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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쇼핑백에 들어 있는 것
이종산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5월
평점 :
여성주의 공포소설이라는 소개에 호기심이 일었던 책이다. 총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부담 없이 순식간에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흔히 공포소설이라 하면 있는 클리쉐가 아닌, 읽을 때는 '이게 그래서 뭐?'라고 생각하다가 다 읽고나서 문득 '아!'하게 되는 책이다. 너무나 일상으로 젖어있어 이것이 공포스러운 부분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공포를 느끼는 포인트였던 것같다.
제목이기도 한 첫 번째 이야기 '빈 쇼핑백에 들어 있는 것'은 알 수 없는 살인사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버스에서 막노동자로 보이는 남자가 젊은 남자를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는 빈 쇼핑백으로 내려쳐 죽인 사건...그 버스안에 있던 진아는 계약직을 전전하는, 무엇하나 나아질 것없이 답답한 자신의 현실을 도피하고자 직업군인 남친과 결혼을 한 인물이다. 결혼하면 모든것이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는 것을 머지 않아 깨달은 그녀
...종일 아파트에 갇혀 민재가 아침을 먹고 난 그릇을 설거지하고, 민재가 입고 벗어둔 옷을 빨래하고, 집 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그러다 민재가 먹을 저녁을 요리하고 있을 때면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아내라는 역할을 빼면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로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나면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중략) 민재는 신경 안 쓰는 척하면서도 집에 들어오면 날카로운 눈빛으로 집 안을 쓱 둘러보고 빈틈이 보이면 한두 마다씩 지적을 한다. p.24-25
자신을 오롯이 지지해주지 않는, 소유물로 생각하는 남편의 태도에 진아는 매일같이 남편의 빈 쇼핑백으로 두들겨 맞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삶, 이것이야 말로 진짜 공포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던 내용이었다.
'흔들리는 거울'편은 스토커에 의해 가족이 살해당한 뒤의 삶을 살고있는 한 작가의 이야기이다.
경찰은 내가 너무 과잉반응을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때 당시 가장 최근에 받았던 문자를 경찰에게 보여주었다.
'눈웃음치면서 살살 홀리더니 이젠 날 스토커 취급해? 창녀 같은 년'
경찰은 그 문자를 보고 그에게 웃으면서 잘해준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남자들은 예쁜 여자가 웃어주면 자기한테 마음이 있따고 생각하거든. 그런 동물들이에요. 남자라는 게. 제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가끔 이렇게 미친 놈들이 있다니까요. 너무 걱정마세요. 제가 이따 가서 순찰 돌아볼게요."p.77
너무나 하이퍼리얼리즘인 경찰의 대사,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지만 언제라도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나에겐 공포로 다가온다.
이 외에도 강박증이 있는 엄마의 부당한 편애와 언어폭력에 40대까지 시달리는 전형적인 k딸들의 비애가 담긴 '커튼 아래 발' 등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에서 오는, 여성으로써 느낄 수 있는 공포라는 소재가 돋보이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내가 무심코 했던 행동, 말이 어떻게 돌아올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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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도서제공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