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한 잔 - 소설 속 칵테일, 한 잔에 담긴 세계
정인성 지음, 엄소정 그림 / 영진.com(영진닷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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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잔을 기울이며 읽는 이야기들



술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늘 따라붙는 질문이 있다. "소주야, 맥주야?"

하지만 나는 술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 단순히 취하기 위한 수단도 아니다.

그보다는 하루의 끝에서 가볍게 휴식을 마시는 행위에 가깝다. 얼음을 가득 채운 잔에 하이볼을 따르고, 기포가 올라오는 그 소리를 들으며 잠시 멍하니 있는 시간.

그런 순간엔 나도 모르게 생각이 깊어진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고,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며, 가끔은 책을 한 권 꺼내 읽기도 한다.


정인성 작가님의 '소설 한 잔'은 바로 하루 끝의 여유와 닮은 책이다.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술과 그 장면들을 따라가며, 소설 속 인물들이 술을 통해 위로받고, 고백하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문학의 향기와 함께 은은한 술 향이 코끝에 맴도는 듯했다.




문학 작품 속에 술이 나온 것을 적었다고 해서 단순히 어떤 고전 소설에 이런 술이 나왔다를 나열한 책도 아니다.

작가님은 문학 속에서 술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섬세하게 짚어낸다.



예를 들어, 체호프의 단편에서는 외로움을 달래는 작은 위로로 술이 등장하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에서는 한 잔의 위스키가 인물의 고독을 상징한다. 김승옥 작가님의 작품에서는 시대의 무기력함 속에서도 '소주 한 병'이 친구와의 진심을 드러내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작가는 그 장면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술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임을 보여준다.

술은 결국 사람의 감정이 녹아든 액체다. 기쁠 때는 함께 웃게 만들고, 슬플 때는 진심을 끌어내며, 고독할 때는 잠시라도 세상을 잊게 해준다.

문학 속 인물들이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은, 어쩌면 우리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평소 과음하는 편은 아니다, 그저 가볍게 하이볼이나 맥주, 혹은 소주 이길 만큼만 즐긴다. 말 그대로 그저 기분 좋은 선에서 마시는 정도다.

술이 약한 건 아니고 꽤 많이 마실 수 있는 편이지만 이기지 못할 정도로 과음을 하지 않고, 즐길 정도로만 마신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며 여러 작품 속 술 한 잔의 장면들이 내게 유난히 따뜻하게 다가왔다.

어떤 인물은 실패한 사랑을 잊기 위해 잔을 들고, 어떤 인물은 친구의 어깨에 기대어 잔을 비운다. 그 모습들이 마치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다 보면 문학과 술이 얼마나 닮아 있는지도 새삼 느끼게 된다.

둘 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녹여내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단어로 감정을 풀어내고, 술은 향과 맛으로 감정을 녹인다.

정인성 작가님은 그 두 세계를 절묘하게 엮어내며, 문학과 술이 서로를 비추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이 책은 단순히 책을 읽는 독서가 아니라, 문학을 음미하는 경험이었다.

한 페이지를 읽고 잠시 멈춰, 그 장면을 떠올리며 내 삶의 어느 순간과 겹쳐보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하이볼의 기포처럼, 문장들이 톡톡 터지며 마음을 간질인다.


특히 각 작품 속 술의 상징과 감정을 연결해 해석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그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문학이 더 이상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아, 이런 장면에 이런 술이 나왔구나.'

'이 사람은 하필 왜 이 술을 마셨을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문학이 조금은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책을 덮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밤엔 나도 한 잔, 마셔볼까?

얼음컵에 하이볼을 따르며, 오늘 읽은 책의 문장 몇 줄을 다시 떠올려본다.

책 속 인물처럼 나도 잠시 마음을 비우고, 그 여운 속에 머무는 시간. 이 책은 그런 여유를 선물해준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문학이 더 친숙해지고,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술이 더 낭만적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결국 이 책은 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각자의 삶에 스며든 수많은 감정과 기억을 술이라는 매개로 엮어내며, 우리가 잊고 지낸 감성을 깨운다.


문학을 사랑하고, 한 잔의 술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주는 향기로운 여운을 오래도록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소설 속 한 장면처럼 조금은 오글거리지만 혼잣말로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오늘은 문학으로 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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