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동화집
조선총독부 지음, 권혁래 옮김 / 집문당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 최초 전래동화집(1924년)의 번역 및 문구라는 부제와 함께 저자는 조선총독부라는 것이 괜히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는 생각을 했던 책이다. 편찬된 시기가 문화통치기였던 것만 봐도 왜 조선의 동화를 모아서 연구했는지에 대한 불순한 의도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 담긴 내용은 매우 흥미롭기 그지없다. 내가 어렸을 때 읽었던 여러 전래동화도 들어있고, 비슷한 내용이지만 여러가지 버전의 이야기가 펼쳐지기도 했다.

총 25편의 전래동화가 실려있다. 대부분 등장인물은 선과 악이 뚜렷하게 구분된다. 악을 맡고 있는 쪽은 대부분 형, 윗사람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권선징악의 형태를 잘 갖추고 있다. 그런데 약한 동물로 대표되는 토끼가 교활하고 악한 역할을 맡는 경우도 있어서 이 점은 다소 특이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이건 일본인을 대상으로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흔히 우리나라 이야기에 있다는 해학, 골계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번역해서 나타난 것같다. 교활한 토끼라는 전래동화에서 토끼는 단순히 악한 역할이 아니라 힘없고 나약한 동물이지만 꾀를 써서 자기보다 힘쌘 호랑이를 골려주는 정도인데, 여기서는 다소 잔혹하게 그려졌다.

우리에게 익숙한 해와 달이된 오누이, 은혜갚은 까치, 흥부와 놀부 등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흥부와 놀부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경상도와 전라도가 만나는 지역에 살았다는 흥부놀부, 흥부에게 보답하기 위해 제비는 3월 3일에 박씨를 물고왔단 구체적인 날짜까지 구술을 통해 전해졌다는 느낌이 물씬 나는 부분이다. 더불어 놀부가 박을 타자 양반들이 쏟아져나와 시끄럽게 글을 읽고 못살게 굴어 많은 돈을 뜯어내고, 악사들이 나와서 연주하고 놀부에게 덤터기를 씌워 돈을 뜯어내는 방식으로 놀부를 괴롭히는 부분은 내가 알지 못했던 버전이라 웃음이 나기도 했다.

혹부리 영감으로 알려진 동화는 여기서는 약간 달랐다. 장승 근처에서 잠들었던 혹 있는 남자가 꿈에서 장승을 도왔더니, 상으로 혹을 떼였지만, 이 남자가 한 것과 반대로 한 다른 혹 달린 남자는 오히려 혹을 두 개나 붙였다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어떤 동화는 내 짐작이지만, 우리나라의 동화같지 않고 일본의 전래동화에서 왔거나 두 개가 묘하게 섞인 느낌도 들었다. 유순함, 친절함을 강조하는 듯한 내용은 우리나라보단 일본의 영향이 들어간 것같다. 아마도 이것을 읽는 어린아이들에게 지배자인 일본에게 항상 유순하고 친절하고 고분고분해야함을 세뇌하려는 의도였을까? 더불어 우리가 들으면 '아! 그거?"하고 알만한 동화에서 주로 도깨비가 하던 역할을 이 책에서는 귀신으로 번역을 해놓았다. 또한 어머니를 버린 남자라는 동화에서는 남자가 악독하여 어머니를 버리는 것으로 나온다. 이런 고려장류의 이야기는 일제강점기에 덧씌워진 것이라 알고있기에 아마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비틀어 이렇게 넣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국에 떠도는 전래동화를 모아서 엮은 최초의 전래동화집이 조선총독부 주관으로 만들어졌다는게 안타깝다. 이후 이것이 우리나라 동화와 우리 정서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란 생각에 새삼스럽게 문화통치라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서운 일인가 느끼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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