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모든 이야기가 다 재밌었지만, 개인적으로 정명섭 작가님의 '멸망한 세상의 셜록 홈스: 주홍색 도시'가 가장 인상 깊었는데,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익숙한 캐릭터와 세계관을 새로운 세계관과 관계 속에 재배치하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요소들을 과감히 바꾸는 시도가 너무 좋았습니다. 이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저처럼 셜록 홈스를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세계관을 이런 식으로 비튼다고?라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데 전혀 그런 게 없었고 재밌게 와닿았습니다. 아마도 드라마 셜록을 이미 접했던 덕분에 현대화되거나 변화된 세계관 속의 셜록을 이해할 수 있게 된 이유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요. 이 책 속에 셜록 홈스의 세계관은 드라마 셜록과도 갭은 있었으니까요.
특히 ‘왓슨’의 변화는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했고, 언제나 똑같았던 캐릭터를 이렇게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탄스러웠습니다.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시도들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많이 커졌는데요.
사실 요즘도 괜찮은 작품들은 많이 나왔지만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선에서 스토리가 진행되는 부분도 많고, 결말도 예측하기 쉬운 경향이 많거든요
물론 뒤통수를 갈기는 것처럼 생각도 못 했던 결말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 중간중간 스토리에서 보이는 클리셰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니까요.
아무도 예측 못하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는 그런 내용은 쉽게 만나기 어렵습니다. 그동안의 익숙해진 틀을 깨부수기엔 어렵긴 할 거예요.
독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큰 모험이겠죠? 하지만 누군가가 먼저 용기를 내어 그 틀을 부수면, 그 이후엔 더 많은 창작자들이 더 넓은 상상력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이야기들을 써 내려간 작가분들은 장르소설 쪽에서는 꽤나 각광받고 주축을 이루는 분들이기도 했는데요. 오히려 이런 분들이 몸을 사릴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에 나서서 클리셰, 정형화된 틀을 깨부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많은 작가분들이 더 쉽게 새로운 실험과 시도를, 도전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새로운 길을 여는 아주 귀한 발걸음처럼 느껴졌습니다.
최근에 장르소설 쪽에서 실험적인 앤솔로지들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앞으로도 더 많은 새로운 실험적인 이야기들이 나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어떤 식으로 클리셰를 비틀지 상상해 볼 수 있는 정말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