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 프로듀서 퇴사하겠습니다
오조 지음 / 팩토리나인 / 202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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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히어로가 슈퍼스타처럼 사람들의 사랑과 응원을 한몸에 받는 세상.

이능력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이 타고나는 말 그대로 기본 옵션이 된 시대다.

거리를 지키는 히어로의 이름은 매일 뉴스에 오르고, 신인 히어로의 데뷔는 대형 콘서트처럼 화려하게 치러진다.

그러나 그 무대 뒤에는 스포트라이트 없이 묵묵히 시스템을 굴리는 사람들이 있다.

오조 작가님의 소설 '히어로 프로듀서 퇴사하겠습니다'는 바로 그 찬란한 무대 밖에서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조영은 샤이닝 컴퍼니 지하 사무실에서 10년째 '조 대리'라는 이름으로 일하고 있다.

서른한 살이 된 새해, 마침내 퇴사를 결심한 순간, 회사는 신인 히어로 '써리원'의 데뷔 프로젝트를 맡긴다.

정들지 않은 자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편안하지도 않은 직장에서의 마지막 미션. 그녀의 새해 계획은 이렇게 마지막 프로젝트라는 예외 조항과 함께 연장된다.


이 책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그만둬야 하는 순간이 온다', '누구에게나 붙잡아야 하는 것이 있다', '누구에게나 함께여야 하는 시기가 온다'라는 세 개의 부제로 나뉜다.

이 소설이 신선한 이유는 분명하다. 히어로물이지만, 주인공은 히어로가 아니다. 이능력은커녕 아무런 초능력도 없는, 말 그대로 무능력자인 조영이 중심에 선다.



대부분의 히어로물에서 무능력자는 조연이거나 관객 역할에 머무르지만, 여기서는 전면에 나서 이야기를 이끈다.

화려한 전투 장면보다 중요한 건 '써리원'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 무대 위로 올릴 것인가다.

이 과정에서 히어로 프로듀서라는 직업이 마치 연예 기획사의 매니저나 신인 육성팀을 떠올리게 한다.

스타를 만드는 과정, 이미지 관리, 데뷔 준비, 사건 수습까지, 다만 그 대상이 가수가 아니라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라는 점만 다르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이 세계관의 히어로 분배 시스템이다. 이능력이 넘쳐나는 시대, 한 사람이 모든 걸 감당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능력과 성향, 수요에 맞춰 파이를 잘게 쪼개 여러 히어로에게 역할을 나눈다.

이 설정 덕분에 소설 속 히어로들은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인간적인 결점과 한계를 지닌 존재로 다가온다.

마치 실제 연예계나 스포츠계의 생태계를 보는 듯한 현실감도 있다.


​조영이라는 캐릭터도 매우 현실적이다. 퇴사를 결심하고도 마지막 제안을 덥석 수락하는 모습에서 답답함과 동시에 깊은 공감이 든다.

10년을 바친 직장을 단숨에 떠나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그곳엔 처음 품었던 열정과 꿈이 남아 있고, 완전히 끝내기 전 한 번쯤 마무리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나라도 저 상황이면 비슷하게 선택했을 것 같네라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제목이나 초반의 이야기만 봐서는 단순히 히어로 세계의 이야기 같지만, 결국 이 책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보편적인 순간을 담고 있다.

화려한 전투보다, 무대 위의 영웅보다, 그 옆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맞닥뜨리는 모습과 진실과 현실들의 무게가 더 오래 남는다.


책 속의 문장 P.15-16 💬 


'나는 잘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보통 사람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인생이 편합니다.'

정말 그런가?

정말, 그런가.

남들 그러듯이 천천히 편해지지가 않았다. 서른이 넘도록 욱신거리고, 허무하고, 또 아프기만 했다.


책 속의 문장 P.16 💬 


마음속 깊은 곳에서 조영은 그런 걸 원하지 않았다. 오로지 주제 파악이라는 무능력자의 덕목이 조영의 사지를 동여매고 있을 뿐이었다.

조영은 독수리에게 심장을 쪼이는 프로메테우스처럼 주기적으로 시큰거림을 느꼈다.

잊을만하면 심장 가까운 곳에서 회전하는 별 모양의 돌. 그 돌의 이름은 꿈이었다, 아마도.


​책 속의 문장 P.120-121 💬 


'누구든 웬만하면 가질 수 있는 이능력이든, 그걸 못 가져서 발버둥 쳐 얻는 후천적인 능력이든.

다시 태어나면 둘 중에 하나만 주지 말고 둘 다 줘라. 조물주씩이나 되면서 쩨쩨하고 난리야.'



이 책에 인상 깊었던 문장들은 대부분 조영이 속으로 남기거나 생각한 이야기들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모두가 능력을 갖춘 세상에서 홀로 무능력자로 살아야 하는 억울함, 그리고 그것을 속으로 삼키는 서글픔이 절절히 전해졌다.

생일날 '나는 잘난 것이 없는 보통 사람'이라는 말로 주제 파악을 해야 하는 그 순간 얼마나 아팠을지는 상상도 되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괜찮은 건 아니다. 시간이 오래 지났다고 해도 그 멍이 쉽게 지워지지는 않는다.


'히어로 프로듀서 퇴사하겠습니다'는 히어로물의 틀을 빌려왔지만, 그 속에 담긴 건 히어로가 아니라 보통 사람의 이야기다.

무대 위의 영웅이 아니라, 무대 밖에서 그들을 지탱하는 사람들의 가치와 의미를 묻는다.

조영은 세상을 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영이 있었기에 한 명의 히어로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어쩌면 '히어로'라는 단어의 정의가 조금 바뀌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초능력보다 중요한 게 무엇인지, 그리고 이름 없이 빛을 만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운다.


히어로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특색이 있는 책이라서 추천하고 싶다.

아니면 한국적인 히어로물의 세계관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에게도 한 번쯤 추천하고 싶은 재미있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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