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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의 이름 - 보태니컬 아트와 함께하는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산탄 에이지 그림, 명다인 옮김 / 니들북 / 2025년 8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책이 이끌어낸 다시 그려보고 싶은 마음

'보태니컬 아트와 함께하는 야채의 이름'은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야채라는 일상의 식재료와 보태니컬 아트라는 예술적 감각이 만나는 지점에서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 책은 단순히 야채의 이름을 나열하거나 백과사전식 지식을 전달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채소들의 이름과 특성을 하나하나 짚어내면서, 그것을 섬세한 보태니컬 아트와 연결해 전혀 다른 시선의 즐거움을 선물한다.

나는 한동안 보태니컬 아트를 배우고 있었다.
식물의 잎맥이나 줄기, 꽃잎의 결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종이에 옮기는 과정은 단순한 그림 그리기를 넘어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겪으면서 어느 순간 붓을 드는 일이 버겁게 느껴졌고, 그림은 자연스레 나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은 그림 그리기 지침서도 아니고, 보태니컬 아트 기법을 가르쳐주는 전문 서적도 아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조금 특별한 울림을 주었다. 야채의 이름과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슬며시 고개를 든 것이다.
책 속에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야채부터, 우리에겐 생소한 채소까지 다양한 채소가 등장한다.
단순히 먹는 것으로만 여겼던 채소가 이렇게나 다채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이름 하나에도 지역적 특색이나 시대의 흔적이 배어 있고, 그런 이야기와 함께 곁들여진 보태니컬 아트는, 평범한 채소들을 다시 보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책장을 넘길수록 그려진 잎사귀와 줄기가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했고, 마치 오래된 식물도감과 현대적인 감각이 어우러진 전시회를 관람하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특히 이 책이 인상 깊었던 것은, 야채에 대한 지식을 주는 동시에 그것을 아름다움의 차원으로 끌어올린다는 점이다.
우리가 매일 먹는 채소들에도 저마다의 고유한 개성과 매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밥상 위의 채소조차 전혀 다르게 보인다.
예를 들어 가지의 짙은 보라색, 오이의 매끈한 표면, 양배추의 둥글게 겹겹이 말린 잎맥은 그저 식재료가 아니라 하나의 작품처럼 다가왔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그림을 그려볼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 순간이 가장 소중했다.
물론 이 책은 그림을 가르쳐주는 책이 아니다.
그러나 나처럼 보태니컬 아트를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그 안에 담긴 식물의 이름과 이미지가 그림을 향한 감각을 일깨우는 자극이 될 수 있다.
힘든 시기를 지나며 멀어졌던 그림을, 색연필을 다시 잡고 싶게 만든 것,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내게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
보태니컬 아트와 함께하는 야채의 이름은 아마도 책을 읽는 사람들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가올 것이다.
누군가에겐 채소 이름과 문화사를 알 수 있는 유익한 지식서일 것이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보태니컬 아트의 미감을 즐기는 화집일 것이며, 나처럼 그림과의 인연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책은 단순히 야채에 대한 정보를 넘어, 독자의 삶과 취향에 맞게 다양한 의미로 변주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책장을 덮은 후 나는 오랜만에 스케치북을 다시 꺼내보았다. 열심히 그렸던 채소들이 마음을 뒤흔들었다.
아직 선 하나 제대로 그리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이 책 속의 야채들처럼 작은 대상 하나하나를 마음에 담아내고 싶다.
보태니컬 아트와 함께하는 야채의 이름은 내게 다시 그림 앞에 서고 싶은 용기를 준 고마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