다. 시간이 오래 지났다고 해도 그 멍이 쉽게 지워지지는 않는다.


'히어로 프로듀서 퇴사하겠습니다'는 히어로물의 틀을 빌려왔지만, 그 속에 담긴 건 히어로가 아니라 보통 사람의 이야기다.

무대 위의 영웅이 아니라, 무대 밖에서 그들을 지탱하는 사람들의 가치와 의미를 묻는다.

조영은 세상을 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영이 있었기에 한 명의 히어로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어쩌면 '히어로'라는 단어의 정의가 조금 바뀌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초능력보다 중요한 게 무엇인지, 그리고 이름 없이 빛을 만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운다.


히어로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특색이 있는 책이라서 추천하고 싶다.

아니면 한국적인 히어로물의 세계관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에게도 한 번쯤 추천하고 싶은 재미있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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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사랑이 없다면, 그 무엇이 의미 있으랴 - 에리히 프롬편 세계철학전집 4
에리히 프롬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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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말하는 ‘사랑’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보통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장면이 함께 그려진다.

철학이라는 단어랑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그 생각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요즘 사회에서는 너무 가볍게 쓰이고, 때로는 많이 왜곡된 감정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연애, 집착, 폭력까지 이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진짜 사랑이란 무엇인지,

누군가와 건강하게 마음을 나누며 사는 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번 책은 모티브에서 출간된 세계철학전집의 4번째 권인데

이전에 정약용의 '큰 뜻을 품은 자여, 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를 읽으면서

좋은 가르침과 기억이 생겼기 때문에 이번에도 에리히 프롬편을 읽게 되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단순히 감정이나 로맨스의 영역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는 사랑을 능력이라고 말한다.

즉, 타인을 사랑하기 전에 나 자신을 존중하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하고,

사랑은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훈련과 노력, 의지가 필요한 행위라는 것이다.

이 말은 단순해 보이지만, 현실 속 인간관계와 연애에서 얼마나 자주 잊히는 원칙인지 모른다.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 책이 사랑을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우리는 종종 사랑 한다고 말하면서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집착하고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고,

그 과정에서 상대의 자유를 빼앗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자신에겐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프롬은 단호하게 말한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소유욕과 불안이 만들어낸 가짜 사랑이라고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데이트 폭력, 스토킹, 지나친 집착을 떠올리면, 그의 말은 결코 추상적인 철학이 아니다.

좋아한다면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상대방도 같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향을 찾아야지 단순히 나만 원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이될 수는 없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좀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런 행동을 할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변화를 가질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사랑을 건강하게 하고 싶고, 자신과 타인을 동시에 존중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그동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렀던 여러 실수들을 떠올렸다.

상대방을 위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내 불안을 달래기 위해 한 행동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던 말들

상대의 집착에도 억지에도 그저 나혼자서 참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억지도 참았던 것들

그 모든 감정들과 행동들이 진짜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고 서로 재밌으면 그냥 누구 한 명이라도 좋으면 그게 괜찮은 사랑인 줄 알았다.

가짜 사랑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프롬은 사랑을 네 가지 요소를 '배려, 책임, 존경, 이해'라고 설명한다.

이 네 가지가 동시에 존재할 때 비로소 성숙한 사랑이 가능하다고 한다.

여기에서 단 한 가지라도 빠지면, 사랑은 쉽게 변질된다고 한다.

나는 이 네 가지를 머릿속에 그려놓고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지금까지의 내 사랑에서 제대로 이루어졌던 건 없었다. 참 큰 실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위에서도 그렇게 말렸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관계에서 누구를 만나게 될지는 모르지만 계속 점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책 속 문장 중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제목처럼 단호하면서도 묵직한 그 질문이다. 

'삶에 사랑이 없다면, 그 무엇이 의미 있을까?'

이것은 단순히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하거나 연애를 하라는 권장의 말이 아니다.

나의 하루, 나의 관계, 나의 일에 사랑이 없다면 즉, 애정과 열정

그리고 타인에 대한 진심이 없다면 과연 그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책을 덮고 나서, 사랑이란 단어가 훨씬 무겁게 다가왔다.

예전에는 열렬하게 좋아하는 마음 정도로만 생각했지만,

이제는 사랑이란 나와 타인을 함께 성장시키는 행위라는 것을 조금은 더 알 것 같다.

이 책은 사랑을 감정에서 능력으로 끌어올리고, 그 능력을 어떻게 단련해야 하는지 조용히, 그러나 명확하게 알려준다.


나는 이제 사랑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말이 무게를 가질 수 있도록 나 자신부터 단단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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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떨어진 동산에서 호미와 괭이를 들자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 남은 보통 사람들의 독립운동
이동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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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용사들의 흔적을 따라가며



책을 읽기 전부터, 나는 '독립운동'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를 먼저 느꼈다.

얼핏 생각하면 교과서 속 사건과 몇 개의 이름으로만 남아 있는 이야기들,

역사 속 먼 나라의 일이자 먼 시간 속의 단어라고 생각되지만,

언제나 우리 생활 가까이 있고, 묵직한 울림을 주는 단어니까 말이다.


​사실 우리 가족에게도 독립운동의 역사가 전해진다.

우리 증조할아버지, 즉 아빠의 할아버지이신 그분은 시골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다.

주도적으로 운동을 이끌지는 않으셨지만, 주도자들을 도우며 가족과 마을 사람들을 이끌었던 분이다.

결국 주도하신 분과 다른 몇 분과 함께 투옥되어 옥살이를 하셨다. 그 위험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다행히 무사히 풀려나셨지만, 그 긴박했던 순간과 두려움은 단 몇 줄의 기록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로써 인정받은 것은 내가 20살 때로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조국을 위해서 독립을 외쳤지만, 그 당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사실 큰 공로가 없는 이상 인정받기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뒤늦게나마 인정을 받았다는 것,

조국을 위해서 목소리를 높였었다는 걸 알아주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할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때의 증조할아버지와 같은,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학생, 교사, 청년, 노동자, 여성 등 다양한 신분과 나이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주목받지 못했지만, 일제강점기라는 거대한 억압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저항했다.

어린 학생들이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였고, 여학생들은 금지된 행동에도 용기를 냈으며, 노동자들은 조용히 투쟁을 이어갔다.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 기록을 넘어, 살아 숨 쉬는 인간의 용기와 결단을 보여준다.

이제는 그들을 이름 없는 용사라고 부르지 않아도 된다. 책 속에서 그들의 흔적은 우리에게 살아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편은 서글펐다. 기록조차 남지 못한 더 많은 보통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어린 학생 운동가들, 불타오르던 청년들,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여성들까지.

자신의 위치에 목소리를 냈을 그분들의 희생과 용기를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과 감사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들이 겪은 위험과 고통은 상상하기조차 어렵지만, 책을 통해 우리는 조금이라도 그 흔적을 마주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책은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지 않는다. 각 인물들의 이야기, 상황과 선택,

그리고 행동에 담긴 용기와 결단을 조용하지만 강하게 보여준다.

제목처럼, '꽃이 떨어진 동산'에서 호미와 괭이를 든 사람들처럼,

어둡고 흔적 없는 현실 속에서도 스스로의 역할을 감당했던 사람들이다.

그분들이 뿌린 피와 눈물의 씨앗 덕분에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책은 잊지 않게 해준다.


읽는 내내 나는 생각했다. 이 책을 아이들에게, 어른들에게, 모두가 꼭 읽었으면 좋겠다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우리는 지금 불평하거나 불만을 말하기 전에, 이런 땅을 지키기 위해 쓰러져간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분들의 얼굴을, 행동을, 정신을 기억하며, 우리가 그 후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을 덮고 나서, 나는 마음 깊이 감사함과 책임감을 느꼈다.

증조할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분과 함께한 무수한 이름 없는 용사들의 이야기를 마주했다.

그분들의 선택과 용기, 그리고 헌신 덕분에 우리는 지금의 삶을 누리고 있다.

우리는 그 희생을 잊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면서도 감사함을 기억해야 한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다. 이름 없는 사람들을 기억하게 하고, 그들의 용기와 정신을 마음속에 새기게 만드는 책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라고. 그러나 이 책은 조용히 말한다.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보여준 것처럼, 작은 행동 하나도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고.

그분들 덕분에 우리는 지금도 이 동산에서 꽃을 피울 수 있었다.


8월 14일은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라고 한다. 그리고 8월 15일은 바로 광복절이다.

역사를 위해 목소리를 낸 위대한 그분들과 우리 땅을 지키 위해서 목소리를 울리며 쓰러진 모든 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그들이 보지 못했던 독립된 나라의 모습을 우리의 눈에라도 가득 담아서

나중에 나중에 어디선가 만나게 된다면 이런 일이 있었고, 우리는 세계적으로 뻗어나고 있었다며 알려드리고 싶다.


그렇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 감사함과 책임감을 마음 깊이 새겼다.

우리의 삶과 권리가 그들의 희생 위에 서 있음을 잊지 않으면서, 앞으로도 기억하고 행동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름 없는 수많은 용사들에게, 그리고 우리 증조할아버지에게, 마음속 깊이 경의를 표하며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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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우주 고양이
이준희 지음 / 폴앤니나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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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단편 속, 발견한 온기



처음 이 책 제목을 봤을 때, 솔직히 말해 고양이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뭔가 미스터리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생명이 여기저기 다른 우주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지 않나?

그런데 막상 책장을 열어보니, 고양이는 이야기의 한 장면, 혹은 하나의 키워드에 불과했다.

그보다 훨씬 깊고, 훨씬 심오한 이야기가 여섯 편의 단편 속에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이 책은 단편집이다. 그러나 단순히 여러 이야기의 묶음이라고만 말하긴 어렵다.

서로 전혀 다른 주제와 배경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읽고 나면 이상하게도 하나의 감정선이 남는다.

마치 각각의 이야기가 다른 악기 같지만, 연주가 끝나고 나면 같은 멜로디가 귓가에 맴도는 것처럼.


첫 번째 이야기 '루디'는 화재 현장에서의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소방관 태주와, 그의 기억을 긍정적으로 덮어 씌워 깨어나게 하려는 인공지능의 이야기다.

AI가 인간의 기억을 조작한다는 설정은 분명 SF 적인 긴장감을 가진다. 하지만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이것은 한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어진다. 비슷한 계열의 영화가 많이 생각났다.

기술의 차가움 속에 스며든 인간적인 온기. 그것이 첫 번째 이야기에서 느낀 핵심이었다고 본다.


두 번째 '대수롭지 않은'은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아주 작은 변화가, 대수롭지 않다고 넘겼던 사건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큰 사건이 아니어도, 사람의 하루는 충분히 바뀔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읽는 내내 내 일상에도 이런 변곡점이 있었나 떠올리게 된다.


세 번째이자 표제작 '평행 우주 고양이'는 주인공과 레나라는 인물의 복잡한 관계론이다.

사실 이 작품에서 고양이가 뭔가 나오나 했는데 내 생각과 다르게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가 끝에 등장한 것뿐이었다.....

이 작품은 내용을 쉽게 말을 꺼낼 수 없는데 복잡 미묘한 관계론이다.


네 번째 '심해의 파수꾼들'은 깊은 바닷속 도시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서 태어난 최초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심해라는 공간은 원래 압도적인 고립감과 두려움을 주지만, 이 책에선 조금 달랐다. 그속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꿈도 있고 희망도 있고 온기가 느껴졌다.

차가운 물속에서 오히려 강하게 느껴지는 인간적인 체온이랄까? 약간 물속에 오래 들어가 있으면 물속이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 같은 것과 비슷한 느낌이려나?


다섯 번째 '마인드 리셋'은 기억 삭제 시술이 까다로운 적합성 검사에 걸린 사람들을, 비공식 업체에 연결해 주는 브로커의 이야기다.

인간이 가장 바라는 것 중 하나는 잊고 싶은 기억을 지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그 욕망의 이면을 찌른다. 과연 기억을 지우면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혹시나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다는 생각을 하진 않을까?

사람의 뇌와 마음은 연결되지 않아서 뇌로는 잊어도 마음으로는 남아 있어서 그 괴로움이 반복된다면,

사람은 그 괴로움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혼란에 빠지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서 기억을 지울 바에는 과거로 돌아가는 게 빠르지 않을까란 상상을 했다.



마지막 '여자의 계단'은 사라져 버린 선배의 집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SF적이라기 보단 몽환적인 느낌이 꽤 강했는데 그림이나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공감을 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주된 이야기는 이것 역시도 사람들의 관계성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갑자기 증발해버린 여자 때문에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초반에 나온 그 날아가버린 씨앗들이 의미하는 게 자기 자신이었나 싶기도 했다.


사람의 흔적과 부재가 만들어내는 서늘함과 쓸쓸함이 묘하게 매력적이었다.

사람들이 급하게 떠난 흉가나 폐가라고 불리는 곳에 들어간 본 적이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소름이 돋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남기고 간 흔적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남자도 여자의 남겨진 물건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단편집의 좋은 점은 다양한 이야기를 한 권에서 맛볼 수 있다는 거지만, 때론 작품들이 비슷한 톤을 가져서 읽는 재미가 단조로워질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여섯 편 모두 각자의 개성이 뚜렷했고, 마치 여러 작가의 작품을 모아놓은 듯한 다양성이 있었다. 그런데도 다 읽고 나면 묘하게 하나의 정서가 흐른다. 아마도 그건 작가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겠지.


작가님의 문체는 묘사력이 폭발적으로 화려한 편은 아니다. 대신 깔끔하다.

가끔 생소한 단어나 과학적 개념이 나와도, 그것 때문에 읽기가 불편하진 않았다.

SF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아, 이런 세계구나 정도로만 이해할 수 있어도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는 책이다.


'평행 우주 고양이'는 SF 적인 설정 속에서도 사람을 먼저 본다.

기술, 이론, 가설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고 사랑하고 상처받는 사람들을.

그래서 이 책을 덮고 나면, 마음이 이상하게 차갑지 않다. 오히려 잔잔하게 데워진다.

그게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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