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열림원 / 199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기억하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1995년 3월 20일, 동경 지하철 여러 곳에서 사린이라는 독가스가 뿌려졌습니다. 후에 옴진리교의 소행으로 밝혀진 이 사건 때문에 수십명이 사망하고 수천명이 경중상을 입었습니다. 저도 TV에서 본 아사하라 교주(70년대 코미디언처럼 생긴)의 얼굴이 기억날 듯 합니다.

소설만 줄곧 써오던 무라카미가 사건이 벌어지고 1년이 지난 즈음 이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증언을 모아 르뽀 형식의 책을 냈습니다. 그 책이 <언더 그라운드>입니다. 무라카미가 말하는 언더 그라운드란 단순히 사고가 일어난 '지하철'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고 우리가 사는 이 도시 지하의 숨어있는 가공의 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 힘은 조그마한 출구만 있으면 틈새를 비집고 나와 온 도시를 마비시킵니다.

95년 3월 20일 아침, 동경에서는 옴진리교의 신도들이 사린이 든 봉지를 우산으로 콕 찌르면서 그 출구를 열어줍니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괴물에 질식당합니다. 무라카미가 보고싶어 했던 것은 아마 그 괴물의 실제 모습이었을 겁니다. 같은 사건을 겪은 사람들의 증언만을 엮었기에 이야기가 중복되는 느낌이 없지않지만 '아, 신문에 기재된 사건이란 실제로는 이렇게 벌어지는 일이구나'라는 걸 느꼈습니다.

아, 참 그리고 일본 사람들도 정말 빡세게 일하더군요. 인터뷰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2시간 거리를 통근하면서 밤 10시가 넘게 야근을 하더군요. 이래서야 일본도 선진국이라 할 수 없군, 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71년생 다인이 작가정신 소설향 23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71년생 다인이지만 90학번 다인이기도 합니다. 90 학번. 앞대가리가 80년대 학번과 다르다고 해서 90들의 앞대가리가 되었냐하면 처신이 어줍잖아 80년대 학번에 꽁무니에 붙어 다니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87년을 정점으로 폭풍처럼 몰아치던 학생운동도 그 때엔 이미 허덕이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그러다 91년 소련의 붕괴가 결정타였습니다. 학교 앞 전장을 누비던 무용담을 자랑스러워 하던 선배들이 당황해했습니다. 도마뱀의 꼬리처럼 열심히 꽁무니에 붙어다니던 90학번은 당황하기 보다는 황당했습니다.

'열심히 쫓아와, 달려, 달려!'해서 죽을 힘을 다해 따라왔는데 언덕을 넘어보니 약속의 땅 대신에 끝없는 사막만 펼쳐져 있었습니다. '어! 뭐야, 이거'하기는 80년대 학번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러나 80년대 학번들은 역전의 용사답게 금세 전의를 가다듬고 새로운 조직을 구축했지요. 이른바 '386 세대'라는 것입니다. 뭉치고는 싶은데 이념은 안 먹힐 것같고, 이거 어쩌지? 하면서 잔머리를 굴리다 무릎을 탁 친 게 발로 '386'입니다.

'386 세대'라는 말 자체가 이제는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와 지고 싶은 80년대 학번의 심리를 묘하게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념은 없고 단지 80년대에 같이 학교를 다녔다는 이유로 이들 세대는 뭉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몇 학번이냐며 깐죽거리던 검사도 떳떳하게 자신을 386이라고 소개할 수 있습니다. 학생운동의 맥이 제대로 이어졌고 그래서 80년대 학번을 만약 전대협 세대라고 부른다면 짱돌 한번 안 던져봤을 그 검사가 '나, 전대협 세대요.'라고 할 수 있었을까요?

어쨌든 처세에 능한 386세대에 낄 수도 없는 게 90학번이었습니다. '386세대'라고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자 그럼 우리는요? 했더니 도마뱀 꼬리 자르듯 던져버리고 슬금슬금 도망가버렸습니다. 전대협 세대라고 불렸다면 비겁하게나마 엉덩이라도 비비고 들어갈 수 있었을텐데 이건 아예 법적으로 '386'이라고 못을 박아놨으니 엉덩이는 고사하고 머리카락 하나 들이밀 곳이 없습니다.

어쨌든 우리도 대학생활을, 20대를 정리해야 했습니다. 어떤 형식으로든 통과의례를 치르고 30줄에 첫 발을 디뎌야 했습니다. 최영미, 방현석을 비롯한 80년대 학번 작가들은 자신이 쫓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 무척 고생을 했나 봅니다. 좌절하자니 앞으로의 창창한 삶이 억울하고, 시대에 발을 맞추자니 변절같이 느껴지고. 치열했던 대학생활 만큼 80년대 학번들은 그것을 벗어버리는 데도 엄청난 진통이 필요했습니다.

90학번은 어땠나요? 하지만 소설로만 놓고 보면 90학번의 통과의례는 한 번도 치뤄진 적이 없습니다. 아니 타석에는 들어섰는데 모조리 시범경기여서 제가 기억을 못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역시 90학번은 80년대 학번보다 치러야할 진통이 가벼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통과는 해야하는데 의례는 필요없고, 그냥 PASS! PASS! 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의례를 치르자니 80년대 학번들이 웃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때 지명타자로 타석에 등장한 작가가 90학번 김종광입니다. 쟤는 뭐야? 새로운 타자인가? 번트라도 댈 줄 아는 거야? 라고 관중들은 수근덕거리는 사이에 김종광 타자는 산뜻한 안타를 날렸습니다. 80년대 학번식의 무거움과 진지함을 벗어던지고 한 없는 가벼움과 경쾌한 스피드로 길고 긴 터널을 단숨에 통과해 버렸습니다. 80년대 학번들은 이 이념을 계속 품고 가야하나, 버리고 가야하나, 그도 아니면 버린 척 품고 가야하나로 고민했을 때 우리의 김종광은 까짓 이념 따윈 잊어버린 지가 오랩니다.

71년생 다인이에게 이념은 내 일기장의 한 페이지일 뿐이고, 그것에 발목 잡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촌스러운 짓 따위는 없습니다. 가히 '90학번식'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 것 같습니다. 김종광 덕택에 90학번은 80년대 학번의 꽁무니였다는 꼬리표를 떼어버리고, 90년대 이후 학번을 이끄는 선봉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바이어던
폴 오스터 지음,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199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리바이어던 Leviathan'이란 구약성서 욥기에 등장하는 영원히 죽지 않는 괴물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17세기 영국 철학자 홉스가 지은 책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폴 오스터가 쓴 '리바이어던'을 다 읽은 지금에도 작가가 둘 중 무엇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폴 오스터가 가리키는 리바이어던이란 그 둘을 모두 합쳐 부르는 중의적인 의미도 될 수 있고, 아니면 내가 모르는 제 3의 의미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오랜만에 책 읽고 실망이란 걸 해봅니다. 메디치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데 상의 기준이 의심스럽습니다.

'리바이어던'에 등장하는 인물은 우연한 사건을 차례로 겪습니다. 살인사건까지 포함한 그 사건이란 주인공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는 것이어서 주인공이 감히 이렇게 저렇게 현실을 극복해가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그 사건들이 주인공의 성격을 바꾸고 결국 파멸에 이르게합니다.

일상에서는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사건을 소설로 다룰 때 작가는 더욱 조심해야합니다. 9.11 테러라든가, 대구 지하철 참사같은 소재로 소설을 쓰면 글을 쓰는 작가나 읽는 독자들은 그 사건이 가진 힘에만 휩싸이기 쉽기 때문이죠. 사건이란 것도 결국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인데 사건에만 무게 중심을 두게 되면 결국 우리는 소설책을 다 덮은 후 묘한 허탈감에 빠지게 됩니다.

폴 오스터의 '리바이어던'이 바로 그렇죠. 폴 오스터는 주인공의 내면을 쫓아간 게 아니고 주인공이 겪는 사건을 쫓았습니다. 주객이 전도됐습니다. 원재료보다는 조미료로 승부를 내려고한, 썩 좋은 요리는 아닙니다.

오스터는 삶이란 우연으로 이루어지며 그 우연한 사건이 사람을 얼마나 휘둘러놓는가에 대해 소설의 촛점을 맞추려고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벤자민 삭스가 겪는 우연한 사건들이 그를 끝내 허무한 죽음(적어도 내가 보기에는)으로 몰고갑니다. 그러나 벤자민 삭스가 겪는 사건들은 일상에서, 혹은 소설 속에서 겪기엔 너무나 비일상적이고 비소설적입니다.

그 사건들이 일어날 법하고 소설적이 되려면 오스터는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면서 그 사건을 추적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오스터는 사건의 기술에만 너무 무게를 둔 나머지 그 사건으로 인해 변해가는 인물의 내면을 그려내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사건들은 모두 떨어져있고 그 사건을 겪는 인물들도 모두 파편처럼 흩어져 있습니다. 결국 '리바이어던'이란 소설은 이러저러한 사건의 기록에만 머물고 맙니다.

현실에서 소외된 개인을 그려낸다고 해서 폴 오스터를 카프카로 부르는 사람도 있는가본데 제가 보기에는 잘 생긴 오스터의 외모말고는 카프카와 닮은 점은 하나도 없다고 봅니다.

1분중 0분께서 이 리뷰를 추천하셨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홀든 코트필드라는 주인공은 여간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등장하는 레트 버틀러처럼 잘 기른 콧수염에 터프한 젠틀맨은 아닙니다. 우수에 젖은 채 코트 깃을 치켜세우며 비오는 밤거리를 표표히 사라지는 중절모의 신사는 더더욱 아닙니다.

홀든은 16살 먹은 퇴학생입니다. 그렇다고 누구를 폭행하거나, 학교 기물을 파손했서 퇴학을 먹었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공부가 싫어 낙제를 하게됐고, 낙제에 낙제를 거듭하다보니 퇴학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퇴학도 한 두번 당해본 게 아닌지 짐 싸는 일도 능숙합니다. 하지만 짐 싸는 일만 능숙할 뿐 홀든은 제대로 하는 게 없습니다. 예쁜 여자친구를 꼬드기는 재주도 없고, 싸움을 할 때 주먹 한 번 내지르지도 못합니다.

이런 한심한 주인공이 보따리를 다 싸놓고 기숙사를 나와 뉴욕 거리를 헤맵니다. 술도 마시고, 창녀도 부르고 (멍텅구리 홀든은 물론 용기가 없어 화대만 내고 여자를 돌려보내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안타까운 장면이었습니다) 다음날 낮엔 옛날 여자친구와 연극도 보고, 뭐 그런 짓거리를 하다가 그날 밤 결국 자기 집에 몰래 기어들어갑니다. 몰래 들어간 까닭은 아버지한테 들키면 맞아죽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들키면 죽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집에 들어간 까닭은 이 홀든이 자기 여동생을 무척이나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여동생의 방문을 몰래 따는데 성공한 홀든이 방문을 여는 순간!

이 쯤에서 잠이 확 깨는 사건사고라도 발생해야 하는데 명작이 늘 그렇듯이 이야기 다 끝날 쯤에 촌스럽게 별 일이 생기고 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홀든은 여동생과 잡담이나 하다가 다음날 여동생과 공원에서 만나 여동생이 타는 회전목마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그것도 소나기를 쫄딱 맞으면서.

이게 끝입니다. 싱겁지요? 싱거운 이야기지만 그래도 주인공만큼은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나도 나이를 조금 먹으니 이런 주인공이 좋습니다. 레트 버틀러같은 인간은 위화감만 조성합니다. 홀든같은 친구는 한 명쯤 있어도 괜찮겠다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만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소설의 주인공들은 너무 훌륭하거나, 혹은 너무 악당입니다.
그런데 홀든은 만만해보입니다. 하는 짓이 꼭 내 대학시절과 비슷합니다. 부랑아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나 하고, 쓸 데 없는 일에 밤이나 새고, 그렇다고 대단하고 훌륭한 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 나와 다른 점은 홀든이 나보다는 훨씬 순수하다는 것입니다. 순수한 홀든이기 때문에 거짓과 술수가 판을 치는 세상이 정신없기만 합니다. 회전목마를 타면서 바라보는 세상처럼 홀든의 주위는 항상 어지럽습니다. 누가 정직하고, 누가 제대로 된 인간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세상에 제대로 녹아들지 못하고 이방인처럼 떠돌기만 합니다. 어쨌든 여동생이라도 홀든에겐 등불같은 존재가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어. 뭐, 이 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마크 채프먼이라는 인간은 이 소설을 읽고 존 레논을 죽였다는데 나는 도대체 이해가 안 됩니다. 착하게 살자, 착하게 살자 이게 이 책의 모토인데 도대체 왜 그랬는지. 누구 아는 사람있으면 좀 가르쳐주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마인 이야기 11 - 종말의 시작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1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마에 관한 책을 한 해에 한 권씩 시리즈로 내겠다고 독자와 약속한 나나미 여사. 책이 잘 팔려서 다행입니다. 9권이 나오건 10권이 나오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책이라면 그 약속이란 게 사람을 얼마나 머쓱하게 만들었을까요? 지금은 해마다 새로운 로마인이야기를 기다리는 팬들때문에 연로하신 여사님께서는 글쓰기를 중단하기는 커녕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습니다. 정열이 약속을 부르고 그 약속이 새로운 정열을 끌어 올렸습니다. 정열을 부리려면 아마 나나미 여사만큼은 돼야 할겁니다.

로마인 이야기 11권은 마지막 오현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로부터 시작합니다. 범우사 문고에서 봤음직한 그 '명상록'을 쓴 사람이 바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라고 하는 군요. 치세 내내 크고 작은 전쟁에 시달렸는데 고된 생활 가운데에도 늘 책읽기와 명상에 잠겨 '철인황제'라고 불렸다는군요. (나는 그 '철인'이 '철인 마징가' 할 때 그 '철인'인줄 알았더만 '哲人'이더군요.) 어쨌든 이 마르쿠스 황제가 병으로 죽을 때쯤 등장하는 사람이 아, 그 유명한 콤모두스입니다.

'아, 그 유명한 콤모두스?'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영화 '글라디에이터'에서 러셀크로의 비장한 칼놀림에 쓰러지는 악당 황제가 바로 콤모두스입니다. 하지만 콤모두스가 막시무스(러셀크로)의 칼끝에 죽은 것도, 우렐리우스 황제가 아들의 손에 죽은 것도 나나미 여사의 말씀에 따르면 전혀 사실 무근이랍니다. 영화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서였겠지만 아무래도 속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어쨌든 영화 '글라디에이터'에서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공갈이었던가? 그것이 알고싶으신 분은 11권을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