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셰: 확장자들
김아직 외 지음 / 북다 / 202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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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클리셰를 넘어선 상상력의 실험실

사실 ‘클리셰’라는 단어가 다소 어려운 분들도 있을 수 있는데, 클리셰는 반복되어 자주 쓰이는 전형적인 표현이나 이야기 구조를 의미합니다. 장르소설이나 애니메이션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예를 들어 '정의로운 주인공과 악당의 대결', '죽은 줄 알았지만 살아난 연인', '죽었다 깨어난 영웅' 같은 설정이 대표적인 클리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클리셰들은 사람들에게 익숙함을 주는 동시에, 새로운 창작에 제약을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늘 양날의 검처럼 다가옵니다. 그런 경우들 있잖아요? 영화나 소설을 보는데 뻔히 다음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들, 그게 다 클리셰이고 작품에서 주로 사용하는 익숙한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익숙해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너무 뻔해서 재미없었어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게 바로 독이 되는 거죠.

저는 이걸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코르셋’이라는 표현에 빗대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코르셋이 한때 여성에게 정해진 사회적 기준을 강요하는 도구였다면, 클리셰 또한 창작자들에게 익숙하지만 그만큼 자유를 제한하는 이야기의 틀이 될 수 있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 코르셋을 하나씩 벗겨내는 실험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와장창 다 깨지고 이상하고 신기한 이야기들은 아니고요 적당한 선에서 이해하기 쉬운 방향으로써 클리셰를 깨부수고, 독특해서 재밌었습니다.



모든 이야기들이 재미있었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분들이 많아서 몇 번 반복해서 읽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걸 이런 식으로 틀을 깨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허탈? 허무? 한 부분도 있고,

진짜 재미있는 요소들도 많았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걸 와장창 깨부술 수는 없으니까 이렇게 작게나마 틀을 깨버린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깊어 보였고 그래서 과하지 않은

이런 느낌으로 신선하게 깨부수는 것 같은 내용들이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진짜 모든 이야기가 다 재밌었지만, 개인적으로 정명섭 작가님의 '멸망한 세상의 셜록 홈스: 주홍색 도시'가 가장 인상 깊었는데,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익숙한 캐릭터와 세계관을 새로운 세계관과 관계 속에 재배치하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요소들을 과감히 바꾸는 시도가 너무 좋았습니다. 이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저처럼 셜록 홈스를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세계관을 이런 식으로 비튼다고?라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데 전혀 그런 게 없었고 재밌게 와닿았습니다. 아마도 드라마 셜록을 이미 접했던 덕분에 현대화되거나 변화된 세계관 속의 셜록을 이해할 수 있게 된 이유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요. 이 책 속에 셜록 홈스의 세계관은 드라마 셜록과도 갭은 있었으니까요.

특히 ‘왓슨’의 변화는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했고, 언제나 똑같았던 캐릭터를 이렇게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탄스러웠습니다.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시도들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많이 커졌는데요.

사실 요즘도 괜찮은 작품들은 많이 나왔지만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선에서 스토리가 진행되는 부분도 많고, 결말도 예측하기 쉬운 경향이 많거든요

물론 뒤통수를 갈기는 것처럼 생각도 못 했던 결말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 중간중간 스토리에서 보이는 클리셰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니까요.

아무도 예측 못하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는 그런 내용은 쉽게 만나기 어렵습니다. 그동안의 익숙해진 틀을 깨부수기엔 어렵긴 할 거예요.

독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큰 모험이겠죠? 하지만 누군가가 먼저 용기를 내어 그 틀을 부수면, 그 이후엔 더 많은 창작자들이 더 넓은 상상력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이야기들을 써 내려간 작가분들은 장르소설 쪽에서는 꽤나 각광받고 주축을 이루는 분들이기도 했는데요. 오히려 이런 분들이 몸을 사릴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에 나서서 클리셰, 정형화된 틀을 깨부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많은 작가분들이 더 쉽게 새로운 실험과 시도를, 도전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새로운 길을 여는 아주 귀한 발걸음처럼 느껴졌습니다.

최근에 장르소설 쪽에서 실험적인 앤솔로지들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앞으로도 더 많은 새로운 실험적인 이야기들이 나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어떤 식으로 클리셰를 비틀지 상상해 볼 수 있는 정말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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