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짐승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9
모니카 마론 지음, 김미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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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문학동네 인스타그램에서 어떤 테스트를 했었는데, 나와 잘 맞는 책 중 하나가 모니카 마론의 ‘슬픈짐승’이라는 결과가 나왔었다. 그때부터 호기심이 생겨 읽어볼까 하다가 이번에 읽게 되었다. 얇은 두께와 흡입력 있는 문체로 출퇴근길에 호로록 금방 읽은 책이다.

단순하게만 보면 중년의 불륜 스토리이고, 좀 더 생각해보면 독일 통일 직후서독, 동독 출신의 두 남녀가 겪는 격정적인 사랑과 집착을 통해 전쟁, 분단, 그리고 화합의 시대 속에서 혼란스러운 감정과 사회를 온 몸으로 맞아낸 이들을 그려낸 소설이다.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젊었을 때는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안에 너무나 많은 젊음, 
너무나 많은 시작이 있었으므로 
끝이란 것은 좀처럼 가늠이 안 되는 것이었고
또 아름답게만 생각되었다.
p.9


나 또한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화자의 이유와는 조금 달랐지만 내 안에 너무 많은 가능성을 쏟아낸 뒤에는 죽음만이 당연하다 생각했었다. 백 살 혹은 구십세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나’의 옛 연인에 대한 회상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구 동독 출신인 나는 베를린 자연사박물관에서 고생물학자로 근무한다. 서독 출신 개미연구가 프란츠를 만나 사랑에 빠져 남은 생을 이 사랑에 모두 바친다. 그와 헤어진 후에도 사랑의 기억 속에서 평생을 살아간다. 



나는 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나는 더이상 버림받고 싶지 않았다.
“…… 그대를 차지하거나 아니면 죽는 것”
p159



결혼하여 아이를 두고 평균적인 삶을 살았던 나는 어느날 거리에서 발작 후 죽을뻔 했다. 이후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사랑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청춘의 사랑이라 일컫는 프란츠를 만나 사랑에 몰두한다. 나중엔 사랑 그 자체에 집착하는 ‘나’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과정이 너무 버거웠다. 프란츠를 사랑했던 것인지 아니면 사랑에 빠진 나를 잃지 않으려는 것인지, 내 삶의 목표를 잃지 않겠다는 다짐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프란측 떠난 뒤로 ‘나’의 시간은 멈춘다. 외부세계와의 교류도 차단한 체, 과거에 머문다. 그녀의 사랑은 과거의 것이면서도 동시에 현재 진행형이다. 사랑으로 스스로를 구원하려했으나 그 사랑이 족쇄가 된 ‘나’가 바로 슬픈 짐승인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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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없는 기분
구정인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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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없는 기분’이란 것이 무엇인지 나도 느껴봤고, 이 글을 보고있는 그 누구나도 한번쯤 스쳐지나갔던 감정 또는 모르고 지나간 감정일 것이다. 막연한,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 감정을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때 생각을 한 적있다.

처음에 어떤 내용을 다룬 책일까 궁금했었는데, 어린이책 디자이너에서 만화가로 전직한 작가의 스킬답게 이야기는 담담한 그림체로 쉽고 빠르게 몰입할 수 있었다. 

가정불화의 원인이자 엄마를 평생 고생시켰던 아버지의 고독사를 주제로 30대 여성이 겪은 상실감, 우울감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사람들은 자식을 낳아 길러보면 부모를 이해하게 된다지만 이 기간이 쌓일수록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더 홧병이나고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나 또한 시간이 지나면 아버지를 이해하겠지 싶었던 사람으로 저자가 왜 화가나고 눈물만 나던 시간이 많았는지, 이 상실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혼란스러운 감정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같았다. 나 또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슬픔보다는 알 수 없는 기분이 없는 기분을 저자처럼 느낄 것만같다. 슬프지 않은 것도 아니고 자식의 도리를 안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이 설명할 수 없는 끈적거리는 검은 타르같은 감정의 덩어리를 어떻게 풀어내야할까, 미래에 같은 사건을 마주할 나는 과연 어떻게 이것을 풀어나갈까 문득 생각에 잠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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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는 곤란해 - 한국 사람이 좋아서 한국 영화가 끌려서
피어스 콘란 지음, 김민영 옮김 / 마음산책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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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 북클럽으로 받은 책. 제목만 봤을 땐 ‘도대체 뭐가 곤란하다는 것일까?’궁금했다. 필수씨는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외국인 피어스 콘란이다. 말장난을 좋아한다는 설명답게 피어스 콘란=필수는 곤란해가 책의 제목이 된 것. 에세이라면 에세이라도 볼 수 있는 책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영화 덕후의 ‘덕질의 연대기’ 혹은 한국영화 덕심의 일부분을 표출했지만, 조금만 읽어봐도 이 사람 엄청난 덕후 일 것같다는 느낌을 물씬 받을 수 있는 책이다. 한 마디로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어느 외국인의 일상생활과 그 속에서도 연관성을 지울 수 없는 한국영화 사랑일까?

한국영화를 사랑하지만 한국sf영화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파트가 공감됐다. 나 또한 sf느낌만 살짝 내는 지리멸렬한 영화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쓴소리 속에서도 한국영화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란걸 느낄 수 있는 글이다.

가볍게 시작했다가 ‘이거 꽤 재밌는 사람이네’하고 순식간에 후루룩 읽어나간 산문집. 무언가에 깊게 몰두할 수 있고, 몰두하는 사람이란 얼마나 행복할까 한국에 사는 한국영화러버 필수씨는 오늘도 행복한 영화 덕질을 하며 살아가고 있겠구나 부럽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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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앙의 책
오다 마사쿠니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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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만난 훌륭한 킬링타임용 소설집. 이토준지와 에도가와 란포가 생각나는 책이다. 너무 심하게 기괴하고 기분나쁜 일본 특유의 변태스러움이 아니라 적당히 선을 지키는 괴기함이랄까? 



각 단편은 모두 입, 귀, 눈, 살, 코, 머리카락, 나체로 이어지는 '인체'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을 먹고 피어난 매력적인 이야기 모음이다. 책을 먹으면 바로 책 속으로 들어가 결국 정신이 잠식되어버린다는 독특한 발상의 '식서', 타인의 귓속으로 들어가 기억을 읽고 조종한다는 '미미모구리', 잘라낸 코를 심어 인간을 복제하는 것인지 생산하는 '농장', 머리카락 신을 모시는 '머리카락 재앙', 그리고 노출과 신 인류를 다룬 '나부와 나부' 특히 머리카락, 나체 관련 단편은 읽는 동안 이토준지 단편 만화 한 편을 읽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가 책 발간 전에 만화화가 결정되었다고 하니 더 기대된다. 



모두 그로테스크한 소재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있을 법한 이야기가 펼쳐져 순식간으로 책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왜 제목을  '화-재앙의 책'이라고 지었는지는 모르겠다. 모두 재앙을 다루고 있지만 재앙이 아닌 느낌이 드는 결말도 있어서 조금 다른 제목이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아무튼  몰입할 수 있는 킬링타임용 소설을 찾는 분들에게 안성맞춤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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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불광 vol.589 : 금강역사 사찰로 온 헤라클레스 - 2023.11
불광 편집부 지음 / 불광(잡지)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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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금강역사와 사천왕을 헷갈리곤 했다. 더불어 우리나라 불교는 전통신앙과 융화되어 있는 경우라 도교의 영향인가, 토속신앙에 있던 인물일까 늘 궁금해했었다. 우연히 불광미디어에서 발행하는 잡지 서평단으로 참여하게 되어 나의 오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헤라클레스 그리고 금강역사 전혀 접점이 없어보이는데 접점이 있었다. 학창시절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간다라 미술! 금강역사는 붓다 옆에서 수호하는, 현대로 비유하자면 일종의 보디가드인 셈이다. 본래 한명이었으나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두 명이 되었고 그 형태도 다양하게 변화했다고 한다. 현재 금강역사는 사찰 문 밖에서 삿된 것을 막아주는 수문장과 같은 역활을 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그 쓰임이 변화한 것이다. 금강역사가 하는 일은 지역과 문화에 따라 조금씩 바뀌었다. 중인도에서는 바라문의 교화가 금강역사가 하는 주된 일이었다면, 서북인도에서는 토속신의 상징인 용을 항복시키는 것이 주임무였다. 

금강역사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첫번째는 잡지의 소제목이기도 한 헤라클레스 기원설, 두번째는 인드라(제석천) 기원설 세번째는 약샤(야차)기원설이다. 그 기원이 다양함에도 공통점은 모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금강저를 가지고 있단 것이다.

금강역사 헤라클레스 기원설은 초창기 금강역사의 모습이 헤라클레스와 유사하였기 때문이다. 사자가죽을 쓰고 곤봉을 든 모습으로 표현되어 그리스 로마신화의 영향이 간다라 미술에 미친 것으로 보는 설이 강력하다. 관련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저 먼나라의 영웅이 아시아 어느 사찰에 자리잡은 금강역사에게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니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흥미롭다. 

불광미디어에서 나온 잡지는 이번에 처음 읽어봤는데, 한 가지 주제를 심도있게 고찰하여 가볍지만 빠르고 쉽게 읽을 수 있게 내용이 구성된 것같아 만족스러웠다. 풍부한 사진자료도 보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금강역사 그리고 사천왕에 대해서라면 수박 겉핥기이지만 그래도 어디가서 조금 아는 척을 할 수 있을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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