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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새 우는 소리
류재이 외 지음 / 북다 / 2025년 8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전설의 고향, 현대적으로 다시 불려오다
- 6인 6색으로 펼쳐낸 한국 괴이의 풍경

나는 원래도 한국적인 샤머니즘이나 오컬트, 그리고 민담 설화 속 요괴와 괴물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어린 시절 텔레비전 앞에서 봤던 ‘전설의 고향’ 시리즈는 내게 단순한 공포물이 아니라, 한국적 정서가 담긴 특별한 체험이었다.
그래서 '귀신새 우는 소리'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부터 이거 한국 쪽 이야기 아니야? 란 호기심이 생겼고, 책은 역시 그런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의 색감 자체가 너무너무 괴이하면서도 예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제목과 주제에 너무 잘 어울리는 색감이 아닐 수 없었다고 할까?
책의 표지에서부터 느낌을 꽤 중시하는 나 같은 사람한테는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매력을 보이는 강렬한 책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이 책은 '괴이학회' 소속 여섯 명의 젊은 작가분들이 모여 만든 호러 앤솔러지다.
각각의 단편은 한국 전설과 민담을 바탕으로 쓰였는데, 단순히 옛이야기를 재현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각자의 개성과 장르적 색깔을 불어넣어, 친숙한 전설이 현대적 감각의 공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덕분에 읽는 내내 익숙함과 낯섦이 동시에 느껴지며, 오래된 전설이 새로운 방식으로 내 앞에 다가오는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물론 현대적으로 해석했다고 해서 그 배경들이 현대적이라는 건 아니다. 철저하게 전설의 고향이나 괴담, 민담에 어울리는 시대적 배경에 맞추어져 있다.
앤솔러지의 묘미는 다양한 색깔을 한 권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인데,
이 책 역시도 여섯 편의 단편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전설을 재해석되며, 6가지의 색다른 공포와 긴장감을 선사한다.


류재이 작가님의 '금녀'는 금돼지 전설을 토대로 코즈믹 호러적인 상상력을 덧붙였는데,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기묘한 분위기로 독자를 압도한다.
이지유 작가님의 '여우의 미소'는 살인 사건과 여우누이 전설을 교차시켜 미스터리와 호러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한다.
무경 작가님의 '웃는 머리'는 창귀 전설을 변주하며, 인간인지 요괴인지 알 수 없는 존재가 만들어내는 심리적 공포를 보여준다.
이렇듯 각각의 단편이 서로 다른 접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균형이 잘 맞는다.
어떤 작품은 분위기만으로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고, 또 다른 작품은 충격적인 장면으로 기억에 오래 남는다.
공포의 결이 달라 지루할 틈이 없다는 것이 앤솔러지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전설의 고향이 2025년에 새롭게 만들어진다면 이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전설, 민담, 요괴 이야기가 이미 친숙하지만, 작가님들의 상상력을 통해서 완전히 새로운 감각과 공포, 긴장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낮에는 그냥 평범한 새소리로 들렸던 '귀신새', 호랑지빠귀의 울음소리가 스산한 밤이 되면 불안과 두려움을 자아내는 것처럼,
책 속 전설들도 새롭게 변주되면서 나를 낯선 공포의 세계로 이끌었다.
한국 전설 특유의 음울한 정서와 현대 호러의 장르적 장치가 교차하면서, 단순한 공포를 넘어선 ‘문화적 체험’ 같은 느낌을 주었다.
특히 샤머니즘적 세계관이나 금기, 인간의 욕망과 불안 같은 주제들이 단편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이 덕분에 이야기가 단순히 귀신이 나타나서 무섭다로 끝나지 않고, 공포의 뿌리를 인간과 사회의 내면으로 확장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한국적 공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이다.
해외 호러는 익숙해도 한국 전설을 본격적으로 다룬 호러 앤솔러지는 흔치 않다.
이 책은 그 공백을 채워주면서도, 단순히 소재의 차용에 그치지 않고 개성 있는 이야기로 다시 빚어낸다.
다만 앤솔러지 특성상, 모든 단편이 똑같은 무게감을 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작품은 긴장감은 훌륭하지만 마무리가 다소 급하게 느껴졌고, 어떤 작품은 신선한 설정에 비해 결말이 아쉬운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차이가 오히려 여섯 편을 번갈아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나 같은 사람에겐 이 책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나는 원래도 샤머니즘과 오컬트, 요괴와 괴물 이야기를 너무 좋아해서, 이 책이 보여준 매력이 몇 배로 크게 느껴졌다.
새로운 요괴 해석이나 민담 속 괴물들의 변주가 무척 흥미로웠고,
앞서 말했다시피 전설의 고향 같은 프로그램이 현대적으로 다시 방영된다면 꼭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더욱 바라는 점은, 앞으로도 이런 책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는 것이다.
우리 문화 속 전설과 괴담은 무궁무진한 이야기의 원천이기에,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시도들이 가능하다.
단순한 공포를 넘어, 우리 전통과 현대적 상상력이 결합된 이야기를 계속 만나고 싶다.
옛 전설이 오늘의 공포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을 담아낸 단편집.
내가 좋아하던 민담과 괴담의 세계가 현대적 상상력과 결합해 되살아나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은, 독서 그 이상의 즐거움이었다.
책장을 덮고 난 후에도 귀에 맴도는 귀신새의 울음소리처럼, 이 책이 남긴 여운은 길고 깊어서 몇 번이나 책장을 다시 앞으로 넘겨서 읽어보았다.
전설을 사랑하는 사람, 한국적 공포의 색채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
그리고 호러 장르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분명 매혹적인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