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셰: 확장자들
김아직 외 지음 / 북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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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클리셰를 넘어선 상상력의 실험실

사실 ‘클리셰’라는 단어가 다소 어려운 분들도 있을 수 있는데, 클리셰는 반복되어 자주 쓰이는 전형적인 표현이나 이야기 구조를 의미합니다. 장르소설이나 애니메이션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예를 들어 '정의로운 주인공과 악당의 대결', '죽은 줄 알았지만 살아난 연인', '죽었다 깨어난 영웅' 같은 설정이 대표적인 클리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클리셰들은 사람들에게 익숙함을 주는 동시에, 새로운 창작에 제약을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늘 양날의 검처럼 다가옵니다. 그런 경우들 있잖아요? 영화나 소설을 보는데 뻔히 다음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들, 그게 다 클리셰이고 작품에서 주로 사용하는 익숙한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익숙해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너무 뻔해서 재미없었어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게 바로 독이 되는 거죠.

저는 이걸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코르셋’이라는 표현에 빗대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코르셋이 한때 여성에게 정해진 사회적 기준을 강요하는 도구였다면, 클리셰 또한 창작자들에게 익숙하지만 그만큼 자유를 제한하는 이야기의 틀이 될 수 있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 코르셋을 하나씩 벗겨내는 실험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와장창 다 깨지고 이상하고 신기한 이야기들은 아니고요 적당한 선에서 이해하기 쉬운 방향으로써 클리셰를 깨부수고, 독특해서 재밌었습니다.



모든 이야기들이 재미있었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분들이 많아서 몇 번 반복해서 읽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걸 이런 식으로 틀을 깨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허탈? 허무? 한 부분도 있고,

진짜 재미있는 요소들도 많았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걸 와장창 깨부술 수는 없으니까 이렇게 작게나마 틀을 깨버린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깊어 보였고 그래서 과하지 않은

이런 느낌으로 신선하게 깨부수는 것 같은 내용들이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진짜 모든 이야기가 다 재밌었지만, 개인적으로 정명섭 작가님의 '멸망한 세상의 셜록 홈스: 주홍색 도시'가 가장 인상 깊었는데,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익숙한 캐릭터와 세계관을 새로운 세계관과 관계 속에 재배치하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요소들을 과감히 바꾸는 시도가 너무 좋았습니다. 이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저처럼 셜록 홈스를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세계관을 이런 식으로 비튼다고?라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데 전혀 그런 게 없었고 재밌게 와닿았습니다. 아마도 드라마 셜록을 이미 접했던 덕분에 현대화되거나 변화된 세계관 속의 셜록을 이해할 수 있게 된 이유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요. 이 책 속에 셜록 홈스의 세계관은 드라마 셜록과도 갭은 있었으니까요.

특히 ‘왓슨’의 변화는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했고, 언제나 똑같았던 캐릭터를 이렇게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탄스러웠습니다.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시도들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많이 커졌는데요.

사실 요즘도 괜찮은 작품들은 많이 나왔지만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선에서 스토리가 진행되는 부분도 많고, 결말도 예측하기 쉬운 경향이 많거든요

물론 뒤통수를 갈기는 것처럼 생각도 못 했던 결말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 중간중간 스토리에서 보이는 클리셰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니까요.

아무도 예측 못하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는 그런 내용은 쉽게 만나기 어렵습니다. 그동안의 익숙해진 틀을 깨부수기엔 어렵긴 할 거예요.

독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큰 모험이겠죠? 하지만 누군가가 먼저 용기를 내어 그 틀을 부수면, 그 이후엔 더 많은 창작자들이 더 넓은 상상력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이야기들을 써 내려간 작가분들은 장르소설 쪽에서는 꽤나 각광받고 주축을 이루는 분들이기도 했는데요. 오히려 이런 분들이 몸을 사릴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에 나서서 클리셰, 정형화된 틀을 깨부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많은 작가분들이 더 쉽게 새로운 실험과 시도를, 도전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새로운 길을 여는 아주 귀한 발걸음처럼 느껴졌습니다.

최근에 장르소설 쪽에서 실험적인 앤솔로지들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앞으로도 더 많은 새로운 실험적인 이야기들이 나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어떤 식으로 클리셰를 비틀지 상상해 볼 수 있는 정말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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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 고이즈미 야쿠모 작품집
고이즈미 야쿠모 지음, 김민화 옮김 / 보더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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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일본 괴담의 정수



오늘 가지고 온 책은 제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일본 괴담들이 수록된 책입니다.


일단 이 책은 저자부터가 조금 신기한 분이에요 바로 '고이즈미 야쿠모'라는 작가분인데요 사실 귀화전의 이름인 '라프카디오 헌'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작가로 원래 아일랜드 영국인이지만, 일본 문화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품으면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 여성과 결혼하며 귀화한 인물입니다.


고이즈미 야쿠모는 귀화를 한 외국인이지만, 일본의 정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수용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기도 합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외국인이 보는 일본에 대한 시선을 담아낸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일본의 정서를 그대로 이해하고 그 자체를 녹여냈다고 하죠. '괴담'은 그런 고이즈미 야쿠모가 일본의 전통 괴담이나 요괴 이야기들을 직접 정리하고 자신만의 해석을 담아서 재구성한 대표작을 모은 작품집입니다. 총 13가지의 단편 이야기들이 담겨 있고요 그중에는 사람들에게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괴담들도 존재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e-book 플랫폼을 통해서 라프카디오 헌이라는 이름으로 '화해', '시체 올라타기','찻잔 속'이라는 작품을 접해봤었기 때문에 꽤나 익숙한 작가분이기도 했지만 생소한 분들도 많을 텐데요.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괴담 책으로 알려진 책이 바로 이 라프카디오 헌이 1904년도에 집필한 '괴담'입니다...이 책과 제목은 똑같은데 내용은 차이가 좀 있는데요.

100년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번역본도 계속해서 출간되고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일본 괴담의 바이블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죠.


책에 수록된 대표작 중에는 '설녀', '로쿠로쿠비', '귀 없는 호이치 이야기'처럼 익숙하게 듣고 알고 있었던 괴담들도 있어서, 거부감 없이 그리고 큰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었는데요. 마치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지만 이렇게 글로써 다시 읽으니 색다른 느낌이 들기도 했고, 그와 동시에 자료 사진들 역시도 알고 있던 작품들이 많아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들도 같이 수록되어 있어서, 일본의 전통적인 괴담에 대해서 더욱 많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는데요. '괴담'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미스터리, 심리적인 공포보단 구전으로 전해져오는 요괴나 전설에 대한 이야기들이 기반이라서 기묘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면서 일본의 시대적인 정서나 문화적 배경이 잘 녹여져 있는 말 그대로 일본 전설 괴담 모음집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단점으로는 아마 시시하다고 느끼는 분들이 계실 것 같다는 점인데요.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 자체가 호러 소설이나 공포 영화들처럼 자극적인 소재도 아니고 구전 민담을 재해석해서 엮은 책이다 보니까 비교적 잔잔합니다 그만큼 조용하고요. 한국의 전설의 고향 이런 스타일도 아니고 더 조용한 일본 분위기다 보니까 이게 뭐야? 하고 싱숭생숭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계실 것 같지만 한 번쯤 읽어 보기엔 좋은 책이에요. 물론 저처럼 일본 괴담이나 요괴 이야기, 민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그냥 평소에 알고 있던 일본 스타일 그대로라서 매우 익숙하고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13편이 모두 길지 않고 짧게 짧게 이어진 단편이라서 가볍게 읽기도 좋을 것 같고, 요괴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책 속에 나오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따로 또 검색해서 다양한 전설들을 알아보기도 했는데요 무척 흥미롭더라고요.


특히 골동 편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요괴 이야기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라서 조금 더 신기했다고 할까요? 요괴보다 조금 더 일본의 시대적인 정서나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골동 편에 집중해서 읽으시면 좋을 것 같고, '찻잔 속'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이 책에는 수록되지 않은 작품들도 찾아서 읽어보시기를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괴담'처럼 고전적인 괴담이나 요괴에 대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저 같은 사람들에겐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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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이야기들
발터 벤야민 지음, 파울 클레 그림, 김정아 옮김 / 엘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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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의 세계를 따라 걷다.


오늘 가지고 온 책은 발터 벤야민의 단편선 모음집인데요. 발터 벤야민은 독일의 철학자이자 문예평론가, 미학자 입니다.

하나의 주제나 학문보다는 다양한 주제를 다룬 사람인데요 다양한 학문이나 분과를 파고든 만큼 발터 벤야민의 글은 생각할 거리가 정말 많고 깊이가 깊은 만큼 쉽게 이해하기가 쉽진 않을 수 있습니다


저도 사실 철학이라는 학문에 관심을 가지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발터 벤야민이라는 이름을 종종 들어왔는데요. 철학 쪽에 대해서 검색하다 보면 그를 칭찬하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생겼던 상태였는데 이번에 아주 좋은 기회에 '고독의 이야기들'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발터 벤야민의 글은 처음 접하면 다소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글을 읽다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문장들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는 거예요. 쉬운 이야기 같으면서도, 제가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단어나 문장이나 모든 걸 이해는 하고 읽기에 막힘은 없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에 대한 부분이 아직까지 정확하게 이해하기엔 멀게 느껴지는 거죠.


고독의 이야기들은 픽션을 모아둔 책이라곤 하지만 그 이야기들 하나하나는 오히려 ‘진짜 이야기’에 가까운 책이었습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 그 모호함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를 다시 전하고 전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쌓여서 만들어낸 진짜 이야기랄까요?


이야기들은 모두 짧은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고, 한 편 한 편을 천천히 다시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기에도 정말 좋았습니다. 몇 번이고 다시 돌아가서 읽게 되는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이해하려고 읽는다기보단, 느끼고 싶어서 자꾸 다시 읽게 되는 그런 경험이 오랜만이라 참 좋았습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에드거 앨런 포의 '우울과 몽상'이라는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그 책이 800페이지가 넘어가는 방대한 내용의 책이라서 친구들조차 저를 이해하지 못하더라고요 한없이 어리고 책이 좋았던 그 시절에는 그저 긴 이야기를 주야장천 읽을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라서 재미있게 읽었고, 어린 나이라서 모든 걸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던 부분도 있지만, 지금처럼 뭔가 알 듯 말 듯 한 긴장감과 흥분을 느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 이후로는 그만큼 분량이 긴 책을 오로지 재미로만 집중해서 읽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고독의 이야기들'이 오랜만에 그런 기분과 재미를 떠올리게 해준 책이었고, 진짜 너무 즐거웠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발터 벤야민을 떠올렸습니다. 여전히 그의 세계는 저에게 어렵고 멀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저는 평소에도 상상이나 망상을 자주 하는 편인데, 이 책을 통해 발터 벤야민이라는 사람이 만들어낸 환상의 틀을 마주하고 나니, 저의 상상은 아직 갈 길이 멀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자극을 받았고,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어졌습니다.


언젠가 삶이 끝나기 전에는, 그의 이야기 중 하나쯤은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그리고 그 순간이 오늘 이 책을 읽었던 경험과 이어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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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의 밤 (일본어 + 한국어) 손끝으로 채우는 일본어 필사 시리즈 1
미야자와 겐지 지음, 오다윤 옮김 / 세나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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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 철도는 언제나 이별을 향해 달린다



일본어와 다양한 외국어의 공부를 위해서 필사를 하던 중 새로운 미니북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형식은 제가 사용하고 있던 일본어 필사책이랑 똑같은 구성이었고, 내용은 일본의 유명한 동화였는데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의 모티브로도 알려져 있는 '은하 철도의 밤'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사실 일본어를 읽고 독해하는 공부를 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은하철도 999의 모티브가 된 작품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은하 철도의 밤'이라는 작품의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읽고자 마음을 먹게 되었어요



 



구성은 왼쪽 페이지에는 일본어 원문, 오른쪽 페이지에는 한글 번역과 함께 하단에는 몇 가지 단어의 뜻이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들도 있지만, 종종 생소할 수 있는 단어나 표현도 적혀 있어서 일본어를 공부할 때 큰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동화이기 때문에 내용은 그렇게 길거나 어렵지 않았고, 한글로 번역된 걸 읽어보면 예쁜 단어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예쁘고 판타지스러운 문장을 만들어내서 페이지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좀 울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성한 덤불 사이로 난 오솔길이 한 줄기 흰 별빛을 받아 환히 보였다'거나 '반짝반짝 파란빛을 내는 작은 벌레'처럼 아이들이 읽기에 참 예쁜 말들이 가득한 따뜻한 느낌을 받기도 했고, 일본 특유의 감성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일본 최초의 판타지 동화라고 해서 직접 읽어보기 전까지는 단순한 판타지 동화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면서의 감정은 생각보다 훨씬 깊고 묵직했습니다.

조반니가 꿈속에서 떠나는 여정을 따라가면서, 많은 감정을 엿볼 수 있었어요

각각의 행성? 역?까지 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눈 대화와 감정들은 단순히 이 책이 행복을 찾는 여정이 아니라는 게 느껴지기도 했고, 마지막엔 조반니의 친구인 캄파넬라의 말에서 숨겨진 의미를 뒤늦게 알게 되면서 마음이 좀 이상해지더라고요

사실 이 책을 읽고 나서 기차를 타고 많은 역을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제외하고는 은하철도99랑 이미지가 굉장히 틀리게 느껴졌기 때문에 은하철도 999의 작가 마츠모토 레이지가 어떤 부분에서 모티브를 잡고 결정했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조반니랑 캄파넬라가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는 물론 슬픈 감정도 종종 보였지만 기본적으로 아이들의 상상력이나 호기심, 행복이 깔려 있었다면, 은하철도 999에 나오는 행성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꿈도 희망도 없는 어떻게든 행복을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는 혹독한 감정을 느끼게 했었거든요

은하 철도의 밤은 조반니와 캄파넬라 둘 다 어린아이들이라서 그런지 말 그대로 꿈의 여정이라면 은하철도 999는 시작부터 배경 자체가 너무 암울했습니다.

철이와 메텔의 이야기들도 진짜 끝까지 묘했고, 한국 더빙으로 마지막 편을 봤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나중에 일본판으로 다시 봤을 때는 어릴 때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까지 느껴져서 진짜 애니메이션을 보는데 이게 어린이들이 볼 애니메이션이 아니구나란 생각이 들 정도였었거든요

어쨌든 서로 너무 다른 느낌이라서 '은하 철도의 밤'이 '은하철도 999'의 모티브라고 알려주지 않는 이상은 따로 읽는 사람들은 생각도 못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만큼 결이 많이 달랐다고 느꼈거든요.

"캄파넬라, 우리 함께 가는 거야."

조반니가 이렇게 말하며 돌아보니 조금 전까지 캄파넬라가 앉아 있던 자리에 캄파넬라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검은 벨벳만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조반니는 총알처럼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러고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힘껏 가슴을 두드리면서 소리치고 목이 찢어질 듯 울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이 순식간에 깜깜해져 버린 느낌이었습니다.

조반니는 눈을 떴습니다. 언덕 위 풀밭에서 지쳐 잠들었던 것입니다.

가슴은 어쩐지 이상하게 뜨겁고 뺨에는 차가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는 따돌림을 당하던 조반니가 자신의 친구라고 믿었던 캄파넬라의 행동에 상처를 받고,

친구를 잃은 상실감을 표현한 장면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읽고 난 이후에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마지막까지 읽고 나면 각 장면마다의 캄파넬라의 행동과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도 슬프지만 특히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캄파넬라의 말뜻을 곱씹어 보면 진짜 마음이....

일본어 공부를 위해서 읽기 시작했던 책이 이렇게나 내용에 푹 빠져버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책의 내용이 너무 좋았고, 작가님이 제 나이에 돌아가셨는데 몇 번이나 원고를 고쳐 쓸 정도로 애착을 가지고 쓴 이유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결국 완성되지 못한 원고는 수정 원고가 발견되면서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지금의 내용으로 완성되었지만 진짜 작가님이 마지막까지 쓰고자 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지도 궁금하네요

은하 철도의 밤은 단순한 판타지 동화가 아니었습니다. 말 그대로 삶, 죽음, 꿈과 행복 그 모든 게 담겨있는 동화였습니다. 조반니는 큰 슬픔 속에서도 캄파넬라와 함께 했던 꿈속의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살아갈 것입니다.

캄파넬라가 조반니를 떠났어도, 조반니가 돌아올 아버지의 소식을 엄마한테 알리겠다며 빠르게 달려나갔던 것처럼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새로운 행복을 찾아서 극복하고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실 일본어를 읽거나 단어를 읽는 게 낯설고 잘 모르는 분들에겐 어려울 수도 있다고 보입니다

처음부터 하나씩 하나씩 이해를 하면서 넘어가면 오래 걸리고요

한 번 읽어보고 한글 해석을 읽으면서 반복해서 읽으면 오히려 좋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들고 다니면서 가볍게 읽으면서 공부하고 싶은 분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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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트 - 고통을 옮기는 자, 개정판
조예은 지음 / 북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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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희생과 이기심의 경계에서...



최근에는 필사책 위주로 읽다가 이번에 장르 소설을 한 권 또 읽어봤어요 바로 조예은 작가님의 '시프트 - 고통을 옮기는 자'입니다

사실 저는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특이한 소재의 장르 소설이니까

고통을 옮기는 무언가 특별한 존재로 인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제 생각처럼 그렇게 단순하고, 단편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소설이 아니었어요 생각보다 심도 있었고 철학적이었죠

고통, 공포, 그리고 인간의 이기심이 어떻게 얽히는지, 악이란 무엇인지, 신이란 무엇인지 대한 모든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이야기는 선과 악의 구분을 넘어서, 인간 내면의 갈등과 욕망까지도 절묘하게 그려내고 결말은 꽤 예상은 가능한 부분이었고

누군가의 선택과 그 선택으로 인한 마지막을 바라보는 마음이 참으로 복잡했지만 개인적으로 꽤 만족스러운 소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란'은 특별한 능력으로 고통을 옮길 수 있었지만, 그 능력은 결코 란이 원했던 것도, 란 자신만을 위한 능력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인물들로부터 그 능력을 강제로 사용당하게 되고, 그 능력은 점점 더 공포와 위협을 가져오는 도구가 되었죠

누군가의 고통을 옮기는 힘은 재능도 아니고, 특별한 능력도 아니고, 저주 그 자체로 보였습니다.

사이비 종교의 교주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타인을 희생시키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악의 본질을 여실히 보여주는데요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짓밟고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교주와 사람들의 끝은 아름답지 않았죠

란이 꿈꾸던 것은 단순히 평범한 행복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능력은 그의 소망과는 거리가 멀었고

결국 그는 자신의 능력 때문에 고통받는 역할만 하게 되죠. 악몽을 꾸고, 소중한 것을 잃고,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되어버립니다

사이비 종교와 그들의 욕망이 그의 삶을 조종하는 모습을 보면서, 악이란 결국 자신만을 위한 욕망이라는 생각이 확고히 들었습니다

사이비 종교의 교주는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 악이 되었고, 그런 교주를 맹신하던 남자는 자신의 삶을 위해서 악이 되었으니까요

안 그래도 요즘 사이비 종교 실태 같은 거에 관심이 많았는데 실제 사이비 종교들의 단면적인 부분을 본 것 같다고나 할까요?

작가님이 사이비 종교에 대해서도 좀 많이 알아보고 녹여서 넣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등장인물들 각각의 마음이 다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각자의 처한 입장들이 좋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사이비 종교의 교주라던가 그런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도 않았고, 이해가 되더라도 이해를 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다리를 관통하는 낯선 통증은 이창의 머릿속에 내리꽂힌 추론이 바로 진실이라고 몰아붙이듯 선명했다.

그것은 자신이 오랜 시간 쫓던 기적의 원형이 될 수 있었다.

동시에 그가 바란 무한한 기적의 한계 역시 될 수 있었다.

이창의 머릿속에 추론을 이루는 두 가지 정의가 맴돌았다.

없애는 것과 옮기는 것. 없애는 게 아닌 옮기는 것.

기적과 교환.

개인적으로 작가님의 문장력이 이 소설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섬세하고 강렬하여 인물들의 내면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많은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게 만듭니다

단어 선택도 너무 좋아서 여기서 이렇게 문장을 쓰고 단어를 쓰는구나 감탄하면서 몇 번 다시 읽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안 쓰이는 단어도 아닌데 작가님이 쓰시는 건 어쩐지 너무 특별하고 세련되어 보였거든요

터진 상처에서 피가 흘렀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았다.

이 상처가 그토록 찾아 헤맨 저주다.

그것은 저주인 동시에 달아난 남자가 채린에게 축복을 내릴 수 있다는 증거였다.

축복이 정말 축복인지는 확신이 없어졌지만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장들입니다 저는 이 문장이 바로 이 책의 핵심을 꽤 뚫는 듯한 문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다 읽기 전에는 미처 모르겠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문장이 얼마나 중요한 문장인지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책을 다 읽고 저 문장들에 대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고, 신이란 과연 존재하는 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진짜 신인가, 악신인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신이 준 능력으로 인해서 한 사람을 평생 저주 속에서 살게 했다고 느꼈거든요

이 책을 읽고 나면 아마도 등장인물들이 겪는 고통과 갈등을 통해서 본 인간의 본성에 때문에 현실에서의 마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본성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적이고 심리적인 요소를 좋아하는 분들께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어요

분명 강렬한 인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조예은 작가님의 작품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고 시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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